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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망가진(1) (81/180)

81화. 망가진(1)

발치 인근에 시선을 대충 던져둔 그의 눈이 초점 없이 멍했다.

“사실 당신 동생이 그다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 날. 그 말. 평생 들어온 말을 한 번 더 듣는 일에 불과했다.

알량한 자존심을 아직 버리지 못한 탓에, 그 꼴을 그녀에게 보인 게 싫었을 뿐이었다.

“어느 쪽 핏줄이던 끔찍한 건 맞지요. 인육을 먹는 반인반마나, 그것마저 겁탈한 성도착자나.”

“아니, 아니에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참아 보려 애썼지만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겪은 일인 듯. 비통함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릴리에와 달리 그는 담담했다. 

“끔찍하지 않아요. 당신이, 왜 그런 소리를 해요. 대체, 왜….”

저 무감함. 아프지 않아서 일리가 없었다.

지난한 세월 내내 헤집어서 작은 신경마저 다 끊어지고 죽어 버린, 그런 고통이었다.

누군가 찌르기 전에 먼저 자신을 죽여 버리면 차라리 아프지 않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소년이 내린 선택이었다.

릴리에는 그에게서 자그마한 어린아이를 보았다.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지도 못할 어린 나이. 부모가 우주이자 온 세상인 그런 시절부터 매일이 재앙이었던 소년.

부모가 자신을 미워하는 걸 알면서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그 절박함을 알았다.

그녀 또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몽둥이로 자신을 두들겨 팬 주인에게 또다시 꼬리를 흔드는 개와 비슷한 처지였다.

릴리에가 그의 커다란 손을 꽉 붙들었다. 놓치면 사라지기라도 할 듯 온 힘을 다한 악력이었다.

“대체 어떻게, 아….” 

그의 호흡이 순간 멈췄다. 릴리에는 맞잡은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버텼어요. 그렇게 외롭게….”

얼룩진 시야 사이로 번쩍 커진 그의 눈이 보였다. 눈물이 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상처를 보듬기라도 하듯 가늘게 떨리는 그의 손을 연신 쓰다듬었다.

뼈저린 고독. 그의 일부가 되어 버린 날것의 고독이 그녀 앞에 드디어 몸을 드러내고 만 것이었다.

“끔찍하지 않아요. 적어도 나한테는 절대,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의 손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가 급히 이완되었다. 어떤 격정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에 마르기 무섭게 릴리에의 뺨이 다시 젖었다. 얼굴이 전부 물러터질 것 같았다. 자꾸 흐려지는 시야가 답답했다.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고 싶은데….

릴리에가 손등으로 눈물을 마구 닦아 냈다. 그 시도가 무색하게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당신 편이에요. 나는, 당신 아내니까. 누가 당신에게 뭐라고 해도, 나는….”

“…….”

“당신이 무엇이어도… 절대 떠나지 않을게요. 당신 옆에 있을 거예요. 내가, 지켜 줄게요….”

말을 뱉으면서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울먹이는 사이로 내뱉는 터라 발음이 뭉개지기까지 했다.

답답해서 입을 다물었으나 호흡이 벅찼다. 한참 훌쩍이는데 그가 작게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끔찍하지는 않아도. 나쁜 건 맞는 듯합니다.”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그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양 뺨을 감쌌다. 그의 손바닥이 따듯했다.

기다란 엄지가 뺨을 몇 번 쓸었다. 물러터지기 직전인 얼굴에서 눈물이 닦여 나갔다. 

“당신이 내 앞에서도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앞에서만 웃지 않던 여자였다. 그 사실에 속 좁은 심통이 자꾸만 치솟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 그녀가, 자신의 여자라고 호소하며 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괜찮기까지 했다. 

아. 이 기분을 알아서는 안 되었는데.

쾌락의 단맛을 알고 만 성직자가 된 기분이었다. 내리누르려고 애썼던 추악한 본성이 웅크렸던 날개를 푸드덕 펼쳤다.

이대로 그녀가 자신을 위해서만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자신으로 가득 차서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그녀를 상상했다.

전신에서 심장이 뛰었다. 음습한 욕망이라는 건 그도 잘 알았다. 

참아야지. 이 추악한 욕구를 참으려 지금까지 얼마나 애써왔던가.

길바닥에 채는 자갈보다 더 닳아빠진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는 여자. 이 여자를 그렇게 망가트려서는 안 되었다.

그렇기에. 한 방울 떨어지는 동정에 기꺼워하려고 했는데.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전부 가지고 싶어졌다. 

아무리 채워도 끝이 없을 게 분명한 그 갈증에, 결국 지고 말았다.

그가 고개를 사선으로 기울여 그녀에게 입 맞췄다.

말캉한 살덩이가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 * *

릴리에가 불안한 듯 눈을 굴렸다.

“누가 오면… 어떡해요?”

한참 울었던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뺨이 발갛게 상기된 채였다.

그는 무릎 꿇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동그란 이마가 귀여웠다. 잔머리를 넘기듯, 손끝으로 그녀의 이마 경계를 쓰다듬었다.

“내 허락 없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가 먼저 알 테니 상관없었다. 

릴리에는 그의 말을 납득한 듯했으나, 표정은 여전히 어색했다.

정원수에 둘러싸인 채 그의 다리 앞에 무릎 꿇고 있다니. 부부가 아니라 난잡하기 짝이 없는 금지된 사이가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야에 들어차는 광경이 지나치게 외설적이었다. 그의 앞섶이 그냥 보기에도 묵직했다. 

결국, 새빨개진 고개를 숙이자 그가 아래로 손을 뻗어 턱을 쥐었다.

얼굴이 들어 올려지자 그녀가 흠칫했다. 

용암처럼 새빨간 그의 눈동자에서 지독한 갈망이 타올랐다. 그의 욕망이 온몸을 칭칭 묶은 듯했다. 

심장이 목울대에서까지 뛰었다.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나를 지배하려 하고 있었다.

“눈. 돌리지 마십시오.”

탁하게 잠긴 저음에 아랫배가 찌르르 울렸다. 절대 거역할 수 없는, 그런 명령이었다.

야릇한 긴장에 침이 고여 입 안이 끈적해졌다. 그가 릴리에의 여린 턱을 간질이듯 쓰다듬었다.

“예전에 당신이 먼저 하려고 든 적이 있었지요. 직접 꺼내서 만져도 되냐고 물었는데. 그다음에 했던 말, 기억납니까?”

잊고 있었던 오래된 기억에 릴리에의 얼굴이 화르르 달아올랐다. 아직 그의 얼굴도 모르던 때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까지 자세히 기억하는 건지….

허벅지 사이가 간지러웠다. 무릎 앞에 모은 손가락, 드레스 안의 발가락이 동시에 꼼지락거렸다. 

“대답하십시오.”

그의 나른한 명령에 숨이 가빠졌다.

릴리에가 긴 날숨을 내뱉으며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은밀한 곳이 벌써 팽팽 당겨지며 몸이 달았다.

“입으로….”

그녀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입으로 해 드리면 훨씬 기분이 좋으실 거라고… 했어요.”

그가 내쉰 진한 한숨이 이마에 닿았다. 이어지는 말 대신 그가 턱을 쥔 손을 놓았다.

오직 몸짓으로 내리는 명령이었다.

이렇다 할 행위도 없는데. 자세 때문인지 오늘따라 더 복종 당하는 것 같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지 앞섶 단추를 풀었다. 틈이 생기도록 끌어내리자 거대한 그것이 불뚝 튀어 올라왔다.

“아….”

진한 수컷의 향기가 났다. 참기 힘든 욕망에 한계까지 부푼 그것을 보니 순간 아연했다.

크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눈앞의 기둥이 누군가의 신체 일부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의 손 한 뼘과 비교하는 것도 가소로웠다. 말아쥐는 것조차 버거운 두꺼운 기둥에 푸른 핏줄이 불룩 일어서 있었다.

그가 내쉬는 호흡에 맞춰 그것 또한 거대한 몸체를 꺼덕였다. 머리에 선액이 고이도록 열 오른 그것이 척 소리를 내며 그의 아랫배에 달라붙었다.

아무리 좁아터진 틈이어도 얼마든지 가르고 들어가 취할 수 있다는. 그런 위험한 기세가 철철 흘러나왔다.

“감상이 목적이었습니까?”

웃음기 섞인 느긋한 목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뺨에 불이 붙다 못해 머리에서 김이 솟을 것 같았다.

그녀가 바싹 마른 입술을 애써 축였다.

“하려고 했던 대로 해 보십시오.”

“그….”

손을 올리던 릴리에가 망설였다.

“자신이 어, 없어요. 크기가… 너무 커서, 이런… 처음이라….”

횡설수설이었는데. 기가 막히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부추기는 것마저 탁월하군요.”

발기한 그의 것이 한 번 크게 펄떡였다. 끝에 고이는 액으로 선단이 번들거렸다.

옅은 봄바람이 뜨거운 목덜미를 간질이고 지나갔다. 밖에서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게 새삼 실감 나 명치가 간지러웠다.

대낮에 야외에서 잔뜩 발기한 성기를 노출하고 있는데. 괜한 수치심에 몸 떠는 건 그녀뿐인 듯, 그는 도대체가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손으로 잡아 보십시오.”

그녀가 결심한 듯 마른침을 삼키고 가느다란 손으로 그의 것을 거머쥐었다. 손이 델 듯 뜨거웠다. 긴장한 식은땀에 젖은 손바닥이 쫀쫀하게 엉겨들었다.

“후….”

그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뒤통수가 두꺼운 나무줄기에 닿았다.

그 탁한 날숨에 그녀의 아래가 스스로 액을 뱉으며 짜르르 조여들었다. 

손에 힘을 주며 아래로 끌어내리자 그의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손안에서 흉포한 물건이 더욱 몸집을 부풀렸다.

지배당하는 기분이면서도, 지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의 손짓 하나에 그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가, 잇새로 숨을 내쉬기를 반복했다.

야릇함에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숨이 벅차 작은 가슴을 들썩이며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아….”

달아오른 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매일 봐도 눈이 아찔한 얼굴에서 여유가 가시고 있었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그와 눈을 마주친 채, 뭉툭한 끝에 입술을 댔다. 선액이 울컥 흘러나와 입술을 적셨다.

곧은 눈썹 아래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움찔 일그러졌다. 들썩이는 두터운 흉부 위의 그의 기다란 목이 붉게 물들며 핏줄이 불끈거렸다.

그가 느끼는 감각을 자신도 느끼게 되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끝을 빨며 양손으로 두꺼운 기둥을 위아래로 문질렀다. 살을 탁탁 문대는 음탕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단련된 그의 몸을 축소한 양. 그것조차 근육으로 탄탄하게 짜여 있어서 손을 움직이는 데 꽤 많은 힘이 들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은밀한 곳 가장 깊숙이 파고드는 그것을 제 손으로 흥분시키고 있다니.

음란한 행위라는 건 둘째치고. 위험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이자 손짓이 빨라졌다.

그가 탁한 숨을 내쉬며 온몸을 떨었다. 벌써 참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가 손을 아래로 뻗어 그녀의 턱을 그러쥐었다. 그녀의 손이 멈췄다.

“입. 벌리십시오.”

오랜만에 말하는 사람인 양. 잔뜩 잠긴 저음이었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선액을 흘리는 살 기둥의 둥근 끝을 입 안에 물었다. 

“후….”

진한 그의 신음이 귓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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