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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사방이 캄캄한 어둠이었다.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덩치들에게 끌려나와 차를 탔고, 차 안에서 눈이 가리워졌다.
그 뒤로 엘리베이터에 태워져 이곳에 왔다. 사내들이 그녀를 침대가 있는 곳까지 데려와 앉혔다. 누군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안대를 풀어서는 안 됩니다. 그 분은 자신의 정체가 노출 되는 걸 바라지 않으십니다.”
로운은 코웃음을 쳤다.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얼굴도 보이지 않으시겠다? 다행이네. 나도 어떤 상판인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부드러운 천으로 된 안대는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그녀의 얼굴에 꼭 맞춘 것 같았다. 손에 힘을 주어 벗으면 벗을 수 있을 테지만, 그녀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진택의 말대로, 단 한 번이다. 이까짓 몸뚱이 눈 한 번 질끈 감고 줘버리면, 끝이었다.
어차피 순결한 몸도 아니었다. 정상적인 섹스도 할 수 없었다. 게임에서 자위나 하는 게 다인 주제에, 순결이고 자존심이고 찾을 것도 없었다.
“30억? 진짜 비싸네. 이로운. 그 정도 몸값이면 자존심 세울 만큼 세운거야. 안 그래?”
이를 갈고 말해보지만,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막을수는 없다. 그나마, 윤서에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번 일이 윤서를 노린게 아니라, 자신을 겨냥한 일이었다는 걸, 진택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모를 뻔 했다.
그때, 알았다. 이 일은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그 분인지, 높으신 분인지 하는 사람과 담판을 져야만 결론이 난다는 것을. 그 부하들이랑 아무리 입씨름을 해봐야 소용 없었다.
“미안해. 오윤서. 두 번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할게.”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로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절로 팔에 소름이 돋고 목이 바짝 바짝 말랐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게 느껴졌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녀는 또 한 번 침을 삼키고, 재빨리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말 하는 건 우습지만, 할 말이 있어요.”
바로 앞에, 누군가 멈추어 선 게 느껴졌다. 무릎에 서늘한 옷감이 살짝 스치자, 로운은 움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시간이 없다. 그녀는 대사를 읊조리듯 재빠르게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다.
“청담동에 있는 내 빌딩! 그거 처분할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팔리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빨리 매각할게요. 당신이 원하는게 그 빌딩이라면, 줄게요. 각서라도 쓰라면 쓸게요. 대신, 당신도 두 번 다시는 나와 내 친구들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세요.”
로운이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한 건 바로 이거였다. 양아치 같은 놈들이랑 씨름 하느니, 보스랑 한 판 뜨는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였다. 다행히 그 보스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여준다면, 빌딩은 날아가겠지만, 자신을 지킬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