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헉, 허억, 유마담!”
붉은 조명이 어스름한 화려한 방안, 중년의 왜소한 남자는 풍만한 여체가 주는 쾌락에 못 이겨 푸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윽, 윽, 나온다.”
바들거리던 남자가 풀썩 쓰러진 뒤, 라희는 땀에 젖은 남자의 몸을 수건으로 닦아준 뒤, 옆으로 누웠다.
“아우, 자기 때문에 나 죽는 줄 알았어. 누가 자기를 환갑 지났다고 그래. 이렇게 쌩쌩한데.”
하다 만 듯한 축 늘어진 페니스를 몇 번이나 일으켜 세워보려고 하지만, 이미 복날, 개 혓바닥처럼 늘어진 남성은 일어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끝나 버린 정사가 아쉬워 죽을 지경이었다.
“허허, 내가 진작 유마담을 알았어야 하는데, 왜 이제야 알았을까?”
라희는 실망감을 감추고 늘어진 남자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피잇, 이로운한테 몇 번이나 거절당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우리 집 애들은 수준이 낮아서 싫다고 했다며?”
남자, 정의원의 얼굴이 벌개졌다.
“누가 그래? 난 관심도 없는데, 장성빈이랑 윤상무 그 놈들이 설레발 친거지. 쩝... 난 이로운이 누군지도 몰랐다. 내가 어디 연예인들한테 눈이나 주는 사람인가?”
라희는 못 이기는 척, 정의원의 볼을 쓰다듬었다.
“흥, 내가 알면서도 속아준다, 나 아니면 누가 우리 의원님 위로해 주겠어?”
아무리 시든 무라고 해도, 정의원이 가진 힘은 그녀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장성빈을 버리고 갈아탄 게 아닌가.
“흐흐, 그래 그래. 유마담이 최고지, 유마담이 연예인이 됐으면 이로운보다 더 떴을텐데, 아깝다. 아까워...”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라희는 애교스럽게 웃으며, 정의원의 하초를 움켜잡았다. 이상하게도 이로운보다 낫다는 말을 들으면, 흥분이 된다.
“강지석이 그 놈이랑 이로운이 그렇고 그런 사인걸 내 진작에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고회장 그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이가 이제 와서 나를 물 먹여? 어림도 없지.”
정의원은 입맛을 다시며, 한참동안이나 고회장과 강지석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시들어 있는 아랫도리를 일으키려고 입술을 가져가던 라희의 눈이 독살스럽게 변했다.
“그거 쑈 아니에요? 괜히 이로운 좀 띄울려고 그러는 거 같아. 연예인들은 자주 그러잖아요. 서로 이득이면 사귄다고 소문내고, 노이즈 마케팅이야.”
라희는 지나는 말처럼 물었다. 자신을 지나친 지석이 이로운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의 모욕감이 고스란히 떠오르자, 그녀의 눈빛이 표독스러워졌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이로운 그 년, 버릇 좀 고쳐야지 안 되겠어.”
정의원이 이를 갈자 라희는 생긋 웃었다.
“화무도 십일홍이지. 이로운이 언제까지 이로운이겠어요. 끈 떨어진 연 신세 되면, 지가 어딜 감히 그래. 건방지게.”
라희의 말에 정의원은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 그녀의 가슴을 주물럭 거렸다.
“유마담도 강지석이랑 안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알기는, 몇 번 상담 받은 적이 있어요.”
라희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가슴이 시렸다.
'그가 이로운이랑 사귄다고? 거짓말일거야.'
둘이 함께 있던 모습만 떠올리면, 갑자기 심장이 쌔하니 아프고 저린 듯 했다. 꼭, 첩에게 남편을 뺏긴 조강지처가 된 느낌이었다.
강지석을 먼저 찍은 건 그녀였다. 그를 갖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어디서 얼굴 하나 믿고 사는 년이 튀어나와 그를 가로챈단 말인가.
알면 알수록 그가 좋아졌다. 그만 생각하면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라희는 입맛을 다시며, 정의원의 아래를 입에 물었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리는 늙은 몸뚱아리 아래에서 그녀는 강지석을 떠올렸다.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그라고 상상하자, 몸이 확 뜨거워졌다.
“헉헉, 유마담은 보물이야, 보물. 사내 혼을 쏙 빼지. 으윽,”
그녀의 입속에서 진저리를 치는 정의원은 벌써부터 넋이 나갔지만, 라희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강지석...'
몇 번 가게에 와서 안면이 있었던 고회장에게 부탁해 강지석의 병원에 갔던 지난 연말부터, 라희는 그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게이라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명망 높은 의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얘기들도, 마치 자신과의 인연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게임에서도 엉뚱한 여자에게 뺏겨버리더니 현실에서 마저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운은 그가 게임에서 다른 여자와 부부지간이라는 걸 알까? 모르겠지. 그걸 알면, 자존심 상해서 그와 만나지 못할거야.'
게임이 문제가 아니었다. 로운과 지석을 떨어뜨려 놓는 게 우선이었다.
라희는 비릿한 맛이 감도는 입술을 핥으며, 눈을 빛냈다.
“이로운이 별건가, 걔도 알고 보면 우리랑 똑같아요. 연예인 하려고 비디오도 찍고 그랬대요. 나 예전에 본 적 있어요. 그 땐, 이로운이 유명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아마, 얼굴 고치기 전이라 그런거 같아.”
라희의 말에 정의원이 관심을 보였다.
“정말이야? 그런 비디오가 있어?”
“그럴걸요?”
* * *
“당신 어릴 때 얘기 좀 해봐요.”
로운은 그의 가슴에 안겨 고개를 치켜 들었다. 그에 대해 좀 더 많은 걸 알고 싶었다. 가족이라거나, 그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과 친구들 그리고 다른 것들도... 모든 게 다 궁금했다.
“별로 할 만한 게 없어.”
하지만, 지석은 자신의 얘기를 별로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시절 얘기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털어놨는데, 강지석에 대해 아는 건, 양자로 갔다는 것과 오리언과 의남매라는 것 뿐이었다.
“어릴 때, 기억은 안 나요?”
로운의 집요한 물음에 지석은 잠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어릴 때, 기억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아직도 가끔은 악몽을 꾸었다.
그를 학대하던 고아원 원장이 악마로 변했다가, 다시 목을 맨 시체로 변했다가 끈적한 검은 파도가 되어 덮쳐들었다.
손 끝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가위에 눌리는 날은 줄어들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 친구들은요?”
친구? 지석은 곰곰이 생각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잠깐, 최지훈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는 인상을 확 구겼다.
자신의 나이가 한 살 많다면서, 지석과 얼렁뚱땅 친구 먹으려고 하는 누이동생의 남편 놈 얼굴이 왜 친구라는 말에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그는 친구가 없었다.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기대하게 되면, 실망하게 된다. 그게 어려서부터 그가 터득한 방법이었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니컬하게 웃었다. 자신 하나도 치료 못하는 돌팔이 주제에 환자들에게는 다른 말을 했다.
로운에게도 뭐라고 했던가?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부딪히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말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자신은...? 자신의 트라우마는 버려지는 것이었다.
버려지는게 두려워서 학대당하면서도 매달렸다. 버려질까봐 악착같이 공부했다. 버려질까봐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는 버려지는게 두렵다. 그런데 어째서 리언에게 버려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알고 있었다. 그녀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누구에게도 기대면 안 된다. 하지만,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다.
지석은 자신의 가슴에 올려진 로운의 손을 잡아 입술로 가져갔다.
“친구들은 모르고, 주형이가 함께 고아원에 있던 녀석이야. 다 커서야 만났지.”
리언이 있던 그 고아원을 찾아 다닐 때, 우연히 주형을 다시 만났다. 뿔뿔히 흩어질 때, 주형은 그 고아원으로 보내졌었다고, 일년에 한번씩 방문한다고 했다.
“녀석도 나도, 어렸을 땐 힘들었어.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지. 그나마 나는 좋은 양부모님을 만났지만, 그 녀석은 운이 없어서 이곳 저곳을 전전한 모양이야.”
그게 인연이 되어서 주형의 뒤를 봐주게 되었다. 학교를 보내 공부를 시키고, 고회장에게 소개를 시켜, 일을 돕게 했다.
주형은 아직도 자신이 지석을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배달원으로 살았을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지석을 친형님처럼 떠받드는 것도 그래서다.
로운은 몇 번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거에요?”
로운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윤서가 한 말을 곱씹고 있었다. 사랑이 식었을 때, 서로를 지탱해 주는 건 아이라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그를 사랑한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이 식은 후에는? 그녀는 식을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날 영원히 사랑해줄까? 만일, 그의 사랑이 식으면 어떻게 되는걸까?
지석은 명백하게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아이가 있다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로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 안 해 봤어.”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던 그의 손이 멈추었다. 로운은 가슴이 섬뜩해져서 그의 허리에 단단히 팔을 감았다.
“수술한 거 풀면, 다시 가질 수도 있다는데... 당신은 그런 건 생각 안 해봤어요?”
“안 해봤어.”
“정말 안 낳고 싶어요?”
지석이 목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낳고 싶지 않은게 아니라 낳지 못한다고 했을텐데?”
로운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재수술 하면 낳을 수도 있다고...”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 들었다. 왠지 비참한 기분이다.
지석이 딱 잘라 말하는게 서운하다. 그를 대하다 보면 뭐든 적당히라는게 없다. 끝까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게임에서 자신을 밀어낼 때도, 그리고 지금도, 지석은 언제나 끝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 같았다.
행복의 절정에서 그녀가 불안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산을 다 올라갔을 때, 그곳에 머무르고 싶어지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내려가지 못하게 발이라도 묶어놔야 하나. 그게 아이라는 장치라면, 그건 너무 슬픈데... 하면서도 로운은 그가 그렇게라도 말해주기를 바랐다.
노력해 보겠다고.
“아기, 갖고 싶어?”
지석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설마 로운이 벌써 아이 얘기를 꺼낼 줄을 몰랐다. 보통의 여배우라면 오히려 임신을 기피하지 않나?
“당신은 외동딸이라고 했지?”
로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동이라 그런건가... 늦은 나이라는게 모든 걸 빨리 결정하도록 하는 걸 수도 있다. 그를 사랑하는 게 빨랐던 것처럼. 쉽게 달아오른 냄비는 쉽게 식기 마련이니까.
지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말했다.
“그렇군. 간단해.”
그가 별로 어렵지 않은 듯이 말했으므로 로운의 얼굴도 밝아졌다. 수술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은 건가?
“난 언제든 괜찮아.”
“정말이에요?”
“당신이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날 염려할 필요는 없어. 다만,”
지석은 로운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 역시도 그 말을 할 때는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귀기로 한지 얼마 안됐으니까 적어도 약간의 시간은 둬야 할 거야. 당신의 명성에 흠이 가지 않으려면.”
그녀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했다.
“내가 만일 당신의 아기를 갖고 싶다고 한다면요?”
지석이 천천히 말했다.
“...아이는 싫어.”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가질 수 없는 건 기대하지 않는다. 더 실망하게 될 테니까.
그 대화 이후, 다음 날 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하게 어색한 기류가 남아 있었다. 지석이 돌아가고, 로우는 하이난에 남아 화보촬영을 했다.
그녀는 윤서에게 전화를 걸어 와주기를 바랐다. 적어도 이런 때 혼자 있고 싶지는 않았다.
호텔방에서 코를 훌쩍거리며 지석의 얘기를 전하는 로운을 보며 윤서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니가 나한테 그랬잖아. 아이가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까지 딱 잘라 말할 줄을 몰랐단 말야. 아이가 필요하면 다른 남자를 만나라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사랑한다고 말한지 몇 시간도 안돼서...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왠지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너나, 나나, 남자 운은 드럽게 없어. 그래도 넌 나보다는 낫다.”
로운은 훌쩍거리다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너무 자신의 얘기만 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준 윤서도 오죽이나 답답하면 그랬겠는가.
“이혼은 순조롭다며, 뭐가 또?”
“현실에서도, 게임에서도 이혼했거든.”
윤서가 한숨을 쉬었다.
“애쉬랑 왜?”
“자꾸 만나자잖아.”
“너도 좋아하는거 아니었어? 만나 봐”
윤서는 민망한 듯이 목을 움츠렸다.
“음... 사실은 친구야. 내가 나이를 쪼끔 속였다.”
로운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윤서를 만나면 아직도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알아. 그랬다며. 스물 아홉이라고.”
“그것보다, 좀 많이 속였어.”
그녀가 한 손의 손가락 두 개와, 다른 손의 손가락 다섯개를 펼쳐보였다. 윤서는 곤혹스러워 보였다.
“애쉬가... 스물 셋 밖에 안 돼.”
“뭐야? 스물 일곱인가 그렇다고 안 했어?”
로운은 연하라고는 했어도 그렇게 어리다는 말을 못 들었기 때문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윤서도 골치 아프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스물 다섯이라고 해버렸거든. 스물 셋하고 서른 하나는 너무 하잖아.”
“헐, 대박이다 오윤서,”
“그땐, 그냥 게임에서만 볼 마음이었으니까. 나이 속이면 만나자고 해도 못 만나잖아. 일종의 안전장치였다구.”
“유부녀라는 건 알아?”
윤서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로운의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에 윤서는 작게 웃었다.
“난 그냥 연애를 하고 싶었나봐. 20대 때, 그 풋풋한 뭐 그런거.”
“진짜 오윤서... 딜도보다 낫다느니 하더니, 풋풋? 야야, 풋사과가 풋, 하고 웃겠다.”
“하여간, 그래서 이혼 메일 보내놓고 심란해서 이리 도망 온 거야.”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을 때, 로운과 함께 화보 촬영을 하러 온 남자 모델이 내려왔다. 윤서는 동그란 눈을 빛내며 환성을 질렀다.
“같이 화보 촬영하는 게 '서민재'였어?”
“응, 그런가봐. 누군지 알아?”
“요즘 모델 중에서 가장 핫하잖아. 지난 번, SR 라스트 무대 메인 섰잖아.”
“아 그랬나? 나 그땐 무대에 집중하지 못했어서”
서민재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와 인사를 했다. 오늘 하루 종일 같이 촬영했지만, 그다지 대화를 나누지 않아서 로운도 가볍게 인사만 했다.
어쩌다 보니 합석을 하게 되었고, 윤서와 로운은 게임 얘기를 계속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애쉬가 뭐래? 그렇게 하재?”
로운이 소곤거렸다. 윤서는 귀찮다는 듯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몰라, 메일로 보내고 그 뒤로는 접속 안 했으니까.”
“와, 나쁘다 오윤서. 어떻게 그렇게 관계를 칼 같이 끊어?”
“하는 수 없잖아. 이제 와서 전부 거짓말이라고 어떻게 말해.”
윤서는 울적한 듯 말했다.
밥먹을 동안 아무 소리도 안 하던 서민재가 입을 연 건, 바로 그때였다.
“혹시 지금 하시는 얘기가 피안토피아라는 게임 얘기 인가요?”
로운과 윤서는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그 게임 알아요?”
“압니다. 애쉬라는 닉을 사용하구요.”
서민재는 미동도 없이 윤서를 보고 있었다. 로운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음... 윤서야 나 잠깐 화장실 좀”
“야!”
정말 세상이 좁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이래서 사람은 죄 짓고는 못 사는 법이다.
로운은 화장실에서 나오다 윤서와 서민재가 열렬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몰래,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지석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헤어진 지 하루도 지나기 전에 그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