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46)

* * *

지석은 뚝뚝 물을 흘리며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방 중앙에서 우뚝 서서 꺼진 컴퓨터를 노려보다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맨 끝에서 원하는 이름을 발견하고는 있는 대로 얼굴을 구겼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꾀꼬리처럼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옆에 있지?”

“아라 아빠요?”

“바꿔 봐.”

그의 누이동생인 리언은 여전히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고, 남편을 바꿔주었다. 이내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야? 꼭두새벽부터.”

지석에게 형님이라는 호칭은 죽어도 안 붙이는 누이동생의 남편, 최지훈이었다.

“좀 알아볼게 있어서.”

“뭔데?”

얼렁뚱땅 서로 반말을 튼 지훈과는 이젠 가족 모임이랍시고 일 년에 한 두 번 보는 사이가 됐다.

“그 회사에 이로운도 속해 있지?”

“이로운은 왜? 이젠 엔터 주식도 사시게? 아님, 본업 때려 치고 기획사 차리려고? 좋은 정보 있으면 가족끼리 공유해야지.”

지훈이 의심스러운 듯이 캐물었다. 지석은 책상위에 던져 둔 이어폰을 위로 휙 던졌다가 받으며 픽, 웃었다.

“별 건 아니고, 궁금한 게 좀 있어서.”

* * *

“김대표가 여기까지 웬일이야?”

로운은 호텔 '캐슬럭'의 휘트니스 클럽으로 들어서다 입구에서 멈춰 섰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얼굴이 왜 이렇게 까칠해? 기자들한테 찍히면 어쩌려고?”

소속사 대표인 진택은 로운을 보자마자 눈썹을 모았다.

“잠을 좀 설쳤더니 피곤해.”

그녀는 서늘하게 말하며, 진택을 지나쳤다. 로운의 등 뒤에 있던 진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저 그런, 얼굴만 예쁜 배우였던 로운을 일약 톱스타로 만들어 준 진택이었다. 하지만, 지난 일년 간, 두 사람 사이는 별로 좋지 못했다.

“그럼 안 되지.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배우는 쉬는 동안 더 빡세게 관리해야...”

로운은 건조하게 말했다.

“아니까 1절만 해.”

런닝 머신에 올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오후 늦게 일어난 로운은 매니저의 연락을 받고 나오는 중이었다.

밤을 샌 탓에 온 몸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보통 때였다면, 땀 빼는 헬스보다야 에스테틱과 피부과에 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매니저의 당부도 있었고, 그녀도 몸을 좀 혹사시키고 싶었다. 지난밤에는 이로운 답지 않은 짓을 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어린애도 아니고, 게임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고, 밤 을 새워 대화를 하다니, 잠에서 깨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스톤에게 홀려 해서는 안 될 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물론, 스톤은 자신이 누군지 절대로 알지 못하겠지만, 그건 매우 위험한 대화였다.

그런 식으로 무장해제 되다간, 언젠가는 그게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오는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이미 아는 나이였다.

로운은 깨자마자 두 번 다시는 그 게임에 접속하지도, 스톤을 만나지도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윤서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에 유명 만화의 일러스트 같은 스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캔디가 키스하는 모습과 침대에 얽혀 있는 모습... 야릇한 신음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담담한 목소리... 지루하지 않았던 대화들

로운은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무심코 런닝 머신의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 다 들은거지?”

옆에서 들려온 말에 로운은 흠칫 했다. 이런, 스톤을 생각하다가 진택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게 무슨 프로답지 않은 태도인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진택은 그녀와 5년 이상 함께 일을 해 온 사이였고,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준 장본인이었다.

“미안, 못 들었어. 다시 말해 줘.”

그녀의 말에 진택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가 풀어졌다.

“우리 여왕님께서 정말 피곤하신 모양이네. 일단 좀 내려와. 뛰면서 얘기에 집중하기 힘들잖아.”

진택은 형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런닝 머신에서 내려오는 로운에게 수건을 건넸다.

“무슨 얘긴데? 매니저가 헬스장 가라고 성화더니 김 대표가 시킨 거구나?”

로운의 싸늘한 어투에 진택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말했다.

“나쁜 소식 하나, 좋은 소식 하나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진택이 저런 식으로 말 할 땐, 좋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진택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쁜 소식.”

“유일건설 CF 재계약 날아갔어.”

그건 나쁜 소식도 아니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몸을 쭉 펴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쫌생이 같은 자식, 그래서 그거 따지러 온 거야?”

“괜찮아. 어차피 계약 기간은 끝났으니까. 다른 거 하면 돼. 그게 좋은 소식이야.”

로운이 올려다보자 진택이 뱀처럼 가느다란 눈을 더욱 실처럼 만들며, 씨익 웃었다.

“운동 끝나면 외출 준비 좀 해. 나랑 갈 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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