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 녹는 점
* * *
호텔 캐슬럭의 스위트룸.
지석은 눈가를 찡그린 채, 로운을 보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그는 지옥에 다녀온 듯 했다.
당장에 박창호가 있는 룸으로 뛰어들어 로운을 빼내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는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인물이었다.
지난 번 캐슬럭에서처럼 무모하게 나서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죽어라 이로운에게서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로운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일단, 그의 고문 변호사와 재무 설계사에게 연락해 30억 짜리 수표를 끊어 오라고 시켰다.
그 사이, 주형이 박창호의 부하들이 지키고 있는 윤서에게 접촉했다. 엔비의 매니저가 주형의 친구인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로운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김진택이 오고, 얼마 안 돼서였다. 그녀가 덩치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는 걸 보며, 지석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주형에게 로운과 박창호가 어떤 거래를 했는지 들었을때는 눈알이 뒤집힐 뻔 했다. 지석은 자신에게도 그런 격렬한 감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할수만 있다면, 로운을 엎어놓고 엉덩이를 펑펑 때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로운을 빼내오지 못할 뻔 했다.
변호사가 일을 해결하는 동안, 박창호와 김진택은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윤서가 돈을 갚은 이상, 로운을 억류할 수는 없었다.
로운은 몰랐지만, 중간에 덩치들에게서 그녀를 인도받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주형의 동생들이었다. 그녀에게 안대를 씌우도록 한 것은, 물론 지석의 지시였다.
그는, 자신이 로운 앞에 어떤 식으로 나서야 할지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지... 아니면...
지석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도, 도도하게 말하는 로운을 복잡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청담동 빌딩 갖고는 안 되겠어요? 그럼 현금도 줄게요. 펀드고 주식이고 정리 되는대로 다 줄테니까. 이쯤에서 끝내죠? 듣자니, 내가 당신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인데 자존심 때문이라면 나랑 하룻밤 잤다고 말해도 좋아요. 그건 나도 부인하지 않을테니까. 그럼 되잖아요? 이로운이랑 잤다고 치자구요. 그렇게 합의보고 나 이만 보내주세요.”
이 상황에서도 어찌나 잘난 척 말하는지, 부들 부들 떨고 있는 손을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도 깜빡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저 작은 머리로 기껏 생각해 낸 게, 전 재산 넘기기란 말이지. 멍청한 여자 같으니, 여기까지 따라왔으면 이미 게임 끝이지. 누가 그 말을 들어준다고.'
그는 끝까지 강한 척 하는 로운을 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창백한 얼굴과 불안한 듯 떨리는 손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시렸다. 당장이라도 품에 안고 걱정말라고 달래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선뜻 손을 내밀수가 없었다. 대신 자신의 목을 조르듯 쓰다듬었다. 그의 눈에 족히 십오센티는 될 법한 로운의 구두가 들어왔다.
저런 구두를 신고 대체 어떻게 걸음을 옮겼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지석은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자신의 손목보다도 얇아 보이는 가녀린 발목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열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골 아픈 여자일줄 진작에 알았어야 했어.”
로운은 흠칫, 몸을 경직시켰다. 아래쪽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생각보다 젊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고, 말투였다.
“누구... 에요?”
차갑고 섬뜩한 무언가가 발목에 닿는 순간, 그녀는 놀라서 발로 그걸 차려고 했다.
“가만 있어. 발목이 부러지고 싶지 않으면.”
딱딱하고 짧은 음성이 명령하듯 방안에 울려퍼졌다. 그녀의 등줄기로 오싹한 전율이 흘렀다.
로운은 사내가 자신의 구두를 벗기는 걸 그대로 두었다. 대신, 또 한 번 날카롭게 물었다.
“누구에요? 당신, 나 알죠? 아는 사람이에요?”
“후우...”
답답한 듯 터져나오는 한숨소리, 로운은 안대 속에 있는 눈을 찡그렸다. 분명히 들었던 목소리야. 누구지? 배우인가? 아니야. 분명 높으신 분이랬는데... 목소리가 너무 젊잖아.
그녀의 머릿속에 한 남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강 지석? 최근에 들은 그 사람의 목소리와도 비슷한 듯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일 리가 없잖아. 아니 애초에 그 사람은 캐슬럭에서 날 구해줬었는데... 앞 뒤가 안 맞아.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응? 한 번 말해봐.”
“뭘...요?”
지석은 이를 갈 듯이 다시 말했다.
“다른 남자를 찾으라고 했지. 누가 빚대신 몸을 팔라고 했나?”
“헉!”
로운은 숨이 넘어갈 뻔 했다.
이 거만하고 상냥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말투, 목소리는 다르지만, 분명히 스톤의 말투였다. 그녀는 놀라서 벌떡 일어서려고 했다.
그 순간, 강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눌러 다시 침대에 앉혔다. 로운은 돌처럼 딱딱하게 몸을 굳힌 채, 놀라서 속삭였다.
“당신은 혹시? 혹시?”
로운은 말도 안 되는 가능성 하나를 떠올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 스톤이에요?”
답답한 마음에 그녀가 손을 눈가로 가져가는 순간, 경고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안대를 푸는 순간, 나는 이곳에 없을 거야.”
그녀는 분노에 차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치켜 들었다.
“설마 나 와의 하룻밤을 사겠다고 한 사람이 당신이에요?”
지석은 그녀의 오물거리는 입술을 보며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 며칠동안 수도 없이 경험했던 익숙한 감각이 솟구쳤다.
순식간에 무섭게 차오르는 흥분에 그는 얼른 어깨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웃기는군. 내가 뭐하러?”
그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이마에 핏줄이 서는 걸 느끼며,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로운은 그 사나운 음성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방금 전까지 어깨를 잡고 있던 억센 손길이 떠오르자 몸이 오싹 긴장했다.
이 사람이 정말 스톤일까?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히스테릭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지?
“그럼 당신이 어떻게 여기 있는거죠? 아니, 그보다 당신은 누구에요?”
“내가 누군지 궁금해 하는 것보다, 당신에게 이런 짓을 하려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하는게 더 먼저일텐데?”
그의 단호한 말투에 로운은 입을 다물었다.
“난, 모르겠어요.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녀는 윤상무와 정의원을 떠올렸다. 정말 그 두 사람이 자신을 이런 함정으로 몰아넣은 걸까? 진택은 높으신 분이라고 했는데, 정의원에게 그만한 힘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번 일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쩔거지? 다음에도 내가 운 좋게 당신을 보게 될거라고 기대하지는 마. 이번에는 정말이지 우연이었으니까.”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로운은 이상한 기분에 빠져 버렸다. 어째서 심장이 이렇게 두근거리는거지? 그가 스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해줘요. 당신이 누군지. 아니면 난 안대를 풀어 버릴 거에요.”
로운이 다시 안대로 손을 가져가자, 지석이 그 손을 움켜잡았다.
“진짜 막무가내로군. 캔디 리버.”
그 말을 듣는 순간, 로운은 미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정말... 당신이로군요. 스톤...”
그녀는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말했다.
“당신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요? 설마, 언제부터요? 처음부터 내가 이로운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나한테 파트너 하자고 했군요? 이 사기꾼!”
로운은 헐떡거리며 그에게 잡힌 손을 휘두르려고 했다.
“착각하지 마, 나도 당신이 이로운이라는 걸 안 건 얼마 안 돼. 미리 알았다면 절대로 당신 같은 골칫덩이 근처에도 안 갔을거야. 맹세해도 좋아.”
냉랭한 말에 로운은 손에서 스르르 힘이 빠졌다.
이 사람 처음에도 이로운 싫어하는 것 같았지. 그래서 나보고 다른 남자를 만나라고 했던 거군.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가슴 한 켠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로운은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스톤에게 했던 모든 말들이 떠오른 것이다.
그를 유혹하고, 안아달라고 조르고, 격렬하게 신음을 내지르던 그 순간이!
“엄마야, 난 몰라!”
얼굴이 뜨끈해지더니 귓가로 열이 확 올랐다. 그녀는 손을 확 빼내 얼굴을 파묻고는 무릎 위로 고개를 숙여버렸다.
맙소사, 이걸 어떻게 하면 좋아. 대체, 스톤이 날 어떤 여자라고 생각하겠어.
로운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한 채, 입 속으로 웅얼거렸다.
“속으로 얼마나 날 한심하게 생각했을지 알아요.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에요. 잊어버려요.”
지석은 슬쩍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뭘? 사실은 이로운이 섹스 아니, 자위중독자라는거?”
“꺄악!”
적나라한 말에 로운의 귀가 불을 끼얹은 것처럼 새빨개졌다. 드러난 하얀 뒷목덜미도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눈 앞이 아찔해지는 것 같아서 지석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갑자기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테이블 위에 와인이 놓여 있었지만, 그곳까지 가는 건 내키지 않았다. 이 여자에게서 멀어지고 싶지 않다.
그는 망설이는 얼굴로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그 거리에 그녀가 있었다.
“로...”
지석이 입을 여는 순간, 로운은 자신의 귀를 양손으로 막고 소리쳤다.
“말하지 마요. 아무것도 말하지 마요.”
로운은 훅훅,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이 남자 앞에서 무슨 짓을 했더라.
오랫동안 눈을 가리고 있던 탓인지 현란한 무지개빛이 아른거리는 눈 앞으로 스톤과 캔디가 얽혀 있는 장면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허니문 플레이 1번에서 7번까지. 그리고 새로 산 침대에서 갖은 교태를 부리며 그를 유혹하던 캔디의 모습... 흑, 이걸 어쩜 좋아.
그녀는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떨리는 음성을 토해냈다.
“미, 미안해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아요. 내가 웃긴 여자라고 생각했겠죠. 현실에서는 남자혐오증이라고 말한 주제에,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날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하겠죠?”
로운은 자신이 스톤에게 성폭력 경험까지 고백했었다는 기억했다. 그녀는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제 끝났어.
스톤이 조금이라도 나쁜 마음을 먹고 기자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는다면, 자신의 배우 인생이 어떻게 될런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윤서 말이 맞았어. 게임에서 절대로 그런 얘길 하는게 아니었는데. 내가 미쳤었던게 분명해.
“그렇지 않아.”
차분한 스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옆으로 살짝 기울며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그가 옆에 앉은 모양이었다.
로운은 옆 허벅지에 닿은 단단한 근육을 느끼고 몸을 긴장시켰다. 눈을 가리고 있으니, 몸의 모든 감각은 청각과 촉각으로만 집중 되었다.
“이로운, 당신은 멋진 여자야. 내게는 지나칠 정도로 과분하지.”
머리를 어루만지는 손길만큼이나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말했었지. 당신은 밖에서 남자를 만날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야. 이런 건 안 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당신 자신을 소중히 다뤄. 제발...”
제발... 깊고 풍부한 저음의 목소리, 들은 적이 있었다. 뜨거운 입술과 뜨거운 몸으로 자신을 안아주던 그 남자... 정말, 그 사람일까?
로운은 긴가 민가 의심하며 입을 열었다.
“난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지석은 엎드린 등줄기로 곧게 뻗어 있는 가느다란 척추를 보고 있었다. 손으로 그 섬세한 뼈들을 어루만지고 싶은 욕망을 애써 억눌렀다.
“알아. 그러니까 앞으로 빚보증 같은 건 절대 서지 마. 당신 부모님이 해달라고 해도 말이야. 틈을 주지 않으면, 저들도 어쩔 수 없어.”
그는 잠시 호흡을 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말대로 당신을 지켜 줄 좋은 남자를 찾아서... 결혼해.”
그 말에 로운의 등이 바짝 긴장하는게 보였다. 그녀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좋은 여자야. 단지 겁이 좀 많은 것 뿐이지.”
지석은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그대로 허공에서 주먹을 쥐었다. 입술을 깨물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로운이 상체를 일으켜 그대로 지석의 가슴에 와락 안겨들었다.
“윽?”
지석은 갑작스럽게 안겨드는 뭉클한 여체에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졌다.
스톤의 말을 듣는 동안, 로운의 머릿속은 김이 날만큼 팽팽 돌고 있었다. 그건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었다.
호기심, 그리고 또 다른 어떤 것,
몸을 떨게 하는 전율과 기대, 가슴이 아플만큼 두근거렸다. 그건 그녀가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감정이었다.
이 사내가 자신이 생각한 그 사람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이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이 사람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리라는 걸, 로운은 깨달았다.
“당신이 그 좋은 남자면 안 되는 건가요?”
로운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팔을 올려 손의 감각만으로 그의 얼굴을 잡았다. 까끌거리는 턱의 촉감, 그 위의 부드러운 입술, 뜨겁게 토해지는 숨결...
“말했을텐데... 나는 게...”
그녀가 그에게 허락한 건 거기 까지였다. 로운은 그의 입술을 손끝으로 확인하자, 양손으로 힘껏 그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심장이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이렇게 두근거리는 건, 첫 오디션을 본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흡?”
달콤한 냄새와 함께 훅 끼쳐드는 보드라운 감촉에 지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눈 앞이 캄캄해지면서 머리가 빙글 돌았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로운은 그의 입술을 힘껏 빨았다. 자신에게도 이런 욕망이 숨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몇 번이나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비볐다.
그는 망가진 로봇처럼 멍하니 있다가 마침내 양손을 올려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힘을 주어 밀어내려고 하자 로운이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싫어, 나 밀어내지 말아요. 당신도 나 싫지 않잖아요.”
지석은 어안이 벙벙했다. 로운이 왜 이러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혹시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적극적이었다.
“로운?”
그의 목을 꽉 끌어안은 채, 로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봐요. 우리. 당신이랑 나,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잘 맞는지 시험 해 봐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당신도 그랬잖아요. 여자와 결혼하는 거 시험해보고 싶어서 나랑 결혼하는 거라고.”
“그건...”
“나보고 겁이 많다고 했죠? 그거 알아요? 사실이 당신이 더 그래.”
로운은 지석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 남자를 다루는 방법은 안다. 이미 수 없이 해보지 않았는가. 그녀는 입술로 그의 볼을 더듬으며 귓가로 올라가 속삭였다.
“당신도 나 원한다고 했잖아요?”
지석은 죽어라 붙들고 있던 자제심이 툭 하고 끊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헛웃음이 터졌다.
원하냐고?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원했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게 두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할까봐 겁이 났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로운은 연약한 귓불을 지그시 깨물었다.
“당신은 날 알죠? 나는 아직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스톤이라는 것 밖에는 몰라. 그러니까 해보자구요.”
그는 불규칙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또 다시 날 갖고 노는군.”
“안고 싶다고 했잖아요. 만지고 싶다고 했잖아요. 내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그러니까 내가 이로운이 아니라, 캔디라고 생각하고 안아봐요.”
지석이 로운의 안대를 어루만졌다. 로운은 그 손을 잡았다. 크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손바닥의 오목한 곳에 입술을 대고 힘껏 빨았다.
“난 이걸 풀지 않을 거에요. 당신을 보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까 내게 당신은 스톤이에요. 다른 누구도 아닌.”
로운은 그의 손바닥과 손 끝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으로 천천히 끌어내렸다. 심장이 옷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무섭게 뛰고 있었다.
“당신이라면 난 무섭지 않아요. 할수 있을 것 같다구요. 그러니까 스톤...”
그녀는 자존심도 없이 그에게 애원하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게임에서는 이보다 더한 것도 했었으니까.
“당신이 날 안아줘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그 길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한 건 당신이니까. 당신이 벗어나게 해줘요. 제발.”
마침내 목에서 억눌린 소리가 새어나왔다.
“난... 여자를 안아본 적이 없어.”
“하지만, 날 안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 하지만, 당신을 실망시킬지도...”
로운은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술이면 좋겠지만, 그녀는 말하느라 바빴다.
“그만 말해요. 난 뭐 남자랑 그런 적 있는 줄 알아요? 십오년, 아니 십육년 전...”
그녀의 안색이 흐려지자 지석은 그녀의 손을 한손으로 잡아 옆으로 치우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그녀의 목을 잡아 자신에게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의 입술이 닿기 전, 로운은 달콤하게 속삭였다.
“스톤은 한 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
뜨거운 숨소리와 함께 입 안 가득 밀고 들어오는 뭉클한 살덩이는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그의 욕망을 대변했다. 그는 그대로 로운을 침대 위로 쓰러뜨렸다.
더 참았다간 도저히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여기서 차라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여자를 밀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격렬한 키스와 함께 두 사람은 서로의 옷을 거의 찢어발기듯이 벗겼다. 눈이 보이지 않는 로운은 손끝의 감각만으로 그의 셔츠를 더듬어 단추를 풀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지석은 그녀의 검은 원피스 지퍼를 아래로 내리고는 단숨에 그녀의 팔을 옷에서 빼냈다. 그 동안에도 그는 로운의 입술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평생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나그네처럼, 그녀의 입술을 집요하게 탐닉했다. 로운이 숨이 막혀 잠깐 입술을 떼려고 해도,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드러난 그녀의 상체를 부둥켜 안고 키스하고, 또 키스했다. 작은 혀를 잡아 채 깊숙하게 빨아들이고, 타액을 집어 삼켰다.
그 거칠고 투박한 손길에 로운은 살짝 긴장했다. 몸이 탄력 좋은 공처럼 침대 위에서 튕겨 올라갈 것만 같았다. 덜덜 떨고 있는 건 자신 뿐만이 아니었다.
흥분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손에 닿는 단단한 몸에도 전율이 스쳤다. 그도 똑같이 떨고 있었다. 로운은 저도 모르게 그의 등을 힘주어 끌어 안았다.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 들었다. 하지만, 무섭기만 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는 달랐다. 지석이 그녀를 어루만지는 손짓과 몸짓에는 서투른 갈망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좋아서 자신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조심스럽다가, 또 스스로를 제어 못하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조여들고, 배꼽 아래도 똑같은 감각이 찾아왔다. 간질거리다가 움찔, 조여들기를 반복했다.
“으음...”
지석의 입에서 끈적거리는 신음이 터졌다.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도저히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지독하게 달콤하고 황홀해서 뒷골이 얼얼할 정도였다.
그녀의 입술에 달라붙은 것만큼 집요한 것은 또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 집착하는 그의 손이었다. 꿀통에 달라붙는 벌처럼, 손 안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피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손 안에서 뭉개지는 가슴은 그대로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 끝에 구슬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젖꼭지를 지석은 손끝으로 쓰다듬고, 비틀어 꾹 눌렀다가, 다시 뾰족하게 세워놓았다.
“하아, 하아...”
브래지어 속으로 들어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손의 움직임에 로운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가 단단하게 근육이 뭉친 어깨에 손톱을 박자 지석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잘근 물었다. 아릿한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혀로 스윽 핥아올렸다.
“아...”
로운은 점점 대담하게 그를 만지기 시작했다. 셔츠를 벗은 그의 등은 탄탄하고 매끄러웠다. 손끝으로 단단한 근육이 뭉친 가슴과, 그 중앙에 작게 돋아난 돌기를 수줍게 어루만졌다.
“흣”
그의 목에서 억눌린 소리가 들리자, 로운이 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섹스를 더 두려워하는 남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점이 그녀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라면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상처 입을까봐 두려워하는 쪽은 스톤이었다. 로운은 게임에서 그를 리드했듯이,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다. 그를 흥분시키고, 애원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겨드랑이를 스치듯 지나 울퉁불퉁한 복부 쪽으로 손을 내린 로운이 그의 입속에서 속삭였다.
“만져줄까요?”
“흑!”
지석은 소름 끼칠만큼 부드러운 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진저리를 쳤다. 단내가 풀풀 날 정도로 호흡이 거칠어졌다.
끊어질 듯 곤두선 남성 때문에 다리 사이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벌써부터 흘러내린 액체로 팬티가 축축하게 젖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로운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정확하게 그의 벨트 버클을 찾아내 풀고, 바지를 벗겼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게임에서 자신이 스톤을 어떻게 만졌었는지 고스란히 떠올랐다.
그녀는 주춤 주춤, 손을 조금씩 아래로 내렸다. 까슬거리는 실 같은 것이 점점 더 많이 만져지자 긴장으로 몸 전체가 떨렸다.
아무리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리 대범하게 군다고 해도, 남자의 그곳을 만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로운은 바짝 마른 입술을 계속해서 혀로 핥으며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그녀는 의식하고 있지 못했지만, 지석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부들 부들 떨고 있는 몸을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지석은 이제 그녀의 몸 위에서 팔로 자신의 몸을 지탱한 자세였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이 머뭇거리며 움직이는 걸,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잔뜩 성이 나서 투명한 액체를 뚝뚝 흘리고 있는 그의 남성은 거의 직각으로 곤두서, 금방이라도 폭죽을 터뜨릴 기세였다.
이대로라면 그녀의 손이 스치기만 해도 그대로 사정해 버릴 것이다.
“으음...”
그의 관자놀이에서 힘줄이 툭툭 비져 나왔다. 각진 턱은 단단하게 악물려졌다. 이대로 그녀의 몸으로 들어가야 하나? 들어가는 순간, 폭발할 것이다.
섹스를 하면서 지금처럼 무력감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떤 관계에서도 그는 늘 주도권을 잡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로운을 다치게 할까봐, 실망시키게 될까봐, 선뜻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석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애절함에 몸부림을 치는 중이었다.
그 때였다. 그의 바들바들 떠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음... 어, 어디 있지...?”
좀처럼 그의 배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로운의 목소리도, 몸도 안쓰러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지석은 로운도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그녀가 게임에서 자신을 멋대로 농락했다고 해도, 이건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멈칫, 멈칫 자신의 남성을 향해 다가오는 손을, 지석이 잡아 채, 꽈악 움켜쥐었다. 그대로 로운의 손을 위로 올려서는 침대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만 됐어. 충분해...”
잔뜩, 목이 쉰 음성이 갈라져 나왔다.
“아니...”
로운은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이대로 날 두고 가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눈부시게 솟아난 가슴 위로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지석이 나지막히 속삭였다.
“이젠 내가 하게 해줘.”
작은 공처럼 탱탱하게 솟아오른 부푼 가슴을 보는 순간, 지석의 머릿 속은 텅 비어 버렸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진 한 송이 꽃처럼, 분홍빛으로 오똑 솟은 돌기에 입을 대는 순간, 그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가슴, 여자의 가슴, 그건 지석에게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그리움과도 같은 이름이었다. 한 번도 자신의 것이라 여겨본 적 없는 것이었다.
둥근 복숭아처럼 탐스러운 가슴을 앞에 두고, 그의 눈은 흥분으로 인해 붉게 충혈되었다. 이제는 어떤 것으로도 그를 말릴 수 없으리라,
그는 입 안 가득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입을 벌려, 눈 앞의 뽀얀 젖가슴을 탐욕스럽게 물었다.
“하악!”
삼키지 못한 신음소리가 로운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그가 안고 있는 가느다란 몸이 폭풍우에 휘말린 어린 나무처럼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흐으으윽... 스톤...”
로운의 등이 침대에서 번쩍 들어 올려졌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흐느꼈다. 그것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열기가 고인 곳으로 가슴이 통째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 바로 조금 전이다. 그건 그녀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가슴을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강하게 빨아대기 시작한 지석은 이내 정신없이 그녀의 가슴을 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빨아 삼켜도 계속해서 입안에 침이 고였다. 이빨로 잘근 씹었다가, 다시 혀로 간질이다가, 허겁지겁 다시 입에 머금었다.
“제발...”
로운은 흐느껴 울 듯 속삭였다. 제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녀도 알 수 없었다. 풀려 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밀어내려 잡았지만, 오히려 가슴으로 끌어당겨 안는게 고작이었다.
“괜찮아.”
흥분으로 잔뜩 쉰 음성이 뜨거운 입김과 함께 다시 그녀의 얼굴로 올라왔다.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팽팽한 긴장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는 날씬한 복부로 움직였다.
로운은 그의 손 끝이 팬티 위를 어루만지는 순간, 벼락처럼 몸을 떨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누르며 지석이 속삭였다.
“다치게 하지 않을게.”
그녀는 몸이 붕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달아오른 호흡은 뜨겁고 습한 안개가 되어, 매끄러운 피부 위를 적셔 나갔다.
그의 혀 끝이 다시 유두를 찾아 간질이듯 핥았다. 부드럽게 팬티 위를 어루만지던 손가락이 조금 강한 힘으로 갈라진 틈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흐읏, 아,”
수줍게 돋아난 작은 씨앗을 그가 건드린 순간, 로운은 짜릿한 쾌감을 참지 못하고 헉헉 대기 시작했다.
그녀가 스스로 만지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자극적인 감각이었다. 로운은 빠르게 올라가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 아아, 나, 난 무서워요.”
지석은 애처로운 로운의 목소리를 들으며, 잃어버렸던 자신감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팔 안에서 작은 새처럼 떨고 있는 여자는 두려움 때문에 흐느껴 우는 게 아니었다. 그건 자신처럼 흥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석은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고 목덜미에 천천히 입술을 묻었다.
“날 믿어.”
그녀는 무섭다고 말하는건, 경험이 없는 탓이다. 로운의 트라우마는 사춘기 소녀 때 겪은 공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미 몸은 어른이 된지 오래, 언제까지나 그 사춘기 소녀 안에 숨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임을 하며, 그녀는 억눌렀던 자신의 욕망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언젠가는 그걸 깨줄 남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지석의 눈빛이 강렬하게 타올랐다. 로운을 안고, 섹스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남자가 생긴다면, 아마 자신은 질투심 때문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의 입가가 모호한 미소로 비틀렸다. 그녀에게 여자로서의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것이 자신이면 왜 안 된단 말인가?
여자를 안은 적은 없지만,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이라면, 로운보다 그가 몇 수나 위였다. 물론, 여자를 다루는 방법 정도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었다.
“스톤?”
로운은 실크처럼 매끄러운 감촉이 몸을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가는 걸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가슴을 받치듯,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과, 배 부근에서 움직이는 뜨거운 입김이 동시에 느껴졌다.
“스톤! 하지마요!”
그녀는 그가 하려는 걸 깨닫고,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뾰족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하아아악”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그녀의 몸이 둥글게 위로 휘어졌다. 뜨끈한 숨이 축축하게 젖은 팬티 위에 닿는 순간, 로운은 펄쩍 튕기듯 몸을 움직였다.
“아아, 안 돼... 그건 안 돼요.”
그녀는 허둥지둥 그의 머리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눈 앞에 떠오른 장면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받아들이기엔 엄청난 것들이었다.
“쉬잇...”
지석은 다리 사이를 감추려는 그녀의 손을 밀쳐내고 고개를 숙였다. 안쪽 허벅지와 팬티가 이어지는 부분에 그의 입술이 닿자, 로운은 다리를 오므리려 했다.
그는 로운의 다리를 단단히 잡아 다시 바깥쪽으로 벌렸다. 살짝 거친 느낌의 뺨이 닿고, 뜨거운 숨이 다시 다가왔다.
“음...”
짙은 색으로 물든 작은 옷감 사이로 검게 비치는 아찔한 광경에 그는 숨을 들이켰다. 지석은 불가사의한 어떤 힘이 이끌리듯, 그 곳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댔다.
“아아, 제발, 안 돼. 흣, 아아”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로운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곳에 혀를 내밀어 쓸어 올리자, 로운의 엉덩이가 그의 얼굴로 더욱 밀어 올려졌다.
“흐윽, 스톤...”
애끓는 듯한 신음소리와 함께 달콤한 살내음이 코안으로 훅 끼쳐오자, 그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뜨겁고 뭉클한 혀를 움직여 그곳을 흠뻑 적신 후에, 다시 혀끝을 세워 오목한 부분을 쿡 찔렀다. 로운의 몸이 또 다시 스프링처럼 튕겨 올라갔다.
“으읏”
그는 동시에 신음을 터뜨렸다. 얼굴을 찡그리며 자신의 페니스를 움켜 쥐었다. 흥분으로 반쯤 흘려버린, 바보 같은 자식은 그래도 여전히 뻣뻣하게 자세를 유지한 채, 헐떡거리는 중이었다.
어서, 해방시켜 달라는 듯이 안달이었다. 약간 흘려버린 탓인지, 지석은 오히려 한결 느긋해졌다. 마치 사춘기 소년이 된 것 같았다.
맹렬하게 몸 안을 돌고 있던 피가 푸악 하고 뿜어져 나올 것처럼, 코 안이 얼얼해지고 있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촉촉하게 젖은 그곳이 드러나도록 팬티 한쪽을 완전히 젖혀 버렸다. 그리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예뻐...”
자신의 타액으로 촉촉하게 젖은 채, 떨리고 있는 그곳은 마치 비에 젖은 숲처럼 수줍었다. 검게 그늘진 사이로 분홍빛 속살이 언뜻 언뜻 드러났다.
지석은 홀린 사람처럼 촉촉이 젖은 곳으로 자신의 혀를 조심스레 움직였다. 달아오른 여성에 입술이 닿았다. 핑크색의 꽃잎을 가르고 움찔거리는 통로의 입구를 핥았다.
그가 붙들고 있는 하얀 허벅지가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떨렸다. 움찔, 조여드는 느낌에 머리끝이 쭈삣 곤두섰다.
그는 입술을 벌려 부드럽게 떨리는 곳을 힘껏 빨아들였다. 뜨거운 혀가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 들었다. 입술이 꽃잎을 간질이고 혀는 점점 더 그녀의 몸 안 쪽을 탐험했다.
긴장으로 뭉쳐진 다리가 힘이 빠지듯 스르르 벌어졌다. 고양이가 울 듯이 흐느끼며 로운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 더욱 가깝게 끌어당겼다.
지석은 팬티를 더욱 벌리려다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아래로 끌어내려 던져 버렸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달라붙어 혀를 밀어 올렸다. 눈 앞에 솟아오르는 붉은 핵심을 엄지 손끝으로 꾹 눌러 강하게 비비기 시작했다.
“아앗, 거긴, 안 돼, 아, 아, 악!”
몸 전체를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허리를 높게 들어올린 로운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익숙한 전율이 찾아오자 그녀는 짧은 비명을 토했다.
다리가 뻣뻣해지면서, 등줄기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몸 안이 움찔하더니, 눈 앞이 순간적으로 캄캄해졌다.
“내가 채워줄게.”
지석은 손을 뻗어 부드러운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을 다시 한 번 훔쳤다.
“다 잊게 해줄게, 당신이 두려워하던 모든 것...”
그 말에 대답하듯, 로운의 혀가 그의 입속으로 맹렬하게 들어 왔다. 그의 혀를 빨아들일 듯이 삼키며, 입 안을 온통 그녀의 맛으로 채워놓았다.
첫 전율과 함께 시작된 쾌감은 관성의 법칙처럼 더 많은 것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로운은 지석이 자신에게 그랬듯이, 그의 입술을 끊임없이 탐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혀가 자신의 입 안을 샅샅히 헤집고, 다시 입술을 강하게 빨아들였다. 깊숙하게 겹쳐진 입술 사이로 지석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흐읏...”
지석은 그녀의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이미 부드럽게 젖어서 녹아내릴 것처럼 말랑해진 곳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흐윽, 스톤,”
배를 스치는 단단한 남성이 느껴지자, 로운은 엉덩이를 비틀어 올렸다. 마침내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다리를 들어 올려 그의 허리를 감았다.
그 순간, 로운의 감각을 천천히 일깨우려던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그녀를 안으리라 생각했지만, 로운이 그의 남성을 자신의 다리 사이로 끌어들이자, 그는 그저 신음만을 터뜨렸다.
저항할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그녀에게 끌려 들었다. 처음부터 미친 듯이 찔끔거리는 그의 분신은 누가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냉큼 돌진했다.
지석은 끈끈한 뻘에 빨려 들어가 듯, 그녀의 몸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입구로 머리만 밀어 넣었는데도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부드러움, 격렬한 쾌감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는 그녀의 엉덩이에 손가락을 박았다, 뚝뚝 흘러 떨어지는 땀이 그녀의 달아오른 피부를 적셨다. 거친 숨을 터뜨리며, 그는 로운의 입술에 다시 키스했다.
긴장한 통로가 부드럽게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지석은 그녀의 다리를 단단히 옭아매며 자신의 몸을 용암의 구덩이 속으로 끝없이 밀고 들어갔다.
그가 완전히 그녀의 몸에 자신을 묻는 순간, 두 사람이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졌다.
“아아...”
“음!”
지석은 크게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그녀의 가슴을 다시 입 안으로 빨아들였다. 뭐든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부들 부들 떨고 있는 그녀의 몸을 혀로 핥고 입술로 간질이며 뒤로 몸을 뺐다가 다시 힘껏 찔러 넣었다.
로운의 몸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좁고, 빡빡했으며, 뜨거웠다. 상상도 못한 압력이 그의 페니스를 쥐어짜듯이 조이는 순간, 그는 참지 못하고 사정했다.
“.... 흐윽”
뜨거운 것이 몸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에, 로운의 몸이 진저리를 쳤다. 순간적으로 피임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날짜를 따져보니 위험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빠른 사정에 로운은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 순간, 이를 악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안 돼!”
“아?”
거짓말처럼, 몸에서 반쯤 빠져나가던 남성이 다시 부푸는 느낌이 났다. 로운은 깜짝 놀라서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제 시작이야.”
지석은 잔뜩 쉰 목소리로 말하며 그녀의 몸을 관통하며 끝까지 밀고 들어갔다. 이마에 송글 송글 맺힌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으로 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쾌감이었다. 등줄기를 따라 저릿하게 치고 올라오는 무시무시한 전류에 지석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며, 절로 아래가 힘차게 용솟음쳤다.
“으윽, 헉,”
그 자신도 믿을수가 없었다. 사정을 끝내고, 바로 다시 흥분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극렬하게 차오르는 쾌감의 크기를 참지 못하고, 짐승 같은 신음소리를 질렀다.
“흣, 좋아...”
흥분에 가득찬 신음소리가 로운의 귓가를 울렸다. 그녀는 자신도 똑같이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원래 이런건가?
몸 안쪽을 가득 채운 지석의 남성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느린 움직임에 로운은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커다란 것이 쑤욱 빠져나갔다가, 힘차게 밀고 들어올때까지 그녀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미끌거리는 곳으로 파고든 덩어리는 그녀가 몸을 움츠릴 때마다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뭉툭한 끝이 그녀의 몸 안 어딘가 닿는 느낌이었다. 빠져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마다, 그곳을 꾹꾹 찔러댔다.
“아악, 아악, 더요, 더, 더,”
로운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이런 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상상한 것 그 이상으로 몸이 짜릿한 전율에 휩싸이는 기분, 뭔가 마구 터뜨리고 싶어지는 듯 해서 로운은 그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지석의 움직임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이미 한 번 사정을 한 뒤라 그런지,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가 원하는 곳까지 밀고 들어갔다.
스스로도 믿기 힘들만큼 거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채, 그는 미친 사람처럼 허리를 움직였다. 끈적거리는 살끼리 마찰되는 소리가 방안을 울리고, 뜨거운 신음은 쾌감이 되어 두 사람을 휘감았다.
“아아, 아...”
로운은 참을 수 없는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걸 느끼고, 다시 높은 비명을 질렀다. 지석은 그녀의 입술에 깊게 키스했다. 허리를 쳐 올리자, 그녀의 몸이 위로 들썩 올라갔다.
눈 앞이 점점 아득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로운의 머리를 자신의 팔 안에 가두고 거침없이 몸을 움직였다.
“좋아, 더, 더, 소리 질러, 당신을 보여줘!”
격렬하게 그녀의 몸을 꿰뚫고 성난 파도처럼 자신을 몰아갔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자신의 어깨를 할퀴며, 정신 못 차리고 몸부림치는 게 미칠 만큼 좋았다.
“아아, 스톤, 흣, 천천히, 아니, 아, 아아,”
그녀가 소리칠 때마다 그의 움직임은 더욱 더 거세어졌다. 처음 그가 그녀의 몸 안에 채워넣은 정액이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밖으로 밀려나왔다.
그가 움직일때마다 몸 안에서 뭔가가 새어나오는 느낌에 로운은 더욱 야릇한 흥분에 휩싸였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고, 그의 허리를 부러뜨릴 것처럼 조였다.
“하악, 못 참아, 난, 더 못해,”
그녀는 울었다. 철썩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부딪혔다. 뜨거운 혀가 귀 안으로 밀고 들어와 그 소리를 생생한 감각으로 바꿔 놓았다.
로운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악착같이 그에게 매달렸다. 호흡은 거의 턱에 닿을 듯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입을 벌렸지만, 소리는 더 이상 새어나오지 않았다.
“헉, 헉,”
지석이 난폭하게 허리를 움직이고, 다시 빙글 돌리며 튕겨 올렸다. 점점 더 심하고 거칠어졌다. 로운은 이대로 몸이 부서지거나 터져버려도 좋을 것 같았다.
로운은 엄청난 쾌감과 함께 눈 앞이 하얗게 물드는 것을 보면서, 그의 몸을 안고 몸부림쳤다. 그의 어깨를 잡고 입을 벌린 채, 연거푸 소리를 질렀다.
“아, 아, 아아....”
북을 치듯이 몸 안을 다다닷, 치고 올라가던 감각이 연달아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로운은 눈부신 빛의 폭포수가 자신에게로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끼며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말았다.
그녀가 축 늘어지자 지석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끈질기게 그녀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녀의 입술과 귀와 목덜미를 빨고 핥고 물어삼켰다.
“허억!”
몇 번의 움직임 끝에 지석의 몸이 경직되었다. 억눌린 신음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 상처 입은 짐승의 단말마 같은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으으으으윽!”
로운은 아득한 어둠속에서 지석이 내지르는 환희에 찬 신음을 듣고 있었다. 마치, 갖은 고행 끝에 정상에 오른 사람처럼, 그의 절정은 지독하게도 길고, 처절할 정도로 강렬했다.
영혼과 육신이 송두리째 그녀의 몸 안으로 빨려 나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힘겹게 쌓아올린 벽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과 공포, 그리고 숨이 멎을 정도로 격렬한 쾌감이 동시에 그를 후려쳤다.
“후우우우”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악물린 잇새로 신음인지 오열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나왔다. 쓰라린 눈가가 아프도록 뜨겁게 조여들더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마침내, 그녀를 가졌다.
로운은 비명을 지르느라 갈라진 목이 아파서 몇 번이나 침을 모아 삼킨 후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거 봐요. 날 안길 잘했죠?”
지석은 눈물로 흠뻑 젖은 로운의 뺨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살 떨리는 사정의 쾌감보다, 여자를 안았다는 것보다, 이로운을 가졌다는 만족감이 그를 울게 했다는 것을, 그녀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지석은 그녀의 떨리는 입술에 키스했다. 콱 잠긴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 짜냈다.
“그래, 해보니까, 되는군.”
눈물로 얼룩진 안대에 수도 없이 입을 맞추며, 지석이 물었다.
“이거 풀어줄까?”
그의 손이 눈가를 쓰다듬자, 로운이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부끄러워서 그를 똑바로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눈에 양손을 대고 재빨리 말했다.
“누구 맘대로요? 싫어요.”
그녀의 뺨을 쓰다듬던 그의 손이 짧은 순간, 멈칫하더니 다시 부드럽게 움직였다.
“응, 당신 좋을대로.”
로운이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석의 눈빛이 아프게 가라앉았다.
손에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더 좋았을까?
자신의 손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그로 인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할지 그는 감조차 오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거짓말처럼 찾아온 찰나의 행복을 마음껏 음미하고 볼일이다. 그 후가, 설사 지옥일지라도. 지석은 다시 그녀의 입술에 탐욕스럽게 키스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