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46)

제 7장 - 스토킹

* * *

윤서의 전화는 스토킹으로 시작했다.

-말도 마, 나 요즘 스토킹 당하잖아.-

“스토킹?”

-서민재 때문에 죽겠어.-

“아직도?”

로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서와 서민재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

“근데 왜 죽겠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지 사전에는 차인 적 없다면서, 사귀지 않으면, 게임 영상 풀어 버릴거래.-

로운이 식겁해서 말했다.

“영상 소리 꺼내지 마라. 내가 아주 요새 영상 소리만 들으면 경끼 하잖아.”

로운이 두통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강박, 그 기사는 어떻게 되어간대?-

“알아서 할 거라고 걱정 말래.”

-역시, 능력남은 다르구나, 이런 일 생기면, 보통 사람은 완전 초죽음 되던데, 너희는 무슨 일상다반사처럼 초연하냐?-

“그러게?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하네.”

로운도 깔깔 거렸다.

-음모론이 거세. 네티즌들이 너랑 강박 기사로 정부가 뭔가를 덮으려고 하는거래.-

“풋, 진짜?”

-원래, 큰 껀 터지면 다들 그렇잖아. 이번에는 또 뭘 덮으려고 하나 하고.. 근데, 조만간 큰게 터질지도 모른다는 얘긴 있더라.-

“진짜, 그런 거면 좋겠다. 올초부터 액땜 제대로 해. 나도 그 사람도.”

-뭐, 어쨌든 너 껀 잘 해결됐잖아. 강박 것도 그 나체 남자는 강박 아니라며?-

로운도 그 영상을 봤었다. 별로 기분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내 얘기 말고 니 얘기 해, 서민재가 진짜 뭐 있대? 오윤서, 그러다 회춘하겠다.”

-이로운, 너 요새, 심심했구나, 농담을 막 직구로 던지는 거 보니까. 강지석 효과야?-

“딴 소리는... 근데 그거 풀면, 서민재 쪽에 더 타격 있는거 아닌가?”

-내 말이... 그게 더 무섭잖아. 자긴 아무래도 좋다는데, 미친 놈 같아.-

“어려서 그럴 거야.”

-그러게 왜 하필 그 어리고 미친 놈이 나한테 들러붙은 거냐고.-

“너도 애쉬 좋다며? 전에 그랬잖아.”

-애쉬는 좋지만, 서민재는 싫다고, 여덟 살 차이야, 여덟 살, 내 막내 동생보다도 어려. 심지어 내 조카보다도 어리다구,-

로운은 윤서의 말을 들으면, 자신이 스톤이 강지석보다 좋다고 했던 걸, 떠올렸다. 그녀는 웃으며 윤서에게 조언했다.

“정 그렇게 싫으면, 스토커라고 신고를 하든지.”

저 쪽에서 숨 고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총알처럼 빠른 말투가 이어졌다.

-...이로운, 너 왜 그렇게 독해졌어.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끼리 너 그게 얼마나 이미지 타격이 큰 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같이 화보도 찍었으면서 의리 없다. 진짜. 서민재는 너 걱정하던데, 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손해라고...-

“정말 싫으면 그렇게 하란 얘기야, 끌려 다니지 말고.”

-어련하시겠어요. 이로운씨... 기집애, 말을 해도 꼭 지 같이 말한다니까.-

“나 같은 거?”

-그래, 너 생각보다 정 없고 독한거 몰랐어? 난 너보다 마음이 약해서 못 그래. 넌 사람한테 집착하지 않아봐서 모르잖아. 나 맘 상했어. 끊어.-

윤서는 앵 토라진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독하다고?'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두려움 때문에 사람과 관계 맺지 않고 산다는 건, 바꿔 말하면, 혼자서도 지낼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집착하지 않고...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에게나 정을 주고, 집착하면서 살아가기 마련인데, 자신은 지금까지 그런 상대가 없었다.

있다면, 일 정도였다. 남들은 그녀가 운이 좋아서 배우로 성공한 줄 알지만, 사실은 그 운도 어느 정도는 그녀의 집착이 빚어낸 결과였다.

첫 오디션에 떨어졌을 때, 로운은 감독을 찾아가 끝까지 다시 한 번만 봐달라고 조르고 졸라서 첫 배역을 따냈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단역과 조연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 시절이 남들보다 짧다는 게,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자신과 어울리는 배역이라고 생각하면, 무섭도록 파고 들어서 이루어냈다. 그리고 그 집착이 지금은 한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윤서... 많이 편해졌나 보네.”

로운은 커피를 따르며 혼잣말을 했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집착하던 윤서는 이혼을 결심하면서,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남성을 혐오하던 이로운은 강지석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집착한다는 건, 어느 선까지 용납되는 걸까?

그의 모든 게 궁금했다. 어린 시절, 힘들었던 시절, 공부하던 시절... 그의 가족... 그에 대한 건 뭐든지 알고 싶었다.

그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금 그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녀를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아직도 그녀를 밀어낼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졌다.

할수만 있다면, 나도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훔쳐 보고 싶어... 그녀의 심장이 제멋대로 두근거렸다.

* * *

라희는 책상에 가득 펼쳐진 서류와 사진들을 보면서, 새빨간 입술을 고양이처럼 올렸다.

“자기 정말, 좋은 걸 물어왔네.”

성빈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라희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 안고, 풍만한 엉덩이를 꽉 쥐었다.

“그러게, 나 무시하지 말랬지? 너한테 가장 도움 되는 놈은 나라고 했잖아. 그 늙은 영감탱이가 아니라...”

까칠한 턱수염이 목덜미를 따끔거리게 하자 라희는 까르륵 웃으며 몸을 돌려서는 성빈을 얼싸 안았다. 성빈이 이혼까지 하고서, 그녀를 다시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다. 그녀가 시키는대로 게임에 들어와 파트너까지 했지만, 결국은 버림받았었다. 그런데도 제 발로 다시 기어 온 것이다. 라희는 매우 만족스웠다.

“라희 니가 이로운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다행한 일이지. 의외로, 마누라 서재에 이로운에 대한 것들이 꽤 남아 있더군. 졸업앨범이나 편지 같은 것들도 있고...”

성빈의 손이 허겁지겁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 들자, 라희는 순순히 다리를 벌려주었다. 좋은 정보를 물어 온 공도 있었고, 사실은 그의 젊은 몸이 그립기도 했다.

정의원은 그녀를 상대하기엔 많이 모자라서, 밤마다 부족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몸살을 앓던 그녀였다. 끈 떨어진 연처럼 오갈데 없어진 성빈을 매몰차게 떼어냈던 게 아쉬울 정도였다.

“역시, 자기 밖에 없다. 나도 사실은 그러고 헤어져서 마음이 안 좋았어. 자기가 그리워 죽을 뻔 했어.”

라희는 눈꼬리를 살풋 뜨고는 성빈을 자극했다. 평소에도 노팬티를 즐기는 라희였다. 벌어진 다리 사이가 검게 드러나자, 성빈의 눈이 음침해졌다. 그는 서둘러, 바지를 벗고 라희에게로 달려들었다.

펄펄 뛰는 뜨거운 몸이 흥건하게 젖은 곳을 쑤시고 들어가자 마자, 두 남녀는 서로를 얼싸안고 요동을 쳤다.

그 바람에 책상 위에 있던 것들이 흩날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로운과 지석에 대해 조사한 여러 가지 서류들이었다.

로운의 십대 시절 사진들 속에, 겁먹은 눈으로 울고 있는 어린 남자 아이의 사진이 한 장 섞여 있었다.

'하늘이 나를 돕는군. 강지석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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