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연화는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기대어 있어 바람에 빗방울이 날려 얼굴과 살갗으로 튀었다. 신선한 공기였으나 마냥 좋지는 않다.
백호의 말에 순순히 따라 자신의 신념을 바꿀 생각은 없었으나, 역시 서로 굳은 얼굴을 하는 것은 어딘가 슬픈 일이었다. 그가 휙 몸을 날려 사라진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보고 싶었다. 웃는 얼굴로 서로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저 멀리로 기화요초가 핀 꽃밭이 아른거리며 보였다. 조금 높은 지대에 있어 궁 어디서나 보였지만 특히 이 층 침실의 창문에서는 더욱 잘 보였다. 간혹 근처에 가서 꽃향기를 즐겼으나 위험한 식물들도 있다 하여 그곳에 발을 들인 적은 없었다.
굳이 꽃의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 가까이서 만지고 보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 멀리서 보아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 때 얼굴로 조금씩 튀던 빗방울이 그쳤다. 그녀는 자신의 위로 그림자가 진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반가움에 연화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늦으셨어요.”
“미안하구나.”
허공에 뜬 채로 백호가 웃었다. 바람에 그의 긴 백발이 흩날렸다. 사실 늦은 것도 아니고 잠시 다녀온 것뿐이지만 연화는 어딘지 투정을 부리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그녀는 볼을 부풀렸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저쪽, 비를 부르는 녀석이 있어서 쫓아내고 왔다.”
알 수 없는 말이라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연화는 구태여 파고들어 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백호를 올려다보았다. 백호는 허리를 굽혀 우아하게 인사했다.
“부디, 방 안에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겠나?”
“……들어오셔요.”
연화는 짐짓 새침한 태도로 몸을 물렸다. 어차피 허락 따위 필요하지도 않음을 두 사람 다 알고 있었지만, 백호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창문 안으로 들어왔다. 물 한 방울 묻지 않고 뽀송한 그의 옷을 괜히 털어내면서 그는 헛기침을 했다.
“다녀오는 길에 마주쳐서 꺾어왔다.”
백호가 불쑥 내민 것은 꽃 한 송이였다. 생전 보도 듣도 못 한 모양새의 꽃에 연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꽃잎은 일곱 가닥으로 뻗어 은은한 무지개색으로 영롱했다. 수국만큼 커다란 꽃송이는 꽃잎 안에 빼곡히 채워진 흰색의 몽글몽글한 수술로 인해 마치 새벽안개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연화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건…….”
“천화라 불리는 꽃이다. 신령계에서도 천 년에 한 번 피어 몹시 귀한 것이지.”
“세상에.”
“……너와, 닮아서…… 가져다주고 싶었다.”
마지막 말은 쑥스러운 듯 망설이며 새어 나왔다.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가렸다. 직접적으로 사랑을 잘 표현하는 백호였으나, 이렇듯 비유적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일은 드물었다. 백호의 뺨이 불그스레했다.
천 년에 한 번 피는 꽃이라, 그렇다면 차라리 꺾지 않고 그대로 살도록 두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싶었지만 연화는 현명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 이야기를 꺼내 다시 한번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꽃을 받아 들어 향기를 맡았다. 깊은 산속처럼 청량하고 고운 향기가 폐 속을 가득 메웠다.
“감사합니다.”
창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비가 조금씩 잦아드는 듯 바람에 묻은 습기도 한층 덜했다. 연화는 작게 웃으며 백호를 올려다보았다. 조금씩 밝아져 가는 흐린 하늘의 빛이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에 음영을 드리웠다.
“너에게 내게 맞춰 바뀌라고 말하지 않겠다.”
백호가 충동적으로 말했다. 연화는 눈을 크게 떴다. 남자는 자신이 뱉은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바뀌면 좋겠지만, 물론……. 하지만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
대답할 말이 없어 연화는 그저 웃었다.
백호는 사방신이며, 존재 자체로 세상을 규율하는 자였다. 실상으로 규칙을 깨려 하는 보살과 한 세상을 같이 살기 참으로 힘든 존재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조금씩 비껴가는 생각에 힘든 것은 기실 자신이 아닌 백호일 터였다. 연화는 그저 여래의 가피를 받을 뿐이었으나 백호는 사방신, 세상의 규칙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연화를 보며 백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차가운 공기 속에 있어서였는지 피부가 서늘했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찾아 자신의 입술을 대며 중얼거렸다.
“몸이 차구나.”
백호의 커다란 손이 연화의 허리춤을 잡고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체온은 인간보다 높았다. 뜨거운 손바닥이 얇은 침실용의 저고리와 치마 위로 흘러내렸다.
“춥겠어.”
연화의 허리를 한 번에 감쌀 만큼 커다란 손이 쓸고 내려가다가 얇은 치마 위로 엉덩이를 가볍게 쥐었다. 연화는 꽃을 쥐고 작게 한숨을 쉬며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달구었다. 남자의 손이 꽃을 가져가 창문틀 위에 내려놓았다.
백호의 손이 치맛자락을 헤치고 들어왔다. 서늘한 공기 덕분에 다소 식은 연화의 피부 위로 뜨겁고 거친 그의 손이 움직였다. 골반과 다리 옆면을 쓰다듬던 손이 느릿하게 다리 사이로 들어섰다.
깊은 곳, 은밀한 틈을 천천히 달래듯 만지면서 슬쩍 살점을 갈랐다. 잠깐 몸을 빼려고 움찔거리는 그녀를 끌어안고 조금씩 손가락을 세워 예민한 점막 부분을 만지고 긁자 점차 촉촉하게 젖어갔다. 습기에 그의 손가락 끝이 미끄러워져 한층 부드럽고 깊이 살점 안쪽을 매만졌다.
신음성을 애써 삼키는 듯 연화의 목덜미가 울렁였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자 연화가 백호의 손목을 잡고 만류했다.
“백랑이 옆방에서 자고 있어요.”
연화가 조용히 속삭였다. 백호가 피식 웃었다.
“그 녀석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미 많이 들었을 소리야.”
“……그런 말씀을.”
“아닌가? 네가 백랑을 잉태하고 있을 때도 나와 침상을 자주 나누었지. 임신의 영향인지 너 역시 몹시 뜨거워서…….”
“백호 님!”
기겁하면서 연화가 그의 입을 막았다. 입 위에 올라온 그녀의 손바닥을 살짝 핥으면서 백호의 눈이 휘어졌다.
더 말을 붙이지 않고 그의 손이 연화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동그랗고 소담한 가슴이 손 안에 잡혔다. 아기를 낳고서 조금 더 부풀어오른 가슴은 여전히 둥글고 예뻤다. 이미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두 사람이었지만 두근거리고 피가 끓는 것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바짝 선 유두를 손톱 끝으로 긁자 연화가 작게 신음하면서 백호의 목덜미에 매달렸다.
침상까지 갈 이유도 없었다. 백호는 두 손가락을 연화의 몸 안에 깊이 밀어 넣었다. 이제 정사에 익숙해진 연화의 다리 사이는 백호의 손가락 두 개 정도는 무리 없이 받아들였고, 그가 손목을 움직이자 찌걱거리는 소리가 흘렀다. 처음에 느릿하던 움직임이 다소 빨라졌다.
치마가 거슬리자 백호가 손톱을 세워 찢어냈다. 그대로 연화를 벽에 기대게 하고 두 다리를 모두 들어 올리자 그녀가 허공중에서 허우적대다 그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찢어진 치맛자락이 백호의 허리를 두른 양다리 너머로 늘어졌다.
“백, 호 님! 여, 여기서?”
“쉿. 백랑이가 옆방에서 듣겠구나.”
습한 호흡이 가슴 위로 다가왔다. 얇은 저고리 위로 유두를 빨고 앞니로 잘근잘근 깨물다가 그가 젖가슴을 한입씩 크게 베어 물며 핥았다. 연화는 최대한 신음을 억누르려 애쓰면서 백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질구와 내벽을 희롱하는 손가락이 셋으로 늘어났다. 백호의 손가락은 굵고 길어 그것만으로도 연화는 간혹 벅찰 때가 있었다. 찔걱이며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자꾸만 밑으로 흘러내렸다. 한 손으로 엉덩이를 받친 백호는 강건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벽에 눌린 채 연화는 허덕이면서 손등을 물었다.
음핵을 엄지손톱으로 긁고 내벽을 세 손가락으로 쑤신다. 예민한 점막이 긁히고 약한 곳이 눌려 기어코 아랫배가 움찔 떨리고 애액이 울컥 새어 나왔다. 바르르 떨며 아랫배를 경직시키는 연화의 볼에 입을 맞추고, 백호는 손가락을 빼냈다.
잠깐 비었던 입구에 뜨거운 물건이 맞춰졌다. 연화는 잠깐 숨을 삼켰다. 아무리 익숙해졌다지만 백호는 지나치게 커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잠시 질구에 대고 천천히 남근 끄트머리를 돌리던 그가 살점을 가르고 밀고 들어왔다.
“흐……으응……!”
연화가 채 신음을 삼키지 못했다. 쏟아진 애액 덕분에 미끈거리는 내벽으로 거대한 양물의 끝이 박혀 들어왔다. 좁은 골반과 아랫배가 순식간에 꽉 차고 터질 듯한 느낌에 그녀는 허덕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연화가 적응할 수 있도록 백호가 잠시 기다렸다. 쥐어짜는 듯 조여대는 탄력 있는 내벽의 감각에 그 역시 당장 거칠게 허리를 털고 싶었지만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연화를 배려해야 했다. 입을 벌리고 붉은 혀를 내민 채 하닥이는 그녀의 입가에 입을 맞추고, 자꾸만 흘러내리는 연화의 두 다리를 다시 허리에 걸치면서 그는 모든 자제심을 다 동원했다.
“백호…… 님. 백호 님…….”
그녀는 백호의 목덜미에 손을 감고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주었다. 마치 배 내부의 모든 살점들이 전부 백호의 양물에 밀려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의 남근 모양대로 길이 나버리지 않았을까, 연화의 머릿속에 설핏 그런 생각이 스쳤다.
이윽고 백호가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를 배려하려 느리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으나 곧 그는 인내를 잃고 거세게 허리를 쳐올렸다. 철썩거리며 그녀의 허벅지 깊은 곳과 회음부에 백호의 샅이 부딪쳤다.
“아, 흐응, 흐, 앗……! 아! 아!”
신음을 참으려 애쓰던 것도 소용 없이 결국 연화가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올리기 시작했다. 저 아랫배 가장 깊은 곳까지 절구로 빠르고 크게 빻아지는 것 같았다. 다리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바짝 힘이 들어가고, 벽에 연화의 땀이 묻어났다.
“백…… 백호 님! 백호……!”
내벽을 꽉 조이며 연화가 높은 비명을 올렸다.
한참이나 지치지 않고 치대던 백호의 허리가 굳으며 멈췄다. 그의 등허리에 근육이 잘게 날을 세워 일어섰다. 자신의 몸 안에 뜨거운 액체가 가득 뿜어져 나와 흩뿌려지는 것을 느끼고 연화 역시 벌벌 떨며 경련을 일으켰다.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것 같았다. 눈앞에 불꽃이 튀고, 근육들이 제멋대로 튕겨 올랐다. 자지러지는 연화를 끌어안고 백호는 한 번 더 허리를 굴려서 완전히 절정을 맞이했다.
“흐, 아응…….”
연화의 사지에서 힘이 빠지며 축 늘어졌다. 그녀의 몸을 받아 안으며 들어 올린 백호가 잠시 벽에 몸을 기댔다. 긴 한숨을 쉬며 그는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동그란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자거라. 물에 빠지고도 쉬지 못했으니.”
그의 품은 포근하고 목소리는 다정했다. 백호의 말대로, 물에 빠져 발버둥을 치느라 몸은 피곤에 절어 있었으나 그와의 다툼 아닌 다툼으로 연화는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녀는 백호의 손을 잡을 기력도 없어 그저 그의 품 안에 고개를 묻었을 뿐이었다.
달콤하고, 안락한 체온이었다.
연화는 그 후로 내리 두 시간 가까이를 잤다. 원래 낮잠을 아예 자지 않는 그녀로서는 색다른 일이었다. 낮잠을 깨운 것은 백호가 아니었다.
“엄마!”
낭랑한 아이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연화는 흠칫 하고 눈을 떴다. 그사이 백랑이가 잠에서 깬 건가, 어머니로서의 본능이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 상태로도 손을 먼저 내밀게 만들었다.
“백랑아……?”
“엄마, 내가 깨웠어요?”
침상 위로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폴짝 뛰어올라 왔다. 태어난 지는 삼 년밖에 안 되었지만 백호의 아들이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인간과 결코 같지 않았다. 백랑은 푸른 눈을 빛내면서 어머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혹시 벗고 있나 흠칫해서 연화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으나 몸도 말끔하고 옷도 입혀져 있었다. 뒤에서 커다란 손이 다가와 연화와 백랑을 한꺼번에 감싸 안았다.
“백랑, 잘 주무셨느냐 인사를 해야지.”
백호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랑은 눈을 굴리며 딱딱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또랑또랑한 파란 눈이 자신과 닮아 부담스러워 백호는 눈썹을 조금 찌푸리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백호 님.”
“인사는 중요한 거다.”
“아이, 참.”
백랑은 잠깐 입을 삐죽거리다가 팔짝 뛰었다. 펑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아기 호랑이가 된 소년이 다시 연화의 품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백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이?”
호랑이 상태로는 아직 백랑은 말을 하지 못한다. 아마 전음은 분명히 가능할 텐데, 어린 척을 해서 연화의 손길을 한 번이라도 더 받으려 못 하는 척하는 것이다. 다른 이의 눈은 속여도 백호의 눈은 속이지 못한다.
아내의 애정을 나눠가져야 하는 아들을 다소 얄밉게 바라보다가 백호는 연화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녀의 뒷목에 코를 묻었다. 어머니의 품을 독차지한 백랑은 만족스럽게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직 여리고 연한 분홍색인 발바닥을 어머니의 가는 팔 위에 올려놓으면서 아기 호랑이가 하품을 했다.
“조금 더 자렴. 아직 낮잠 깰 때가 아니었잖니.”
연화는 부드럽게 아들을 토닥였다.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이라, 잠이 모자랐던 백랑의 숨이 고르게 변하며 잠이 들었다.
백호가 조심스럽게 백랑을 침상가로 옮기고, 연화를 끌어다 다른 쪽 가장자리로 와서 누웠다.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은 아무리 아들이라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백호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품 안의 연화는 부드러웠고, 신령계의 비는 완전히 그쳤다. 해가 나고 있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백호의 눈이 커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런…… 저 녀석.”
갑작스러운 말에 연화가 눈을 굴렸다.
“예?”
“아, 너는 보이지 않겠구나.”
백호가 창문 밖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에 작은 점 하나가 땅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의 그림자 같았다. 하늘 높은 곳까지 닿았을 때 눈부신 빛과 함께 인영이 사라졌다.
“저건…….”
“이 비를 몰고 왔던 청룡이다.”
백호는 못마땅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가 보는 것을 알았는지 청룡 역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화와 함께 누워 있는 모습을 눈에 담고 청룡이 인상을 우그러뜨리며 혀를 차는 표정 역시 백호는 보았다. 청룡은 입모양으로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야, 진짜 팔불출 다됐구나.’
글쎄, 그런 소리를 하기에는 본인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굳이 그 위험한 단장초를 구해가겠다고 본신의 힘을 끌어와 신령계에 현신하는 바람에 때 아닌 장마까지 들이닥쳤다. 여인을 위해 민폐를 끼치는 놈이 누군데. 하기사 청룡은 주변에 폐 끼치는 일을 그리 꺼려하지 않는 성격이기는 했다.
하늘로 날아가던 청룡의 두 손은 답지 않게도 곱게 모아져 있었다. 두 손 위에 흙더미와 그 위에 다소곳이 선 꽃 한 송이를 발견했던 백호는 청룡이 사라지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쯧쯧, 조심해 가져가라 일렀더니 아예 흙째로 퍼가는군.”
기막혀하며 백호가 혀를 찼다. 무슨 말인지 몰라 연화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청룡은 항상 악취미적인 데가 있는 남자라서 알아서 좋을 일이 아닐 듯했다.
그녀는 대신 포근한 백호의 품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비가 그쳐 해가 나고 있었다. 바람은 산들거렸고, 비가 온 뒤 특유의 습기 찬 풀향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향기로움과 햇빛을 만끽하면서 연화는 백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창가에 놓아둔 천화의 투명한 꽃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