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상이 아니야...”
로운은 원장실에서 나오자 마자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도저히 간호사들과 윤서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겠다.
그녀가 집에 온지 얼마 안 돼서, 윤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로운이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자마자 분노와 배신감에 찬 윤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강지석이 스톤이라는 건 언제 안 거야? 대체 언제 그렇게 발전 한 거야? 지난 번에 강지석이 온 것도 우연 아닌거지? 둘이 사귀는 거야? 언제부터? 원래 아는 사이였어? 게임에서 만난 거 아냐? 아니 그러면서 나한테는 왜 비밀로 하래? 야! 이로운 너 진짜 말 안할래!-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질문을 하다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윤서에게 그녀는 '잘 자' 라고 말한 뒤, 끊어버렸다.
계속해서 전화가 울렸지만, 받을수가 없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도 방금 전에야 알았는데...
집에 오고 나서야 로운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떠올릴 수 있었다.
강지석을 유혹했다. 그것도 병원에서...
“어떡해...”
그녀는 얼굴에 고추장을 끼얹은 것처럼 달아올랐다. 그것뿐이면 말도 안한다.
친절하게 주소까지 적어주고 집에 오라고 했다.
집에!
“으아아악! 이로운, 니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건줄이나 알아? 정말로 오면 어쩌려고 그래?”
로운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좌절에 빠져버렸다. 도무지 지석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한 번 잔 걸로, 발목 잡으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 섹스 중독자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심지어 그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자위중독자...
“음...”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질끈 물고는, 절망적으로 침대에 엎어졌다. 팡팡, 베개를 두들겨도 그녀가 한 짓이 사라질리 없었다.
그동안, 스톤에게 했던, 엄청나게 민망한 짓들도 새삼스레 떠올랐다.
지난 번에는 눈이라도 가렸지. 그래, 그렇게 가리니까 무슨 짓을 해도 덜 쪽팔렸던 거다. 그런데 이젠 가릴 것도, 감출 것도 없었다.
거기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게 진짜 '덮치기' 까지 했다. 그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도 즐기는 듯 했는데... 하긴, 그런 상황에서 마다한 남자가 어디 있어! 여자가 그렇게까지 육탄돌격을 했는데!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진짜 올까?”
로운은 시계를 쳐다보았다. 바늘은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에 걸쳐 있었다.
병원에서 윤서의 상담을 마치고, 퇴근하고, 자신의 집까지 오는 시간을 계산해도 충분히 긴 시간이다.
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하긴, 오는게 이상하지...”
그녀는 게임에서 그가 보낸 이혼 서류를 보고 있었다. 이게 그의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로운이라는 걸 알고는 싫어진 거다. 아까는 어쩔 수 없었던 것 뿐이다.
병원까지 찾아온 그녀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거기다 그런 행동까지 했으니, 자신을 정말 싸구려 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헉, 혹시 애인이 있는거 아냐? 이 게임, 윤서도 불륜커플 많다고 했었는데... 지난 번에 윤서가 뭐라고 그랬더라.”
로운은 인터넷에 강지석의 이름을 쳐보았다. 그러자 그에 대한 기사들이 주르륵 떴다. 그녀는 몰랐는데 인터넷 상에서는 심심치 않게 기사에 나오고 있었다.
가장 최근 기사가 지난 해, 그가 패널로 출연했던 한 예능프로 내용이었다.
-강지석 박사 성범죄 옹호론자인가?-
-여성단체와 네티즌 강박사 하차요구-
-강지석의 야한 훔쳐보기-
몇 개 살피지 않아도, 그가 꽤 악플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그의 반응이 나온 곳은 없었다.
결국, 그 예능방송에서는 하차를 한 것 같았고, 그 후에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와 영상을 찾아 비교 분석한 결과, 그 얘기는 그가 한 것이 아니라, MC의 질문이었다.
성범죄에 대한 토론 중에, 개그맨 중 하나가 성형과 명품을 통한 여자들의 자기 과시 욕구가 위험한 거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거기에 대해 지석은 '인간에게는 훔쳐보기에 대한 욕망이 있으니 조심하라' 라는 대답을 한 것이었다.
“하여간, 편집하고는...”
로운은 가볍게 혀를 찼다.
방송은 편집을 어떻게 했는지, 전후 사정은 쏙 뺀 탓에, 주의해서 보지 않는다면, 마치 그가 여자의 과시욕이 훔쳐보기를 유도한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그 다음 방송분에서는 그 회차 내용이 편집상 오류였고, 강지석 박사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는 사과문이 나왔음에도, 강지석을 검색하면 '성범죄 옹호론자'라는 연관 검색어가 떴다.
“진짜 네티즌들은 대단해.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 잘 아는 걸까?”
강지석에 대한 여러 가지 기사를 살피면서 그녀는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발견했다. 연관 검색어에 '게이' 와 '오리언 오빠' 라는 말도 있었다.
오리언이라는 가수는 오디션 출신으로 상당한 실력파였지만,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 되었고, 결혼 후 은퇴한 모양이었다.
기사를 하나 하나 살펴보고 있는데, 벨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 현관 쪽을 보았다.
초인종 소리가 아니라, 게임에서 친구가 접속했다는 소리였다. 스톤의 모습이 서서히 형체를 갖추는게 보였다.
“뭐야? 그, 우리 집이 아니잖아...”
저도 모르게 실망한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일, 정말로 집에 왔다면 얼굴도 마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스톤은 접속한 후에도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강지석과 상당히 닮은 아바타였다.
캔디가 아무 반등도 없자, 그는 아마 잠수한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 왔어.”
낮고 허스키한 음색, 스톤의 변환된 음성이 아닌, 강지석, 그의 목소리였다. 이렇게 들으니 확실히 알겠다.
그가 스톤이라는 것을.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사람은 날 싫어하는 걸까?
결혼하자고 말한 건, 그였지만, 그날 이후에는 늘 자신이 적극적이었다.
여자가 너무 매달리면 남자가 도망간다는데, 어쩌면 그런 건지도 몰라.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재빨리 말했다. 웃으며 말하려고 했는데도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다.
“왔어요. 아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아직도 내가 집에 오기를 바래?”
“네?”
로운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되물었다.
“아까 그 초대, 아직도 유효 한 거야?”
초대... 심장이 쿵 떨어지고, 몸이 오싹 조여들었다. 병원에서의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신경은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졌다.
“아, 그, 그러니까 그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사이, 메시지창이 떴다.
-파트너인 스톤님이 '루나틱'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
로운은 멈추고 있던 숨을 토해냈다.
'이걸 말하는 거였구나.'
루나틱은 그들이 새로 산 침대 이름이었다. 스톤은 '집' 이란 단어를 게임 내의 집으로 이해한 듯 했다.
“대답은?”
그녀는 가벼운 한숨소리와 함께 'Y'를 눌렀다. 에로틱한 키스가 시작되고, 스톤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사과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로운은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 아까는 미안했어요. 그러니까, 내가 그럴려고 한 게 아니라요. 그, 메일, 이혼서류 때매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로운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헉! 윤서 이 기집애가 참지 못하고 뛰어온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