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46)

* * *

로운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으아아, 저게 뭐야?”

윤서의 꾀임에 넘어간 게 화근이었다. 예전에 그녀와 함께 만든 계정이 아직 살아 있었다. <캔디>라는 촌스러운 이름은 윤서가 지어준 것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라고, 그게 네 운명이니 어쩌겠냐고.

로운은 자신에게 딱 맞는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뭐야?-

채팅창이 깜빡거리더니 윤서의 메시지가 떴다.

“나, 지금 니가 알려준 그 부동산 업자 땅으로 텔레포트 했는데...”

로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에서 3D로 펼쳐지고 있는 장면은 도저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적나라한 섹스 장면이었다.

-근데 뭐? '스톤랜드' 인기 많아서 대기해야 할걸?-

“야! 근데... 여기... 어떤 사람 둘이 폭풍 섹스중이다.”

로운의 손이 바빠졌다.

-진짜야? 크크크 완전 급했네. 보통은 3000m 이상 스카이에 집 따로 짓고, 아무도 접근 못하게 시큐리티 설치하고 하는데, 으하하, 너 좋은 구경 했네.-

“어, 어떻게 해?”

-뭘 어떻게 해? 몰라서 그런건데 그냥 TP(텔레포트)로 이동해. 난 애쉬랑 쇼핑 중이야. 이따 부를게.-

애쉬는 <피안토피아-라이프>에서 윤서와 결혼했다는 가상 남편이었다.

윤서와의 메시지 창이 꺼지고 로운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왜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매끄러운 여자의 몸에 얽힌 남자의 등 근육이 꿈틀대며 요동치는 게 마치 실제 사람처럼 보였다.

“와아 이 아바타들은 완전 몸 짱이네. 온라인이니까 그렇지 현실에서는 이 정도 몸 만들려면 장난 아니겠다.”

로운은 괜히 멋쩍은 마음이 들어 혼잣말을 했다.

지도에서 스톤랜드라는 곳을 검색해서 무작정 텔레포트 했는데 이곳으로 떨어졌다.

마치 유럽의 성처럼 보이는 건물과 아름다운 숲이 펼쳐진 곳이었다. 건물의 사방에는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어서 안이 거울처럼 들여다보였다.

뭐에 홀린 듯 로운은 창문가로 다가갔다. 넓은 베란다 한쪽에는 아름다운 식물들과 화려한 쇼파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에는 원형의 침대가 놓여 있었고, 자신의 본 두 남녀 아바타가 침대 위에서 요란한 섹스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와, 정말 실제랑 똑같아.”

누가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여자의 몸 위에서 율동하던 남자가 반쯤 몸을 일으켰다.

가슴을 주무르던 남자의 손이 날씬한 여자의 배로 내려갔다가 다시 서서히 아래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남자의 성기가 보이자 로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살짝 떴다.

몸의 체온이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호흡이 가빠오고 다리 사이가 간질거렸다.

욱신거리는 아래쪽의 열기를 느끼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저절로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미쳤나봐...”

로운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허벅지를 잡고는 바깥으로 벌렸다. 검은 머리가 미끄러지듯 내려가더니 무릎 안쪽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허억!”

로운은 움찔해서 저도 모르게 다리를 꼬았다. 떨리는 손을 다리 사이에 갖다 대 보았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흥분해서 아래가 흠뻑 젖은 게 느껴졌다.

“진짜, 미쳤나봐...”

그녀는 또 한 번, 스스로를 책망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 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로운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다리 사이, 살집이 두툼한 곳을 꼭 움켜잡았다.

백옥 같은 허벅지 위를 움직이던 검은 머리가 여자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언뜻 언뜻 드러나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음란했다. 남자의 혀가 여자의 클리토리스를 애무하는 게 마치 실제의 정사 장면처럼 보였다.

“으음...”

갑자기 아래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에 놀란 로운이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어느 사이엔가 자신이 손가락으로 예민한 핵심을 문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짓뭉개지는 살점에서 시작된 전율이 그녀를 지배해 나가기 시작했다. 책상 아래로 다리가 튕기듯 뻗쳐지고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아랫배가 짜르르 뭉치며 계속해서 조여들었다. 숨이 가빠지면서 머리가 어질 거렸다.

하아, 미치겠어. 더는 못 참겠어.

금방이라도 날카롭게 온 몸으로 퍼질듯한 쾌감에 헐떡이던 로운은 자신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아, 읏, 아아...”

몸의 중심에서 시작된 예리한 전율이 짜릿하게 퍼져나갔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작은 별들이 무수히 반짝거렸다.

“하아아...”

아찔한 쾌감이 지나간 후, 로운은 지친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로운은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떨리는 손끝을 빼내며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포르노나 다름없는 남의 정사장면을 보면서 자위를 하다니... 니가 정말 미쳤구나. 이로운.

그녀는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혀를 찼다. 하지만 야릇한 쾌감이 있었다.

무성욕자인줄 알았던 자신에게 이런 욕망이 숨어 있을 줄은 그녀도 몰랐던 것이다.

그 때였다.

한참 섹스에 몰두하고 있던 남녀의 자세가 확 바뀌더니, 남자의 시선이 곧장 창밖을 향했다.

“헉!”

눈부실 정도로 잘 빠진 몸은 여자 위에서 거침없이 피스톤처럼 움직이고 있었지만, 얼굴만은 그녀를 보고 있는 요상한 광경이었다.

로운은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부웅 위로 날아올랐다. 더 이상 아래가 안 보일때까지 상승했다.

고도가 300m에 이르자 아래쪽에서 건물이 사라지고 푸른 파다만 펼쳐졌다. 그녀의 랜드 거리 설정이 300m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로운, 너 어디야?-

윤서의 메시지 창이 켜졌다.

“아, 나.... 구, 구경중.”

-너 설마 아직도 섹스 구경하고 있는거 아니지? 내가 아까 미처 말 못했는데 그거 주인한테 걸리면 신고 당한다.-

“정말이야?”

그녀는 뜨끔해서 말했다.

-뭐, 드문 일이긴 한데, 여기도 법이라는 게 있거든. 일부러 무단 침입하거나 섹스 장면만 보러 다니는 질 나쁜 유저들도 있어서. 현장에서 신고하면 일정기간 계정 정지당하니까 조심해.-

헉! 큰일 날 뻔 했다.

로운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근데, 그 남자 나 봤는데 왜 신고 안 한 거지?

윤서의 메시지 창 옆에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스톤 랜드입니다. 입주 신청이 완료 되었습니다.-

메시지 창에 랜드 마크 좌표가 링크되었다.

-신청하신 4구역 임대이며 일주일에 900토피아, 첫 한 달은 선불입니다.-

로운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윤서야. 스톤 랜드 4구역 임대 됐다는데?”

-우와, 너 운 짱 좋다. 마침 빈 토지가 있었나보네. 거기 임대하기 완전 어려운 데야. 나도 대기 타다 짜증나서 그냥 외국 랜드 임대했잖아.-

“그래?”

-일단, 땅 둘러보고 있어. 집은 어떻게 지을 건지, 정원이나 조경 같은 것도 어떻게 꾸밀 건지 구상하고. 신난다. 당분간은 너 가르치느라고 심심할 틈 없겠어. 당분간 드라마나 영화 들어가는 거 없지?-

“3월에 Htv랑 들어가는 거 하나 있잖아. 20개 짜리.”

-아, 윤정희 걔가 대본 쓴 거? 막장 삘 확 온다. 정신과 의사역이랬지?-

“응.”

-윤정희, 대본 완전 날림이다. 너 발연기라고 덤태기 안 쓰려거든 미리 공부 좀 해 놔야 할 걸. 강박한테 자문 구해 봐. 나도 작년에 '돌의 사랑' 쓸 때, 도움 많이 받았어.-

“강박?”

“내가 전에 말했잖아. 강지석씨.”

로운은 메시지 창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를 보고 있었다.

-스톤랜드입니다. 답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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