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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명령(2) (92/180)

92화. 명령(2)



안 돼요.

입 모양으로 말하며 그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조련사의 명령을 들은 개처럼 우뚝 멈췄다. 호흡까지 멎은 마냥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빗줄기가 잦아드는지 마차 지붕을 때리는 소음이 점점 작아졌다. 그에 맞춰 탈린이 군화로 자갈을 밟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수많은 마차중 하필 이 마차를 열 확률. 아주 희박하긴 했지만 들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들썩이자 그가 안심시키려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가만히 있으면 이쪽까지는 오지 않을 겁니….”

“조, 조용히…!”

그녀가 화들짝 튀어 오르며 그의 입을 막았다. 덕분에 마차가 크게 한 번 덜컹거렸다.

“…….”

자갈을 밟던 소리가 우뚝 멈췄다. 릴리에는 그의 입을 막은 채 어정쩡한 자세로 굳었다.

그의 숨결이 손날을 간질였다. 더는 참기 힘들다는 듯, 잘생긴 눈매가 이내 얕은 호선을 그렸다. 손에 닿은 입술도 부드럽게 휘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자갈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올 때의 배는 빨리 멀어지더니 쿵. 마구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색한 정적이 일었다. 들썩이는 그녀의 숨소리, 은은한 빗소리. 손에 닿은 그의 입술 감촉과 진한 향기만 그들 사이에 한참 머물렀다.

그가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아 내렸다. 역시나. 잘생긴 입술 끝이 씰룩 올라가 있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쪽으로 오지 않을 거라고.”

“…….”

억울한데, 반박할 말은 없었다. 그가 딱히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니니 책망할 거리도 없었다.

뾰로통하게 입술을 꼼지락거리던 릴리에가 눈을 내리깔았다. 민망함에 괜히 무언가 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게 뭔지는 그녀도 잘 몰랐지만.

“아무튼… 당신 탓이에요.”

결국, 선택한 투정에 그는 되려 기분 좋은 듯 가볍게 웃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내 탓이지요.”

그가 천천히, 아주 느리게. 손등으로 뺨을 쓸어내렸다. 피부와 피부가 닿는 소리가 이다지도 클 수 있었던가. 

자신의 뺨이 뜨거운 건지, 그의 손이 차갑게 식은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굴곡진 손가락 마디의 감촉에 스치고 지나간 그곳조차 열기가 남아 뜨거웠다.

뺨을 타고 내려간 손끝이 목을 간질이고, 피부 감촉을 음미하듯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손바닥이 그의 전신처럼, 뜨겁고 축축하고 단단했다.

목에서 뛰는 가쁜 맥박이 그의 손바닥을 콩 콩 때렸다. 그녀는 그가 그 느낌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의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 그 단계를 손바닥으로 모조리 느끼고 있었다.

가빠진 자신의 숨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옷을 껴입고 있는데 발가벗겨진 것 같았다.

드레스 안에서 가슴 끝의 유실이 제멋대로 꼿꼿해졌다. 배꼽 아래에 뭉친 뻐근한 열기는 계속 밀부를 간질이며 음란한 액을 밀어냈다.

도자기를 조형하듯 섬세하고 느린 손길이 계속 피부를 타고 내려갔다. 온 신경이 그의 손끝을 따라다녔다. 그가 손끝을 넥라인에 거는 순간, 그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옷… 찢으면 안 돼요.”

잔뜩 잠긴 목소리였다. 그녀가 바싹 마른 아랫입술을 깨물어 축였다. 

“입고 돌아가야 하니까….”

그의 옷을 입고 성채를 가로지르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식으로 광고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순순히 응답한 그가 그녀의 허리 뒤로 손을 밀어 넣었다. 드레스를 고정한 끈을 당겨 툭, 풀어 내렸다. 드레스가 느슨해졌다.

그가 그녀의 동그랗고 가녀린 어깨에 손을 올렸다. 포장을 벗기듯 천천히 아래로 끌어내리자 상아색 드레스가 바스락 밀려 내려갔다. 새하얗고 가녀린 팔뚝이, 부드러운 젖가슴이, 그리고 이내 분홍색 작은 열매가 드러났다.

그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묵직한 숨소리에 그의 상태가 전부 담긴 듯했다.

적나라한 시선이 부끄러워 그녀가 슬쩍 팔을 올려 가슴을 감쌌다. 말캉한 살덩이가 가는 팔에 꾹 짓눌렸다. 

“가리지 마십시오.”

그가 고개 돌린 그녀의 턱을 손끝으로 슬쩍 당겼다. 그녀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하지만 창피해요. 부끄럽고….”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그녀를 달래듯 나른한 중저음으로 속삭이며 그가 천천히 손목을 잡아 내렸다.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릴리에.”

그가 몸을 숙였다. 푸딩처럼 뽀얗고 부드러운 살덩이를 한입에 베어 물었다.

“으응…!”

축축하고 뜨거운 감촉에 젖가슴 인근의 신경이 짜르르 조여들었다.

얼음을 녹여 물을 마시는 짐승처럼 부드러운 살덩이를 집요하게 핥고 이를 세웠다가, 이내 전체를 물고 입 안으로 강하게 빨아들였다. 

찌릿한 감각이 가슴으로 확 뭉쳐 들어 자연히 교성이 터졌다. 힘이 들어간 허리를 움찔대며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읏, 응… 블라드, 아!”

그가 그녀를 입 안으로 강하게 빨아들였다가 혀로 단단한 돌기를 연신 찌르고 눌러댔다. 몸 전체가 그의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반대 손으로는 다른 쪽 가슴을 쉼 없이 주물러 대는 통에 젖가슴에 뭉쳤던 야릇한 감각이 아래를 향해 내달리기를 반복했다.

고장 난 듯 물을 흘려 대는 아래가 잔뜩 팽팽해져 있었다.

아, 이제 정말. 못 참겠어….

“흣, 블라드, 이제… 그만… 아,”

애타는 목소리로 그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가 뽀얀 가슴에서 입을 뗐다. 둥근 살덩이 인근의 빗장뼈, 어깨까지. 온통 그가 입 맞추며 빨아대자 새빨간 꽃이 피어올랐다.

벌써 반쯤 녹아 버린 아내를 눈으로 탐미하며,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손을 밀어 넣었다.

속옷을 파고 들어간 길고 두꺼운 손가락이 축축한 입구를 헤치고 그녀의 안을 헤집어 들어갔다.

“하으응…!”

손가락이 들어왔을 뿐인데, 전신의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무엇이었는지 모를 갈증이 꽉 채워지는 것 같았다. 벌써 지나친 것 같기도 했다. 허벅지가 경직되며 눈두덩이까지 뜨거운 피가 몰렸다.

쫀득한 속살을 밀고 들어간 손가락 두 개가 각각 움직이며 늪처럼 질퍽해진 그녀의 안을 유영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전기 같은 쾌감이 두피를 잡아당기듯 조였다. 

“후… 릴리에.”

내벽 주름 하나하나 훑어대는 듯했다. 누르고, 벌렸다가 쑤셔대자 물장구를 치는 듯 철퍽이는 소리가 났다.

“나를 받아들이며 이렇게… 기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그녀의 안을 집요하게 탐했다.

그녀가 자지러지며 허리를 뒤트는 곳이 어디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빠르게 철퍽철퍽 쑤셔대기 시작했다. 

아래를 채우는 압박감에 숨을 학학 몰아쉬며 그녀가 정신없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 거기, 벌리면 안, 아흑, 으응…!”

그녀가 반쯤 흐느끼면서 그의 손짓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음란한 체액이 튀어 올라 그의 손목까지 마구 적셨다.

그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장작을 한계까지 쑤셔 박는 것 같았다. 손끝이 저릴 정도로 내몰렸던 감각이 온몸에서 바글바글 끓었다. 

그것들이 그녀의 아래를 향해 한 번에 내달릴 준비를 하며 아우성쳤다. 

홍수처럼 쏟아질 쾌감을 직감한 그녀가 그에게 매달린 채 할딱이며 엉엉 울었다.

“아! 너무 깊, 빨라, 아 흐윽, 응 블라드, 아흣, 응!”

그녀의 아래가 그의 손가락을 끊어댈 듯 조여들었다.

손가락을 물어 대는 감각만으로도 자극이 지나쳤다. 그가 한계까지 내몰린 인내심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그녀의 몸 끝자락에 뭉쳤던 쾌감이 폭죽처럼 팡 터졌다. 폭발한 그것이 단번에 그에게 쑤셔박히는 곳으로, 머릿속으로 달려가 거칠게 흩어졌다.

“아, 나, 이제, 아, 아아…!”

그가 구명줄이라도 된 듯, 그의 어깨에 죽기 살기로 매달린 채 몸을 달달 떨었다.

그녀는 그를 붙든 채 한참이나 떨고 나서야 서서히 흘러내렸다. 절정의 잔열이 쉬이 가시지 않아 온몸에 뼈가 없는 듯 늘어졌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그녀의 입술에 그가 칭찬처럼 입 맞췄다. 그가 손가락을 하나씩 빼는 동안 두 번의 절정으로 예민해진 몸 전체가 움찔거리며 들썩였다.

“잠깐 들어 올리겠습니다. 릴리에.”

“으응….”

늘어지는 그녀를 한쪽 팔로 받친 채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이미 솜인형 꼴이 된 릴리에는 그가 움직이는 대로 맥없이 들어 올려졌다. 

그가 그녀의 몸에서 드레스를 완전히 끌어 내렸다. 이내 드레스가 벗겨지고, 드로워즈와 스타킹만 걸친 몸이 드러났다.

“후….”

그 또한 제법 한계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기울인 채 자신의 속옷을 끌어 내리는 남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벼운 절정에 오히려 더 심한 갈증이 일었다.

“하아, 블라드….”

그녀의 뭉개진 발음이 속옷을 벗기는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옷… 불편해 보여요.”

“…….”

그녀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머리 위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상의를 탈의하는 그가 보였다.

새카만 제복 외투가 먼저 벗겨져 나갔다. 빗줄기가 가장 굵을 때 밖에 있었던 까닭에 흰 셔츠가 딱 달라붙어 그의 몸 형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새하얀 셔츠 덕에 안 그래도 살벌한 근육을 자랑하는 상체가 마치 수학적으로 깎아 낸 대리석 조각상 같았다.

그가 셔츠를 벗었다. 물기가 서려 굴곡이 더욱 선명해진 살벌한 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컷의 육체였다.

상반신 어디에서도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바위처럼 널찍한 가슴팍 아래 흉터가 난자한 상체가 이어졌다. 날카로운 선으로 서로 맞물린 복근이 그의 호흡에 맞춰 꿈틀거렸다.

움푹 파인 복근 가운데로 물줄기 하나가 주륵 흘러내렸다. 장골이 선명한 골반까지 지나 바지에 밀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의 남성이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엇을 목격했는지 깨달은 릴리에가 부리나케 고개를 들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적나라했던 까닭이었다.

다행히 그는 놀리기는커녕 한층 더 욕망이 절절 끓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벗었습니다. 릴리에.”

끓어오르는 욕망에 잠식된 그의 목소리가 탁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했습니다.”

그가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그를 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내리누른 채. 오직 그녀의 욕망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그녀의 개였다. 그녀는 그가 먼저 그 자리로 내려섰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장이 폭발할 것 같았다.

“내게 명령해 보십시오. 릴리에.”

그가 목줄을 건네 그녀의 가느다란 손에 쥐여 주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녀의 손안에 있었다는 걸 알려 주기라도 하는 듯했다.

감히 만져볼 수 있으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 감정의 올가미를 꼭 붙든 채, 문명의 이기를 처음 만진 야만족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막막한 당혹감을 읽어낸 그가, 그녀에게 자신을 지배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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