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그녀는 무엇이든 먹어야 했다. 그래야 양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의 안위를 나중에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소한 왕에게 갈 때까지라도 버텨서 그의 요구를 들어야 했다.
“먹지 않겠다 이거냐?”
성현은 뻣뻣한 수염을 비틀었다. 불편한 심기가 그의 말투와 표정으로 새어 나왔다.
“끌려와서도 명한 바를 듣지 않겠다는 건가. 네 마을 사람들을 죄다 불태워 주랴? 아니면 네 어머니를?”
먹기를 망설이는 연화를 보며 제사장이 히죽거렸다. 그는 창살에 기대서 싸늘한 눈으로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근처 모든 이들이 웃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흥미로운 화젯거리리라. 지저분한 모양새여도 지극히 아름다운 젊은 여인이 묶인 채로 고초를 겪는 꼬락서니를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과연 저 여자가 저 재수 없는 제사장에게 반항을 할까? 그러다가 얻어맞을까? 그녀를 향한 시선들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연화는 얌전히 기어가 고개를 숙여 죽을 먹기 시작했다. 머리를 바닥으로 푹 파묻은 채였다. 거의 미음에 가까운 멀건 죽이었다.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잘도 먹는군. 그래, 천한 것에게는 이게 딱 어울리는 식사 예절이다.”
제사장의 말에 주변 일행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성현에게 누군가 따뜻한 오리고기 구이와 흰 쌀밥으로 상을 차려 바쳤다. 그것을 먹으며 제사장은 연화를 구경했다.
“치유의 능력이 있다지만 밥은 개처럼 먹는군.”
죽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의 최소한의 안위를 확인이라도 하고 싶었다.
연화는 개처럼 그릇을 핥아먹었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지만 비참한 심정이 목을 졸라왔다.
***
사흘 밤낮을 달려 마차는 수도에 당도했다.
처음으로 보는 거대한 기와집들이 늘어선 거리를, 연화는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총천연색의 비단들이 걸린 가게와 천민 부락이 두세 개는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은 광장, 김을 내뿜는 만두 가게와 색색의 달콤한 설탕과자들이 널린 노점.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도 그녀는 설렐 수가 없었다. 마치 목을 내놓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안이 훤히 보이는 나무 창살 너머로 수도의 사람들이 흘끔흘끔 연화를 구경했다. 그녀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 눈길을 내렸다. 죄인의 마차이니 그 안에 타고 있는 연화는 구경의 대상인 것이 당연했다. 저런 젊은 처녀가 대체 무슨 죄를 저질러 험한 꼴을 보며 수도까지 끌려왔는가,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흘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몸이 고통을 호소했다. 사지가 묶인 상태라 밤에는 거의 까무룩 기절하듯 잠깐씩 선잠이 찾아왔고, 마른 빵과 물 한 모금만 주는 식사는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길 위의 먼지를 온통 뒤집어써 더러워진 채 연화는 지독히 지쳐서 바닥을 바라보았다.
‘나는 어찌 되는 걸까.’
계속 회피해 왔던 근심이 마음을 짓눌렀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다.
왕이 왜 찾는지 제사장이 스치듯 말한 것 외에 알 수 없었다. 그는 첫날밤 연화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러 마차 가까이 왔다가 치유 능력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렇게 더러운 계집이 그런 이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며 투덜거리고 돌아섰다.
‘내 치유 능력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최소한 죽이지는 않지 않을까, 마을 사람들과 양어머니도 무사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에게 최소한의 쓸모가 있다면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연화는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근심과 공포는 계속해서 목을 졸라 왔다.
‘……전하는 굉장히…… 거친 성품이시라 들었는데.’
아무리 수도에서 먼 천민 부락이라 하나 왕의 성미에 대한 소문은 파다했다. 아니, 어느 마을보다 왕의 성격에 대한 소문이 심했다. 천민 부락으로 보내진 이들 중 다수가 왕에게 해를 입어 쫓겨난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연화와 양어머니 역시 그랬으니.
사촌형을 죽이고 등극한 왕은 거슬리는 모두를 죽이고 손에 닿는 모든 여인들을 범한다고 했다. 남편을 묶어둔 채 아내를 그 앞에서 범하고 아비를 죽인 뒤 그 앞에서 어미와 시동생을 관계하도록 내몬다고 했다. 인륜을 저버린 자라 반드시 천벌을 받을 거라고,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 해.’
그 소문을 떠올릴 때마다 불안감은 심해졌지만 그때마다 연화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이 상황에 공포 때문에 침착함을 잃는 쪽이 더 위험했다.
마차는 거침없이 달려 성에 도착했다. 푸른 기와가 올려지고 좌우로 넓게 자리한 궁은 심지어 3층까지 지어져 있었다. 백호의 궁은 더 크고 넓었지만 그곳은 자연과 어울리도록 우아하고 편안하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인간의 왕궁은 마치 그 위세를 과시하는 듯 부자연스럽게 떡 벌어져 기와 끝이 하늘을 찌르도록 날카로웠다.
“나와라, 계집.”
제사장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그녀가 끌려나오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의 전리품이니 왕에게 바치는 것 역시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본래라면 어전에 바치는 것이니 최소한 씻기기라도 해 끌고 가겠지만 일이 너무 급박하군. 빨리 들여라.”
성현은 의기양양한 자세로 그녀를 끌고 어전에 들어섰다. 좌우로 군사가 늘어서 도망갈 수 없었기에 손과 발은 풀렸다. 연화는 힘이 없어 비틀거리는 발로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불안감이 뇌리를 잠식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연화는 넓은 알현실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좌우에 늘어선 내관과 어의, 시녀와 시종들이 그녀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높은 옥좌에 앉은 왕의 눈이 가장 차가웠다. 그녀가 정말 치유력을 지니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허풍쟁이인지 가늠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더럽고 작은 여자로군.”
만희의 입에서 나온 첫말은 비웃음이었다. 그는 흥미 없다는 얼굴로 연화를 훑어보았다.
“그래……. 이것이 그 죄인의 딸이냐.”
“그렇사옵니다, 전하.”
제사장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어, 그를 넘어 왕의 호의를 살 수 있게 되어 그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만희는 상에도 인색하지 않은 왕이니 재물과 보화를 듬뿍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흐뭇함에 성현은 싱글벙글하며 왕의 앞에 무릎 꿇은 연화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일말의 불안감도 들어 있었다.
“약사여래의 가호를 받은 어미와 똑같이 치유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한 번 시험해 보심이.”
“치유의 능력! 그렇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이지.”
왕 만희는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중얼거렸다. 두통이 머릿속에서 뇌 구석구석을 압박하는 것 같았다. 지독한 고통에 그는 커다란 덩치를 웅크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곁에 선 제사장이 눈치를 보았다. 자칫하면 눈 먼 칼부림에 피바람이 날 수도 있었다.
“너, 진짜로 이능이 있는 계집이냐.”
“황공하오나 그렇사옵니다…….”
연화가 뻑뻑한 목으로 간신히 대답했다. 성현은 두 손을 맞잡고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했다. 연화의 치유 능력이 사실이 아닐까 두려웠다.
만희의 새빨간 적안이 두통으로 가늘어졌다. 흰자에 핏발이 서서 마치 눈 전체가 붉은 것처럼 보였다. 악귀 같은 모습에 늘어선 백관과 제사장이 시선을 피했다.
“빌어먹을.”
만희가 히죽거리고 웃으며 욕설을 뱉었다. 그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굴렸다. 곁에 있는 누군가라도 죽이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희생양을 찾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현이 급히 연화를 불렀다.
“여, 여봐라. 어서 전하께 네 능력을 보여드려라.”
그 말에 만희의 눈이 연화에게 고정되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그마한 여인. 그녀는 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낯빛이 마음에 들어서 만희가 두통 속에서도 피식 웃었다.
그는 손을 내밀었다.
“가까이 오라.”
연화는 흠칫했다. 거대한 체구, 검은 머리카락과 거무스름하게 짙은 피부. 그 위에서 번들거리는 적안은 마치 악귀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무섭다고 도망갈 수 없었다.
“어서, 어서 가까이…….”
그녀를 이끄는 내관의 손에 의해 연화는 왕의 바로 앞까지 가서 무릎을 꿇었다. 처음으로 가까운 곳에서 본 왕은 엄청나게 큰 덩치에 길게 찢어진 눈을 한 사내였다. 새빨간 눈동자가 연화를 훑어보았다.
두통 때문인지 완전히 일그러진 그 얼굴을 보고 연화는 순간 두려움에 찼다. 그의 눈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파충류의 것처럼 보였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눈만 보면 생명 없는 그림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연화에게는 그의 고통이 느껴졌다. 뇌에서부터 시작해 머리 전체를 짓누르는 날카로운 통증.
“왕께서는 지금 두통으로 고통받고 계신다. 네가 가진 능력으로 무언가 할 수 있지 않느냐?”
성현이 초조하게 물었다. 만약 두통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연화의 목이 가장 처음 베어지겠지만 그 다음 순번이 자신이 아니라는 확언을 할 수 없었다. 왕은 사람을 벨 이유를 만들어 내는 사내였다. 그는 옷 안에서 떨려오는 무릎에 힘을 주었다.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연화는 두려움을 참으며 말했다. 왕의 새빨간 눈동자는 그녀의 얼굴을 탐색하듯 훑어보고 있었다. 두통을 견디느라 얼굴이 일그러진 채였다.
언제든 다른 이를 해칠 수 있는 자다. 연화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내의 눈에는 자비심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무감정하게 앞에 있는 인간의 쓸모를 탐색할 뿐이었다. 걸친 옷은 화려했고 거무스름한 피부 위로 흘러내리는 흑발은 잘 정돈되어 있었으나 만희는 마치 황야를 떠도는 야수 같은 모습이었다. 언제 인간의 목덜미를 물어뜯을까 시기만 엿보고 있는.
무섭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시도는 해볼 수 있사오나 전하의 옥체에 제가 손을 대어야 하니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처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잠시 시간을 들이자 그녀의 눈에는 왕의 고통과 그 뒤에 있는 원인이 흐릿하게 보였다.
‘……너무 많은 죽음이 있어.’
섭리와는 다른, 죽지 않았어야 하는 인물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
셀 수 없이 많은 목숨들이 그의 목에 매달려 있었다. 머리에, 어깨에, 목에, 갈퀴 같은 흰 손들이 그를 쥐고 있었다.
죄 없는, 죽지 말았어야 할 자들의 목숨값.
왕은 그 죄를 지금 받고 있는 것이다.
연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두통만이면 차라리 다행이겠으나.’
시일이 지나면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연화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섭리를 어긴 죄는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었다.
금수의 붉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