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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의 붉은 달-111화 (111/113)

111화

뱃속에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그녀 자신이 확연히 느낄 정도로, 백호의 남근 끝이 뾰족하게 변하고 있었다. 자궁의 입구를 찌르며 밀고 올라온 성기의 끝이 변형되어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 으, 으흐, 아아!”

성기의 변형에 연화가 덜덜 떨며 허리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백호가 잽싸게 그녀의 몸을 낚아채 꽉 잡았다.

“연화야, 지금 움직이면 더 다친다, 조금만 참아주렴.”

그는 미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역시 성감이 고조되어 이대로 움직이며 그녀의 안에 빠르게 사정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연화의 내벽이 상처 입고 다칠 것이다. 자연적으로 가라앉게, 시간을 두고 사정을 유도해야 했다.

백호는 끈질기게 아픔과 쾌락 사이에서 헤매는 연화를 끌어안고 달랬다. 차가운 물을 떠서 얼굴에 묻혀주며 열기를 식히고, 덜덜 떠는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실낱같이 남아 있는 이성 덕으로 연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언,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글쎄.”

백호 역시 이 상태로 관계를 가진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꽤나 한참 걸릴지도 모른다. 본래 맹수들의 생태란 그러했으니까.

조금만 움직여도 자궁 안으로 파고든 성기의 끝이 내벽을 찔러 정신이 혼미해졌다. 날카로운 통증마저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것인지 연화의 음문에서는 끝없이 애액이 울컥거리며 쏟아졌다. 그녀는 떨리는 한숨을 쉬며 백호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이래서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구나, 내가 금수인지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백호가 풀 죽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의 머리 위에 달려 있는 동그란 호랑이의 귀가 슬쩍 처지는 것을 보고, 연화는 반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웃어버렸다.

“……괜, 찮아요.”

간신히 말했지만 목소리는 완전히 갈려서 거칠었다. 근래 이렇게까지 정신을 놓고 비명을 질러댔던 관계가 있었던가. 그녀는 힘겨운 상태에서도 어딘가 충만한 기분으로 반려의 품에 고개를 기울였다.

전신이 다 아프고 특히 배 속의 이 물건이 골칫거리였지만 그녀의 피부를 조심히 쓰다듬는 백호의 커다란 손 하나로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환한 빛이 눈꺼풀 너머로 쏟아졌다. 연화는 눈을 뜨기 싫으면서도 뜨고 싶은 양가감정에 시달리다가 아침인 것을 자각하고 겨우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환히 열린 창문 안으로 투명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온통 고요한 신령계의 아침 공기 속 지저귀는 새소리와 풀벌레소리만이 들려왔다. 피부를 쓰다듬고 지나가는 바람은 적당히 서늘하고 신선했다. 은은한 나무의 냄새가 공기를 타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불 밑으로 전신이 맨 몸인 것이 느껴졌다. 피부에 스치는 비단이불의 감촉이 매끄럽다. 그녀는 조심히 이불을 가슴까지만 내리고 빼꼼 주변을 살펴보았다. 언제나 가득 차 있던 침상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가신 건가…….’

일정을 도는 중 그녀가 보고 싶어 갑자기 왔다고 했다. 덕분에 색다른 모습까지 봤지만……. 아무래도 하던 일을 끝마쳐야 하니 빠르게 돌아가셨겠지. 알긴 하지만 어딘가 서운한 마음에 연화는 이불을 쥐고 꼼질거렸다.

‘다 끝내면 오시겠지.’

어제의 관계가 조금 무리였던지 몸을 움직이자 아랫배와 허벅지 쪽으로 달콤한 통증이 찌르르 지나갔다. 다리를 좁히자 아직도 약간 화끈한 기가 남은 은밀한 틈이 쓸려 조금 아팠다. 백호가 좋은 약을 발라주고 갔는지 조금 미끈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정말이지.’

그런 모습의 백호는 처음 보았다. 그의 몸에 난 맹수의 털은 강하고 거칠었다. 그녀의 피부에 문질러질 때마다 기묘한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강한 팔이 연화의 허리를 끌어안을 때마다 성감이 달아올랐다.

‘생각하면 안 돼, 아침부터.’

어젯밤 그렇게나 격렬한 정사를 치러놓고 몸은 감각을 기억하는지 다시 달아오르려 했다. 그녀는 다리를 꼭 말아 오므리고 한숨을 쉬었다. 백호와 함께 지내고부터 몸이 그에게 적응해 걸핏하면 뜨거워졌다. 지금이야 붉은 달의 영향이니 어쩔 수 없다고 그녀는 스스로 정당화를 했다.

가만히 이불 위에 엎드려 텅 빈 옆자리를 보다 보니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그녀는 잠깐 이불 위를 뒹굴었다.

“보고 싶지만, 뭐……. 다녀가셨으니까.”

빈 옆자리가 어딘지 서러워서 일부러 연화는 소리 내어 혼잣말을 했다. 일주일의 떨어짐도 참지 못하고 굳이 먼 길을 왔다가 간 반려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참으로 다정하고 자상한 이다.

“다녀갔으니 곁에 없어도 되는 거냐, 연화야?”

그 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로 펄쩍 뛸 뻔했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이불 속에 숨어버린 그녀를 보면서 백호가 환하게 웃었다. 아침 햇빛 속에서, 백호의 길디긴 백발이 투명하게 빛났다.

장난스럽게 휘어진 푸른 눈이 가까이 다가왔다. 볼을 붉히고 차마 얼굴을 못 내밀고 있는 연화를 내려다보다가 백호가 그녀의 이마 위에 입을 맞췄다.

“몸은 괜찮고?”

“아, 백, 백호 님……. 일정은 어떻게 하시고.”

“그깟 일정 따위.”

백호는 어딘지 심기가 불편한 얼굴이었다. 그는 입을 쭉 내밀었다가 연화의 곁에 냉큼 누웠다. 밖에 나갔다 온 것인지 그의 옷깃에 향긋한 풀냄새가 묻어 있었다. 연화는 긴 장포의 옷깃에 코를 묻었다. 백호의 체향과 풀향이 섞여 올라왔다.

백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듯했다. 그는 연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기분을 정돈했다. 사방신인 그가 함부로 풀이 죽거나 우울하면 안 된다. 신령계 전체에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돌아야 한다. 쳇.”

“예에?”

“돌아보는 길이 있어서, 그 길을 뚫어주어야 신령계 전체로 기가 원활히 순환되거든. 순찰뿐 아니라 기맥을 뚫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백호는 불편한 기색으로 투덜거렸다. 연화를 만나기 전에는 한 번도 일을 멈춰본 적이 없어서 이럴 줄은 몰랐다. 그저 잠깐 와서 연화를 보고 가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연화가 잠드는 것까지 보고 난 뒤 새벽에 황급히 돌아가자 기맥은 다시 막혀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뚫어야 한다. 고생이라고 할 것까지야 없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짜증스러웠다.

“저런.”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백호가 한껏 험상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웃어? 웃는 게냐? 널 보러 왔다가 일이 제자리인데.”

“세상에, 그러게요.”

그가 일을 다시 해야 하는 건 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연화는 그의 품에서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자신을 보고 싶어 일도 내팽개치고 달려온 신이 그녀의 반려였다. 그래서 일을 처음부터 하게 되었는데도 연화를 마주 보는 푸른 눈에는 따뜻한 다정함과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면 못된 건데, 싶으면서도 연화는 충만한 기분으로 백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끝없이 배려받고 끝없이 사랑받는 감각이 어떤 것인지, 그녀는 이제야 알아가고 있었다.

백호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일주일을 또 떨어져 있으라니 정말 안 될 말이었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고 달려 일정을 나흘 아래로 줄여서 하고 오겠다.”

“무리는 하지 마세요.”

“무리랄 것까지야 있나. 널 보고 싶으니 어쩔 수 없지.”

걱정스러운 연화의 말에 백호는 웃으면서 그녀의 뺨에 입술을 눌렀다. 그녀가 사랑받는 감각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것을 백호는 항상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일이 있지. 백호는 조금 심술궂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어제는 아주 내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백호의 말에 연화가 퍼뜩 생각을 떠올렸다. 평소보다 훨씬 더 몸이 달아올랐던 말을 하는 모양이다. 연화는 얼굴을 붉혔다.

“그야, 붉은 달이 떠 있는 시기니까요. ……발정기이고.”

발정기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닌가. 어제 그토록 격한 정사를 나눠서인지 지금은 몸이 다소 아프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가뿐했다. 하지만 아마 또 시간이 지나면 달아오를 것이다. 달이 떠오른 동안 백호가 언제나 그랬으니 반려인 자신 역시 그럴 테니까.

백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고 연화도 마찬가지로 갸우뚱했다. 백호는 뭔가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왜 그러세요?”

“흠, 붉은 달과 발정기라.”

웃음기가 밴 목소리였다. 백호는 연화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씩 큰 미소를 지었다.

“발정기란 말이다, 천지가 금수의 왕에게 하는 재촉 같은 것이다. 빨리 반려를 찾아 혼인을 하라는 순리를 향한 재촉.”

“그렇군요.”

“그리고 나는 혼인을 했지.”

“…….”

연화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백호는 잠시 그녀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그녀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설마 하는 얼굴로 백호를 돌아보았다. 그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붉은 달은 혼인을 한 이후에는 발정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아.”

“그러니까, 네가 어제 그다지도 달아올라 있던 이유는…….”

백호가 고개를 숙여 연화의 귓가를 물었다. 연한 살점을 잘근거리고 씹으며 그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그저 내가 그리웠기 때문이란다. 귀여운 내 반려야.”

백호의 목소리에 음란한 습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연화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아예 얼굴도 보지 않고 번데기처럼 이불로 둘둘 말고 숨으려는 그녀를 통째로 팔 안에 끌어안고 백호가 크게 웃었다.

“하하, 네가 날 그리도 은애하는구나. 어찌 아니 기쁠 일인가.”

이불 안에서 민망함에 몸서리치고 있는 연화를 살살 달래 끌어내면서 백호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웃음을 애써 삼켰다. 연화는 조금 토라졌는지 입을 삐죽거렸다. 얼굴은 여전히 붉었다.

“너무 토라지지 마라. 네가 날 그리워하는 게 어찌 나쁜 일이겠느냐.”

“제가 어제 그러는 것을 보셨으면서……. 진작 말씀을 해주시지.”

연화는 한숨을 쉬면서 붉어진 볼을 토닥였다. 어차피 둘 사이의 일이니 특별히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민망한 건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애꿎은 볼만 세게 문질러댔다.

“…….”

그 때 백호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왜 또 그러세요?”

갑자기 침묵하며 허공을 바라보는 백호를 보고 연화가 움찔했다. 그는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조금…… 묘하구나.”

기묘한 느낌이었다. 이상한 위화감이 그의 피부 위를 흘렀다.

지금 이 방 안에는 그들 둘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른 존재가 느껴졌다. 아니, 방에 들어올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연화에게 집중하느라 몰랐을 뿐.

백호는 그녀를 끌어안고 방 안을 휘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하다. 감히 그 누가 사방신 백호와 그 반려의 침실에 함부로 발을 들이겠는가.

백호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한 번 느낀 위화감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품 안의 연화가 꼬물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래, 이상해.”

또 하나의 존재라. 아주 작고 작았으나 생명력이 넘치는 존재다. 거기까지 읽어낸 백호는 잠시 연화를 내려다보다가 그녀의 매끈한 하복부 위로 손을 올렸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이 납작한 배였다.

“……허.”

하지만 뭔가를 느낀 백호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연화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니, 그게.”

백호는 그답지 않게 허둥거리며 연화의 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한참이나 그는 고개를 젓거나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중얼거리다가 연화가 슬슬 걱정이 될 때쯤이 되어서야 눈을 맞춰 왔다.

“놀라지 마라.”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연화는 덩달아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배 위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백호의 커다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반려의 벗은 어깨를 끌어안고 그 위에 입을 맞췄다.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떨려서 나오지 않도록, 백호는 애써 목에 힘을 주었다.

“우리, 아기가 생겼구나.”

“……예?”

연화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혼인을 맺었으나 신과 인간이라는 태생적인 차이로 인해 계속해서 후사를 보는 데 실패했던 둘이다. 백호는 지나치게 강했고 그의 씨를 잉태하기에 인간인 연화는 지나치게 연약했다. 후사 따위 없어도 상관없다며 백호가 개의치 않았으나 연화는 언제나 그것을 마음에 걸려 했다.

“세, 세상에.”

사방신이 한 말이다. 틀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연화는 떨리는 손으로 배 위를 만져보았다. 아직 당연히 납작하고 매끈한 배였지만, 이곳에 자신과 백호의 아이가 잉태된 것이다.

붉은 달은 발정기와 상관이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축복을 선사했다.

“달이 우리에게 또 다른 선물을 보내줬구나.”

백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뺨 위로 흐르는 그의 따뜻한 숨결에 떨림이 숨겨져 있었다. 연화는 거기에서 기쁨과 환희를 읽어내고 눈을 감았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깊이 사랑하여 둘 사이의 결합을 새 생명의 탄생으로 받아 들이게 되다니, 이보다 더한 축복이 있을 리 없었다.

연화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한참 동안 백호의 품에 매달려서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릿속에 자신의 몸 안에 존재하는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에 대한 상상이 펼쳐졌다.

백호를 닮은 아들일 것이다. 듬직하고 강인한, 그러면서도 다정하고 온화한. 흰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지닌 소년.

“작고 예쁜 호랑이겠지요.”

연화는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손 안에 가득 차는 흰 호랑이 새끼일 것이다. 보드랍고 따뜻한 발바닥을 가지고, 인간과 호랑이의 모습을 할 수 있는 아이 말이다.

“귀여운 여자아이일 수도 있단다.”

백호가 농을 받았다. 그는 연화를 닮은 딸을 상상했다. 새처럼 가늘고 사랑스러운, 그러면서도 심지가 굳은 검은 눈동자의 소녀.

“아이가 찾아왔구나.”

백호가 작게 속삭였고 연화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속눈썹에 어룽져 엉기는 눈물을 그대로 두고, 그녀는 백호의 흰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둘 사이의 결합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신령계의 축복받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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