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수의 붉은 달-19화 (19/113)

19화

그가 고개까지 기울이며 냄새를 맡다가 연화의 어깨에 코를 댔다.

“우, 우현 님?”

연화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조금씩 물러나 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달아오른 몸에 우현의 체취가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그녀는 침대 저편으로 물러나 앉았다. 다리 사이 깊은 곳에서 아릿하게 저림이 올라왔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감각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우현이 무릎을 침대 위에 짚으며 올라섰다. 그는 여전히 냄새를 찾으며 다가왔다. 커다란 남자의 손이 연화의 손목을 잡고 그 손바닥에 코와 입을 묻었다. 그녀의 향기를 느끼듯 그가 그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현 님, 이러시면……. 저, 잘 수 있게 나, 나가주세요.”

연화는 용기를 내서 손을 빼냈다. 열 때문에 손이 후들거리고 머릿속이 어지러웠지만 일단 이 사내를 내보내야 했다.

그녀 자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사내의 냄새, 사내의 체온을 찾아 몸이 움직이려 들고 있었다. 연화는 그 충동 자체가 올라온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여태껏 백호를 만나기 전까지 사내라곤 모르던 몸이었고, 이런 쾌락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단지 우현이 사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몸이 달아오르다니.

하지만 우현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와 연화의 몸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우현 님…… 제발.”

연화는 이제 거의 애원했다. 우현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뇌가 익어버릴 듯 열이 오르고 있었다. 눈앞은 계속해서 이지러졌고 피부가 옷깃에 스치는 것이 아플 정도로 예민했다.

그녀는 허벅지를 꽉 맞물렸다. 사내의 존재감에 다리가 저절로 벌어질 것 같아서 무서웠다. 비좁은 다리의 틈 사이로 축축한 느낌이 났다.

숨 쉬기가 벅찼다. 그녀가 몸을 굴려서 침대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것을 우현의 커다란 손이 잡았다.

연화는 그 뜨거운 손에 화상을 입는 것 같아 흠칫 놀라며 몸을 빼내려고 했다. 그녀도 뜨거웠는데 남자는 아예 비정상적인 체온이었다.

그는 연화를 끌어당겨 침대 위에 눌렀다.

“우현 님!”

“……냄새 좋아.”

남자의 커다란 검은 눈이 껌벅였다. 그는 홀린 듯 초점이 풀린 눈을 하고서 느리게 그녀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가늘게 떨고 있는 손목, 달아오른 피부, 벌어진 입술,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 그리고 그 밑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의 골반과 두 다리, 맞물린 틈 사이의…….

“암컷냄새.”

우현은 고개를 숙여 옷 위로 그녀의 다리 사이에 코를 박았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둔덕 아래로 은밀한 틈에 고스란히 덧씌워졌다. 밑에서 촉촉하게 젖은 여인의 체향이 올라왔고 우현은 그 냄새를 따라 코를 박고 그 근원에 입을 비볐다.

“우현 님! 이게 무슨!”

경악한 연화는 다리가 저절로 풀리는 것을 느끼며 애써 우현의 머리를 밀어내려 했지만 팔과 손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그를 밀어내다가 통하지 않자 발로 차도 우현은 느껴지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하지 마세요! 이, 이러지……!”

사내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치마를 걷고 들어갔다. 날씬하고 모양 좋은 종아리를 쓸어 올리는 손의 체온이 데일 듯 뜨거웠다. 남자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연화의 가는 발목과 종아리에 입을 맞췄다. 앞니로 긁고 자근자근 복숭아뼈를 씹었다.

연화는 비명을 지르며 그를 걷어찼지만 곧 그 다리마저 잡고 벌리고 들어왔다. 한 겹 잠옷 외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는 맨몸이 그의 앞에 완전히 드러났다.

“아……!”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발버둥 치며 저항한 것만으로도 몸은 힘이 빠져 헐떡거렸다. 그녀는 맨 허벅지를 짚는 남자의 뜨거운 손에 허리가 움찔거리는 것을 느끼고 숨을 들이켰다.

이건 자신의 몸이 아니다. 이렇게 낯선 감각은 느낀 적이 없었다. 심지어 백호가 안아줬을 때조차.

아니, 종류가 다르다. 백호가 만져줄 때는 그의 체온이, 그의 감정이 전해져 왔다. 비록 긴장되고 무섭더라도 그는 연화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만을 온전히 눈에 담았다. 그래서 그녀는 무섭고 부끄러워도 그에게 안기는 일을 싫어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까이에서 보자 우현의 눈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그에게 이성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남자는 계속해서 낮게 중얼거렸다.

“암컷은…… 내 거야. 이 암컷은…….”

“우현 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

거의 비명처럼 연화가 소리를 질렀다. 이쯤 되면 다른 경비병이라도 올라오지 않을까 그녀는 필사적으로 바랐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창문도 닫아놓았지만 이렇게까지 소란을 모를 일인가.

우현의 커다란 손이 우악스럽게 연화의 가슴을 주물렀다. 유두까지 봉긋하게 솟아올라 자극을 바라고 있던 가슴은 그의 한 손에 맞춤하게 들어갔다. 백호와는 완전히 다르게 거칠고 두툼한 손이 연화의 몸을 유린했다.

얇은 비단잠옷이 찢어졌다. 그는 이성이 없는 눈으로 발가벗겨진 연화의 맨 가슴을 보았다. 그가 손으로 주물러서 그녀의 가슴은 이미 발긋하게 손자국이 난 상태였다.

남자의 손이 그 위를 덮고 유두를 엄지손가락으로 둥글게 돌렸다. 연화가 그의 손을 떼어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작은 자극에도 이미 지독하게 예민해진 몸이 반응했다.

“싫, 으응……. 싫어……. 흣……!”

연화의 말끝에 신음과 울음이 섞였다. 싫다, 아무리 몸이 달아 있어도 백호가 아닌 사내에게 이렇듯 몸을 내주는 상황은 겪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발버둥을 쳤지만 우현은 곰 같은 덩치로 그녀를 내리 눌렀다. 자그마하고 흰 얼굴이 온통 땀으로 젖었다.

남자의 손이 가슴 밑 갈비뼈와 가는 허리, 매끈한 겨드랑이를 주물렀다. 아플 만큼 우악스러운 손길이었는데도 연화의 몸은 착실하게 그것을 자극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그의 손길을 애무로, 정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끔찍했다.

착실하게 달아올랐고 감각은 예민했다. 다리 사이에서 울컥하고 애액이 흘러나왔다. 남자가 내리누른 압박감에 허리가 들떴다.

“놓아주세요……!”

눈물이 흘러서 뺨을 온통 적셨다.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최소한 자신을 덮치는 사내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백호가 아닌 자가, 낯선 자가 자신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안으려 하는 광경을 맨 정신으로 버텨낼 수가 없었다.

사내의 두꺼운 손이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둔덕에 나 있는 음모가 애액에 젖어 그의 손가락 끝에 휘감겼다. 물기를 머금은 손가락으로 허벅지 안쪽을 더듬고 약한 관절 부위를 매만졌다. 저절로 몸이 비틀렸다.

“백호 님…….”

연화는 흐린 머릿속으로 백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보고 싶었고,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몸은 뜨겁고 과하게 달아올랐다. 정신이 빠르게 흐트러졌다.

***

백호는 시큰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뱀의 일족이란 정말로 제대로 놀 줄 모르는 자들이다. 몸이 낭창한 무희들이 나와 앞에서 춤을 추었고 음악이 연주되었지만 신은 지루한 얼굴이었다. 그는 자유롭게 앉아 술을 마시고 즐기는 종류의 연회를 더 좋아했고, 조금 더 떠들썩한 쪽을 선호했다. 이렇게 지나치게 형식화된 연회는 좋아하지 않았다.

자리마다 얇은 막이 내려져 있었고 연회장 안에는 은은한 향취가 떠돌았다. 뭔가 은밀한 분위기가 지하 전각 전체에 감돌았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사혈은 미소를 띄우며 그에게 술을 건넸다. 아주 독하고 맑은 술이다.

“연회는 마음에 드십니까?”

“술은 좋군.”

현재 분위기가 싫다는 기색을 지우지도 않고 백호는 돌려 말했다. 말뜻을 알아들은 사혈도 능구렁이처럼 웃었다.

“저희 술이 좋지요. 매우 독하니 조심해서 드십시오. 첫맛이 부드러워 잘 모르지만 몇 잔 뒤에는 모두가 정신을 잃습니다.”

“그런가? 확실히 좋은 술이야. 내 궁으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가고 싶을 정도로.”

“몇 병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백호는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각 일족의 대표자나 원로들은 공물을 준비해 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이렇게 직접 와서 공물을 가져가 주겠다는데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다. 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과연 맛이 좋아.”

한 잔을 단숨에 비우고 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도 춤도 음악도 분위기도, 심지어 곁에 앉은 자도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지만 술 하나만은 일품이다.

‘인간계에 뱀으로 담그는 술이 있다던데 그래서인가.’

사혈이 들으면 경악할 악취미적인 소리를 농담처럼 속으로 생각하며 백호는 몇 잔을 더 연거푸 마셨다.

그들의 앞으로 여인들 몇이 악기를 들고 다가왔다. 피리와 가야금, 비파를 든 그들이 사혈과 백호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운데서 비파를 든 사영은 살짝 눈으로 웃으며 백호를 바라보았다.

‘이건 뭐지?’

누가 보아도 사영의 눈빛은 그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런 눈빛이야 차고 넘치게 받아본 백호였지만, 문제는 그녀가 사혈의 딸이라는 사실이었다.

사혈은 야망이 큰 사내다. 그가 용이 되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사방신의 밑으로 들어가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비록 미천한 일반 금수로 태어났으나 그는 스스로를 갈고 닦아 이무기까지 올라섰다.

‘굳이 연회를 열어 초대한 게 혹시.’

그가 자신의 딸을 사방신의 반려로 들이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지금은 백호 자신이 붉은 달의 영향으로 인해 연화를 반려로 들여 합방했다는 사실이 여기저기 알려졌을 터.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백호는 한숨을 쉬었다. 딸을 도구처럼 이용하는 사혈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연회까지 따라 들어온 자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바삐 움직여 모든 땅을 살피고 빨리 연화에게 돌아가도 모자란 판국에 이런 자리에서 미적거리고 있다니.

일어나야겠다고 마음을 먹기 직전, 사혈이 술 한 잔을 더 권했다.

금수의 붉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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