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걱정이 되어 호접이 오후에도 또 보러 와서 얼굴을 굳혔다.
“신령계의 의원은 인간에 대해서 잘 모를 텐데 큰일이군요.”
“오늘만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특별히 어디가 아픈 건 아니라서요.”
애써 웃는 연화의 얼굴은 초췌하면서도 붉었다. 그녀는 자꾸만 움찔거리는 아랫배 깊은 곳의 느낌을 참아내려고 애썼다.
평생 몰라왔지만 지난 며칠간 지독하게 몸에 새겨진 감각이다. 연화는 그 감각을 알았다. 백호와 교접할 때마다 몸 전체를 뒤흔들고 뇌를 곤죽으로 만드는 쾌감. 그것이 발현하고 싶어 자신을 들썩이고 있었다.
여전히 입맛이 없어 떡과 차만을 마시고 그녀는 혼자 침실에 남아 누웠다. 정신이 혼미해서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아침에 눈을 떠 푸른 하늘을 보고 상쾌한 기분으로 세계 저 너머를 날고 있을 백호의 안녕을 바랐는데 그 후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눈앞이 흐린 상태로 지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몸은 밤이 될수록 더 뜨거워졌다. 연화는 더위를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 일어나 앉았다.
밖에는 밤새 경비를 서는 신령들이 있다. 그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그녀는 조심히 맨발로 바닥에 내려서서 걸었다. 발바닥에 닿는 차가운 나무바닥의 느낌이 좋았다.
‘백호 님.’
그녀는 창문 앞까지 와서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침 하늘을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검디검은 밤하늘이다. 아쉽게도 먹구름이 끼어 달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서 땀에 젖은 연화의 목덜미가 조금 시원해졌다. 그녀는 밤공기를 느끼고 있다가 힘에 겨워서 기둥에 기대 바닥에 주저앉았다. 뒤에 닿는 기둥도, 바닥에 느껴지는 찬 바닥도 열을 내려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연화는 멍하니 어둡고 잔뜩 찌푸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백호 님.”
그리운 이름을 소리 내서 불러보았다. 혹시 그분이 옆에 없어 내 몸이 이리도 안달이 난 것인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 것 같았다.
사실 하루 종일 침대 안에 있으면서 백호가 그리웠다. 거칠게 끌어안는 강인한 손, 그의 품 안에 안기면 콧속을 파고드는 남자다운 체향. 연화를 꿰뚫을 듯 바라보는 푸른색의 눈동자. 그리고…….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연화는 천천히 자신의 목덜미를 스스로 더듬었다. 백호가 쓸어주는 것처럼 귓가를 만지고 목을 지나 쇄골을 쓸었다. 얄팍한 잠옷 위로 가슴을 쥐어보고 그녀는 느리게 숨을 흘렸다.
“흐, 음…….”
그가 만져주는 것과 비할 수는 없었지만, 자극은 여지없이 백호를 기억나게 했다. 망설이다가 손톱을 세워 유두를 긁었다.
“읏.”
따끔하고 아픈 감촉과 함께 찌르르하게 익숙한 쾌감이 등줄기를 흘렀다. 수치심과 쾌락이 동량으로 연화의 머릿속을 채웠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몸은 이미 뜨거워져서 더 큰 자극을 기다렸다.
하지만 차마 다리 사이로 손을 넣을 생각은 못했다. 연화는 아랫배까지만 만지다가 깊은 곳에서 움찔하는 감각이 느껴지자 놀라서 얼른 손을 떼어냈다.
그곳은 이제 완전히 촉촉하게 젖어 더 큰 자극을 원했다. 그녀는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괴로움에 숨을 허덕이며 다리를 모아 힘을 주었다.
다리 사이가 압박되며 쾌감이 느껴졌다. 그것을 깨닫고 그녀는 손에 닿는 방석을 둥글게 말아 다리 사이에 끼워 넣었다. 방석을 가운데에 넣고 허벅지를 조여 힘을 주자 가운데가 압박되며 허리가 떨렸다.
연화는 아예 그 위에 올라앉아 거의 엎드린 자세로 허리를 움직였다.
“흣……!”
압박만으로도 달아올라 있던 몸은 순식간에 절정에 올랐다. 쾌감에 연화는 바닥에 반쯤 엎드린 자세로 몸부림쳤다. 옷이 땀에 젖어 몸에 엉겼고, 밑에서는 애액이 울컥 터졌다. 속곳도 방석도 전부 젖을 정도였다.
“아……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한 번 절정을 맞이하고 나자 몸의 열은 훨씬 내려간 것 같았다. 그녀는 아직 떨리는 허리를 지탱해서 겨우 몸을 세웠다.
“세상에.”
옷과 방석이 젖은 것을 보고 연화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 무슨 음란한 짓이란 말이지. 백호가 떠난 지 며칠이나 되었으면 말을 안 한다. 겨우 만 하루가 지났을 뿐 아닌가. 그런데도 이렇게 몸이 달아서 안달이라니.
“이걸 어쩌지.”
지금 욕탕으로 가서 빨 수밖에 없다. 그녀는 얼른 속곳을 벗어 방석과 함께 조용히 곁에 있는 작은 욕탕으로 들어가 직접 손빨래를 했다.
욕탕에서 더불어 밑도 닦으면서 새삼스럽게 민망했다. 밑에서 애액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허벅지로 흘러내렸다.
꼼꼼히 닦고 흔적을 지우며 그녀는 제발 백호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랐다. 몸의 열은 좀 내린 것 같았지만 그가 돌아와야 이 갈증이 채워진다.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그가 이리도 그립구나. 겨우 발정기의 반려일 뿐인 여자가 너무 주제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어 연화는 한숨이 나왔다.
“열이 계속 심하군요.”
“아니……. 심하지는 않아요. 그냥 어제와 비슷한 것 같네요.”
호접은 걱정스러운 눈이었다. 그녀는 손을 연화의 이마에 올려 열을 재봤지만 열이 위험하게 높다고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붉고 눈의 초점이 흐려져 멍한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많이 안 좋으시면 꼭 말씀하세요.”
“그럼요.”
어젯밤 스스로 자위를 하고 난 뒤 열은 조금 내렸었다. 아침에도 훨씬 낫다고 느꼈는데, 식사를 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몸이 좋지 않았다.
지난밤을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부끄러웠다. 백호에게 수없이 몸을 열었지만 스스로 쾌락을 위해 혼자 몸을 움직인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의 손에 몸을 맡기고 허덕이는 것만도 힘에 겨워 스스로 움직일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백호가 떠난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몸이 달아오르다니 상상도 못 한 일이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예민해졌고 아랫배 주위로 계속해서 뜨거운 기운이 번졌다.
자꾸 땀이 나서 그녀는 아침에도 목욕을 한 번 했다. 곁에 시녀들이 있어 자꾸만 달아오르는 몸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 했다. 평소와 다르게 뾰족하게 선 유두나 발그레한 피부 때문에 그녀는 목욕 후 얼른 옷을 입고 침대로 들어왔다.
‘사실은 어제보다 괜찮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진 것 같다. 점심식사까지 한 뒤 오후에 연화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호접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뭐라고 한단 말인가, 몸에 열이 나고 땀이 나고, 그 후엔? 백호가 그리워 스스로 아래를 방석에 문댔고, 피부가 예민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연화는 거기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빨리 백호 님이 돌아오셨으면.’
백호의 앞에 있으면 긴장되었지만 지금은 눈물이 날 정도로 그가 그리웠다. 빨리 와서 그가 큰 손으로 자신을 어루만지고 안아줬으면, 그 묵직한 육체로 자신의 몸을 감싸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백호를 생각하며 이불 안에서 몸을 뒤척였다. 옷감에 스치는 감촉까지도 피부를 자극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의원을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연화는 꾹 참고 눈을 감았다.
문밖에서 호접은 다소 초조한 얼굴로 복도를 오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복도를 지나던 묘우가 의아한 얼굴로 멈춰 섰다. 호접은 평소 대단히 침착한 성품으로 저렇듯 불안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 나비의 신령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연화 님의 몸이 아무래도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몸이? 왜? 신령계의 공기는 인간계보다 맑고 좋아 오히려 건강에 좋을 텐데.”
묘우는 대단히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접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이야. 끼니도 제때 챙겨 드시고 있고, 신령계의 음식이 인간계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인데.”
“백호 님은 적어도 사흘 뒤에나 돌아오실 텐데 어쩌지?”
“그것도 걱정이고.”
호접은 난감한 얼굴로 뺨을 긁었다. 묘우는 살짝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많이 나쁜 거야?”
“열이 오르고 피부가 붉어. 인간의 건강 상태는 내가 잘 모르지만 좋지 않은 건 확실해.”
“그렇군.”
묘우는 눈을 굴렸다. 예상보다 연화의 상세가 안 좋은 듯했다. 아마도 신령에게 맞는 미약의 양을 인간인 연화에게 넣어 지나치게 많았을 수도 있다.
일이 지나치게 빨리 진행되어도 좋지 않다. 결국 중요한 건 백호가 시찰에서 돌아와 연화가 다른 사내와 뒹구는 장면을 보는 것이다. 그래야 연화를 버릴 테니까.
‘수조에게 약의 양을 줄이라고 전해야겠군.’
연화가 사내와 뒹구는 건 이틀 뒤 마지막 밤이어야 했다. 그래야 백호의 도착과 함께 발견할 수가 있다.
호접과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묘우는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필묵을 꺼내 몇 마디를 적고 비둘기 다리에 묶었다. 묘우는 비둘기에게 작게 속삭였다.
“뱀의 일족, 사영의 전각으로 가거라.”
새는 고개를 끄덕이고 후루룩 날아갔다. 허공으로 나는 새의 뒷모습을 보며 묘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 짜증나는 일이었다.
금수의 붉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