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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프롤로그 (1/180)

1화. 프롤로그

“안 돼요. 공작님. 더 이상 죄를 짓고 싶지 않아요. 원하시는 대로 다 할 테니 지금은, 여기서만은, 이곳에서만큼은 제발….”

릴리에의 긴 은발이 풀어지며 검은 베일이 예배당 바닥에 떨어졌다. 단아한 눈썹이 일그러지며 녹색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제대 위에 있어야 할 은촛대와 십자가가 속옷과 함께 바닥에 불경스럽게 나뒹굴었다.

색유리를 투과한 연한 햇빛이 제대에 상체를 엎드리고 있는 그녀에게 내려앉았다. 

은실을 뽑아낸 듯 은은하게 반짝이는 머리칼이 힘없는 몸부림에 맞춰 정갈치 못하게 흐드러졌다. 

결국 커다란 손이 그녀의 머리를 제대 위에 짓눌렀다. 한 손에 머리 전체가 잡힐 정도로 널찍하고 강인한 손이었다.

유리병에 담긴 우유 같은 피부가 더욱 핏기를 잃고 창백하게 질렸다.

몸을 빼내려 허리를 뒤트는 릴리에의 등을 묵직한 무게감이 짓눌렀다. 크고 단단한 체구의 남자가 몸을 밀착시켰다.

그에게서는 진하고 묵직한, 남성다운 향기가 났다. 그의 아래에 있는 자신이 맹수의 앞발에 깔린 사슴이라도 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체향이었다.

“죄라…. 그건 당신이 아닌 내게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악마같이 매혹적인 중저음이 귓가에 울렸다.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듯 무겁고 깊은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분노를 참는 듯 낮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릴리에에게 그런 걸 눈치챌 정신은 없었다.

애초에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오늘이 처음이었다.

“말해 보십시오. 우리의 결혼식 날인 오늘까지도 이렇게 상복을 입고 간절히 애도하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릴리에는 목부터 발끝까지를 꼼꼼하게 가린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불편할 정도로 빳빳하고 광택이 없는 원단에, 일말의 장식 하나 없었다. 아무리 상복이라고는 해도 정숙함이 지나칠 정도였다.

“전쟁터에서 죽은 첫 남편? 아니면, 병사한 두 번째 남편입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정말…. 흣!”

절망스러울 정도로 무자비한 손길이 검은 드레스 사이를 파고들었다. 릴리에는 거침없이 원단이 구겨지는 소리가 마치 자신의 비명 같았다.

허벅지 안쪽을 훑어 올리는 손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명백히 알고 있었다. 긴장감과 두려움이 뱃속을 옥죄었다.

공작은 머리를 누르던 손으로 더욱 우악스럽게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머리칼을 잡힌 채 고개를 들자 벽에 세워진 성물과 조각상이 보여 죄악감이 일었다.

눈을 질끈 감는 릴리에에게 그의 목소리가 형벌처럼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아니면 세 번째 남편인,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블라디미르 드 윈터 공작. 그는 오늘로써 릴리에의 세 번째 남편이 될 사람이었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이 장소에서 지금 결혼식을 치르고 있어야 했다.

릴리에는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다리 사이의 깊은 곳에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동작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그의 두껍고 단단한 손가락이 살결을 활짝 벌리고는 그 사이에 감춰져 있던 음핵을 가볍게 훑었다.

충격적인 동작에 릴리에의 몸이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굳어졌다.

지금껏 겪은 성교란 중요한 곳이 다짜고짜 주물러지거나 움켜잡힌 뒤, 성기를 삽입 당하고 조금 기다리면 끝나는 것이었다. 심지어 두 번째 남편은 그것이 서는 일조차 드물었다.

남자들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역시 젖기는커녕 두려움에 바싹 오그라들어 있는 그녀의 안을 마구잡이로 쑤시고 들어오리라 예상했었다.

몸을 숙인 그가 머리카락 사이에 드러난 릴리에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입 맞췄다. 피부 위를 유영하는 그의 움직임은 나른하고 유혹적이었다.

점막이 피부를 빨아당기고, 혀로 쓸어 올린 뒤 이를 세울 때마다 등줄기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이윽고 그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부위를 압박하듯 누르며 지분거리자 저릿한 감각이 척추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아, 흣… 아…!”

처음이었다. 여성의 그곳 또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이런 상황에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그가 굵고 단단한 손가락 사이에 잔뜩 부푼 돌기를 끼운 채 끈질기게 문질렀다.

교성이 터지며 하반신 전체가 뻣뻣해졌다. 아랫배에 생소한 열기가 모여들어 팽팽하게 뭉쳤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감각에 릴리에는 수면 위에 끌려온 물고기처럼 헐떡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릴리에는 이 외설적인 신음이 자기 목소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사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안… 안 돼. 하악! 그만. 이상, 이거 이상해. 이상해요! 하읏….”

혀가 잔뜩 꼬여 발음이 뭉개졌다. 릴리에는 넘어갈 듯 숨을 삼키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손가락이 회음부에서 부풀어 오른 돌기까지 전체적으로 노련하게 압박하며 비벼댔다.

움직임에 맞춰 숨을 껄떡이던 릴리에는 아래에서 무언가 날카롭고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 공작님, 이거, 이런 거, 무, 무서워, 하읏! 흐응! 그만!”

손끝까지 폭발하듯 내달리는 쾌감에 릴리에는 눈을 까뒤집으며 다리를 벌벌 떨었다. 감각이 과도하게 몰려오는 바람에 숨 쉬는 법을 잊은 채 꺽꺽댔다.

그런 그녀의 입 안에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말려들어 가려는 혀를 내리누르며 그가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힘을 빼고, 숨을 뱉으십시오. 천천히…. 그렇게.”

아래를 문질렀던 손이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듯 천천히 음모를 쓰다듬었다.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그가 입 안의 손가락을 느릿느릿 휘저었다.

예민해진 입 안 전체를 느긋하게 탐하는 손길에 릴리에의 목 안에서 서서히 달뜬 숨이 터져 나왔다.

다리의 힘이 전부 풀어져 버린 터라 이제 제대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 엎드려 있었다. 처음 느끼는 잔열 같은 절정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 틈을 타 그의 단단한 손가락이 릴리에의 성기 주변의 허벅지 안쪽을 느리게 애무했다. 

축축해진 다리 사이의 계곡 위를 스칠 때면 의도치 않았는데도 허리와 엉덩이가 움찔거렸다. 애태우는듯한 움직임에 릴리에는 벌써부터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흥분한 듯 거칠어진 그의 숨결이 목덜미에 와닿았다.

“이제 대답해 보십시오. 부인. 당신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속삭이는 목소리에 솜털이 바짝 일어나며 정수리까지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동굴 바닥을 긁고 나오는 듯한 목소리가 본능적인 위협을 불러일으켰다.

안개처럼 흐려지는 이성을 붙잡으며 릴리에가 흐물흐물해진 발음으로 간신히 말을 뱉었다.

“저를 생각했어요. 저를 용서해 달라고… 이번에도 남편이 죽는 건 시, 싫다고 기도를 했어요. 정말이에요….”

안간힘을 쓴 대답에 머리채를 잡은 악력이 다소 느슨해졌다. 커다란 손이 머리카락 속을 쓰다듬듯 부드럽게 헤집었다.

“솔직하군요. 잘했습니다.”

뱉는 단어는 어린아이를 칭찬하는 듯 다정했지만, 야수 같은 목소리는 위험할 정도로 강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 

달콤한 칭찬에 이어 그가 릴리에의 목덜미에 다시 키스했다. 상냥하고 다정했다.

머리를 누르던 쪽의 두꺼운 팔뚝이 제대와 릴리에의 상체 사이에 파고들었다. 그의 거대한 손이 둥근 젖가슴을 아래에서 위로 그러쥐며 쓸어 올렸다.

상을 내리는 듯 부드럽고 끈덕지게 치대는 손바닥에 옷 아래에서 바짝 선 돌기가 스칠 때마다 반사적으로 얕은 신음이 튀었다.

그가 옷 위에서 엄지와 검지를 꼬집듯 붙잡았다. 

괴롭히듯 잡아당겼다가 살살 굴리고, 유방 안으로 쑤셔 넣듯 눌러대자 애타는 교성이 터지며 아래가 음욕에 다시 젖어 들었다.

위아래가 동시에 괴롭혀지자 위험한 쾌감에 머릿속이 빠르게 뭉개졌다.

애액으로 질척해진 허벅지를 애무하던 손가락이 둔덕의 틈 사이를 다시 파고들었다.

릴리에는 그의 커다란 손이 그다음에 향할 곳이 어디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아래를 휘젓던 손가락이 질구를 문질렀다. 긁어 올리는 움직임에 맞춰 허리가 들썩였다.

한 번의 절정으로 모든 신경이 한계까지 예민해진 그녀였다.

팽팽하게 부푼 아래가 그의 것을 집어삼키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뜨거운 물을 왈칵 쏟아냈다.

부정하고 싶은 쾌락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자 덜컥 두려움이 일었다.

조금 전엔 무엇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정말 관계를 할 셈인 게 분명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도리질 쳤다.

“더는, 더는 못 해요. 이 다음은 정말.”

그녀에게 남성과의 관계란 둘 중 하나였다.

지루하거나, 고통스러운 것.

이 남자가 둘 중 어떤 식으로 행위 할지는 뻔했다.

그는 황제의 사생아이자,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전쟁영웅, 블라디미르 드 윈터 공작이었으니까.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 있군요.”

공작이 거칠어지는 숨을 눌러 참으며 그녀의 귓가에 씹어뱉었다.

“속옷이 질척할 정도로 스스로 적시고 있지 않습니까. 이대로 두면 여기가 녹아버릴지도 모를 텐데.”

낮은 숨소리와 함께 뱉어낸 그 한마디에 하반신에 열이 올랐다.

릴리에는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어 다리 사이의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피부가 마치 잔뜩 달궈진 바위처럼 단단하고 뜨거웠다.

“들어오면, 당신도 죽을 거예요. 그건 싫어요, 그걸 넣는 건 싫어. 더 이상은… 하악!”

그의 손가락이 거침없이 그녀의 안을 밀고 들어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에 릴리에가 교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안쪽의 모양을 탐하는 듯 게걸스럽게 휘젓는 손짓에 얼굴이 터질 것처럼 뜨겁게 피가 몰렸다.

두려움도, 배덕감도, 죄악감도 송두리째 날아간 채 릴리에는 제대에 머리를 처박고 그의 손길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 아…. 아학, 으흑, 아아…!”

추삽질이 속도를 올릴수록 음란한 질퍽임이 예배당 전체를 울렸다.

파문으로 퍼져나가 해일처럼 손끝까지 내달리는 쾌감에 릴리에는 어느 순간부터 눈물을 질질 흘리며 흐느꼈다.

릴리에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그가 잇새로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당신으로 인해 죽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바입니다.”

릴리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간 채 그의 아래에서 정신없이 헐떡일 뿐이었다.

게걸스레 그를 집어삼키는 안쪽의 어딘가를 압박하자 릴리에가 격렬하게 교성을 터트리며 허리를 뒤틀었다.

강한 자극에 오히려 도망가는 골반을 붙잡으며 삽입한 손이 그녀의 지점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기름이 바글바글 끓는 듯 묵직하고 격렬한 감각이 아랫배 속에서 마구 터져 나왔다.

“아학! 또, 흑, 또 와. 안, 안… 아, 아아아…!”

릴리에의 아래가 그의 손가락을 끊어낼 듯 강하게 조여들었다.

공작이 흥분 섞인 낮은 숨을 터트렸다.

화산처럼 온 신경을 터트리는 쾌감에 릴리에의 손끝과 발끝이 뻣뻣하게 곱아들었다.

그가 릴리에를 내리누르듯 몸을 숙이며 그녀의 안으로 더욱더 깊게 손을 쑤셔 넣었다.

“이제 당신은 내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을….”

누군가 귀를 막은 듯 몽롱하게 웅웅대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릴리에의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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