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46)

* * *

'날 원하죠?'

지석은 몸을 뒤척이며 신음했다.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깰 수가 없었다. 그는 어둠 속의 수렁으로 점점 더 깊게 빠져 들고 있었다.

로운이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조롱 섞인 미소를 띠고 천천히 팔을 뻗었다. 고양이처럼 반짝거리는 눈이 그를 보고 있었다.

분홍빛 입술은 그를 유혹하듯 살짝 벌어졌고, 작은 혀끝이 나와 입술을 핥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손이 그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어깨로 올라왔다. 그녀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입술을 대고 살짝 깨물었다.

그는 몸을 비틀고 짐승처럼 신음을 내질렀다. 그녀를 떼어내려 했지만, 어느 순간, 벌거벗은 로운의 알몸이 그의 사지를 칭칭 감아왔다.

'날 갖고 싶죠?'

로운이 다 안다는 듯이 방긋 웃었다. 서늘하고 매끄러운 팔 다리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녀는 웃으며 그의 입술에 키스하고, 서서히 입술을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사라져!”

그는 목에서 쥐어 짜낼 것처럼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입술이 배로 내려가고 그는 헐떡거리며 항복의 말을 중얼거렸다.

지석은 그녀의 머리를 붙잡아 자신의 다리 사이로 끌어내렸다. 붉은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지고 검붉게 솟구친 거대한 기둥을 조금씩 삼키며 점점 더 깊숙이 내려가는 순간,

“허억!”

그는 억눌린 신음성을 토해내며 몸서리를 쳤다. 눈을 뜨자 온 몸이 흠뻑 땀으로 젖어 있었다.

베개가 축축할 정도로 젖어서 목덜미가 섬뜩했다. 아래쪽은 끊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제기랄!”

그는 거친 욕설과 함께 베개를 들어 벽으로 힘껏 집어 던졌다. 뒷목이 저릿할 정도로 아릿하게 조여드는 익숙한 자극보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남성이 더욱 더 그를 미치게 했다.

당장이라도 터뜨리고 싶었다. 여자를 안고 싶었다. 좁고 뜨거운 통로를 쑤시고, 박고, 미칠 정도로 몰아가고 싶었다.

이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는 쿵쿵 뛰는 고동소리를 무시하며 호흡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바보같은 자식... 어쩌자는 건데?”

지석은 오래 전에 가던 게이 클럽을 떠올렸다. 적당한 남자를 물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끔찍한 광경이 떠오르며 울컥, 욕지기가 치밀었다.

미친 척 하고 여자를 안는 방법도 있었다. 남자를 찾는 것보다도 쉬우리라. 그는 낮에 병원에 다녀간 유라희를 떠올렸다.

고회장의 소개로 그의 환자가 된 여자였다. 강남의 유명한 클럽 마담이라고 했던가. 그를 유혹하는 눈치였다. 한 번 들르라며, 명함을 주고 갔다.

유라희 정도면 나쁘지 않다. 연예인 뺨칠 정도로 예쁜데다, 감출 수 없는 색기까지, 유명 인사들을 제 치마폭 안에서 쥐락 펴락 한단다.

그녀라면, 자신의 갈망을 효과적으로 풀어줄 것이다. 하지만, 유라희와 사랑을 나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싸늘해졌다.

그건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여자가 아니었다. 다른 여자는 필요 없었다.

이로운... 그녀를 원했다.

그는 빈 랜드에 멍하니 서 있는 스톤을 보며 어금니가 부서져라 악물었다. 스톤은 아직 접속하지 않은 캔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캔디는 그를 농락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그리고 자신은 그걸 거부할 수가 없었다.

“못된 여자 같으니!”

지석은 시트를 젖히고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찬물을 뒤집어쓰며 이를 갈았다.

몸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을 잠재울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그녀 생각만 하면 폭주하는 몸 때문에 낮에도 괴로울 정도였다.

그가 욕실 밖으로 걸어 나올 때, 친구가 접속했다는 알림 소리가 떴다. 반사적으로 그쪽을 보자, 캔디의 모습이 보였다.

찬물 샤워로 반쯤 가라앉았던 페니스가 스프링이 튕기듯 일어섰다. 지석을 이를 갈며 거칠게 옷을 집어 들었다.

더 이상 그녀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만간 미쳐 버리고 말 것이다.

“스톤?”

하지만, 맑은 목소리가 그를 부르는 순간, 지석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스톤, 거기 있는 거죠?”

로운은 느즈막히 깬 참이었다. 비몽사몽이던 눈빛에 차츰 익숙한 스톤의 모습이 들어왔다.

뭘 하는지 몰라도 일주일에 세 번은 낮에 일이 있다고 했다. 어제 그녀와 밤을 샜으니, 분명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은 잘 하고 온 거에요? 피곤해서 졸다 온 거 아닌가 몰라”

그녀는 쿠션을 끌어안고는 배시시 웃었다. 이 게임이 뭐라고, 스톤이 없으면 허전하고, 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응? 없어요? 세워놓고 간 거에요?”

그녀는 입을 삐죽거렸다. 스톤의 몸을 괜히 앞뒤로 툭툭 치고 다녔다.

“정말 없어요?”

“있어...”

“근데 왜 대답을 안 해요?”

“... 씻었어.”

그 말에 로운은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녀도 이젠 알고 있었다. 자신이 스톤을 유혹할 때 그 역시 흥분한다는 것을,

처음에는 우쭐했고, 두 번째는 아찔했으며, 세 번째부터는 그녀도 어쩔 도리가 없이 빠져들었다. 로운은 막 잠에서 깨어나 부들거리는 몸을 양털 이불로 끌어당겨 덮었다.

“나 안아줘요.”

스톤이 그녀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다는 걸, 안 순간부터 로운은 뻔뻔해졌다. 비록 게임에서였지만, 그녀는 달콤한 권력을 누리는 중이었다.

“그건 부탁인가? 명령인가?”

딱딱한 스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한 번에 넘어오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거절하는 법도 없었다.

“둘 다에요.”

로운은 그가 아무리 무뚝뚝한 척 한다 해도, 결국엔 자신의 말에 따르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싫으면 그냥 가도 돼요. 하지만...”

그녀는 이불을 들어 안쪽을 보았다. 실크파자마 바지의 허리 부분에 손가락을 걸고 천천히 아래로 잡아 당겼다.

잠깐, 생각하다가 무릎에 걸린 파자마를 얼른 끝까지 벗어버렸다. 매끄러운 종아리와 허벅지끼리 서로 닿는 느낌이 좋았다. 그녀는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지금 막 벗었어요.”

스톤이 숨을 훅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 이 악마.”

그녀는 가늘게 웃었다.

“가도 된다니까요. 근데 내가 지금 무슨 팬티를 입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캔디가 입고 있던 겉옷을 모두 벗고는 양팔을 활짝 벌렸다. 검은색 망사드레스 속에 끈 팬티와 가터벨트로 이루어진 야한 속옷이 드러났다.

“짜잔~ 오늘 쇼핑했지요. '쥬엘라' 라는 새 란제리 가게가 생겼더라구요.”

지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흥분하고 있는 자신의 몸을 향해, 속으로 저주의 욕설을 퍼부었다.

이로운이 저 속옷을 입고 자신을 유혹 하는 모습이 저절로 연상되었다. 점점 캔디와 로운을 구분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당신은 날 놀리고 있어. 내가 굴복하는 걸 보고 즐기고 있겠지?”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스톤의 목소리가 낮아지는 걸 들으며 로운은 몸의 떨림이 커져가는 걸 느꼈다.

“같이 즐기는 거죠. 당신은 여자를 원하고, 난 남자를 원하니까.”

지석은 남자를 원한다는 로운의 말에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꼈다.

“그럼 나 말고 다른 남자를 찾아.”

“내가요? 왜요? 난 당신과 결혼했는걸요.”

“당신이 이렇게 섹스 중독자인줄 알았으면 안했을 거야.”

빈정거리는 말투에 로운은 무안한 듯 웃었다.

“어머나, 결혼에는 섹스도 포함 된다고 말한 게 어디의 누구였더라.”

“그건... 내 실수였어.”

지석은 침대에 주저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몇 번 문질렀다. 그는 비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을 캔디 리버로 만드는 게 아니었어.”

정말이지 실수였다. 그녀가 이로운인줄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런 제의는 하지 않았으리라. 주변에도 얼씬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오년간 게임과 현실을 혼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난 내가 캔디 리버인게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스톤이 좋아요. 자, 어서요. 당신도 캔디를 좋아하잖아요.”

지석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들었다. 모니터에서 캔디가 속옷 바람으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요즘에 캔디가 심취해 있는 댄스 애니메이션이었다. 이로운이 봉춤을 추는 장면이 떠오르자 그는 이번에도 자신이 졌다는 걸 알았다.

“당신을 라스베가스에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

지석은 투덜거렸지만, 스톤은 어느새 캔디에게로 다가갔다. 스톤과 캔디가 뜨겁게 키스하기 시작하자 그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난 재밌었는걸요. 정말, 라스베가스랑 똑같았어요.”

로운은 어제 스톤과 함께 라스베가스에 가서 클럽과 도박장을 구경한 걸 떠올렸다.

그 곳은 미국의 한 디벨로퍼(Developer) 회사에서 개발한 곳으로 실제 라스베가스 거리를 그대로 재현했다.

몇 년 전, 윤서와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어서 더욱 신기했다.

“똑같은지 어떻게 알지? 실제로 라스베가스에 가본 적 있어?”

날카로운 스톤의 질문에 로운은 뜨끔해서 얼버무렸다.

“사, 사진으로 봤어요. 도박장은 어디나 다 비슷비슷하니까.”

“게임에서라도 도박장은 가지 않는게 좋아. 어제 봤겠지만, 그 기계들은 모두 실제와 똑같은 원리로 작동하지. 달러나 원화 대신 토피아 머니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다를 뿐이야. 토피아 머니는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고, 한도도 없어. 아차 하는 날엔 신용불량자가 되지.”

로운은 이미 스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스톤이 캔디를 번쩍 안아 침대에 눕히는 걸 보며 속삭였다.

“당신은 날 섹시한 여자로 만들어요.”

네 기둥이 있는 이 침대는 그들이 어제 라스베가스의 한 가구샵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카마수트라를 완벽 재현했다는 개발자의 문구가 붙어 있었다.

로운은 스톤이 캔디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입술을 만지는 걸 보고 있었다. 캔디는 취한 듯 반쯤 눈을 감은 채, 그 손길을 즐기고 있었다.

“당신은 날 고문하고 있어...”

스톤의 거친 숨소리, 아니 이건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남자의 것이다.

로운은 위가 바짝 조여드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축축한 혀가 서로의 입속으로 얽혀드는 키스 장면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입 속으로 손가락 하나를 넣었다가 빼냈다.

“이상하죠? 남자가 만진다고 생각하면 역겹기만 한데, 당신이 만진다고 생각하면... 난 흥분돼요.”

젖은 손가락에 와 닿는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가슴으로 내렸다. 피부의 감촉이 달라지는 끝 부분을 가만히 어루만져 보았다.

돌출된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렸다가 꼭 누르기며 하면서 로운은 점점 자위에 빠져 들었다. 그녀의 손이 자신의 팬티 안으로 들어가 은밀한 곳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스톤이 그녀의 레이스 팬티를 잡아 아래로 끌어내렸다. 하얀 허벅지를 잡고 있던 그의 손이 안 쪽으로 움직였다.

“스톤...”

그녀는 열에 들뜬 사람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지난번처럼 그녀를 원한다고, 안고 싶다고, 거칠게 말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후로 스톤은, 두 번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로운은 아쉬운 마음에 중얼거렸다.

“당신은 스타킹을 벗기고 내 무릎에 키스하는 중이에요. 종아리와 또 그 안쪽과... 더 깊은 곳... 점점 위로 입술이 올라오는 게 느껴져요.”

그녀가 이렇게 섹스를 묘사할 때마다, 스톤은 놀랍도록 침묵을 고수했다. 로운은 안타까움이 점점 심해지는 걸 느끼며 침을 모아 삼켰다.

호흡이 가빠지고 그녀의 손이 더욱 깊숙한 곳으로 움직였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그의 머리가 닿아서 흔들리는 그 곳, 뾰족한 새의 부리처럼 돋아난 곳을 살짝 튕기고, 손끝으로 비비고 문질렀다.

“하아... 스톤, 나, 나 갈 거 같아요. 아아...”

로운의 손길이 거세지고, 헐떡임이 점점 커져갔다. 날카롭고 예리한 전율이 반짝, 그녀를 떨게 하고는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아뜩한 쾌감이 지나가자 로운은 한숨을 토해내며, 몸을 이완시켰다. 아쉬움과 허탈함, 또 해버렸다는 자괴감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보았다.

스톤과 캔디는 이제야 본격적인 플레이에 돌입하고 있었다. 매끄러운 구릿빛 등을 드러내며, 스톤의 몸이 저돌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기운이 빠져버린 로운은 침대 위에서 축 늘어진 채, 모니터속의 그 광경을 무심히 보고 있기만 했다. 거칠어진 호흡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당신은... 이런 게 싫어요? 좋아했잖아요.”

저 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로운은 심각한 자기 비하에 빠져 버렸다. 구겨진 파자마 바지를 찾아 떨리는 다리를 집어넣었다.

한때의 쾌감이 지나가자 그녀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일을 쉬고 있을 때는 종종 우울함에 사로잡히지만, 지금은 좀 더 심했다.

“거기 없어요? 간 거에요?”

스톤이 말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녀의 감정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듯 했다. 그가 가버렸다고 생각하자 무기력감과 우울함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그는 내게 질렸을지도 몰라.

로운은 시트 속에서 아기처럼 몸을 움크렸다.

'이거야 말로 수치스러운 짓이지. 포르노를 보고 흥분하는 남자랑 뭐가 달라.'

“벌써 나한테 질린 거에요?”

자신 없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톤의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돼! 제발 내 말을 들어. 방안에서 틀어박혀 있지 말고, 나가!”

로운은 그가 아직 저쪽에서 있다는 걸 알고는 기뻤다.

“왜 소리를 질러요. 난 요새 쉬는 중이에요. 내가 평소에 얼마나 바쁜 줄 알면 그런 소리 못할 걸요. 그리고 난... 쉴 때는 밖에 안 나가요. 무섭거든요.”

지석은 정말로 화가 났다.

그런 여자가 연기는 어떻게 하냐고 소리칠 뻔 했다. 이로운이 이렇게 폐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걸, 대화해보기 전에는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밖에서 정상적인 남자들을 만나.”

“다른 남자보다 당신이 날 만지는 게 좋다구요. 당신과 하는 섹스가 좋아요.”

그는 자기 스스로에게 하듯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건 자위지 섹스가 아니야. 당신도 알고 있잖아. 당신의 몸을 안고 어루만지고 기쁨을 주는 건 내가 아니야. 바로 당신 자신이지. 그게 나라고 착각하지 마!”

신랄한 스톤의 말에 로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당신은 진짜 남자를 만나야 돼. 게임 상대가 아니라.”

그녀는 계속되는 스톤의 힐난에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난...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더 이상 어린애처럼 굴지 마. 당신은 운이 나빴을 뿐이야. 그건 주사위 놀이 같은 거지. 세상에는 나쁜 놈도 있고, 좋은 놈도 있어. 이번에 나쁜 쪽을 골랐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어. 그걸 경험으로 삼아 다음에는 좋은 걸 고르면 돼.”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사람이 주사위에요?”

“해 봐.”

“계속 나쁜 쪽만 걸리면요?”

“그건 그냥 던져 버려. 약간 손해는 보겠지만, 그것뿐이야. 거기에 당신의 전부를 걸지 마. 그것만 잊지 않으면 돼.”

로운은 어깨가 섬뜩해지는 것 같아서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렸다. 스톤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난 그러고 싶지 않아요. 여기 있고 싶다구요. 내가... 싫어진 거에요?”

“그냥 적당한 남자를 만나! 그리고 나한테 한 것처럼 하라고! 어떤 남자든지 기꺼이 당신 발밑에 엎드릴 테니까, 나처럼!”

지석은 난폭하게 소리쳤다. 그녀가 더는 자신을 흔들지 못하게 하겠다. 그는 냉랭하게 말했다.

“난 더는 당신 놀이에 말려들지 않을거야. 원한다면 스톤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려 줄테니,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든지 맘대로 해!”

로운은 그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려주겠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그걸 왜 나한테 알려줘요? 당신 개인 정보잖아요?”

그는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여기 오지 않을거야. 너무 오래 이 곳에 있었어. 그러다 당신처럼 못된 여자를 만났지.”

로운은 놀라서 숨을 들이마셨다. 스톤이 게임을 접는다고? 안 돼. 난 혼자 있는 건 싫다고.

“제발, 그러지 마요. 알았어요. 이젠 안 할게요. 당신이 싫어한다면, 이런 건 이제 안 해요. 그러면 되잖아요.”

그녀는 서둘러 플레이를 멈추고, 옷을 챙겨 입었다. 캔디 혼자 부산하게 움직이고, 스톤은 침대에 벌렁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잘 빠진 몸 한 가운데 우람하게 솟구친 페니스가 보이자, 로운은 앵 토라져서 말했다.

“당신도 이제 옷을 좀 입는 게 어때요? 언제까지 그렇게 벗고 있을 거에요? 그거 풍기문란이라구요.”

어이없다는 듯, 스톤이 혀를 찼다.

“정말 미치겠군.”

로운은 스톤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른 다시 말했다.

“우리 주말에 패션쇼 보러 갈래요? 당신이 어제 날 라스베가스로 데려다 줬잖아요. 나도 당신이랑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스톤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패션쇼?”

“쥬엘라. 라고 내가 속옷 산 가게에서 패션쇼 초대장이 왔어요. 굉장히 큰 샵이에요. 거기 오너 말이 곧 리얼에서도 런칭할 생각이라더군요. 실제 속옷 디자인을 하고 있대요. 어쩌면 현실에서도 볼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가 봐요. 우리.”

즐거운 듯한 로운의 말 속에서 스톤은 익숙한 단어를 포착했다.

“쥬엘라?”

지석은 재빠르게 상호를 검색했다. 오너명에 랜드 매니저인 쥬엘의 이름이 있었다. 그는 메시지창에 걸려 있던 락을 풀었다.

그동안 로운을 제외한 모든 메시지에 락을 걸어놓고 있었다. 잠금이 풀리자마자 메시지창으로 빠르게 스크롤이 올라갔다.

새 사업을 위해 랜드 매니저를 그만 두겠다는 것과, 수십 개의 초청장이 들어 와 있었다.

“같이 가줄거죠?”

로운이 애원하듯 다시 물었다.

“가고 싶어?”

“네, 꼭이요!”

스톤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내키지 않는다. 그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질문을 하려 할 것이다.

“당신 친구랑 가는 건 어때? 투나인인가 하는 여자 말이야.”

스톤의 말에 로운은 얼굴을 찡그렸다.

“벌써 며칠째 연락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녀는 힐끗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정말로 윤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장이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오늘은 그녀의 집에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다.

“기집애. 어디 아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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