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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름답다-23화 (23/206)

< -- 23 회: #3 -- >

하지만 내겐 집이 없다.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은 내게 없었다.

나를 이상하게 여길까봐 내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혹 제가 쉬어갈 방이 있을까요?"

이젠 정말 눈앞의 이 사제가 나를 쫓아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세상에 신전에 와서 방을 찾는 여자라니. 이 얼마나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가 입을 열었다.

"따라오시지요."

아아. 그 순간 나는 내가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쨌든 오늘 하루 내 몸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사실에 난 안도했다. 온 몸에 기운이 빠져 당장이라도 자리에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나는 사제 뒤를 따라 걸었다.

"여긴 제 방입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자매님께 내드릴만한 방을 준비하기는 어려울 듯 하니 오늘밤에는 불편하셔도 이곳을 사용하세요."

"아."

"저는 다른 방에서 묵어도 됩니다. 안심하고 자매님께서 이곳에서 쉬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저기."

"괜찮습니다. 오늘 이 장소는 저 보다는 자매님께 더 필요해 보이니까요."

"……."

그렇게 말하며 그는 문을 닫았다.

다른 사람의 휴식공간을 빼앗다니, 이게 웬 민폐니 유나.

나는 고개를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침대랑 책상뿐인 작은 방이지만 방은 깨끗했고 단정했다. 마치 이 방의 주인의 성격을 대변하듯 따뜻한 그 방 문 앞에 우두커니 선 채로 방을 둘러보던 나는 한순간 무너지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 몸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내일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데 내 전부를 걸 수도 있었다.

"……."

아프다.

"……흑."

아프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방울로 툭툭 떨어지던 것이 어느 순간 불어나 우두둑 흘러내린다.

네 방울. 다섯 방울. 여섯 방울.

기어코 눈물을 쏟아내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미친 여자마냥 돌아다닌 이유는 울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함이었다고.

쏟아지듯 흘러내린 눈물방울이 치맛자락에 잠시 고이듯 머물다가 스며든다. 우두둑 눈물이 떨어지는 자리마다 파문이 일 듯 치맛자락의 색이 짙어져갔다. 그 짙어짐은 자기들끼리 뭉치기도 하고 그 위에 새로운 눈물방울을 덧 받아 진해지기도 하며 점점 더 넓게 퍼져나갔다. 퍼짐의 정도가 커질수록 치마는 축축해져 갔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저 아플 뿐이다.

나도, 나도 데려가지 그랬어요, 네? 엄마 아빠.

<싫어, 싫어, 엄마아-. 아빠아-.>

먼 기억 속의 어린 내가 소리쳐 울부짖고 있었다. 나를 꼭 안고 있는 엄마와 그런 나와 엄마를 꼭 안고 있던 아빠. 내가 마지막으로 본 두 분의 모습. 오로지 나 하나만을 무사히 지키기 위한 그 사랑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울부짖는 것뿐이었다.

<아무도 없어요? 제발요, 네? 아무도 없어요?>

마차 사고였다.

평민인 우리 집에 소유하고 있는 마차가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우리는 루노에 운행되고 있는 마차를 탔었다. 그런 마차들이 귀족들이 사용하는 마차처럼 좋은 것일 리 만무하다. 마법장치 하나 제대로 걸려있지 않아 마차는 심하게 덜컹거려댔고 물론 딱딱한 의자 때문에 엉덩이는 무척이나 아팠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마차 멀미 때문에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기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런 나를 달래주듯 엄마는 나를 안고 내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어, 어!>

그렇게 엄마 품에 안겨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뭔가 심하게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으로 붕 뜬 느낌이 들었다. 그 기분 나쁘고 불안한 기분에 저절로 눈이 떠졌을 땐 모든 물건의 위치가 뒤죽박죽 얽혀있었다. 엄마는 두려운 눈동자로 나를 꼭 안고 있었고 그런 엄마와 나를 아빠가 안았다. 그 든든한 품 안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안심되는 품속이었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곧 이어 느껴지는 둔탁한 아픔과, 아픔과, 아픔과, 아픔에…….

나는 잠시 기절했었던 것 같다.

눈을 떠보니 마차는 가파른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있었다. 저 멀리 온 몸이 피로 가득한 마부 아저씨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리고 나를 꼭 껴안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도. 그런 엄마와 아빠의 몸에도 피가 흥건했다.

<제발 눈 좀 떠봐. 싫어, 엄마. 싫어, 아빠. 제발 눈 좀 떠봐. 앞으로 말썽도 절대 안 부리고 고집도 안 피우고 말도 잘 들을게. 앞으로는 착한 유나가 될게요, 제발 눈 좀 떠봐요, 응? 제발요.>

너무 오래된 마차여서 바퀴가 빠져버린 것 같다고 그랬다. 하필이면 바퀴가 빠진 그 장소가 너무 좋지 않았다고.

<나 혼자 두지 마, 제발! 엄마, 아빠! 눈 좀 떠봐, 눈을 좀 떠봐, 제발!>

엄마와 아빠가 서로의 어깨를 꼭 부여잡고 나를 꽁꽁 둘러싸듯 안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심하게 굴렀어도 내게는 다행이 큰 부상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던 것도 같다. 운이 굉장히 좋다고도 했었던가?

다행? 운?

이게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게 운이 좋은 일인가?

나 혼자 남았는데?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다. 그건 다행도 아니고 운도 아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란 그 자리에서 나도 같이 죽는 거였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란 건은 엄마 아빠가 많이 다쳤어도 두 분 다 죽지 않았을 때, 그럴 때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였다. 그게 바로 다행이고 운이다. 하지만 나만 살았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나만 살았다. 혼자 남는 것도 싫지만 더욱 싫었던 건 엄마 아빠 덕분에 나만 살아버렸다는 것.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나 때문에 죽었기 때문에 나도 같이 죽었으면 더 좋았을 걸-하고 생각하는 이 삶을, 나는 애써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날 살린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그 단 하나뿐인 이유로 나는 살아가고 있다.

"하아."

하지만 별빛과 달빛이 모두 가라앉고, 나 홀로 이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지독한 허무와 빈곤과 외로움이 사무쳐올 때면- 나는 감히 해서는 안 되는 원망을 슬그머니 꺼내어본다.

엄마, 아빠. 나도 데려가줘, 제발. 나도 데려가줘. 지금 당장이라도 나도 데려가줘.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이 세상엔 단 세 부류의 사람만이 내게 남았다. 내게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대하는 많은 사람들과 내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 또 내게 호기심만을 가지고 그들의 그 호기심이 내게 상처가 되는 줄도 모르고-설령 알았다 해도 상관치 않았겠지만-마구 찔러대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 속에 내가 그토록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랑과 따스함을 주는 사람은 없다. 내 눈물을 받아줄 사람조차 없다. 가끔은 나도 어렸을 때처럼 두 다리 뻗고 엉엉 울며, 나 우니까 좀 달래달라고 심술도 부려보고 어리광도 부려보고 싶었다. 사실 그렇게 슬프지는 않아도 억지로 마구 울어대면서 다정한 달램을 받아보고 싶기도 했다.

뚝뚝.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울지 못한다. 이제 내가 흘리는 눈물은 모두 참고 참고 또 참았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몰래 피해 구석으로 도망가 혼자 찔끔거리는 쓰디쓴 눈물뿐이었다.

<너는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아이가 될 거야, 유나야.>

미안해요, 엄마. 난 더는 사랑받을 수가 없어.

<사랑한단다, 유나야.>

응, 나도 사랑해요. 아빠.

<유나는 엄마 아빠의 보물이야.>

내게도 엄마 아빠는 보물이에요.

<엄마 아빠가 우리 유나를 꼭 지켜줄게. 우리 유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엄마 아빠가 안전하게 지켜줄 거야.>

……거짓말쟁이들. 엄마 아빠는 그 말을 지키지 못했어요.

하지만 사랑해요.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나를 지켜주진 못했지만 정말 '끝까지' 나를 지켜줬단 건 알아요. 그래서 그 말이 얼마나 무거웠던 건지 얼마나 진실한 말이었는지, 그 속에 담겼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웠던 건지 잘 알아요.

"흑."

그래도 엄마, 아빠. 나는 홀로 남겨진 것보다 함께 떠나는 게 훨씬 행복했을 거라 생각해요. 이런 생각해서 죄송해요. 더 당차게 살지 못해서 죄송해요. 오늘도 또 이렇게 궁상떨면서 울고 있어서 정말 죄송해요.

엄마 아빠를 하늘로 보내고 난 후, 나는 두 분께 늘 하고팠던 말이 있었다.

16살 한 사람의 아내가 아닌 정부가 되고 난 후에도 나는 두 분께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흑."

두 분이 원하셨던 딸이 되지 못했기에 죄송하다고, 그래도 미워하지 말라고, 내게 실망하지 말아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만약 내게 실망이 커서 그래서 꿈에서조차 엄마 아빠가 나를 만나러 와주지 않는 거라면, 나를 찾아와 욕을 해도 좋으니 부디 기억 속의 엄마 아빠의 형상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만, 그 전에 한번만이라도 와달라고 사정하고 싶었다.

제발 혼자두지 말아요, 나를 내버려 두지 말아요, 버리지 말아주세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 작품 후기 ============================

별빛같은마음님, 게으른냥님, lulullu님, whomi님, 아랑마녀님, RedHaze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급하게 쓰느라 작품후기도 제대로 못써서 반응해 주실 거라는 기대는 정말 안하고 막 올리기만 했었는데 댓글 주시니 기분은 좋더라구요^^

이 글은 제 친구 생일 선물로 쓰는 글이라 그 녀석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완성할 계획입니다. 네... 계획입니다. 일단은 계획입니다^^;;;;

선작 코멘트해 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더 올릴 글이 있긴 한데 지금 밖이라 올릴 수가 없네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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