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붉은 옷을 입은 신부의 피부에서는 은은히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단 위의 의자에 앉아서 사태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약사여래는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띠고 셋을 바라보았다.
“연화는 약사여래의 가피를 입고 있어. 이미 깨달음에 많이 다가간 상태다. 그 애의 영혼은 아마 팔십 년 후쯤에는 보살의 경지로 넘어갈 게야.”
“……뭐라고요?”
“내가 뭘 안 해도 조금만 기다리면 스스로 굴레에서 벗어날 거라는 이야기다.”
연화는 눈을 크게 떴고 백호는 입을 벌렸다. 뭔가 사기를 당한 듯한 기분에 그는 상제를 내려다보았다. 소녀의 얼굴이 방실거리고 웃으며 남자를 마주 보았고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사상 최초의 사방신과 보살 부부가 되겠군.”
주작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녀야 덜하지만 현무나 백호는 특히 약사여래와 상극이다. 사는 동안 티격태격을 할 수밖에 없는 사이.
“이혼이나 안 하면 다행이겠다.”
현무 역시 피식거리면서 말했다. 삼백 년쯤 후에는 반려에게 뺨을 맞고 별거 선언 당하는 백호를 볼 수도 있겠다는 사실에 그의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었다.
주작은 백호와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그녀 역시 이 상황이 재미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청룡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턱을 만지면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잘하면 최초로 차이는 사방신이 되겠군. 역사에 남겠어.”
심술궂은 말에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세 신은 입을 틀어막았다. 하여간 상제는 하나도 그냥 넘어가 주는 법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영생을 얻게 되는 거였군요.”
뭔가 사기를 당한 기분에 백호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슬쩍 말했다.
“……그 언약 무를 수는 없습니까?”
“안 돼.”
“젠장.”
상제는 킬킬거렸고 백호는 머리를 마구 긁었다. 옥황상제는 환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자, 이제 연회다. 신령계는 열흘 동안 먹고 마시며 잔치를 해야지. 이 경사스러운 날을 축하하면서 말이야.”
하늘 아래로 상제의 손짓에 따라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장을 채운 모든 신령들이 기쁨의 함성을 외치며 혼인을 축하했다.
* * *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혼례의 잔치는 열흘 동안 이어질 것이고, 모든 신령계의 짐승과 초목들이 먹고 마시고 춤출 것이다.
조용한 신방으로 자리를 이동한 연화는 촛불 앞에서 가만히 앉아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렀다. 이미 많은 잠자리를 함께했지만 마치 첫날밤 같은 긴장감과 설렘이었다.
밖에서 마지막까지 상제와 사방신을 대접하던 백호가 걸어들어 왔다. 그에게서 밤의 냄새가 났다. 창문을 열어놓아 살랑거리는 밤바람이 남자의 긴 백발을 허공으로 날렸다.
밤하늘에는 청명하고 맑은 달이 떠올라 있었다. 처음 둘이 만나던 날의 붉은 달과는 완전히 다른, 노랗고 투명한 달.
“어머니를 뵈었으니 기쁘겠구나.”
백호는 연화의 앞에 앉아 그녀의 신발을 벗겨주었다. 꽃이 수놓인 비단신과 고운 버선을 벗기자 그 안에서 작고 하얀 발이 나왔다. 백호의 커다란 손이 발을 꼭꼭 주물렀다.
연화는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예. 여래의 곁에서 함께 하시며 앞으로도 종종 뵐 수 있을 것이라 하셔서…….”
“그래.”
연화의 어머니는 여래의 수행자다. 그녀는 아마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또 다른 보살이 될 때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영원의 시간 동안, 모녀는 그 깊은 인연을 쭉 이어갈 수 있겠지. 백호는 느른하게 미소를 지었다.
따스한 물이 담긴 대야를 끌어다 놓고 그는 연화의 발을 씻겨주었다. 작고 하얀 발은 손 안에 맞춤하게 들어왔다. 이미 많이 닿은 피부였으나 그의 손길이 민감한 발바닥과 복숭아뼈 안쪽을 스칠 때마다 연화는 기묘한 조바심에 다리를 움찔거렸다.
“오래 서 있느라 피곤했겠어.”
작은 발을 향유까지 발라 꼭꼭 주물러 주고서 백호가 물기를 닦아냈다. 겨우 자유가 된 발을 옷자락 아래로 숨기며 연화가 얼른 뒤로 물러나 앉았다. 부부로서의 첫날밤이라서 그런가 이상할 정도로 더 수줍고 부끄러웠다.
그는 침상에 올라가 연화를 마주 보고 앉았다. 연화는 여전히 신부의 너울을 머리에 쓴 채였다. 선녀들이 천의무봉으로 지어낸 부드러운 옷감이 달빛 속 투명하게 그녀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네가 내 반려가 되었구나.”
백호가 속삭였다. 목구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역류하려 해 그는 억지로 억눌렀다. 그는 여인의 두 손을 맞잡았다. 가느다란 손은 따스했다.
“너무 먼 길을 돌아왔어.”
“백호 님.”
“내가 모자라서…… 너무 먼 길로 왔다.”
그가 조금만 더 눈치가 있고 용기가 있었더라면 연화는 험한 일들을 겪지 않았을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도 못내 안타까웠다.
그러나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는 부질없는 것.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시간이었다.
“영원을 약속한다. 나의 맹세는 신의 것. 세상천지 어떤 것도 건드릴 수 없는 언약…….”
백호는 조심스럽게 연화의 너울을 걷어냈다. 붉은 연지를 발라 혈색이 도는 흰 얼굴의 여인이 붉은 족두리 밑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저 역시 영원을 약속합니다, 나의 반려. 백호 님.”
연화는 미소를 지었다. 떠났던 자신을 아무런 말 없이 다시 받아준 그의 품은 너르고 따스했다. 붉은 달이 아닌 맑고 청명한 달 밑에서도 사랑을 맹세해 준 사방신. 인간의 여인은 그 품에 머리를 기댔다.
백호는 천천히 그녀의 옷을 벗겼다. 겹겹이 겹쳐진 붉은 비단 장포와 수놓인 치마를 풀어 내리고 촛불을 껐다. 맑은 달빛 아래 수줍은 연화의 흰 얼굴이 떠올라 마치 꽃처럼 보였다.
백호는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가 깊이 입을 맞췄다. 서로의 타액이 섞이고 점막을 애무한다. 연화는 백호의 목에 손을 감고 그의 입맞춤을 받았다.
향유를 발라 단장한 연화의 매끄러운 몸이 달빛 아래에 드러났다. 가냘프고 여린 몸. 희디흰 배꽃 같은 피부가 곱고 예뻤다.
백호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귓가를 애무했다. 귓볼을 빨고 그 안을 핥자 여인이 움찔하며 몸을 떤다. 고막 전체로 남자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가 전달되는 것 같았다.
“백호…… 님…….”
“그래. 내가 여기 있다.”
백호의 긴 백발이 연화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가슴의 유두를 깨물고 핥고, 그 밑으로 내려와 예민한 아랫배 위로 깊은 입맞춤을 남긴다.
연화는 다리를 스스로 벌려 백호가 자리 잡기 편하도록 도왔다. 음모 속에 손가락을 밀어 넣으면서 백호가 다시 한번 연화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이미 촉촉하고 따뜻하게 젖은 여인의 내벽이 남자의 굵고 긴 손가락을 기쁘게 받아내었다. 공포 같은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쾌락만을 위한 능욕과 지금 백호에게 사랑받는 행위는 아예 다른 것이다.
연화는 자신의 안이 백호의 손가락을 죄는 것을 느끼고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운 게냐? 아니, 괜찮아. 이제 영생을 나와 함께 매일 밤 침대에서 지내야 하니까.”
백호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는 허리춤을 풀고 자신의 양물을 내었다. 뜨겁고 거대한 물건이 자신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는 것을 느끼고 연화는 백호의 손을 찾아 깍지를 끼었다.
“저도…… 저도 좋습니다, 백호 님.”
얼굴이 새빨갛게 된 채로 연화가 말했다. 대담한 여인의 말에 백호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동공이 크게 확장된 남자가 입가를 올렸다. 마치 배부른 고양이 같은 얼굴이었다.
“……이제 대담한 소리도 할 줄 알게 되었군, 나의 신부.”
“아...흣, 아!”
백호가 그대로 허리를 밀어 넣었다. 이미 매끄럽게 젖은 내벽이 잔뜩 수축하며 사내의 물건을 반기며 빨아들였다. 거대한 남자의 물건이 마치 꽉 맞춘 것처럼 연화의 안에 맞아 들어갔다.
한 번에 파고든 양물이 마치 배꼽 아래까지 들어와 버린 것 같아서 여인은 몸을 떨었다. 골반이 아예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미 수 번 경험한 것이지만 여전히 낯설다. 아마 영원히 낯선 느낌일 것 같았다.
남자는 여인의 다리를 넓게 벌려 들고 그녀의 한쪽 발목에 입을 맞췄다. 가느다랗고 예쁜 다리였다. 백호는 급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천천히 허리를 돌렸다. 연화는 몸을 활짝 연 채로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아프면 말해야 한다.”
남자는 연화의 위로 엎드려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연화는 양다리로 백호의 허리를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규칙적으로 느리게 움직이던 허리가 절정이 다가옴에 따라 급해졌다. 달콤한 물이 흘러 잔뜩 젖은 밑으로 사내의 물건이 출납하는 소리가 철벅이며 들릴 정도였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버티던 연화는 결국 고개를 도리질 치며 신음을 터뜨렸다.
“아, 흐으……. 배, 백호 님!”
아랫배 깊숙히고 불같은 감각이 터졌다. 전신에 불꽃이 터지면서 뇌가 하얗게 표백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백호를 마구잡이로 끌어안았고 남자 역시 거의 동시에 절정을 맞이했다. 그가 거칠게 허리를 떨며 연화의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읏……. 연화야……!”
절정의 쾌락이 한동안 둘을 함께 휩쓸고 지나갔다. 연화의 다리가 파르르 떨리며 금침 위로 떨어져 내렸다.
백호는 숨을 진정시키며 품 안의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연화는 숨이 가빴고 얼굴이 붉었다. 검은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이 온통 흐트러져 백호의 흰 머리카락과 섞여 흘렀다. 금침 위로 흐르는 그 머리카락을 보면서 백호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영원히 함께 살며 오래도록 보게 될 모습.
연화는 그런 백호를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잠깐 벌어진 입술 사이로 스미는 호흡도 달콤하고 따스했다.
“이제 정말로 넌 내 신부다.”
“백호 님은 제 신랑이시지요.”
둘은 입술을 마주 댄 채 쿡쿡거리며 웃었다. 밝은 달이 침상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데도 연화는 더 이상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제 부부지간이 된 사이, 연화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시간 동안 함께할 두 사람.
“앞으로 영원이다, 나의 신부야.”
백호는 그녀를 끌어안고 미소를 지었다. 천 년이 넘게 살아온 그도 앞으로의 시간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이 세계가 지속되는 한 함께 살아가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