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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창 의원이 횡령과 거액의 뇌물 수뢰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기사는 며칠 동안 포털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검찰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신빙성 있는 증거자료를 건네 받았다고 발표했다. 차기 대권 후보로까지 점쳐졌던 거물 정치인의 비리에 시민은 분노했다.
로운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의 부정부패를 성토하며 지석에게 그 기사를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여전히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지석은 단지 한 마디만 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강호의 정의는 살아 있다니까.”
그는 요즘, 새로운 게임에 너무 심취해 있었다. 로운이 볼 때는 매일 같이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지석이 게임을 하는 건, 로운과 있을 때 뿐이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으니까.
이른 아침.
지석은 출근을 위해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왔다. 시트를 둘둘 말고 웅크린 채, 자고 있는 로운은 아직도 꿈나라 중이었다.
밤새, 그가 괴롭힌 덕에 지쳐 곯아떨어진 모습이었다. 로운은 종종, 그의 몸이 자신에게 꼭 맞는다며 흡족해 하곤 했다.
물론,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더 이상 잘맞는 상대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지석은 성실하게 그녀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도 욕심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로운이 들었다면, 분명 '짐승' 이라고 펄쩍 뛰겠지만 말이다.
지석은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도 여유가 있음을 확인한 뒤, 침대로 다가갔다. 시트 한쪽을 젖히고 그녀의 곁으로 몸을 뉘였다.
“으응... 당신이에요?”
물기가 남아 있는 서늘한 몸에 놀란 듯, 로운이 움찔하더니 눈을 몇 번 깜빡거렸다.
“응, 나야.”
그의 말에 이내, 새끼여우 같은 미소를 머금고, 품 안으로 바르작거리며 안겨들었다. 새벽의 여명 속에서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지석의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나 포근해서 지석은 저도 모르게 울컥, 목이 메였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어깨에 입술을 부비며, 그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 사랑한다. 이로운.”
그는 속으로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소원을 빌었다. 이 마음이 버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생전 처음에게 누군가에게 기도했다.
만약에 정말로 신이 있어서, 그에게 단 하나의 안식처만을 허락한다면, 부디 그녀이기를...
오목한 쇄골을 따라 자잘한 입맞춤을 퍼붓자, 로운이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다시 눈을 떴다. 흐릿한 눈동자는 아직도 잠에 취해 몽롱했다.
“주름 져.”
살짝, 찌푸린 미간을 입술로 누르자, 로운이 다시 눈을 감았다. 양 팔로 그의 허리를 바짝 안았다. 지석은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얇은 시트를 젖히고, 날씬한 다리 사이로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조금 급한 손길로, 꼿꼿해진 유두를 살살 어루만진 뒤, 입 안에 넣고 혀로 굴렸다. 사탕을 빨 때처럼, 입 안 가득 달큰한 침이 고였다.
한 쪽 가슴을 아이처럼 빨고, 물고 핥는 동안에도 로운은 그저 몸을 꿈틀거리기만 할 뿐, 쉽사리 눈을 뜨지 않았다.
“으응, 하지 마요. 나 졸려...”
그의 가슴을 밀어내는 로운의 손을 잡고, 아플 정도로 팽팽해진 남성을 그녀의 촉촉한 다리 사이에 대고 몇 번 비벼댔다.
“으으응?”
핑크빛 입술이 벌어지면서 고양이 울음소리같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지석은 완전히 흥분해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안으로 천천히 자신의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미안... 아침 대신으로 치자.”
아직도 그의 체액으로 촉촉한 곳이 금방 반응을 하며 움찔 거리기 시작했다. 뿌듯하게 아래를 가르며 밀려드는 감각에 로운은 진저리를 치면서,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응... 또?”
담담한 얼굴 한 가운에 박혀 있는 짓궂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녀의 심장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아아, 당신 진짜 못 말리는 짐승이다.”
달콤한 잠의 여운에서 쫓겨 난게 못내 아쉬운 듯, 로운이 투덜거렸다. 지석은 눈꼬리를 가늘게 뜨고, 못 마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잠자던 맹수를 길들였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땐, 이렇게 헐벗고 굶주린 줄 몰랐지. 악!”
무지막지하게 딱딱한 것이 몸 안 깊숙한 곳까지 힘껏 파고들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체온이 빠르게 상승하고, 머리가 어찔하면서 로운은 급기야 헐떡거리는 소리만 내질렀다. 금욕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건, 다 취소다. 어떻게, 점점 갈수록 더 짐승남이 되어가지?
감질나게 그녀를 파고들던, 지석은 뭔가 미진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앗 하는 사이에, 다리를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허리를 들썩이며, 거의 엉덩이가 공중에 떠 있는 로운의 몸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퍽퍽 허리를 튕겨 올렸다.
“아, 으응, 지석씨... 흐윽, 아아,”
날카로운 섬광처럼 쾌감이 피어올라 그녀를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부딪히는 곳에서 아찔한 감각이 솟구쳤다.
로운은 허리를 뒤틀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감각을 미뤄보려고 애를 쓰지만, 이미 늦었다. 지석의 몸이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다.
살과 살이 마찰되고, 그의 손이 그녀의 예민한 곳을 둥글게 압박했다. 몸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가 다시 내려가고, 또 다시 올라간다.
아찔한 전율의 예감이 찾아오자 로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높은 비명을 지르며, 그의 몸을 와락 끌어 안았다.
짜릿한 쾌감이 마주 닿은 곳에서부터 피어올라 점점 더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그녀의 몸 안으로 소용돌이치며 올라갔다.
“흐윽, 아, 아아, 지석씨... 사랑해요. 흑... 사랑해요.”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쾌감으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울면서 매달렸다.
“로운... 로운아...”
여전히 떨리는 몸을 끌어안고 허리를 미친 듯이 움직이던 지석의 눈빛이 지독한 쾌감으로 몽롱하게 흐려졌다. 바로, 머리 꼭대기까지 차 오른 마지막 순간을 느끼며, 그는 짐승처럼 부르짖었다.
“으흑! 로운아... 사랑해... 사랑한다...”
전신을 꿰뚫고 지나가는 강렬한 쾌감에 진저리를 치는 지석의 눈꼬리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마치, 지옥불처럼 뜨겁고 강렬한 감정이 그의 전신을 태울 듯이 휘몰아치며 지나갔다.
끝없이, 끝없이 그녀 안으로 자신을 침몰시키는 그의 귓가에 촉촉하게 젖은 음성이 들려왔다.
“... 난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당신도 나 사랑하는 줄...”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등을 끌어안고, 로운은 가뿐 숨을 그의 어깨에 토해냈다. 단정하던 그의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로, 흠뻑 젖어있었다.
붉어진 두 눈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커다란 손으로 작은 얼굴을 양 쪽에서 부여잡고, 그는 깊고도 진하게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사랑해, 로운아, 내가 널... 많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한다...”
사랑이 미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라면, 그는 이미, 오래전에 미쳤다.
* * *
“아주 얼굴이 환하게 피었구나.”
로운의 집에 온 윤서는 그녀를 보자 마자 비난조로 말했다.
“내가 뭘?”
“사십이 코 앞인 남자가 그렇게 좋디?”
로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아십? 이제 서른 다섯인데 사십? 이야, 오윤서, 너 진짜 말 그렇게 하는 거 아니지.”
윤서는 뜨끔한 표정으로 혀를 낼름, 거렸다.
“히히, 미안, 난 요새 서른 넘은 남자는 다 아저씨로 보여서 말야.”
어리광 받아주듯, 서민재의 대시를 은근슬쩍 묵인하더니, 이젠 대놓고 자랑질이었다.
로운은 그녀의 머리를 헤드락 걸 듯, 팔에 끼우고 말했다.
“오씨 아줌마, 진짜 대박 재수 없다.”
“어? 너 이거 놔라. 내가 우리 민재 부르기 전에.”
“우리 민재? 불러라, 불러.”
두 사람이 치고 받고 하는데, 벨 소리가 울렸다.
인터폰 저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택배 왔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택배? 그냥 이로운 팬이라고만 써 있다.”
윤서가 택배에 적힌 주소를 읽었다.
“지난 번에 와인 보낸 그 사람인가?”
로운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와인을 꺼냈다. 지난 번에 받은 것과 같은 종류였다.
“1984년산? 우리가 태어난 해잖아. 너 생일은 아직 멀었는데... 어, 여기 뭐 있다.”
와인 상자 안에는 갈색 봉투가 함께 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윤서가 잽싸게 그녀의 손에서 서류를 잡아챘다.
“신문기사 스크랩? 이거 협박 편지 아냐? 여기 너희 어머니잖아.”
서류 봉투에 들어 있는 것은, 로운의 어머니가 젊은 시절 변호했던 어떤, 사건에 대한 기록이었다.
로운은 영문을 몰라서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사건에 대해서라면, 그녀도 알고 있었다. 바로, 그녀의 부모님이 처음 만난 사건이었다.
공무원이었던 아빠가 아파트 재건축의 조합 사기랑 연루되어 고소를 당했고, 거기에서 엄마를 만나 결혼하고, 이듬 해, 로운이 태어났다.
윤서랑 로운은 서로를 마주 보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이걸로, 뭔가 또 루머 만들려는 거 아니야? 니 안티들이?”
걱정스러운 윤서의 말에 로운은 어깨를 들썩 해 보였다.
“뭐가 됐든 나랑은 상관 없어. 부모님 일인데 뭐. 지금은 두 분 이혼하셨고.”
별거 아니라는 투로 서류 봉투를 집어 던지는, 로운의 손을 윤서가 확 잡아서 자신의 눈 앞으로 가져갔다.
“너 이거 못 보던 반지다. 뭐야?”
로운의 얼굴이 희미하게 붉어졌다.
“뭐긴, 반지가 그냥 반지지, 니가 뭐 내 쥬얼리를 다 알아?”
가느다란 백금반지는 가운데 작은 다이아가 박혀 있는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며칠 전, 그녀가 느즈막히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그녀도 씻다가 발견했을 때는 깜짝 놀랐고 말았다.
-반지 뭐에요?-
라는 그녀의 문자에 '선물' 이라는 짤막한 답이 왔을 뿐이다.
“몰라도, 이건 이로운 취향이 너무 아니잖아. 니가 어디 이런 단순한 디자인을 살 애야? 눈에 띄지도 않는 걸?”
윤서의 눈이 음흉스러워졌다.
“강박이 줬어?”
로운의 얼굴이 다시 새빨개지자, 윤서가 꺄악, 비명을 질렀다.
“너 프로포즈 받은거야? 대에바악! 둘이 결혼할 거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준거야. 별 의미도 없어, 나도 내가 언제 받았는지 모르겠는걸,”
로운은 화끈 달아오르는 양 볼을 손으로 감쌌다. 그가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까닭이다.
“결혼 얘기 같은 건 진짜 안 했어.”
“그럼? 둘이 그냥 연애만 하려고? 강박 독신주의자라며, 너도 그러고 싶어?”
그녀는 약지 손가락에 낀 단순한 반지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그 반지를 만질 때마다, 심장이 간질거리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다.
“나도 몰라, 근데 윤서야. 지금은 그냥 좋아. 나...”
로운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사람이랑 있는 게 좋으니까, 다른 건,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냥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좋겠어.”
“하아, 축하한다, 이로운, 너도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구나. 내가 해봐서 알잖아. 결혼 그거 다 소용없는 짓이야. 걍 연애만 하고 살아.”
윤서가 도통한 사람처럼 말했다. 로운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부루퉁하게 말했다.
“난 안 해봤잖아....”
나도 하고 싶다고, 결혼이란 거. 그가 오늘 밖에서 밥 먹자고 했는데, 무슨 말이 있는건 아니겠지? 그 때 후로는 첨 보는 거라 떨려...
로운의 얼굴은 점점 더 붉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