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46)

제 6장 - 동거동락

* * *

그의 집 현관에 막 들어서는 순간, 로운은 지석에게 안겨졌다. 등 뒤에서 그녀의 양팔을 앞쪽으로 잡아 단단히 교차시켰다.

귓전에 다가오는 뜨거운 호흡에 로운의 머릿속이 혼란했다. 사실은 그의 결정에 따르기고 한 시점부터, 계속 이 상태였다.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나 마치 게임인 것처럼 느껴졌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확실한 욕망의 감촉에 아랫배가 파르르 떨려왔다.

“똑같이 해줄까? 허니문 1번부터?”

목덜미에서 들려온 웃음 소리에 로운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했다. 피안토피아에서 오늘부터 파트너, 라고 말했을 때와 똑같다.

“아니요! 아니에요. 그럴려고 온 거 아니에요!”

그녀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바둥댔다. 다행히, 꽉 안고 있지는 않아서인지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로운은 쿵쾅거리며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갔다. 지석은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오며 말했다.

“진짜 하고 싶지 않아? 난 하고 싶은데.”

그녀는 쇼파를 사이에 두고는 적군을 노려보듯 그를 노려보았다. 지석은 빙글 빙글 웃고 있었다.

강지석이라면 절대로 저렇게 웃지 않았을텐데... 왠지 그는 웃음이 많아진 것 같았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게, 강지석인지 스톤인지 헷갈렸다.

그녀는 쇼파 주위를 한 바퀴 다 돌기도 전에, 그의 손에 붙잡혔다. 지석은 그녀의 몸을 단단히 팔 안에 가두고, 고개를 숙여, 깊숙하게 키스했다.

“해보고 싶다며, 이런 거.”

그의 키스는 정말로 허니문 1번과 똑같았다. 방문 앞에서 로맨틱한 키스를 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는게 그 플레이의 시작이었다. 언젠가 스톤에게, 그게 부럽다는 말을 했었던 것 같았다.

하긴, 게임에서 그에게 한 말이 어디 그것 뿐이랴. 로운은 귀 밑까지 달아올랐다.

그 사이, 교묘하게 키스당하며, 그에 의해 침실로 옮겨지고 말았다. 간신히 정신이 들었을 때, 로운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정말 여자랑 처음이에요?”

“응”

그녀의 목덜미를 배회하는 그의 입술은 따스했고, 목소리는 콱 잠겨 있었다. 로운은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밀었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그런 것 치고는 당신은 너무 능숙하다구요.”

로운은 의심하듯 말했다.

“당신과는 처음이 아니니까.”

지석은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

“거기다 이미 수도 없이 연습했고.”

그 연습이 뭔지는 그녀도 너무나 잘 알아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넘어가는 건, 너무 창피한 것 같았다.

“아니, 난, 그래도...”

로운이 대답할 말을 찾는 동안, 그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몸이 허공에 붕 뜨자,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원하는 걸 해줄게.”

달콤한 말에 로운은 말 대신 한숨을 토해냈다. 오늘 벌써 몇 번이나 들었다.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는 말... 그럼, 그는?

문득, 그가 원하는 게 뭔지 묻지 않았다는게 떠올랐다. 그녀가 처음이라고는 했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그녀를 원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로운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요? 당신도 날...”

사랑한다고 묻는 건 왠지 너무 창피했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날 원하나요?”

지석은 대답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커다란 손이 그녀의 옷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고, 다시 그 손목을 잡았다.

“대답해줘요.”

그의 시선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흔들리지 않는 검은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너무 쉽게 읽히는데 비해, 그의 생각은 요만큼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말해주지 않으면.

지석은 로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손만을 움직여 그녀의 가슴을 애무했다. 브래지어 속으로 들어온 손가락이 그녀의 젖꼭지를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압박감과 함께, 곤두선 끝이 그의 손에 의해 비벼지고 짓뭉개졌다가 다시 살며시 쓰다듬어졌다.

로운은 헐떡거리며 멀어지는 이성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점점 머릿속에서 생각이 사라져갔다.

“아니, 스톤. 이러기 전에 먼저 대답을... 흐으응...”

지석의 손이 그녀의 부드러운 스웨터를 천천히 밀어 올렸다. 드러난 맨살에 뜨거운 입김이 부어졌다.

“당신은, 날 참기 어렵게 만드는 유일한 여자야.”

그녀의 가슴 아래쪽을 혀로 핥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로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더욱 세차게 들려왔다.

유일한 여자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다는 뜻일테니까. 그럼 남자들은? 순간, 지석이 게이였다고 생각하자, 그녀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설마, 남자랑 라이벌이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의구심이 든 것도 잠깐, 지석의 머리가 조금씩 위로 올라오자 더 이상은 생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지금 이 남자는 자신의 옆에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이 순간은 충분히 행복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를 느꼈다.

손끝으로 자극당한 돌기에 축축한 혀가 닿자, 로운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따끔하면서도 짜릿한 감각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의 애무만으로도 절정에 오른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손가락으로 솟아오른 살점을 꼭 누르고, 다시 혀로 주변을 빙글 빙글 돌리자, 로운은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으읏,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스톤.”

순간,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로운이 몽롱하게 그를 올려다 보았다. 미세하게 미간이 좁혀져 있었다.

“왜, 왜요?”

“밖에서까지 스톤으로 불리고 싶지는 않아.”

로운이 움찔하자, 지석은 그녀의 가슴 끝을 이빨로 지그시 깨물며 속삭였다.

“내 이름,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물론이에요. 강, 강...가의 돌멩이씨!”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너무나... 어색하다. 하지만, 그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조금 더 세게 물었기 때문에 로운은 자지러지듯 외치고 말았다.

“하, 하지 마요. 지석씨!”

그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조금 웃음기를 띠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게 내 이름이야. 스톤과 헷갈리지 마.”

심술맞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둘 다 당신이잖아요.”

로운은 가슴을 크게 들썩거렸다.

무슨 차이가 있는거지?

“당신을 밖으로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지석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재빠르게 로운의 옷을 벗겨버렸다. 전라의 모습으로 그의 아래 누워 있다는게 이렇게 창피할 줄 몰랐다.

“왜, 왜 그렇게 봐요?”

로운은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이런 자세는 민망하다. 두 번이나 그와 잤을 땐, 이렇게 쳐다보지 않았었잖아.

그녀가 가슴을 가리려고 하자 지석은 가느다란 손목을 잡아 머리 양쪽에 대고 눌렀다,

“만지지 마.”

지석은 아릿한 아픔이 남아 있는 젖꼭지를 혀 끝으로 살살 돌려가며, 그녀를 애태우기 시작했다. 로운이 흐느끼며 그의 머리를 안으려고 해도, 허락하지 않았다.

“스톤... 그만, 으응, 놔줘요.”

젖어 있는 숲을 지나 그의 손가락이 파고 드는 순간, 로운은 몸을 비틀며 애원했다. 그에게 키스하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지석이 뒤로 물러났다. 그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 번만 더 스톤이라고 부르면, 깨무는 걸로 끝나지 않을거야.”

로운은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당신도, 캔디라고, 부르면... 읏, 되잖아요.”

달아오르기 시작한 몸은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움찔거렸다. 아래가 조여들때마다 몸에서 전기가 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감질나게 그녀를 어루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난 누구처럼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지 않아.”

그는 관상용 화초를 쓰다듬듯이 그녀의 풍성한 숲을 손가락과 손바닥을 이용해 건드리거나 부드럽게 쓸었다.

그때마다 참을 수 없는 전율이 그녀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다리를 모으고, 비틀고, 참아보려 했지만, 결국은 헐떡거리며 수긍의 뜻을 나타냈다.

“나도 물론 그래요.”

말은 그렇게 했어도 머리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째서 그는 두 사람이 따로인 것처럼 말하는 거지? 내가 마치 바람이라도 피는 것 같잖아.

“하지만, 뭐가 다른지 말해...”

로운이 말하려는 순간, 그의 입술이 내려오더니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처음에는 느긋하게, 그러다 곧 격렬하게 그녀의 입속을 파고 들었다.

손에서 힘이 빠진 틈을 이용해 로운은 그의 가슴을 더듬었다. 셔츠를 벗겨내고 맨 가슴에 손을 미끄러뜨렸다. 막힌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터졌다.

로운은 가볍게 미소지었다.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 낮은 신음소리는 그가 흥분을 억누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평소에는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던 모습이지만, 지석이 유혹에 약하다는 걸, 이제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따스하고 단단한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 손이, 그의 바지를 엉덩이에서 끌어내렸다. 그녀는 발로 바지를 완전히 벗겨내 침대 아래로 차버렸다.

그의 몸을 양팔로 꼭 끌어안고, 허리를 긴 다리로 감싸 안았다. 매끄러운 몸에 닿을 때의 느낌이 좋아서 로운은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한숨을 내뱉었다.

지석은 그녀의 가슴을 희롱하며 몸 위로 체중을 실었다. 단단해진 살점을 혀와 이빨로 공격당하자 온 몸이 짜릿짜릿했다.

로운은 그의 손이 배를 어루만지며 내려가자 허리를 들어올렸다. 미꾸라지가 빠져나가듯, 지석은 그녀의 다리 사이를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지석씨?”

그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에게 발을 잡힌 순간, 로운은 소스라치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집에 들어오자 마자 침대로 직행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 마요. 안 씻었잖아.”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묘하게 찡그리는 듯 해서 로운은 털썩 침대로 다시 쓰러졌다.

“난 몰라, 진짜.”

“냄새는 안 나.”

지석이 발을 들어 코를 가져가 킁킁거렸다. 근엄한 의사 선생님은 사람을 놀리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녀는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이 없게도, 그녀의 수치심은 그의 입술이 발등에서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따스한 혀가 피부를 간질이며 서서히 올라와 무릎의 동그란 부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더니 한쪽 다리를 바깥으로 벌리게 하고는 혀를 내밀어 무릎의 안쪽을 할짝거렸다.

로운은 뜨거운 김이 얼굴과 아래쪽에서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뜨겁고 축축하고 간질거리는 느낌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허벅지를 타고 올라온 혀가 오목한 곳을 건드리자 그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추위를 느끼는 사람처럼, 젖꼭지가 아플 정도로 딱딱하게 곤두섰다.

다리 사이가 점점 젖어들었다. 그녀는 몸을 뒤틀며 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휘어 감았다.

“아... 으음, 하악!”

보드라운 혀가 좁은 곳을 쑤시고 들어차는게 느껴지자 그녀의 엉덩이가 푸득 튀었다. 지석은 그녀의 엉덩이를 받쳐들 듯이 단단히 잡고, 입을 벌려 그녀의 예민한 부위를 물었다.

“아앗, 지석씨! 으응, 그만, 거긴... 그만요.”

그의 머리를 위로 끌어올리려 애를 써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노련한 혀는 그녀의 예민한 부위를 간질이고, 얇은 꽃잎을 헤집으며,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여린 살결이 짓뭉개지고 비벼지면서 공격당했다. 소용돌이 치듯 몸 안을 들끓게 하던 무언가가 벼락처럼 그녀에게 내리꽂혔다. 로운은 마침내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

머리가 빙빙 돌면서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로운은 더 이상 그를 막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아래쪽에 있던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를 보는 눈빛이 한없이 따스했다. 로운은 이 모습이야말로 게임 속에서 보는 스톤과 똑같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로운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댔다. 자신의 심장소리와 똑같이 요동치는 맥박이 느껴졌다.

강지석은 살아 있는 스톤이었다.

그녀가 유일하게 받아들였고, 남편으로 삼은 그 남자와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게임 속의 스톤처럼 다정했으며, 정열적이이었다.

지석은 그녀의 몸을 맛보다가 조금 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음, 당신 괜찮겠어? 난 더는 못참겠다.”

그리고, 그녀의 유혹에 약했다. 로운의 입가가 저절로 벌어졌다. 그에게 맹목적인 애정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가 몸 위로 올라오고, 흥분으로 곤두선 몸이 아랫배를 쓸 듯이 움직이자. 로운은 움찔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쳤다.

지난 번에는 얼떨결에 피임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어째서 그걸 쓰지 않는거지?

미묘하게 그 차이가 인식되었다. 남자들과의 관계에선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 저기. 그거 안 해요?”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뜻인지 묻고 있었다. 로운은 이런건 명확히 하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나, 난 피임 안해서... 당신이 했으면, 좋겠는데.”

지석은 잠시 말을 잇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몇 년 전에 수술했어.”

좀 전까지 흥분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 수술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던 로운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수술했다구요? 왜요? 당신은...”

게이였다면서, 여자랑 그런 적도 없다면서, 어째서 그런 수술을 한 거에요? 라는 질문이었다.

지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만에 하나 실수로라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는 심각하지 않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로운의 창백한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럴 수 없으리란 것을 알았다.

지석은 로운에게 그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또 생각했다.

굳이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별다른 갈등 없이 결정한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이 여자와 엮일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오 년 전, 그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그는 두 번 다시는, 다른 사람과 그런 관계가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말초적 쾌락만을 원하는 자신을 거세하고 싶었다.

수술을 한 건, 그런 의지를 확실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지금 와 생각하니, 그 당시 자신의 심리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었다.

다만, 자신이 그렇게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자신을 억제할 정신적 강박수단의 의미로,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지, 지난 오년 간, 그는 단 한 번도 욕망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로운이 나타나면서 모든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일을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식을 낳거나, 돌보는 일은 자신과는 절대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먼 훗날에는 어쩌면... 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현재로서는 결혼과 그는 무관하다. 이게 지석이 내린 결론이었다.

“어째... 서요?”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었다. 로운의 굳어진 표정만 봐도 그랬다.

전이었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에 조금도 연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충격 받은 듯한 로운을 보자, 그는 자신이 낙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세상을 살면서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 같던 일이, 한 번쯤은 벌어지기도 한다는 걸, 지석은 요즘서야 깨닫고 있었다.

그는 의외로, 여자와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어쩌면 수술 후,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 사랑의 결과가 어떠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걷잡을수 없이 빠져들었다. 머리로는 거부해도, 몸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평소의 그였다면, 지는 게임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테지만... 인간은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 동물이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스스로 그 함정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지석은 그녀의 몸에서 일어났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물어.”

로운은 핼쓱한 얼굴로 시트를 끌어당겨 자신의 몸을 덮었다. 그 표정에서 자신에 대한 거절을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원하는대로 피임을 하고, 그 사실을 모른 척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그에게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지석은 로운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신을 보고 있자, 조금 시니컬한 어조로 말했다.

“아까 이걸 말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군. 난 결혼 할 생각도,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어. 난 독신주의야.”

그는 이 관계에 명백히 끝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는 벗은 몸을 가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로운은 멍해지고 말았다. 사귄다는 말을 들은지, 몇 시간도 안 되어, 독신주의 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독신주의라고?”

독신주의, 그래. 뭐 문제 될 것도 없지. 지금까지 자신도 독신을 고수해왔다.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었다.

지석을 좋아하지만, 결혼이란 건, 아직은 게임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이었다. 그런데 지석에게 대 놓고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뭐랄까.

마치, 맛있는 음식을 막 먹으려고 했는데, 눈 앞에서 뺏긴 기분이랄까. 암튼 그랬다.

로운은 시트로 몸을 둘둘 만 채, 어기적거리며 욕실로 향했다. 허리에 타올을 감고 나오던 그와 딱 마주쳤다.

가슴 앞에서 모아 잡은 시트 끝 자락을 마치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여잡고, 로운은 싸움을 거는 사람처럼 물었다.

“하지만... 당신도 나 사랑하죠?”

지석의 그녀의 말이 주는 미묘한 어감의 변화에 자신이 기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신은' 이 아니라 '당신도'인가?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로운에게 중요한 건, 결혼이 아니라 단지, 사랑이었다.

사춘기 소녀처럼,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그 감정을 확인하는 것만이, 가장 시급한 일인 것이다.

“음...”

그는 로운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로운의 눈이 애절할 정도로 반짝거리는 걸 보며,그는 자신이 나쁜 남자라고 생각했다.

좋은 남자라고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처럼 죄의식을 느낀 적도 없었다. 여자는 사랑에 지치면 떠나갈 것이고, 그는 다시 안전해질 것이다.

잠시동안, 꿈을 꾸는 건 괜찮을 지도 모른다. 자신은 꽤 괜찮은 남자친구 노릇을 할 것이고, 그녀에게 쓸 만한 관계가 되어 줄 테니까.

로운이 다른 걸 원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아마도?”

그녀의 표정이 기쁨과 환희로 바뀌는 걸 보자, 그는 갑자기 악동이 되고 싶었다.

사랑이 얼마나 무가치한 감정 낭비인지에 대해 설명주는 건, 정신과 의사로서의 직업 의식 같은 것이다.

지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눈으로 그녀의 몸을 가린 시트를 노려 보았다.

“잊지 마,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랑은, 고작해야 뇌 속의 화학반응으로 유지되는 착각이야.”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로운은 그의 뜨거운 눈빛을 보면서, 이 문제로 그들이 다툴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그의 허리를 가린 타올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걸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그를 지나쳐 욕실로 들어갔다. 뒤에서 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방 주사라고 생각해. 도파민은 중독성이 강한 호르몬이지. 행복감이 클수록 금단 현상도 커지거든.”

물소리에 섞여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 주위 사람한테 성격 나쁘다는 말 많이 듣죠?”

지석은 욕실 문에 기대어 선 채, 그녀를 기다렸다. 별로 좋지 않은 버릇이 생겼다. 가능하면,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눈만을 내려뜬 채,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늘 자신이 참을성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타올 안쪽에서 솔직한 게 나쁜 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했다.

밖으로 나오자 마자, 지석에 의해 번쩍 들려진 로운은 타올 끝으로 자신의 얼굴을 반쯤 가렸다.

“왜, 아직 여기에 서 있는 거에요?”

지석은 물기에 젖어 축축한 어깨로 입술을 미끄러 뜨리며 말했다.

“문제가 없다면, 아가씨, 아까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싶은데, 동의 하나?”

로운은 물론, 동의했다.

차가운 시트가 볼에 닿는 촉감에 로운은 나직한 쾌감의 한숨을 내쉬었다. 등줄기에 와 닿는 그의 입김에 또 다시 저릿한 감각이 아래로부터 치솟았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점점 더 빨라질수록, 눈 앞은 점점 흐리게 변해갔다.

“아, 흐읏... 으응,”

그녀는 간간히 신음을 토하며 자신의 허리를 안고 있는 단단한 팔뚝을 양 손으로 어루만졌다. 따스한 온기가 도는 피부의 질감은 도무지 싫증이 나질 않았다.

사람, 그것도 남자의 피부가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은 늘 더럽고, 추악하며, 혐오스러운 것들이었으니까.

철이 들어서도 종종, 모르는 남자 앞에서는 모골이 송연한 공포를 느끼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그 때의 일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숨 막힐 정도로 달콤하고 열렬한 쾌감의 기억만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다. 그리고 점점 더 원하게 된다. 더 강한 자극을 바라게 된다.

그가 말한 것처럼, 중독되어가는 것일까?

회오리처럼 뜨거운 열정이 한바탕 휘몰아친 뒤에, 그녀는 나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상해요.”

로운의 몸을 등 뒤에서 바짝 끌어안은 채, 목덜미에 코를 박고 있던 지석이 말했다.

“육하 원칙에 맞춰 말할 수 없는 거면, 잊어. 쓸데없는 거니까.”

그녀는 가슴 끝을 장난치듯 비비고 있는 손가락을 잡아 이빨로 꽉 깨물었다. 그에 대응하듯, 단단한 이가 어깨를 지그시 물었다.

“아야...”

로운은 짙게 변한 손가락 끝의 이빨 자국을 혀로 쓸었다. 단단하고 큰 손을 쥐고, 깨물고, 빨고 핥는 동안, 그의 숨소리는 조금씩 더 거칠어졌다.

“손... 놓지 않으면 다른 곳이 괴로울걸? 나야 상관없지만,”

손을 쓸 수 없게 된 탓인지, 또 다시 단단해진 페니스가 그녀의 엉덩이 아래쪽을 쿡쿡 찔렀다. 그녀는 엉덩이에 힘을 딱 주었다.

그가 몇 번이나 자신을 괴롭히고도, 아직 이 상태라는 게 놀랍기만 했다. 남자들의 욕망은 늘 이렇게 시들지 않는 건지 궁금했다.

“당신은 안 그래요?”

“안 그래.”

들어보지도 않고 그가 또 대답했다. 이번에야 말로 약이 올라서 그녀는 지석의 손등을 아플 정도로 꽉 물었다.

“내가 뭘 물어보는지 알구요?”

그녀는 고개를 뒤로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지석은 이때다 싶었는지, 손을 빼서 그녀의 턱을 강하게 잡고는 다시 깊숙하게 입술을 겹쳤다.

지석은 그녀의 입 안을 점령해서, 샅샅히 핥고, 물고, 실컷 빨아들인 후에야 아쉽다는 듯이 간신히 놓아주었다.

“한 번 더 할래?”

“응? 그만요!”

헐떡거리는 그녀를 보면서, 지석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정말? 쟤들은 아직도 저렇게 쌩쌩하잖아.”

지석이 턱짓을 하는 곳에는 노트북이 나란히 두 대가 놓여 있었다. 망측하게도, 그 곳에서는 아직도 스톤과 캔디가 지나치게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저건, 기계잖아요.”

그녀는 눈을 흘기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보면서 하고 싶다고 한 건 당신이야.”

지석의 말에 그녀가 움찔하자, 위에서 쿡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건... 보면 더 흥분되니까.”

로운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아무리 야한 영화를 보더라도, 한 번도 그런 적 없다는 걸, 그는 믿지 않을 것이다.

하긴, 누가 믿겠는가? 그녀가 이렇게 야한 여자라는 걸, 로운은 그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흠, 당신이 좀 변태스러운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

변태... 그도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자, 로운은 울상을 지었다.

아, 대체 나는 왜 이런 약점을 잡힌걸까?

그녀는 약이 올라 그의 작은 젖꼭지를 손톱 끝으로 긁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상하다구 했잖아요. 난 내가 이런지 정말 몰랐다니까요. 이전까지는 진짜! 한 번도 이렇게 변태라고 생각한 적 없다구요.”

로운이 묻고 싶은 건, 그거였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섹스를 밝히는 여자가 되었나 하는 것이었다.

지석이 안아주는 것도 좋지만, 확실히 게임에서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면서 하면, 더 흥분이 되었다.

“나한테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요.”

의논하고 싶은 건 바로 그거였다. 그녀가 투덜거리자 지석은 로운의 몸을 돌려서는 양 팔로 꼭 끌어안았다. 머리에 턱을 대고 눌렀다.

“그게 정상이야. 그동안 너무 억눌러서 한꺼번에 터뜨리려고 하는 거지. 당신은 지난 십 년치를 몰아서 하는 것 뿐이야.”

그 말을 들으니 왠지 안심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의 말이니 믿어도 되겠지.

“그럼 당신은요? 당신도 여자랑은 안 해서 억눌러 그런거에요?”

혼자만 변태 취급을 받는 건 뭔가 억울하다. 로운은 그가 밤새도록 자신을 괴롭힌 것을 지적했다. 넋이 나가 있긴 해도, 완전히 잃은 건 아니었다.

“분명, 난 그만 하자고 했는데, 당신이 더 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구요.”

다리 사이가 쓰리고, 몸 안쪽이 욱씬거리는 감각이 몰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하얗게 눈을 흘겼다. 지석은 피식 웃고는 그녀의 허리를 바짝 잡아 당겼다.

“때로는 말보다 몸이 더 정확하지. 당신 몸이, 원했잖아. 정말로 싫어했으면, 그만 했을 거야.”

밀착된 아래쪽에서 은근하고 아릿한 감각이 치솟자, 로운은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꽉 힘을 주었다.

아, 안 돼...

그녀는 느릿하게 문질러대는 그의 페니스를 피해 엉덩이를 뒤로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단단하게 잡고 있어 불가능했다.

이미 단단해진 끝이 예민한 부분에 닿아, 참을 수 없는 감각을 전해왔다. 로운은 저도 모르게 그의 몸에 대고 자신의 안타까운 부분을 서서히 비비기 시작했다.

좀 더, 조금만 더 하면... 느낄수 있을 것 같아. 그가 모르게...

그녀의 숨이 가빠지고, 눈빛이 몽롱해졌다. 그의 어깨에 대고 있던 입술이 벌어지고, 이 끝을 세웠다.

짜릿한 쾌감의 농도가 진해질수록, 그녀의 몸은 떨렸고, 입술을 벌려, 힘껏 그의 피부를 빨아들였다. 로운은 애처롭게 흐느꼈다.

안되겠어. 이걸로는 부족해!

“아아...”

지석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쇄골을 혀로 핥았다.

“이것 봐. 당신이 또 이러니까...”

허벅지로 그녀의 다리를 벌리며, 지석은 한껏 팽창한 자신의 몸을 그녀의 안으로 천천히 진입시켰다.

“... 이렇게 되는거지... 음... 따스하고, 좋아...”

그의 목에서 만족스러운 울림이 새어나왔다. 몸 안쪽이 뿌듯하게 차는 느낌에 로운의 고개가 저절로 뒤로 젖혀졌다. 진한 쾌감이 발끝까지 퍼져가는게 느껴졌다.

“거, 거짓말, 읏, 난 그런적... 앗, 없다구요오오.”

그의 엉덩이가 위로 조금씩 솟구칠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간헐적인 신음이 터져나왔다.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그의 말이 옳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지석은 그녀의 다리 하나를 넓게 벌려 자신의 허리에 감게 했다.

“흐윽... 아, 당신 말이 맞을지도... 나 진짜 너무 밝히나 봐요.”

로운은 그의 팔 안에서 꿈틀거리며 흐느껴 울었다. 차 오르는 쾌감을 참지 못하고 나직한 비명을 토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더해줘요. 스톤...”

그의 눈빛이 확 사나워지더니, 움직임이 거세어졌다.

“이름으로 부르랬지!”

달궈진 젓꼭지를 손가락으로 꼭 잡고는 비틀어 잡아 당겼다. 로운은 헉 소리를 내며 그의 손목을 잡고 매달렸다.

“아얏,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하지만, 스톤이 더 부르기 편한데...”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항변했다. 지석씨 라는 말은 어쩐지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어감상 스톤이 훨씬 편하잖아.

둘이 같은 사람인데 뭐가 문제가 있지? 난 캔디라고 불려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야.

“지는 것 같아서 싫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볼멘 음성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불러 봐.”

그의 몸이 끝까지 쑤욱 들어왔다가, 그대로 딱 멈췄다. 더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여서 로운은 자신이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단단한 팔이 그녀를 꽉 잡고는 꼼짝도 못하게 했다. 겹쳐진 곳에서 움찔거리는 느낌이 전해지고, 백만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했다.

“아앗, 안 돼, 멈추지 말아요. 계속, 계속해줘요.”

로운은 애절하게 부르짖었다. 이대로 멈추는건 참을 수 없어. 거의 다 왔단 말이야. 그가 엉덩이를 더 힘껏 밀자, 그녀는 벼락치듯 소리를 질렀다.

“지석씨!”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등줄기로 진땀이 주르륵 흘렀다. 석상이 된 것처럼 멈춰선 채, 지석은 그녀의 예민해진 핵심만으로 손으로 교묘하게 공략하는 중이었다.

“아, 안돼, 응, 흣, 으응...”

한 손은 엉덩이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쉴새 없이 압박을 가해 온다. 그리고, 저절로 움찔거리는 통로는 괴로울만큼 커다란 것으로 가득 채워져, 어떻게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몸을 비틀어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소용 없는 짓이었다.

“아아, 하지마요. 아니, 해줘, 으읏, 움직여줘요. 제발, 응? 지석씨? 못 참아, 못 참는다구요!”

마침내, 로운은 화를 내며, 그를 때릴듯이 팔을 크게 휘저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는 양 손으로 그녀의 팔을 단단히 잡았다.

그녀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모습을 보며, 지석은 천천히 몸을 뒤로 뺐다. 아름다운 미간이 찡그려지고, 고양이 같은 눈은 더욱 가늘어졌다.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안으로 짓쳐드는 묵직한 감각에 로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엉덩이가 움찔거리고, 호흡이 바뜩해진다.

귓가로, 무심한 듯 나직하게, 하지만, 더 없이 다정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응, 날 봐, 당신을 안고 있는게 누군지 봐. 내가 다 가르쳐 줄게. 당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 그게 어떤 거든, 다 해줄테니까. 지금은 날 봐줘.”

눈을 뜨자, 지석의 얼굴이 보였다. 변함없이 차분하고 냉정해 보이는 눈빛이 그녀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로운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지석씨가 하는 말은, 너무 어려워...”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게 강지석이 아니라면,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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