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46)

제 10장 - 있는 그대로의 나

* * *

그리웠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실소를 터뜨릴 뻔 했다.

그리웠다... 그녀는 그리움이 뭔지 정말 알고 있을까?

그도 그녀가 그리웠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워서 죽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매 순간, 그리움 때문에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른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덧없는 욕망이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경계해야만 했다.

그리웠고, 그래서 더 외로웠다.

정신없이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일을 하고, 알코올과 니코틴의 마력을 빌려, 고통의 무게를 견디는 것만이 그가 터득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그녀의 온 몸에 자신의 것이라는 낙인을 찍어 영원히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둬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이건 그리움이 사무쳐 생긴 '열병'이다.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뜨거움을 혀로 대신했다. 불덩이 같은 혀가 가슴에 붉고 축축한 자국을 남기며 움직였다.

단단한 이 끝이 곤두선 살점을 깨물고, 다시 혀로 핥아올렸다. 로운은 발작하듯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눈에 차오른 습기가 더 이상 갇혀 있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 감각이 몸 안을 쑤셔대다가 눈물과 함께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렸다.

달궈진 살점은 그의 입 속에서 다시 녹아내릴 것처럼 흐느적 거렸다. 그녀는 흐느끼듯 소리를 질렀다.

“흐윽, 지석씨... 제발.”

강철 집게 같은 손가락은 매끄러운 몸을 어루만지며 아래로 내려갔다. 갈라진 계곡의 틈을 살짝 살짝 쓰다듬듯 어루만지던 손이 이윽고 안으로 침범해 들어갔다.

뾰족하게 돋아난 씨앗을 찾아내 달래듯 가볍게 문질렀다. 축축하고 더운 열기가 다리 사이에 고였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로운은 더욱 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위 아래로 예민한 살점이 동시에 공격을 받자,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하악...”

어느새 벌어진 다리 사이로 그의 몸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지석은 움찔거리며 미끈한 액체를 쏟아내고 있는 샘물 안으로 단단한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로운의 몸이 침대 위에서 부웅 떠오르자, 지석이 한 팔로 그녀의 등을 지탱하고 더욱 깊숙한 곳으로 손을 움직였다.

“아아, 지석씨, 흐윽, 제발, 나 좀,”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허리가 흔들렸다. 좁고 은밀한 통로를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간지러운 곳을 긁는 듯이 움직였다. 그녀는 기절할 것처럼 비명을 질렀고, 그의 팔에 매달렸다.

지석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그를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모든 부위를 일깨웠다. 잔인하면서도 가차 없는 동작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로운은 울부짖으며,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완전히 자신을 채워주기를 바라며 애원했고, 그에게 달라붙었다.

다리 사이로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엉덩이를 들어올려야만 했다. 여간해서 그녀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는 그를 붙들었다.

정신없이 입술을 핥고, 혀를 물어 삼키고, 어깨를 깨물었다. 뜨겁고 단단한 남성이 허벅지를 찌르자, 로운은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에 휘감고, 바짝 조였다. 그를 갖고 싶었다. 자신의 안에 가두고 영원히 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다.

“아아, 제발, 지금이요. 어서요.”

그는 검붉게 성이 나서 한껏 달아오른 남성을 손으로 잡아서는 다리 사이에 대고 문질렀다. 뭉툭한 끝부분이 예민한 살점을 쿡 찌르는 순간, 로운은 비명을 지르며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지석씨!”

애원하는 듯한 음성이 명령조로 바뀌었다. 그는 자신의 남성으로 그녀의 계곡을 가르며 내려가서 단숨에 안으로 찔러 넣었다.

로운이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몸 안으로 가득 들어차는 뿌듯한 느낌에 눈물이 또 다시 왈칵 솟구쳤다. 낯선 곳을 헤매다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충만감이 그녀의 온 몸을 가득 채웠다.

지석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뒤로 몸을 뺐다가 그녀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천천히 파고 들었다.

감질나는 움직임에 로운은 더욱 애가 타서 그의 등에 있던 손을 엉덩이 쪽으로 내려 끌어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엉덩이를 뒤로 쑥 뺐다.

“아아, 안 돼. 제발!”

그가 멈추려 하자 로운은 더 참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어올리며 끙끙거렸다. 지석은 그제서야 못이기는 척, 다시 안으로 파고들었다.

로운은 더 이상 그를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있는 힘껏 몸을 조였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까칠한 턱으로 그녀의 가슴을 비비듯 문질렀다.

바짝 곤두서 있던 젖꼭지에 따끔한 감각이 스치고, 전율이 일었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헐떡거렸다. 곧이어 오직 그만이 줄 수 있는 환희가 그녀를 찾아왔다.

다리 사이에 경련이 일어나고 뱃속이 끓어오르는 듯 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흘러나왔다.

지석은 그녀의 입을 자신의 입으로 틀어막았다. 허리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소리가 날만큼 거칠게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다가 밖으로 나가고, 다시 힘껏 밀고 들어왔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뾰족하게 달구어진 작은 돌기는 전기가 튀듯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눈 앞이 새하얀 빛으로 물들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은 것 같기도 했다.

지석은 그녀의 입을 막고, 가슴을 거칠게 주물렀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뜨거운 내부로 자신의 몸을 끝 없이 밀어 넣었다.

마치 몸 전체를 그녀의 몸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것처럼 움직였다. 온 몸이 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흠뻑 젖었다. 헉헉 거리는 숨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숨을 쉴수 없을 만큼 흥분이 고조되었다.

“으, 으, 으으윽, 로운아!”

번쩍,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감각과 함께 억눌렀던 욕망이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엄청난 쾌감이 그의 모든 것을 압도하며 몰아치는 순간, 지석은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로운을 보았다.

그는 절망과 희망, 상반된 두 개의 감정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래, 인정하자.

이카루스는 또 다시 날아갈 것이다. 태양을 잃고는 살아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테니까. 그것이 결국은 추락하는 일일지라도.

* * *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일수록 사랑에 집착하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를 인정받고 싶어하는데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이죠. 상대방이 나를 있는 그대로 보듬어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디서 이렇게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거지?

로운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지만, 사람들의 말소리와 요란한 음악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무시하고 자기에는 불쾌할 정도의 소음이었다.

그녀는 뒤섞인 소리들 중에서 익숙한 벨소리를 기억해냈다. 반드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선택한 메탈음악이었다.

반사적으로 침대 옆 탁자로 손을 뻗었지만, 스마트폰을 찾을 수 없었다. 딱 달라붙어 있던 눈을 간신히 뜨자 낯선 실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맞은편 벽면에 커다란 TV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누군가 그녀의 손에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스마트폰을 쥐어 주고는, 탁자 위에 놓인 리모콘을 들어 TV를 껐다.

언제 일어났는지 면도까지 말끔하게 마친 지석이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로운은 눈을 몇 번 꿈뻑거리다가 크게 떴다.

앗! 맞아. 여긴 그의 집이었지.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벗은 상체가 드러나자 짙은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헉, 그녀는 튕기듯이 일어나서는 시트를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아침부터 뭐야?”

시트 속에서 소곤거리듯이 전화를 받았다.

-누나! 대체 어떻게 되신 거에요? SBC '오늘 아침' 생방 잊으신거 아니죠? 저희 지금 아파트 앞이에요. 어서 내려오세요.-

초조한 동수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인터뷰 약속이 떠올랐던 것이다.

맙소사! 생방 펑크다.

“자, 잠깐만!”

시계를 보니 생방시간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하지?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더듬 더듬 말했다.

“도, 동수야. 오늘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시트를 뒤집어 쓴 머리 위쪽에서 낮고 허스키한 음성이 들려왔다.

“간다고 해. 데려다 주지.”

스마트폰 저쪽에서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 로운 누나... 지금 집에 계신거 맞죠?-

“끊어! 방송국에서 봐.”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일어나 욕실로 뛰어갔다.

“깨우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욕실 안에서 그를 탓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석은 담배갑으로 손을 뻗다 멈칫 했다. 아직 그녀가 있다.

“오분 내로 준비해.”

시계를 보았다. SBC 방송국까지 가려면, 최소한 십 분 뒤에는 출발해야 한다.

로운은 총알처럼 욕실에서 나와 셔츠를 입다가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추가 몇 개나 떨어진 걸 발견한 것이다.

가서 옷을 갈아 입는다해도 이 꼴로 나갈수는 없지 않은가? 이건, 마치, 꼭...

“윽!”

갑자기 그녀의 머리에 뭔가 포근한 것이 뒤집어 씌워졌다.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다 고개를 치켜드니, 바로 앞에 지석이 보였다.

“그거 입어.”

로운의 연한 바이올렛 빛깔의 캐시미어 스웨터를 내려다 보았다. 아직 택도 떼지 않은 여성용 스웨터? 상당히 그녀의 취향이었다.

그녀의 옷은 아니다. 근데, 여기 왜 이런게 있는거지? 설마 오리언? 아니 다른 여자가 있었던 거야?

로운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의심에 찬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지석이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전에 샀던거야.”

그녀는 냉큼 물었다.

“여자 옷을요? 언제요? 당신 여장하는 취미도 있었어요?”

그의 눈가가 미세하게 파들거렸다. 충고하듯 날카롭게 말했다.

“빨리 입는게 좋을거야. 이 분 남았어.”

“헉! 난 몰라.”

로운은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번개 같이 팔다리를 꿰고 초스피드로 움직였다. 정확히 칠 분만에 로운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있던 코트를 입혀 주었다. 뭔가 행복한 기분이 몽글 몽글 솟아 오르는 것 같아서 로운은 저도 모르게 헤실 웃고 말았다.

“이거 진짜 누구거에요? 누구 주려고 산 거에요?”

차 안에서 로운은 또 다시 자신이 입고 있는 스웨터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음악을 틀었다.

부드러운 음악이 애매한 분위기를 감싸주었다. 그의 옷장에는 몇 벌의 여자 옷이 있었지만, 그 이유를 말해주기는 어려웠다.

옷 뿐만이 아니라 여자가 좋아할 만한 여러 가지 물건들도 있었다. 작은 액세서리와 소품 같은 것들이었다.

그는 힐끗 코트 안에 입고 있는 스웨터에 눈길을 주었다. 저건 락헤븐의 작은 옷가게에서 구입했다.

집에서 잘 나오지 않던 로운은 어쩌다 거리를 지날 때면, 습관처럼 작은 가게들을 살피곤 했었다.

그때마다 지석은 그녀가 뭘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녀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동안, 그녀가 보고 있는 걸, 사 모으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몰랐으니, 쇼윈도우에서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샀던 것이다. 그는 그때, 자신이 전형적인 스토커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집에 낯선 물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방송국에 도착했을때는 생방 시간까지 겨우 십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차가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는 그녀를 지석이 붙잡았다.

“전화해.”

강한 눈빛이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겨울 햇살이 지석의 얼굴에 환한 빛을 드리웠다. 예전보다 훨씬 야위었지만, 그래서 더 섹시해 보였다.

“대답.”

로운은 잠시 멍하니 그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수 온다.”

지석의 입가가 살짝 기울어졌다. 로운이 내리자 차는 곧 출발했다.

“누나!”

동수가 차가 사라지는 방향을 보며 다가왔다. 로운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서둘러 걸어가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미안, 피곤해서 까먹고 있었어.”

“대체 어디에 계셨던 거에요?”

의심스러운 눈초리였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스튜디오는 서민재와 남자 주인공인 황기린도 함께 나와 있었다.

“오늘의 화제의 세 주인공들을 모셨습니다. 바로 어제 종영한 대박 드라마...”

카메라 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코디 지영이 부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로운언니, 오늘 화장도 제대로 못했는데 무지 예뻐 보이네. 저렇게 북실북실한 스웨터 입고 있으니까 완전 아기 같다.”

“괜히 방부제 미모라고 그러겠냐.”

동수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 버리려는 듯 중얼거렸다. 아까 로운이 타고 온 차, 분명 남자가 운전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혹시 기자들이 본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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