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아, 아아!”
정성스러운 애무에 곧 연화가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비명 같은 신음성을 내면서 절정에 달했다. 남자는 가느다란 새 같은 여인이 절정에 떠는 것을 느끼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신음하는 순간 백호는 자신의 양기를 다시 한 번 한껏 불어넣었다. 이번에는 아주 많이, 연화의 배고픈 음기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히.
연화는 영문도 모르고 골이 흔들리는 것 같은 절정에 올랐다. 그녀의 가느다란 허벅지 사이로 애액이 흘러내렸다.
“백, 백호 님…….”
연화가 허덕이며 간신히 신음처럼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백호는 미소를 지으며 연화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자거라, 아침까지.”
깃털 같은 잠이 연화의 눈꺼풀 위로 내려앉았다. 백호는 그녀가 속절없이 곯아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연화를 소중하게 품 안에 안았다.
***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있던 소란을 전혀 모르는 듯 숲은 고요했다. 날카롭고 높은 절벽 위의 백호의 궁 역시 새의 지저귐과 신령들의 속삭임 외에는 어떤 소리도 없었다.
연화는 서늘한 바람이 얼굴 위를 스치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손목의 피부가 지독히 아팠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연화의 치유력은 본인 스스로에게는 쓸 수 없었다. 그걸 두고 백호는 ‘약사여래의 악취미적인 자기희생 취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못마땅하게 평했다.
하지만 밤사이 백호가 신령계의 고약을 펴 발라두었는지 손목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찢어졌던 상처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물어 있었다.
그녀는 느른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서 손목을 살펴보다가 일어나 앉았다. 침실로 들어오던 백호가 연화를 보고 미소 지었다.
“일어났느냐.”
“좋은 아침이에요, 백호 님.”
여자는 아침 햇살 속에서 마주 미소를 지었다. 투명한 공기 속에서 그녀는 마치 날아갈 듯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녀가 사라질까 무서워서 백호는 얼른 다가와서 그녀의 곁에 앉았다.
“몸은 괜찮은 거냐?”
“괜찮습니다……. 다만 백호 님께 추한 모습을 보인 듯해서…….”
연화는 눈을 내렸다. 풀이 죽은 여인을 바라보다가 백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길고 부드러운 연화의 흑발이 바람에 물결처럼 나부꼈다.
그는 조금 어물쩡거리다가 품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평소와 다르게 꿈지럭거리는 백호의 행동에 연화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일전, 네가 소중히 여기던 것이라…….”
백호의 품에서 나온 것은 자그마한 손수건이었다. 연화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걸 어떻게…….”
“지난 며칠간 숲을 찾았다. 처음 우리가 만났던 숲 말이다. 그…… 제사상 있던 자리부터 움직인 길을 찾았더니 있더구나.”
“세상에.”
연화는 손수건을 받아 들고 품에 안았다. 자그마한 꽃이 수놓인 깨끗하고 예쁜 흰 손수건. 어머니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유일한 유품이었다.
손 안의 비단손수건은 나비처럼 가볍고 깨끗했다. 오래전 세상에서 떠난 어머니처럼 그렇게 깨끗했다.
연화는 갑자기 몰려오는 그리움에 잠시 말을 잃었다. 모친의 유일한 유품을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만난 듯 슬프고 기뻤다.
“찾았던 물건이 맞지?”
“네……. 어머니 유품이어서요.”
연화는 손수건을 만지작거렸다. 설마 백호가 이 손수건을 찾아 돌려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해서 목이 막혔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느낌과 눈물이 흐를 것 같은 기분이 공존했다. 달콤하면서 슬픈 기분.
“찾느라 애썼다. 산속을 온통 헤집었어. 신령들이 고생 좀 했지.”
“감사, 감사합니다…….”
백호는 머쓱하게 턱을 긁었다. 연화의 큰 눈은 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기뻐할 걸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나 감사를 받을 줄은 몰라서 그는 다소 쑥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잠시 멀어진 관계를 되돌리고자 행한 일의 효과가 너무 좋아, 백호는 눈을 굴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연화는 손수건을 고이 접어 머리맡에 놓았다.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빛이 나는 화려한 백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의 희디흰 피부가 보였다. 동공이 작은 물빛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그녀는 그가 보여준 작은 정성에 마음이 울렸다.
“백호 님.”
차마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것이 사랑이라 확신하였으나, 그것을 밖으로 꺼내어 말할 수 없었다. 연화는 눈물을 참으면서 그의 품 안으로 무작정 머리를 묻고 파고들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야, 하니까.’
연화는 조심히 백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말 외에 이런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백호의 반려라지만 연화는 가진 것 없는 한낱 인간이었고 백호는 가장 강대한 사방신. 하지만 체온이라면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백호는 눈을 크게 떴다. 연화는 수줍음이 많아 제정신으로 먼저 입을 맞추는 것은 참 드문 일이다. 아직 공포에 떨리고 있을 몸을 조심스럽게 껴안아 떼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자신에게 매달렸고 백호는 부드럽게 그녀를 도닥였다.
연화의 작은 몸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달빛 아래에서 그녀는 첫날밤과 꼭 같이 여리고 아름답다. 매끄러운 백옥 같은 피부 위로 입술을 내리면서 백호는 눈을 감았다.
많은 발정기를 거쳐 왔으나 여태의 반려들과는 예를 차리는 관계였다. 붉은 달이 지고 그녀들을 돌려보내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연화를 떠나보내는 상상을 하자 그는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았다. 절대로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유순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강단 있고 스스로의 생각이 있는 여자였다. 백호, 사방신의 하나. 산의 주인이자 초목의 주인. 하지만 연화는 부드럽고 고요하게 그를 품었다.
백호는 연화가 마음에 들었다. 아니, 마음에 든다고 표현하는 것도 우스울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발정기이니 그런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이제는 그것이 아니었음을 안다.
“정말 이상한 일이로구나.”
남자가 속삭였다. 그의 뜨겁고 깊은 숨결에 연화의 긴 속눈썹이 파닥였다. 달콤한 건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건가. 여인의 표정은 미묘하고 알기 힘들었다.
어쩌면 연화 자신은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백호는 자신이 멋대로 여인을 끌고 왔던 밤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남자는 천천히 눈을 내려서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려 했지만 연화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빗나가는 시선 사이, 연화의 깊은 연정은 백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남자는 그녀가 양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을 참고 이곳에 있다고 생각했고 여자는 남자에게 인간 주제에 신을 사랑하게 된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았을까 조마조마했다.
‘사방신이라 하여 어느 여인이나 마음을 주리라는 법은 없지.’
백호는 다소 쓰게 입맛을 다시고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잘해준다면, 연화는 마음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양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 할지도 모른다. 샘의 정령의 도움이 있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
백호는 조심스럽게 연화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붙이고, 커다란 손으로 연화의 부드러운 피부 위를 매만졌다. 여인의 모양 좋은 가슴은 백호의 한 손에 잡혔다. 흰 피부에 말랑한 가슴을 만지면서 그는 봉긋 솟은 분홍색의 유두를 입 안에 머금었다.
“으응…….”
혀로 예민한 피부를 간지르는 행동에 연화가 몸을 비틀었다. 가느다란 흉곽을 손 안에 잡아 품 안에 넣고 남자는 망설임 없이 여인의 두 다리를 가르고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백호의 고개가 숙여져 여인의 음부에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그의 두텁고 뜨거운 혀가 예민하고 부드러운 연화의 은밀한 피부 위를 훑었다.
“흣……! 흑.”
가느다란 틈새로 혀끝을 밀어 넣자 그녀에게서 억눌린 신음성이 새었다. 소리를 편하게 내라 그렇게 말을 해보아도 연화는 항상 입을 다물고 소리를 낮추려 노력했다.
백호는 천천히 혀를 움직였다. 그렇지 않아도 습했던 연화의 음부가 점점 더 깊이 젖어들었다. 애액이 음모로 스미는 것을 느끼면서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빨리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연화는 입을 꼭 다물고 백호를 올려다보았다. 그토록 부끄럽고 수줍었던, 밝은 세상에서의 정사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수줍음보다 먼저 가슴 아픔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연정을 품어버린 남자와 결코 맺어질 수는 없는 사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인간과 신의 간극은 노비와 황제의 것보다 크다.
여인은 가느다란 다리를 뻗어 백호의 허리에 감았다.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에 백호는 놀란 웃음을 짓다가 곧 불이 붙어 하의를 풀어헤쳤다. 허리춤으로 그의 거대한 양물이 드러났고 연화는 자신의 다리 사이에 닿는 물건을 느끼며 다시 입술을 앙다물었다.
곧 백호가 연화의 다리 사이를 뚫고 진입해 들어왔다.
“흐읏……. 하, 앙!”
평소보다 조금 더 거칠다. 눈앞이 환하게 보이는 아침 햇살 아래에서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높였다. 마치 뜨거운 불기둥이 아랫배 깊숙한 곳을 뚫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 깊은 곳, 몸 안 모든 곳이 전부 백호의 존재로 가득 차는 듯한 기분에 연화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숨이 가빠졌다. 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허릿짓에 속도를 높였다.
“응, 아…… 아! 아! 아앙! 앙!”
“연화, 연화야…….”
여인은 신음성을 더 참지 못하고 높이 비음을 냈다.
환한 오전의 하늘 아래 화려한 백발의 남자가 그녀를 뜨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선연한 눈동자 안에 담긴 것이, 정말 자신에 대한 연심이기를. 연화는 바랐지만 결코 그럴 수는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뱃속을 뜨겁게 두들기는 남자의 양물이 연화의 의식을 잠식해 갔다.
“백, 백호 님, 아읏……. 응! 아아! 아아앙!”
여인은 비명 같은 신음성을 지르며 절정에 올랐다. 아침햇살처럼 까마득히 높은 절정이었다. 남자가 그녀의 귓가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연화의 깊은 아랫배 안으로 뜨거운 양기를 분출했다.
금수의 붉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