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성현은 입가를 비틀며 그녀를 비웃었다.
“천한 주제에 제 어미를 생각하는 마음은 있다 이것인가. 허나 네 어미는 피도 섞이지 않은 자라 하였지.”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해도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십니다…….”
“동정심을 얻기 위한 연기가 아니냐? 너 같은 천것이 도리를 따진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구나!”
제사장이 지팡이로 땅을 쾅쾅 쳤다. 여전히 노기가 어린 얼굴이었다.
“저것의 어미를 끌고 와라!”
곧 병사들의 손에 연화의 양어머니가 끌려왔다. 노파는 딸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많은 어머니는 그사이 너무 여위고 초췌해져 있었다.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얼굴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연화야, 연화야.”
“어머니.”
내 딸, 하면서 어머니의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눈가가 붉었다. 연화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둘 모두 결박당한 채 거리가 너무 멀어 손도 잡을 수 없었다.
제사장은 잔인한 눈을 번득이고 있었고 지금 울어서 도움이 될 일은 없었다. 그녀는 다만 자리에 엎드려 제사장의 자비를 바랄 뿐이었다.
“제발…… 어머니만은 놓아주십시오. 잘못을 저지른 죄인은 저이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금수라 할지라도 정은 있다 이건가.”
제사장이 두 모녀의 얼굴을 보면서 혀를 찼다. 두 사람의 슬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금수들이 오히려 다정하고 자비로웠지요.’
연화는 떠나온 신령계의 신령들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적대적인 신령들도 있었으나 대다수 부드럽고 상냥했다. 그것이 백호에 대한 경의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궁의 시녀들과 호접은 그녀를 아껴주었다. 적어도 천민이기 때문에 그녀를 경멸하는 일은 없었다.
“부디, 어리석은 저희를 살피시어.”
비감함을 숨기고 연화는 몸을 낮췄다. 창백하게 질린 작은 여인을 보던 제사장은 코웃음을 쳤다.
“어리석다는 것을 알긴 아는구나. 오늘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예 이 마을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렸을 텐데.”
“…….”
“건방진 네년을 기다려준 것을 감사히 여겨라.”
“나리의 자비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천하고 아둔한 소녀가 나리의 부름을 받고도 늦게 왔으니 벌은 제게 주시옵고 부디 어머니와 다른 이들에게는 벌을 거두어주시옵소서.”
“혀에 기름을 발랐나 말은 번지르르하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천한 계집에게 농락당했다는 기분에 분노는 여전히 머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는 흘긋 늙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줄줄 울면서 간신히 몸을 지탱해 서 있었다. 저토록 늙고 지쳤으니 저항할 수도 없을 모양이었다. 왕이 데려오라 명한 계집이 또 도망가지 못하도록 저 천것을 잡아둘 필요가 있었다.
“되었다고 할 때까지 저 노파를 다시 가두어두어라.”
양어머니는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리, 제 딸을 어쩌려 그러십니까. 나리 제발 자비를.”
“어머니, 그러지 마세요. 나리의 말을 따르세요, 어머니.”
노파는 땅 위에 엎드렸으나 제사장은 비웃을 뿐이었다.
“시끄럽군. 저년도 목을 칠까?”
그 때 소식을 들은 촌장이 관아로 뛰어들어 왔다. 급히 달려왔는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그는 연화와 양어머니를 번갈아 보다가 덜덜 떨면서도 자리에 꿇었다.
“나, 나리, 제발……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십쇼.”
“이건 또 뭔가. 나름대로 촌장이랍시고 참견하는 건가?”
제사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작고 더러운 천민 부락의 촌장이라고 발 벗고 나서는 꼬락서니가 우스웠다. 촌장은 겁이 나서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제사장 나리, 저 모녀는 아주 얌전하고 상냥하게 살던 이들입니다. 왕께서 찾으시는데 나오지 않았던 것은 죄라 하겠으나 이제라도 나타났으니 부디 참작해 주셨으면…….”
“정말 시끄럽구나,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는 소리를 질렀다. 얼굴에 땟국물은 줄줄 흐르는 주제에 말이 많다. 제사장은 그의 권위에 이견을 제시하는 이를 가장 싫어했다. 성현은 누가 뭐래도 왕 다음 가는 권세를 지닌 수국의 제사장이었다.
“저자를 옥에 잡아넣어라!”
“예!”
군졸들이 그의 양팔을 잡아 끌고 갔다. 촌장이 떨면서 빌었으나 시끄럽다고 노한 제사장의 한마디에 병사들의 손에 입이 막혔다. 그와 함께 양어머니도 옥으로 다시 끌려 들어갔다. 그들이 끌려간 자국이 모래 바닥에 고스란히 남았다.
연화는 그 참상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신령계로 사라졌던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애초에 백호를 만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어머니의 손수건을 포기했다면…… 아무도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얌전히 마을에 있다가 왕의 부름에 따라갔다면.
성현이 지팡이를 바닥에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왕께서 기다리신다! 저 계집을 당장 죄인의 마차에 실어라. 손목과 발목을 모두 묶어 꼼짝도 하지 못하도록 하라!”
성현의 명에 병사들이 몰려와 그녀의 발목에 밧줄을 걸었다. 손 한 뼘만큼의 길이도 안 되는 밧줄에 묶여 그녀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채로 마차로 끌려갔다.
양어머니가 옥의 창살 너머로 그 모습을 보고 목을 놓아 울었다. 그 울음소리를 들은 체 만 체하며 제사장은 서둘러 자신의 마차에 올랐다. 그는 관리를 불러 명했다.
“난 먼저 전하를 뵈러 갈 것이니 내 짐들은 싸서 뒤따라 보내라. 그리고…….”
그는 흘긋 뒤편을 바라보았다. 넋을 잃은 촌장과 울고 있는 노파, 관아 바깥 거리에 유령처럼 서 있는 촌락의 사람들.
이들을 살려두어서 무엇 하겠는가. 게다가 왕의 명이 있었다. 만약 연화를 발견하게 되면 천민 부락은 알아서 처리하라는.
저 계집이 어찌 혼자 숨었겠는가. 작고 약해빠진 년은 숲으로 혼자 들어가는 순간 짐승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필시 저 천것들이 이리저리 숨기고 도망시켜 사라졌던 게지.
그리 생각하고 성현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내가 떠나고 사흘 뒤쯤 날을 잡아 마을을 불태우고 천것들을 모두 죽여라.”
명을 받는 관리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자 제사장은 냉정하게 말을 붙였다.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비밀에 부쳤다가 도망갔던 년놈들이 모두 돌아오거들랑 그때 전부 처형해라. 방법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이 마을에서 나온 재물은 군졸들이 나눠가져라. 묵과해 주마.”
관리의 얼굴에 은밀한 웃음이 번졌다. 아무리 가난한 천민 부락이라 하지만 마을 하나를 털면 재물은 제법 나올 것이다. 하다못해 솥 단지 하나가 나와도 녹여서 팔아버리면 금이 된다. 그는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제사장님.”
“확실히 이행해라.”
제사장은 명을 내리고 곧 마차를 출발시켰다.
앞서 가는 죄인의 마차 속에서 연화는 하릴없이 흔들렸다. 말끔히 차려입고 나왔던, 호접의 손길이 닿은 치마저고리는 군졸들의 거친 손길에 마구 구겨지고 더럽혀졌다. 발목과 손목이 모두 묶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멀거니 나무창살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이 흐렸다. 때때로 구름 사이 해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그 희미한 빛살을 보며 연화는 백호를 생각했다. 그분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그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염치없다고 느끼면서도 그리움은 멈출 수가 없었다. 고초를 당할 양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의 생각도 멈출 수가 없었다.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 전신을 짓눌렀다.
서너 시간을 달리자 가파른 산골에서 벗어났다. 길이 험해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던 일행은 그 때부터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높은 속도로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묶인 손발 때문에 제대로 운신도 못 한 채 뻣뻣하게 나뒹굴어 있는 연화를, 곁에서 말을 달리는 군졸들이 킬킬대며 훑어보았다. 천민의 여인이란 가장 넘보기 쉬운 상대다. 만약 왕이 부른 게 아니었다면 연화 역시 당장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애써 눈을 피하고 바닥만을 바라보았다.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해가 뉘엿거리며 넘어갈 때쯤이 되어 마차가 멎었다. 저녁식사 때문인지 군졸들이 내려서 재빠르게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었다. 고소한 냄새가 피어올랐지만 입맛은 전혀 없어서 연화는 멍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날이 어두워져 불을 피운 곳만 밝았다.
그 때 마차 안으로 그림자가 졌다.
“죄인 주제에 끼니를 찾아 먹고 싶은 거냐?”
비웃는 말투는 제사장의 것이었다. 배가 나온 사내는 수염을 비틀면서 연화를 바라보았다. 나무 창살 너머로 숫제 동물을 구경하는 듯한 눈길이었다.
묶인 채 몇 시간째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너무 아파서 연화는 입을 열었다.
“부디 나리, 밧줄을 조금만 여유 있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몸이 너무나 아파서…….”
“흠, 몸이 아프다?”
조금의 자비를 바라는 말에도 제사장은 히죽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며칠 동안이나 그를 약 올리며 사라졌던 계집 따위에게 베풀 자비는 없었다.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고, 부탁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연화는 슬프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앞에 창살 사이로 따뜻한 죽이 담긴 대접이 들어왔다. 입맛이 없어서 연화는 그 대접을 바라보기만 했다. 대접을 가지고 온 군졸은 너무 멀어서 그런가 하는 얼굴로 조금 더 가까이 밀어놓았다.
곁에서 제사장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뭘 하느냐, 먹지 않고?”
“……예…….”
버티기 위해서는 뭐라도 먹어야 한다. 그건 연화도 알았다. 그녀는 묶인 팔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마치 기듯이 그릇 쪽으로 다가갔다.
“밧줄을 풀까요? 식사 때만이라도.”
군졸이 묻자 제사장은 호통을 쳤다.
“감히 죄인의 밧줄을 함부로 풀겠다는 게냐! 내 명이 없다면 생각도 말아라!”
괜히 나섰다가 싫은 소리만 얻어먹은 군졸은 급히 꽁무니를 뺐다. 제사장의 목소리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어 근처에 선 일행들이 전부 창살 안의 연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빨리 먹어라. 뭘 하고 있는 게지?”
“…….”
이대로 먹으라는 건 개처럼 기어가 그릇을 핥으라는 뜻이다. 연화는 제사장의 말을 알아듣고 치를 떨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최소한의 존엄성도 버린 채 짐승처럼 식사를 하라니.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손아귀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먹지 않는다고 버텨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녀가 굶어서 잘못된다면 고초를 겪는 건 다름 아닌 제사장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토록 안달을 내며 연화를 찾지 않았는가. 사람까지 해쳐 가면서 말이다.
‘아니, 아니지……. 그럴 수는 없어.’
하지만 연화는 마음을 다잡았다.
금수의 붉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