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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의 붉은 달-30화 (30/113)

30화

“연화야.”

백호는 잠시 망설였다. 그녀의 감정이 고조되어 있을 때 몸을 나누어도 되는 것인가, 망설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화가 급히 손을 들어 백호의 옷깃을 벌리기 시작했을 때 생각은 사라졌다.

곁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정자는 벌레 우는 소리 외에는 적막할 정도로 고요했다. 백호는 재빨리 연화의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흰 허벅지를 드러냈다. 입맞춤을 깊이 하고, 그녀의 몸을 감쌌던 아름다운 짙은 색의 장포를 벗겨 내렸다.

희고 고운 어깨가 밤하늘 아래 드러났지만 바람은 그리 차지 않았다. 그녀는 팔을 들어 남자의 목에 매달렸다.

귓가와 턱, 목덜미, 쇄골에 입술을 찍으며 내려오다가 작고 소담한 젖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유두를 입에 머금고 굴리자 연화의 숨소리가 조금 커지면서 머리를 감싸 쥐어 온다. 백호의 긴 백발이 밑으로 흐트러져 내렸다. 달빛 아래 마치 금발처럼 보였다.

연화를 아예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백호는 그녀의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에서 손과 입을 떼지 못했다. 어딜 빨아도 단맛이 나는 것 같았다. 귓가에 입술이 스치면 작은 몸이 파득 떨면서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느다란 허리가 비틀리고,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며 허공을 찬다.

“하, 흣…….”

수없이 몸을 섞었지만 여전히 수줍은 여인은 신음을 크게 내지 못하고 작게 숨과 섞어 낸다. 백호는 그마저도 사랑스러워 그녀의 뺨을 더듬으며 입을 맞췄다.

벌린 허벅지 사이로 백호의 거대한 양물이 파고들었다. 몇 번이고 몸을 나눴지만 그 크기만큼은 절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응…….”

연화는 숨을 삼키며 백호의 어깨에 매달렸다. 충분히 젖고 이미 풀려 있는데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아랫배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밀려 올라가는 것 같았다.

꽉 차버린 몸 안이 낯설고 두렵다. 완전히 삽입된 뒤 연화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다.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벽은 완전히 확장되어 백호의 양물을 감싸고 옥죄었다. 남자는 숨을 삼키면서 연화를 끌어안았다.

“널 안을 때마다 내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자신의 불안정한 기분을 소리 내서 말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의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불안정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백호는 입술을 연화의 부드러운 흑발 위로 미끄러뜨리며 연신 조심스럽게 그녀를 어루만졌다.

“이……상해, 진다니요……?”

“나도 뭔지 모르겠어. 하지만…….”

남자는 여인을 안고 그녀의 맨 피부를 어루만졌다. 코끝에 감겨드는 연화의 체향이 부드럽고 달콤했다.

백호는 신이었고 이렇게 불안정한 기분을 느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세계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연화를 안고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듯 충만해졌다.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수없이 많았던 임시적인 반려들이 이런 기분을 준 적은 없었으니까.

밤에 힘입어서인지 연화는 대담하게 스스로 허리를 움직였다. 버거운 크기를 견디면서, 그녀는 힘겹게 허리를 돌렸다. 서툰데도 그것이 그 무엇보다 자극적이라서 백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대로 연화의 안에 전부 씨를 뿌리게 될 것 같았다.

“응, 흐으…….”

부족한 자극에 여인도 작게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밝은 달빛이 흰 피부를 물들였다. 그녀는 백호의 목에 매달려서 속삭였다.

“안아주세요. 백호 님…….”

백호가 기억하는 건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애써 자제하고 있던 본능이 그대로 둑이 무너진 바닷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장포를 정자 바닥에 펼치고, 그 위에 연화를 눕혔다. 남자는 형형한 눈으로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그 뒤는 둘 모두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달빛 아래, 검은 밤하늘에 감싸인 채로 두 사람은 마음껏 서로를 탐했다.

연화는 전에 없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백호에게 안겨들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두 다리는 백호의 단단한 허리를 휘어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몸이 폭력적일 정도로 파고들 때도 연화는 한껏 다리를 열어 기껍게 받아들였다.

여인의 손톱이 백호의 희고 매끈한 등에 붉은 상처를 남겼고, 연화의 몸에는 백호의 손자국이 이곳저곳에 남았다.

“아아, 아아아.”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내벽이 짓눌리고 확장되면서 그녀는 소리를 죽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울었다. 몇 번의 절정이 지나간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연화는 기진맥진해서 결국 백호에게 매달려 그만해달라고 애원했다.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든 백호가 더 이상의 정욕을 자제하고 그녀를 안아 들었다. 아직 한참 모자랐지만 더 이상 몰아붙였다가는 연화가 아예 일어나지 못할지도 몰랐다.

“흣, 흐읏…….”

숨은 한참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연화의 가느다랗고 연약한 몸이 자기 때문에 무리를 했을까 봐 백호는 조금 안절부절못했다.

중간에 잠시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열중해서 여인의 몸을 배려하지 못했다. 과연 그녀의 흰 피부에는 울긋불긋하게 자국이 잔뜩 남아서 내일 아침쯤 되면 엄청나게 화려해질 것 같았다.

땀 때문에 밤바람이 조금 찼다. 백호는 연화를 자신의 품 안에 넣어 냉기를 차단했다. 정자 나무바닥은 단단하지 않고 묘하게 포근할 만큼 말랑거렸다. 지친 정신에도 그것이 신기해 연화는 바닥을 손톱으로 눌러보았다.

“나무바닥이 부드럽네요.”

“고사한 연리지를 베어 만든 정자란다. 두 개의 나무가 한데 묶여 합쳐진, 기이한 나무지.”

“연리지의 이야기는 인간계에서도 알려져 있어요. 실제로 존재했던 거군요.”

“그래. 인간계에 있다는 연리지는 인간들이 억지로 엮어낸 것들이야. 신령계에도 한 경우뿐이었다.”

백호는 지친 여인의 뺨을 조심히 쓰다듬고 장포를 들어 그녀의 어깨를 덮어주었다.

“각 나무를 지키던 신령들 둘이 서로 사랑에 빠져 끌어안고 잠이 들 듯 세상을 떠났거든. 그래서 본체였던 나무들마저 서로를 끌어안은 형태가 되었단다.”

“그랬군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자 했지만, 신이 아닌 이상 영원의 약속은 거짓일 수밖에 없지. 그래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신령은 쌓아뒀던 도를 모두 잃고 바닥에 떨어지게 되는데, 두 나무는 추락도 헤어짐도 거부한 채 죽음으로 약속을 이루었다.”

연화는 부드러운 나뭇결을 쓰다듬었다. 끝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한 사랑의 일화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뺨을 댄 나무바닥에서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와 온기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당신들이 부러워요.’

연화는 속으로 나무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은 한 몸이 되어 정자를 지탱하고 있는, 누군지 모를 두 신령. 서로가 얽히고설켜 완전한 사랑을 이루어낸.

“신령계에서도 영원의 약속은 거짓일 수밖에 없는 거군요.”

그녀는 조금 서글픈 기분이 되어 중얼거렸다. 누구도 그녀에게 영원을 약속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마저 그 약속이 거짓이라니 슬펐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연화는 백호와의 생활 역시 끝이 있을 거라는 사실에, 그 끝이 아주 빨리 다가올 거라는 사실에 더 서글퍼져 따스한 나무바닥에 뺨을 기댔다. 곁에 있는 백호의 체온이 감사하면서도 외로웠다.

***

인간계의 절반은 청룡이, 또 다른 절반은 주작이 다스린다. 거대한 대륙에 여러 나라가 있었고 특히 청룡의 영토에는 수국이라는 이름의 나라가 오랜 기간 번영했다. 물이 많은 땅의 특성상 청룡이 유달리 수국을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 따위의 미신을 믿는다는 것이지.”

만희는 비웃었다.

“그리하여 이 왕가의 대가 이 모양으로 이어지게 되었지.”

사촌형을 살해하여 결국 만희가 거머쥔 왕의 자리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비단 그만이 아니다. 윗대에서도, 그리고 그 윗대에서도 서로를 죽이는 왕위 쟁탈전은 계속 있어왔다. 언제나 그들이 내세웠던 건 청룡의 가호였다.

“그래서 아무도 그 잘난 사방신의 가호는 받지 못했지 않나. 안 그런가?”

팔척장신인 왕은 이전에 무패의 장수이기도 했다.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두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신하들은 그의 발치에서 엎드려 움직이지 못했다. 함부로 고개를 들었다가는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 그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왕이었다.

만희는 감흥 없는 눈으로 석벽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 고발된 일가족이었다. 왕에게 바칠 곡식을 제대로 내지 않고 뒤로 빼돌렸다고 했던가.

보통이라면 관청의 관리가 판결했어야 할 일이었지만 외유를 나갔던 만희의 눈에 판결 장면이 보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일가족 중 스물 남짓 된 딸의 모습이 왕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었다.

제대로 치장하지 못하고 수수한, 더럽지만 꽤 청순한 이목구비였다. 만희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처연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일가족을 궁으로 들이라 했다.

왕이 가난한 이들을 구해주는가 해서 처음에 기뻐했던 일가족은, 궁의 정원으로 끌려와 석벽에 매달리면서 웃음이 사라졌다.

“나는 가난하고 무능력한 빈민들이 가장 싫다. 심지어 왕의 재산에 손을 대는 것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지.”

백관이 엎드려 있었으나 누구도 눈을 들지 않았다. 일가족의 죄는 벌하는 것이 타당하였으나 반면 이해할 수도 있는 범주였다.

만희의 폭정 때문에 수국의 많은 백성들이 빈민으로 전락했고 배를 주려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왕에게 올리는 세금과 공물의 부담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굶어죽지 않으려면 곡식을 빼돌려야 한다는 게 상식처럼 퍼질 지경이었다.

만희는 석벽으로 다가가 일가족을 살폈다. 수차례 직접 매질을 가해 전부 피칠갑이 된 상태였다. 여덟 명의 일가족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조부는 이미 숨이 끊어진 것인지 늘어져서 움직임이 없었다.

“송장을 치워라. 꼴 보기 싫구나.”

왕의 명에 군졸들이 나서 조부의 시체를 치웠다.

가장 매질을 적게 당한 스무 살 언저리의 손녀는 멀건 눈으로 멀어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무렇게나 수레에 실어 던져진 조부의 시신은 살점과 피로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만희는 채찍으로 매질하는 것을 좋아했고 팔척장신인 장수의 채찍질은 멀쩡한 젊은이들조차 세 대를 견뎌낼 수 없었다.

금수의 붉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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