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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의 붉은 달-41화 (41/113)

41화

“왕께서 내게 연화를 찾아오라 명하셨다. 그 여자애는 죄인 아니냐, 어쩌자고 마을 바깥으로 나가게 둔 게야!”

성현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흰 수염 끝이 바짝 서서 파르르 떨렸다.

마당 밖에서 그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대체 연화를 저렇게까지 찾는 이유가 뭐야?”

“왕이 아주 색에 미친 변태라던데 그래서인가…….”

“그래, 연화가 미색이긴 하지. 소문에 정말 더러운 성벽이 있다던데……. 주지육림을 펼쳐놓고 있다지 뭔가.”

천민 부락의 사람들은 이미 왕에게 반감이 깊은 자들이다. 그들의 눈에 마을 유일의 치유사인 연화를 끌고 가려는 제사장과 왕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들이 무어라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제사장은 소리를 질렀다.

“어미가 왕을 거역한 죄인이었다. 그 딸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두다니!”

촌장이 굽신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그는 아무래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눈치챘다. 높은 나으리의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그, 그…… 그게…… 밤이 되면 항상 집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제삿날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산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요. 그 애의 어머니가 그렇게 말을…….”

“어머니? 모친은 죽었다 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만 그 이후에 받아서 키운 양모가 있습니다요.”

“그 여자를 데려와라.”

성현은 불쾌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단상 위 높게 앉은 제사장은 초조한 손짓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머지않아 마당으로 늙은 여인 한 명이 끌려왔다. 병사들이 끌고 와 무릎 꿇린 여자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서 제사장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고령의 노파였다.

“연화의 양모입니다, 워낙 고령이니 너무 거칠게는…….”

심약해 보이는 수령이 작은 소리로 아뢰었지만 제사장은 차갑게 그를 내쳤다. 성현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너와 함께 살던 연화라는 죄인은 어디로 도망갔느냐.”

“도망이라니……. 제삿날 산속으로 들어간 마지막 모습만 보았습니다, 나으리.”

“죄인이니 신분을 속이고 살기 위해 도망시킨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애는 언제나 해가 떨어지면 집에 돌아오는 아이였는데……. 산속에 놓고 온 물건이 있다며 다시 들어간 후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갔는지도 모릅니다…….”

연화의 양어머니는 의연하게 말하려 애썼지만 그녀의 주름진 뺨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십 년을 넘도록 고이 길러온 딸과 같은 아이가 산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누구도 그녀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깊은 산맥에는 지나치게 많은 맹수들이 살았다. 한밤중에 산에 들어간 자들 중 살아 돌아온 이는 거의 없다.

제사장은 수염을 세우면서 화를 냈다.

“거짓을 고하지 마라! 그럴 리가 없다. 도망을 시켰던 게지!”

“아닙니다, 아닙니다…….”

누구 하나라도 그 대신 죄를 받을 자를 만들어야 했다. 성현 자신이 제사장이었으니 천민 한 명 정도로는 어림없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호통을 쳤다.

“내 왕께 말씀드려 이 마을의 모든 자들을 전부 참수시키겠다! 감히 대역죄인을 도망시키다니!”

성현은 분노하며 손에 든 지팡이를 땅에 탕탕 내리쳤다. 이 마을 사람들 전원을 죄인으로 만들어 벌을 받도록 하겠다. 제사장의 뚱뚱한 뺨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역시 이 산맥이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 잘 알았다. 만약 정말 연화가 죽어버렸다면 데리고 갈 치유사가 전혀 없다. 왕의 분노는 전부 일을 시킨 제게 돌아올 것이다. 제사장이라봐야 분노한 왕 앞에서는 쳐야 할 목 하나일 뿐이다.

만약 연화를 데리고 갈 수 없다면 대신 이 마을이라도 몰살시켜야 한다. 그래야 만희의 기분이나마 풀릴 것이었다.

“어떻게든 데리고 와라! 그렇지 않다면 전부 참수형에 처하겠노라! 왕께서 자비롭게도 얼마간의 말미를 주셨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벌을 내리겠다!”

제사장은 떨면서 엎드린 연화의 양어머니를 향해 손짓을 했다.

“저년은 옥에 처넣어라! 죄인이 돌아올 때까지 움직일 수 없도록 족쇄를 채워라!”

성현은 의자에 앉아 팔걸이를 두드렸다. 화와 신경질과 짜증과 조바심이 제사장의 목줄을 옥죄고 있었다. 병사들이 전부 명에 따라 마을 사람들을 내치고 연화의 양어머니를 옥으로 끌고 들어간 이후에도 그는 초조하게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대체 어떻게 마을을 다스렸기에 이 모양인가! 죄인을 도망시키고 그 어미가 높은 자리를 능멸하다니!”

성현은 수령에게 소리를 질렀다. 심약하지만 나름대로 자비로운 성품의 수령은 쩔쩔매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의 곁에서 촌장도 어쩔 줄 모르며 엎드려 있었다.

제사장 성현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하늘 위로 작은 새 한 마리가 아까부터 맴돌고 있었다. 관아의 하늘 위로 낮게 날던 새는 곧 허공 중으로 사라졌다.

***

“……이런.”

묘우는 조금 곤란한 얼굴로 새의 말을 들었다. 날짐승은 까만 눈을 또륵또륵 굴리면서 재잘대었다.

묘우는 과연 이 소식을 연화에게 전해야 하는가, 아니면 백호에게 전해야 하는가 고민했다.

만약 백호에게 전달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는 사방신 중 가장 다혈질이다.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있다면 그대로 수국 전체를 밟으러 갈지도 모른다. 청룡과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연화 님이 내려가 잠시 사태를 진정시킨다면 될 텐데.’

묘우는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백호의 발정기는 이미 끝났다. 한 달은 채 지나지 않았으나 붉은 달은 먼저 졌다. 지금 연화가 빠져나간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인간 여자가 계속해서 백호 님 곁에 있는 것도 좋을 일은 아니고.’

백호의 곁에는 역시 신령이나 선녀가 어울린다. 저 거대한 존재를 감당하는 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연화는 나쁘지 않은 신부였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반려다.

연화를 놓지 않으려는 백호의 행동을 묘우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반길 수도 없었다. 수명이 극도로 짧은 인간의 반려를 얻는다면, 남은 그 긴 세월을 어쩌려고 저러시는가.

“저, 부르셨나요. 묘우 님.”

방 어귀에 연화가 서서 머뭇거렸다. 묘우가 선 토실의 안은 어둡고 축축했다. 망설이면서 발을 들인 그녀에게, 묘우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방금 알게 된 소식인데……. 아무래도 연화 님께는 말씀을 드려야 할 듯싶어서요.”

여자를 인간계로 보낼 기회다. 묘우는 뱀의 일족과 암계를 꾀하긴 하였으나 연화 개인에게 나쁜 마음은 없었다. 단지 인간 여자가 사방신의 반려 자리에 앉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아마도 다수의 신령이 거기에 동의할 것이다. 신의 반려는 신령에게 돌아가야 한다.

게다가 지금 백호는 상당히 진심으로 그녀를 대하는 것 같아서 더 문제였다.

묘우의 가느다랗고 위로 치켜 올라간 눈을 보면서 연화는 손을 모았다. 그는 상당한 미남자였고 상냥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고 대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제 전령 새가 마을의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마을. 연화 님이 계셨던 마을 말입니다.”

“아.”

연화는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샘의 정령과 만났을 때만 해도 심각했는데, 그사이 몇 가지 일을 겪느라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특별한 일이라도 있나요?”

연화는 애써 목소리를 평온하게 유지했다. 묘우가 일부러 소식을 전해주려는 것을 보면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양손을 꼭 말아 쥐었다.

“그러니까……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수국의 중앙에서 관리가 나와 연화 님을 찾는다고 하는군요. 어째서인지까지는 전령 새가 알아오지 못했습니다만…….”

“그, 그렇군요.”

“마을에서는 연화 님이 죽은 것으로 아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중앙 관리의 명을 받들지 못하는 상황이라 난처해하고 있다는군요.”

연화는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를……. 중앙에서 절 찾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인데요…….”

연화는 천민 부락에서도 양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가난한 처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를 중앙에서 찾을 일 같은 건 없었다. 단 하나, 그녀의 친어머니를 제외한다면.

“……혹시 어머니 때문인지…….”

그녀는 고민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높은 자리의 나으리가 천민 부락까지 찾아와 연화를 찾는다. 좋은 일일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어머니가 천민 부락으로 쫓겨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더욱 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찾지 못하면 양어머니 되시는 분과 마을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겠다고 관리가 엄포를 놓았다고 합니다.”

“네?”

연화는 눈을 크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녀는 입을 달싹였다. 묘우는 안되었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인간계에서 신분이 높은 자들은 자신의 뜻이 어긋나면 신분이 낮은 자들을 어지간히 닦달하는 모양입니다. 꽤나 급한 일인지 지금 당장 데려오라고 난리를 쳤다고.”

“아, 세상에. 어째서…….”

“백호 님께 말씀을 드릴 수는 없어서……. 못마땅하면 인간계를 전부 부수어버릴 분이시라서요.”

연화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에 약간 비틀거렸다. 그녀가 없어져서 양어머니와 마을 전부가 벌을 받는다. 아마도 노비가 되거나,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미 천민까지 내려온 자들, 그 이상의 벌을 받으려면 일신의 자유를 완전히 뺏겨 사람가축이 되는 노비까지 추락하거나 목숨을 내놓는 것밖에 없다. 연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를 왜 찾는지 알 수는 없다고 하셨지요……. 아니, 그보다 언제까지 제가 가야 하는지 그것도 알 수가 없네요.”

“관리가 온 지 사흘 남짓이 되었는데 하루씩 기간을 늘리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합니다. 찾는 것은 수국의 왕이구요.”

“국왕전하께서요……?”

연화는 어머니의 일 때문일 거라고 확신했다. 어머니의 일, 혹은 그녀의 능력 때문에.

금수의 붉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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