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는 아름답다-19화 (19/206)

< -- 19 회: #2-2 그 남자 -- >

"……죽어라."

긴장은커녕 나른하기까지 한 목소리와 함께 얼마든지 덤벼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려주자 일곱 인영이 동시에 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호세와 루이가 재빨리 뮤의 앞을 막았다. 3대 7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기는 쪽은 정해져 있다. 숫자란 것은 실력들이 고만고만할 때나 가늠해 볼 수 있는 거다. 실력이 월등히 차이 날 땐 무용지물인.

차악!

어느새 루이를 뚫고 뮤의 앞까지 다가선 인영을 뮤는 망설임 없이 베어냈다. 자신의 몸이 베이는 것조차 모른 채 쓰러지던 인영은 부릅뜬 눈으로 뮤를 쳐다보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검 집에 얌전히 넣어져 있던 칼이 언제 뽑혔는지조차 그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눈을 감았다. 그의 눈에 새겨진 마지막 감정은 경악뿐이다.

픽픽 몇몇의 인영들이 쓰러졌지만 호세와 루이는 멀쩡했다. 그 모습을 슬쩍 바라보며 뮤는 칼에 흐르는 핏줄기를 간단한 기로 떨궈내며 다시 검 집에 넣었다.

"오호라."

뮤는 검은색 옷으로 몸을 칭칭 둘러싼 이들 중에 한명을 보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뮤가 봤을 때 그는 제법 뛰어난 인물이었다. 호세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호세의 근력과 스피드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서로 비등한 인물끼리 호각지세를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나머지 사람들은 루이가 모조리 맡게 된 형세가 되었다. 그들 모두를 막아내기 조금 벅차했지만 아직까지 루이는 잘 해내고 있었다. 사실 루이를 뚫고 뮤에게 왔다 해도 죽음의 시간만 재촉해대는 행위일 뿐이다.

"저 놈이 대장인 모양이야."

실력은 제법 쓸 만하나 어차피 써먹지 못할 말이라면 필요 없다. 뮤는 이제 슬슬 호세의 기세가 좀 더 우위로 접어든 싸움을 지켜보다 눈을 돌렸다.

"파이어 볼!"

그 때 루이와 상대하던 인영들 중 한 명의 입에서 시동어를 외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사!"

루이의 입새로 짜증나는 음색이 튀어나왔다.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놈이었다. 저런 실력으로 어떻게 이런 일에 끼어들었을까 의아했는데 검술 실력은 낮으나 마법 실력은 제법 괜찮은 마검사였던 모양이다.

루이는 아차 하는 심정이 되어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파이어볼을 쳐다보다 자신에게 쏘아오는 또 다른 이의 검 두 자루를 튕겨냈다. 어쩔 수 없다. 최대한 주군이 나서지 않아도 되게끔 하려 했지만 실력이 부족하다. 주군이 저 정도도 막지 못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과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건 별개의 문제다.

"젠장."

루이는 만족스럽지 못한 자신의 실력에 분통을 터트리며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이의 칼을 흘려 빈틈을 노려 그 몸을 베었다. 피가 튀고 적이 쓰러졌다. 하지만 아직도 2명이 더 남아있었다. 저 빌어먹을 마법을 쓰는 놈까지.

팡!

파이어볼이 뮤에게로 쏘아졌다. 뮤는 실드조차 치지 않았다. 그저 몸속의 기운을 끌어내 그 기운으로 파이어볼을 옆으로 흘렸을 뿐이다.

"설마 그래듀에이트 급의 마검사?!"

상대방의 입속에서 경악스런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뮤에게 파이어볼을 쏘았던 그는 그 자리에서 잠시 굳었다가 곧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죽음이 두려워하는 행동은 아니니라. 어차피 이곳에 그래듀에이트 급의 마검사가 있는 이상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란 건 뻔 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한 명이라도 돌아가 그들이 알아내고자했던 정보를 길드에 알려야했다. 그리고 이 정보는 단순히 정보가 아닌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정보가 되리라. 그렇게 판단한 그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오래지 않아 멈춰져야 했다. 분명 주위의 사물이 흐려질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렸건만 어느새 그의 눈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이 밟고 서 있던 땅이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몸이 바닥에 쓰러져있음을 알았다.

툭툭툭.

입 밖으로 떨어지는 핏물이 바닥을 적신다. 그는 자신의 기운이 모조리 막혀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싱거운 싸움이군."

뮤의 검 날에는 아직 푸르스름한 검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 냉랭한 그 검기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그는 죽었다. 그의 등에는 검기로 인한 자국이 크로스로 길게 나있었다. 뮤의 진짜 실력을 모르는 이유는 그 실력을 들어낼 만한 상대도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알아내기 위해 왔던 이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때 호세가 검으로 상대의 검을 막음과 동시에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팔꿈치로 그의 배를 가격했다. 아는 이가 극히 드무나 호세는 검보다 권에 더 능통한 자였다. 권법의 실력이 어느 순간 막혀 그것을 뚫기 위해 검을 든 이가 호세다. 하지만 그것도 곧 뛰어넘겠군. 호세가 한 단계 더 성장하리란 것을 뮤는 알 수 있었다.

챙.

호세가 싸움을 마치고 그 때를 맞춰 루이도 상대방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었다. 호세와 루이가 주위를 둘러보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그 때였다. 뮤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라이트닝 볼트!"

"캬악!"

라이트닝 볼트는 파괴력이 크다 할 수 없는 마법이었지만 오히려 작은 부위에 그 위력을 집중시켜 쏘는 마법이기에 그 것에 직통으로 맞으면 웬만한 사람은 살 수 없다. 지붕 위에서 한 사람이 고통의 신음성을 터트리며 떨어져 내렸다. 방금 전 뮤를 공격했던 일행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자였다. 뮤가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피하려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라이트닝 볼트에 맞은 것인지 그는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피로 그의 부상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주군."

"주군."

호세와 루이가 재빨리 뮤에게로 다가왔다.

"하이드 트레이스(hide trace)가 모든 걸 완벽하게 감춰주진 않다는 걸 간과했다는게 네 치명적인 실수다. 아무리 낮은 서클의 마법이라 할지라도 고위 마법사가 사용하는 이상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걸 망각한 것 역시 네 치명적인 실수가 되겠지."

"커억!"

"어차피 죽을 거 하나만 더 알려주마. 아무리 높은 서클의 마법이라 할지라도 형편없는 자가 사용한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어설픈 네 놈이 흉내 내기엔 안타깝게도 네 놈의 실력이 낮아. 모든 것에서."

뮤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에 작은 폭파 음이 일어났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폭파 음은 총 7번 일어났다.

새빨갛게 솟아오르는 불덩어리와 함께 그 위력은 한 눈에 보아도 어마어마했지만 소리는 매우 작았다. 오히려 적막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폭파 음과 동시에 뮤 일당을 덮치려 했던 인영들이 맹렬하게 타들어가 오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감히 날 공격하려던 이들의 시신을 가져가려 했나? 그 실력으로? 가엽기 짝이 없군."

"크흑!'

공격당한 이는 겁에 질린 눈으로 뮤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뮤는 괴물과도 같았다. 방금 전 뮤가 시체를 태우기 위해 펼친 마법은 분명 파이어볼이다.

'하, 하지만 저것이 파이어볼이라고? 말도 안 돼! 저게 고작 파이어볼? 게다가 소리까지 차단했다. 이 사람은!'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건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의 눈빛이었다.

"……글쎄."

"!"

"네 놈이 나를 파악하려 한 건 기특하지만."

"커헉!"

뮤는 그에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단지 뒤돌아 걸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뮤가 등을 돌리는 그 순간 엄청난 압박감을 받았다. 그 압박감은 자신이 당한 부상의 고통이 순식간에 몰려오는 그것과 같았다.

"감히 그럴 수 없을 거다."

"컥!"

그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바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자신이 아직까지 숨을 붙이고 있었던 이유를.

바로 저 남자 때문이었다.

이 달빛 아래서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저 괴물 같은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 목숨 선을 아슬아슬하게 잡아주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선을 그가 놓은 즉시 그는 마법에 맞았던 순간 맞아야 했던 죽음을 받아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 다시 한 번 화염의 불꽃이 일어났다. 곧 아무 흔적도 그곳에 남아있지 않았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에는 처음과 같았다. 싸움이 일어나기 전과.

"주군."

뮤의 곁에 루이가 다가왔다. 가라앉은 루이의 기색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지만 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들은."

"뻔하지. 자객을 줄기차게 보내더니 이젠 길드 녀석들을 보내다니. 꼼수가 너무 뻔해서 상대할 맛도 안 나는 군."

"어지스 자작의 짓일까요?"

"아아. 아마도. 이번 일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겐두라 백작이 했다고 생각하면 지금까지 그를 상대했다는 자체가 한심해질 것 같으니. 그냥 어지스 자작이 했다 생각하는 편이 낫겠군. 어지스 자작이라면 충분히 할 말한 바보짓이긴 하니까."

뮤는 멍청한 놈 하나 때문에 귀찮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불쾌해졌다.

"정보길드입니까?"

호세가 가만히 물었다. 그 말에 루이가 입을 열었다.

"정보길드일 가능성이 제일 크지. 너와 싸우던 이를 제외하고는 다들 실력이 그리 뛰어나진 않던데."

루이의 말에 호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랬다. 암살을 시도하려 했다기엔 실력이 너무나도 약했다. 호세가 가장 강한 한 명을 상대하느라 루이가 다른 나머지 이들을 전부 상대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루이가 심각하게 밀리거나 하진 않았으니. 단지 상대방의 수가 너무 많았고 그들 모두를 여유 있게 상대할 만큼 그렇게까지 루이가 강하지 못했다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지만 호세와 적수를 바꿔 그 반대로 싸웠다 해도 호세 역시 똑같았을 거다. 권으로는 루이보다 호세가 우세하겠지만 검으론 호세가 루이를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

"어쎄신 길드 치고도 너무 약했지."

"그도 그렇군."

며칠 전 주군을 습격했던 일련의 무리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 호세가 가만히 뮤를 쳐다보았다.

"주군. 괜찮겠습니까?"

"흐음."

당연히 멀쩡해 보이는 주군의 상태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것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그리고 호세는 서두만 꺼냈을 뿐인데도 뮤는 호세의 염려를 알아들었다. 뮤의 아름다운 얼굴에 미묘한 웃음이 걸린다. 딱히 기분 좋아보이지도 그렇다고 불쾌해 보이지도 않는 그 미소에 호세가 가만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어쩌면 자신의 주제넘은 참견일지도 몰랐다.

"점점 더 많이 나타나겠지, 그런 무리들이."

"위험해지실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괜찮다지만 아마 곧 그럴 거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뮤는 작고 하얀 얼굴을 떠올렸다. 며칠 전 자신을 무척이나도 불쾌하게 만들었던 그 얼굴을.

내게 월권이라 했던가? 주제넘은 참견 따위는 하지 말라고? 자신은 그의 여자가 아닌 정부일 뿐이라고 그 입으로 그런 소릴 했었지. 내게 그리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너만큼 건방지게 구는 사람도 없지. 그런 내가 널 지켜야 하나?

상관없다고, 내버려두라고 말하는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뮤의 눈빛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참으로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괘씸하고 괘씸해 그만 져버리고 싶은데도 이상하게 그럴 수가 없다. 어쎄신의 공격이든 정보 길드의 공격이든 앞으로 뮤가 그녀를 계속 찾는 한 빠르던 늦던 그녀도 곧 그들의 표적이 될 것은 자명한 일. 자신에게 건방지게 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냥 내버려두고 싶은 기분도 들지만…….

"불쾌하군."

자신의 여자다.

"3기사단으로 하여금 별장을 호위하게 해. 눈치 채지 못하게."

"네."

그대, 참 곤란해 내게.

그리고 뮤는 곧 머릿속의 작고 하얀 얼굴을 지웠다. 깨끗하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