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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32화 (32/206)

< -- 32 회: #3 -- >

차가워.

오늘은 모든 것이 평소와는 조금 다를 모양이다. 오늘따라 더 서늘하게 느껴지는 침대보의 감촉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하지만 그 소름이 침대보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기엔 침대보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오늘따라 느려터진 이 남자의 손길 역시 소름에 한 몫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벅지 부분부터 말려 올라가는 슬립의 존재는 분명 내 귀걸이의 무게보다 훨씬 가벼울 것이 분명하건만 지금 이 순간엔 그 움직임마저 하늘의 천둥마냥 우렁차게 들려온다. 아무래도 내가 미친 것이 틀림없지. 그렇지 않고서야 슬립이 벗겨지는 소리가 이리도 생생하고 커다랗게 들릴 수는 없는 법이다. 가슴골까지 말려 올라간 슬립이 내 두 언덕 밑 부분에서 잠시 머물다 곧 언덕 위로 올라섰다.

"또 있군."

"……또 있죠. 왜 그러세요? 모르셨던 것도 아니고."

내 옷 한두 번 벗겨보니? 왜 아마추어처럼 굴어?

슬립 안쪽에 입었던 브래지어가 두 언덕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말에 그가 거추장스럽다는 듯 브래지어를 쳐다보았다. 딱히 야한 시선이 아니었더라도 그 시선의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상당히 민망스럽다. 시선을 피해보고자 몸을 뒤틀어 가슴을 침대 바닥에 눕히려했지만 그게 오히려 이 남자에게 브래지어 뒤 버클을 풀 수 있도록 만들어준 꼴밖에 되지 않았다. 버클을 끌고 그는 다시 내 몸을 정자세로 눕혔다. 힐끔 내려다본 내 브래지어는 언제라도 내 두 언덕을 밖으로 튕겨낼 수 있다는 듯이 헐렁해져있었다.

그가 천천히 내 브래지어를 올렸다. 이 남자 시선아래 내 가슴이 완벽하게 개방되었다. 그것들을 손안에 쥐고 이리저리 모양새를 만들어보던 그가 가만히 정점을 입 안에 머금는다.

할짝할짝.

……미치겠네. 그냥 듣기에도 상당히 민망한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려온다. 찌르르 울리는 정점의 쾌락에 몸을 뒤틀었지만 그는 내 슬립과 브래지어를 마저 다 벗겨버린 후 내 몸을 꾹 누르듯 몸을 겹쳐와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하악. 하악."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간다.

오늘따라 느릿하게만 움직이고 있는 이 남자의 손길이 생소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다. 느려도 이렇게 느릴 수가 없다. 나는 묘하게 일어나고 있는 흥분과 동시에 갑갑증을 느꼈다. 내 몸속에서 뭔가가 급박하게 더, 더 라고 외쳐대고 있는데, 그것을 해결해줘야 할 이 남자는 도무지 채워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려고 한다. 급기야 나는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신경질을 부리듯 소리를 질렀고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내려치기도 했다. 그런 내 짜증에 그가 한숨을 내쉰다.

"……성질은."

그 말을 끝으로 그의 매끄러운 혀가 입 안으로 쏙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의 답답한 움직임 따윈 모두 버리겠다는 듯 단단하고 강렬한 몸짓이었다. 그제야 나는 만족스럽다는 듯 내 입속을 휘젓는 그의 움직임에 잔득 굳혔던 온 몸의 긴장을 놓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격렬한 움직임에 긴장하지 않고 도리어 긴장을 풀어버린다는 것이. 어쩌면 이게 더 익숙해서 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행위는 그 날의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 시간이 조금씩 더 길어지거나 혹은 짧아진다. 또 특정한 부분에 손이 더 머물거나 등등 조금씩의 과정만이 다를 뿐 결국 시작과 끝은 똑같다.

그래, 평소와 달랐기 때문에 그래. 평소와 너무 달라서 당황했던 거야.

"또 딴 생각을 하는군."

내 목덜미에 코를 묻고 쇄골을 지분거리던 그가 어느새 고갤 들었는지 내 귓가에 속삭인다. 그 숨결이 훅- 귓속으로 전해지자 순간 온 몸이 간지러워 나도 모르게 몸을 비틀었더니 도망가려는 줄 알았는지 그가 내 허리를 강하게 조여 왔다.

"맘에 안 들어."

"네?"

"원하는 대로 움직여줬건만 집중을 못하는 건 대체 무슨 심보지?"

"심. 크흠, 크흠. 심보라뇨. 제가 뭘 어쨌다고. 그리고 평소엔 모르는게 없는 것처럼 구셨으면서 뭘 물어보세요?"

"참 신기하거든. 원하는 대로 안 해주면 짜증부리고 원하는 대로 해주면 혼자 삼천포로 빠져버리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제가 굉장히 이상한 사람 같잖아요."

"쿡쿡.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는 확실히 아름다운 남자다. 살짝 웃었을 뿐인데도 온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이 남자는 수 백 아니, 수천 명의 사람들 사이에 있다 하더라도 홀로 빛날 사람이다. 이건 단지 내 추측이 아니다. 실제 이 남자가 그랬던 적이 있음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사실 그에게는 이런 말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고 또 굳이 말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내색한 적 없지만, 난 그와 관계를 맺기 16살 훨씬 이전에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 물론 루벤스 제국 사람들 중 이 남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고, 루벤스 제국의 수도 루노에 살면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느냐마는 어쨌든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비단 내가 루벤스 제국에 살고 있고 또 루노에 살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 하지만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에 나는 그를 보았었다. 만난 것이 아니라 보았었다. 딱 두 번.

이 나라 루벤스의 아버지인 황제폐하의 생신을 맞아 치러진 루노의 축제에서 황제폐하와 황후마마께서 퍼레이드 하는 그 길을 호위하는 그의 모습을 본 것이 첫 번째고, 또 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치러진 검술 대회에서 당당하게 우승한 그를 본 것이 두 번째다. 첫 번째 내 나이는 8살 그는 16살이요, 두 번째 내 나이는 10살 그의 나이 18살 때였다.

내 나이 10살에 나는 자기보다 훨씬 더 나이 많아 보이던 이들을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쓰러트리는 그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멀리서도 그런 그의 모습이 무서워 나는 엄마 아빠 손을 꼭 잡았었더랬지. 그러면 엄마 아빠가 그의 칼로부터 나를 지켜줄 거라 믿었다는 듯이.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내 방패는 엄마 아빠였기 때문에 그런 내 생각이 마냥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후로 몇 달 후 나는 든든한 보호막인 엄마 아빠를 잃었다.

하여튼 그는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나를 몰랐어도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를 동경했다거나 몰래 사모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평민인 내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높은 곳에 속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아주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 어떤 환상도 그에게 품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사람이 저렇게 빛이 날 수도 있구나, 이 정도 생각은 해보았다. 그는 오히려 내게 현실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인간이 아닌 신이라고 했더라도 믿었을지 모르겠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서 나는 오늘 검술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은 빵집 아로 오빠보다 어려 보이는데 참 대단한 것 같다는 종알거림 외에는 두 번 다시 그에 대해 말하지도 그를 생각하지도 않았더랬다. 게다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 것도 아니고 멀리서 본 것뿐이기에 정확한 얼굴을 기억하고 있지도 못했다. 기억할 필요도 없었고.

그는 단지 내게 잘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 그저 대단한 사람이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인생은 참 알 수 없지. 요지경이야 정말.

단 한 번도 나와 엮어서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그 남자와 살을 섞는 관계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그가 쥐었던 칼날에 흐르던 피가 무서워 엄마 아빠의 손을 움켜쥐었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그의 보호 아래 숨 쉬고 있다. 인생은 예측불허라는데, 내 인생이 딱 그러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보호라. 흐음, 맞겠지. 보호라는 말이. 내가 좋든 싫든 이 남자가 나를 보호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적어도 배롤린 가(家)에서의 탈출을 도운 것만으로도 나를 보호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지금의 그는 그럭저럭은 아는 남자,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남자, 잠자리를 함께 하는 남자가 되어 있다.

"아얏!"

갑자기 느껴지는 아픔에 고갤 들어 그를 올려다보자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이 역력한 그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꾸만 딴 생각하는 내가 어지간히 맘에 안든 모양이다. 나는 슬쩍 허리에 힘을 쥐 뒤로 몸을 빼려 해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내 행동이 더욱 맘에 들지 않는 듯 엉덩이를 움켜쥐곤 더 가까이 그에게 밀어 올렸다.

"히익!"

방금 전보다 더 큰 아픔이 온 몸을 관통해왔다.

맙소사. 방금 전까지 기억 속 무대 위에서 홀로 빛나던 그 사람이 지금 내게 남자의 행동을 하고 있다니!

"왜 아프게 그래요? 제가 딴 생각하는게 맘에 안 들면 집중할 수 있도록 유혹이나 할 것이지."

"……뭐?"

"……말실수요."

젠장. 내가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인 거야? 생각 없이 뱉어낸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도 노골적이라 가히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러기에 평소랑 똑같이 할 것이지, 오늘따라 괜히 이상하게 굴어서 사람 싱숭생숭하게 만들어, 만들기!

속으로 투덜거리고 나는 더 이상 딴생각 금지! 하고 속으로 외친 다음 두 팔을 들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이제 딴 생각 안할게요."

사과도 해본다. 잠시 가만히 있다 곧 다시금 움직이는 그를 느끼며 나는 집중, 집중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잠시 후.

"축소화 마법도구 사주세요."

그의 팔에 머리를 베고 숨을 고르며 내가 말했다. 한 쪽 팔은 내게 주고 다른 팔로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뜬금없는 내 말에도 동요하지 않고 마치 예전부터 내가 사달라고 졸라댔던 것 마냥 담담하게 입을 연다.

"그러지."

"……안 물어봐요?"

뭐가 이렇게 쉽단 말인가?

조금 허무하기까지 하다. 사실 그가 먼저 말하긴 했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사 달라 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런 말을 들었다손 치더라도 그런 요구가 쉽게 입 밖으로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렇다. 처음 그의 얘길 들었을 땐 알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고갤 끄덕였지만 알았다고 말한 것이 쉽게 사달라고 말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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