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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의 붉은 달-62화 (62/113)

62화

연화는 수를 놓다가 말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여름이라 날이 더웠고 밖에는 진녹색의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녀는 시녀가 가져다 놓은 차를 마셨다. 더운 날이라 차게 식힌 찻물이 입 안을 축였다. 수를 놓으며 집중하느라 입 안이 마른 것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녀는 옷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색색의 실로 채워져 가는 수틀 안에는 푸른 눈의 흰 호랑이가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그 눈이 살아 움직여 연화를 바라볼 것만 같이 생생했다. 백설처럼 희디흰 털과 선명한 세로줄 무늬. 연화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

만희는 방에 다녀갈 때마다 그 호랑이 자수를 보며 웃었다. 푸른 눈의 흰 호랑이라니, 계집이 놓는 수 치고 꽤나 대담한 그림이로구나. 과연 수틀 안의 호랑이는 담대하고 푸르렀다. 그것은 백호가 담대하고 푸른 사내이기 때문이라고, 연화는 생각했다.

“보고 싶어요.”

그녀는 수틀 속의 백호에게 작게 속삭였다.

염치없는 소리라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자신의 결정으로 떠나온 남자의 품이었고 세계였다. 비록 마을 사람들과 양어머니의 위기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지만 책임은 자신의 몫이다. 그걸 회피할 수는 없었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백호는 다정한 사내였으니 만약 사실대로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면 그녀를 도와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랬다가 상제에게 큰 벌이라도 받게 된다면 그 일을 어찌했을까.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도 연화의 결정은 옳았다.

이곳에 온 지 불과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첫날 험한 꼴을 보았지만 그 이후 만희는 그리 거칠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기이할 정도로 다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주며 자주 들러 얼굴을 비추고 갔다. 아마도 자신의 치유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사내의 두통은 의원이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다정함은 어딘가 기묘한 데가 있어서 연화는 간혹 위화감을 느끼고는 했다. 그래서 만희가 다가올 때마다 연화는 오히려 백호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육신이 괴로운 환경이 아니어서 그런지 백호에 대한 그리움이 더 자주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혼자 멍하니 앉아 있으면 더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어서 수를 손에 잡았고, 자기도 모르게 한 땀 한 땀 뜨는 바느질은 어느새 흰 호랑이의 얼굴을 그려갔다.

‘이렇듯 좋은 날이면 백호 님은 나를 누각으로 데려가 함께 차를 마셨지.’

신령계의 하늘은 인간계보다 높고 푸르다.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 듯한 누각 아래에서, 백호는 연화를 무릎 위에 안고 다과를 즐겼다.

그의 넓은 가슴에 기대서 눈앞에 흔들리는 흰 머리카락을 조심히 만질 수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 백호의 푸른 눈이 내려와 연화를 바라보았다. 마치 시선으로 쓰다듬듯, 그렇게 다정하고 부드러운 시선이었다. 강한 신이기에 무서웠지만 동시에 가장 아늑하고 포근한 품이었다.

그리고 그런 날은 언제나 바람 부는 누각에서 정을 나눴다. 밝고 맑은 하늘 아래 약간 서늘한 듯한 신령계의 공기가 맨 피부에 느껴지곤 했다.

선명하게 보이던 백호의 푸른 눈과 웃음 띤 입가. 느릿하게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던 크고 뜨거운 손. 마디가 굵고 길고 강인한 손가락과 이마며 뺨에 온통 작은 입맞춤의 비를 선사하던 따뜻한 입술.

“백호 님.”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수틀을 품에 안고 깊이 숨을 쉬었다.

여전히 그가 몸을 쓰다듬던 감각이 마치 어제 일처럼 남아 있었다. 커다란 손이 목덜미를 잡고 끌어당겨 입술을 맞대고, 사내의 몸이 마치 태산처럼 덮쳐 왔다. 등 뒤에 나무바닥이 지나치게 딱딱하다며 그 밑에 장포와 푹신한 방석을 끌어다 깔아주었다.

치마를 걷어 올려 부끄럽게 드러난 무릎과 허벅지 위를 천천히 빨아들이던 사내의 입 안은 뜨겁고 강렬했다. 흰 피부 위로 열꽃이 남을 때마다 연화의 호흡도 가빠졌다.

다리 안쪽 깊은 곳을 희롱하던 그의 입술이 더 깊은 곳으로 들어와 차마 입으로 말하지 못할 은밀한 곳에 혀를 밀어넣으면 눈앞이 희게 바랬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사라질 정도로, 모든 감각이 아래로 쏠려 아랫배와 그 아래가 타는 듯한 쾌락에 시달렸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연화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기억만으로도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그사이에 벌써 다리 사이가 습하게 젖은 것이 느껴졌다. 이 밝은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인지. 하지만 한 번 떠오른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창문 밖 정원 멀리로만 시녀들이 오가는 인기척이 간혹 들렸다. 만희가 준 거처는 나름 지체 높은 이들이 머무는 곳이라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인적이 드물었다. 물론 방 바깥에는 시녀들이 대기를 하고 있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한 번 들쑤셔진 몸과 마음의 그리움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백호의 얼굴이 떠오르는 마음과 망설임이 충돌해 그녀는 한동안 갈등했다.

하지만 곧 연화는 꾸물거리며 침상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앉았다. 얇디얇은 모시 이불 속에 앉아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치마 밑 다리 사이로 넣었다. 벌써 속곳 위로 습기가 느껴졌다. 백호와의 기억을 되새긴 것만으로도 애액이 돌아 다리 사이가 젖은 것이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도 모르는 여자 같아서 연화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눈앞에 백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릎 위에 놓은 수틀 위 흰 호랑이의 그림이 기억을 부추겼다. 수틀을 바라보던 연화는 곧 손을 움직였다.

잠시 얇은 천 위로 둔덕을 서툴게 문지르던 그녀는 감질 나는 감각에 한숨을 쉬었다. 손가락은 지나치게 가늘었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알지 못해 어설프게 움직였다. 한 겹 얇은 천이지만 방해가 되었다. 아래가 간지럽기만 해서 다리가 자꾸만 꼬였다. 허벅지를 꽉 붙여 비비면서 그녀는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백호의 손길은 자연스럽게 떠올라 피부 위를 미끄러졌다. 자신의 손을 그의 것처럼 상상하면서 연화는 천천히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옷감 밑으로 내려가 축축한 피부에 얹힌 손이 느리게 움직였다.

스스로 만지는 자신의 음부는 기묘한 감촉을 선사했다. 까슬한 음모가 젖어들어 손가락에 감겼고, 갈라진 틈은 좁았다.

백호는 언제나 그 굵고 긴 손가락으로도 조심스럽게 연화의 다리 사이를 매만져 주었다. 그것을 기억하며 습기 찬 살점을 어설프나마 가르고 손가락의 끝이 틈 안으로 파고들었다. 애액이 약간 흘러 매끄러운 속을 더듬다가 도톰하게 올라온 돌기가 손가락 끝에 잡혔다.

손톱에 긁히면서 올라온 날카로운 감각에 연화가 조금 놀라서 흠칫했다. 처음으로 쾌감과 비슷한 것이 아주 조금이나마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백호가 만져 주던 것과 희미하게나마 닮은 감각이었다.

“백호 님…….”

저절로 그의 이름이 입술을 타고 흘렀다. 잠깐 망설였지만 엄지 끝으로 돌기를 조금씩 건드리면서 그녀는 손가락을 조금 더 대담하게 넣어보았다.

저항감 때문에 내벽이 자꾸만 밀어냈지만 미끄러운 점막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하나가 들어갔다. 사내의 손가락이 들어왔던 생각을 하며 조금 더 밀어 넣어 봤지만 생각처럼 쾌락은 올라오지 않았다. 어설픈 이물감만 생길 뿐이었다.

조금 더 다리를 벌리고 앉아 그녀는 이불 속에 손을 더 깊이 넣었다. 백호의 손길을 생각하면서 다른 손을 들어 슬그머니 저고리 밑에 넣어 가슴을 더듬었다.

동그란 밑가슴을 조심히 더듬다가 용기를 내서 그 위의 뾰족이 솟은 유두를 손가락으로 둥글게 굴렸다. 살짝 느껴지는 쾌감에 손톱을 세워 긁었다. 백호의 뜨거운 손과 입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의 생각만으로도 몸이 달아올랐다.

밑에 내려간 손도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돌기를 긁고 갈라진 살점 틈으로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넣었다. 내부는 그것만으로도 좁고 빠듯해서 백호의 그 큰 물건을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몸의 감각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고개를 뒤로 기댔다. 감은 눈 안으로, 신령계의 궁 안에서 그녀를 안아 오던 백호의 얼굴이 온통 떠올랐다.

바람에 날리던 비단과 같던 흰 머리카락, 난폭하지만 동시에 그녀에게는 부드럽던 푸르고 시린 눈동자. 처음 만났던 날, 그 순간부터 무섭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남자.

“아……. 백호 님…….”

연화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엄지손가락 밑에 있는 돌기가 살짝 부풀어 올랐다. 애액이 울컥 쏟아져 흘러내렸고 작은 쾌락이 이곳저곳에서 솟아올라 온 몸의 피부 위에 불꽃놀이처럼 터졌다. 아랫배가 뜨거웠다.

서툰 손길에도 절정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백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과 손과 입술의 기억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자신의 피부 위에 있는 것은 스스로의 손이었지만, 기억 속에서는 백호가 그녀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백호에게 안길 때처럼 정신없이 거대한 쾌락은 아니었으나 연화는 이것만으로도 지독히 만족했다. 마치 그의 향기를 맡고 그에게 안겼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녀는 그 착각 속에 잠시나마 잠겨 있고 싶었다.

손을 이불 속에서 꺼내자 울컥 터진 애액으로 인해 연화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흠뻑 젖어 있었다. 밑의 옷까지도 젖었을 정도였다.

절정의 여운으로 몸이 나른해서 그녀는 잠시 등을 기댄 채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밖은 여전히 고요했고 더운 바람이 간간이 불어왔다. 눈부신 초록빛이 반사되어 시야를 간지럽혔다.

“보고 싶어요, 백호 님.”

조용히 속삭인 말끝에는 희미하게 울먹임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울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떨어져 나온 지 열흘인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기에 애틋함은 더 커져만 갔다.

사랑하는 남자가 차마 누구에게도 그리움을 말하지 못할 큰 존재이기 때문에 슬픔은 가슴 깊이 숨길 수밖에 없었다. 저 너머 신령계로 넘어가 신을 사랑했다는 말을 대체 그 누가 진지하게 들어줄 것인가.

그러니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큰 존재라서, 연화와 같이 작은 인간의 존재 따위는 금세 잊어버려 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래야 그녀가 떠나왔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죄책감이 덜어졌다.

고요하게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날렸다. 땀에 젖은 피부가 조금씩 식어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텅 빈 방 안에, 갑작스럽게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날이 꽤 덥구나.”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라서 연화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방문 앞에 서 있는 것은 만희였다. 느릿하게 들어온 남자는 그녀의 침상 곁에 섰다.

평소 같으면 빨리 일어나 그의 앞에 무릎 꿇었을 연화는 순간 당황했다. 지금 이불 속 그녀의 차림은 지나치게 흐트러져 있었다. 손을 재빨리 이불 속에 감추면서 연화는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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