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후…….”
백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연화를 안고 있으면 자신조차 앞뒤를 가리지 않게 만드는 쾌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여인의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내가 정말로 자제를 못 하는군. 괜찮으냐?”
“……예, 예…….”
일단 괜찮다고 해놓고 연화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몸이 힘든 건 사실이었다. 지금 당장도 나른하고 전체에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와의 관계를 거부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백호의 푸른빛 눈동자는 다정했고, 행동은 거칠지만 때로 배려 깊었다. 시작은 연화가 공물을 훔쳐 그에 대한 벌 대신이었는데 불과 이튿날에 그런 생각은 지워질 지경이었다. 여전히 무섭지만 동시에 다감하다. 그녀는 미소를 띠었다.
“제가 백호 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제게 기회를 주신 것을 잊지 않아요.”
“그래. 정말…….”
백호는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나는 사방신이면서도 지나치게 자제를 모르는구나. 어이가 없어.”
“…….”
답할 말이 없어 연화는 볼을 붉혔다. 그녀는 이번이 처음으로 겪는 관계여서 다른 사내는 어느 정도인지를 몰랐다.
백호는 그녀의 몸을 슬쩍 들어 자신의 양물을 빼냈다. 연화의 몸 안에서 그의 정액과 연화의 애액이 뒤엉킨 액체가 흘러내렸다. 점액질의 액체가 그녀의 흰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것을 보며 백호는 입맛을 또 다셨다.
아니, 이제 정말로 참아야 한다. 그는 알고 있었지만 본능은 계속해서 여인을 원했다.
“네 몸이 너무 맛있으니까 말이야.”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투덜거렸다. 말도 안 되는 불평이지만 백호에겐 진실이었다. 연화는 얼굴이 붉어져서 얼른 치마를 내려 허벅지를 가렸다.
“네 음부는 정말 힘 있게 내 양물을 오물거리며 먹지 않느냐. 내 태어나길 백호로 나서 남에게 먹히기는 처음이야. 참으로 건방진 여인 아니냐.”
“그, 그건 제가 그러려는 게 아니라…….”
“그래, 그래. 알아. 남과 여의 육체와 본능이 시키는 일이지. 하여튼 참으로 요망한 구멍이야.”
적나라한 백호의 말에 연화의 얼굴은 더 이상 붉을 수 없을 정도로 붉어졌다.
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백호를 노려보았다.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뭘 말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그녀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뭘 그런 얼굴로 보느냐. 사실인 것을.”
“그, 그런 말씀은 정말 그만두어 주세요.”
“내가 이런 소리를 네게 안 하면 누구에게 하겠느냐? 하여튼, 생각보다 자질이 있는 몸이야.”
잠자리의 일에 자질이 있다는 뜻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연화는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백호의 가슴에 묻었다.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도 많고 발씬거리며 물건도 잘 삼키고. 혹여라도 다른 사내에게 눈을 돌렸다간 경을 칠 것이다. 알겠느냐?”
농담 같은 말투였지만 백호의 눈은 번뜩였다.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습니다, 백호 님.”
“쯧쯧.”
작게 대답하는 연화의 답을 듣고 백호는 혀를 찼다. 그는 잠시 그녀의 머리에 코를 대고 체향을 마셨다. 정사 후의 흥분이 다소 진정되고 몸도 마음도 가라앉았다.
연화는 백호에게 기대 조용히 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신도 심장이 있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흘러내린 백호의 백발을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았다.
“저는 그저 이곳에서 백호 님만 바라보고 있겠습니다.”
불쑥 나온 말이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도 몰랐다. 백호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리는 하지 않아도 된다.”
연화는 고개를 저었다. 다소 부끄러워서 그녀의 뺨에 홍조가 올라왔다. 차마 백호와의 관계가, 잠자리가 나쁘지 않다고 소리 내어 말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꽃차를 마셨다. 그녀에게서 옅은 야생화의 향기가 풍겼다.
“너무 거칠게 데려와서 미안하구나.”
작게 중얼거리고 백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이런 사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연화는 뭔가 마음속의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데가 있는 여자였다.
새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팔다리, 매끄러운 피부 같은 육체와 함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숙일 때마다 붉게 뺨을 물들이는 그 수줍음도 사랑스러웠다.
발정기에는 반려로 점지한 암컷이 언제나 예뻐 보이지만 이번에는 유난하구나 싶었다.
노을이 거의 져서 밖에는 어둠이 내렸다. 해가 진 하늘로 달이 들어선다. 연화의 작은 얼굴에도 그림자가 졌다.
백호는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탁자 너머로 그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 밑에서 자그마한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야생화의 향기와 따스한 숨결.
백호는 연화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등과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녀를 끌어당겨 자신이 앉은 무릎 위로 앉히고 그는 여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달콤한 여인의 향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연화는 수줍은 얼굴로 그의 긴 백발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얇은 저고리 위로 백호의 손이 봉긋한 가슴을 오르내렸다. 부끄러워서 가능하면 신음성을 내지 않으려고 연화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백호는 그녀에게 깊이 입을 맞췄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붉은 달이 떠 있는 동안은 내가 너의 신랑이다. 신부는 신랑 앞에서 거칠 것이 없어도 되는 법이지.”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몸의 긴장을 풀고 백호에게 기댔다. 남자가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묘우의 목소리였다.
“백호 님, 상제폐하의 사절이 왔습니다.”
“……상제폐하의?”
백호는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가 오만방자한 다혈질의 사방신이라 한들 옥황상제의 사절을 직접 맞이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연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돌아오마. 쉬고 있으렴.”
남자는 사실을 나섰다.
양옆 미닫이 문 너머로 사라지는 백호의 등을 바라보다가 묘우가 연화를 향해 돌아섰다.
“다과상을 치우겠습니다. 뭐 더 필요하신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뇨, 아무것도……. 감사합니다, 묘우 님.”
연화는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귀동냥하여 듣기로 신령계의 장로격이라는 묘우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 마냥 어색하고 불편했다.
어디선가 조용히 나타난 신령의 시녀들이 다과상을 전부 내어갔다. 향기로운 꽃차만 협탁에 놓아둔 채 시녀들이 전부 빠져나갔다.
“아마도 사방신 영토의 경계를 지키라는 명일 겁니다.”
묘우가 불쑥 말했다. 연화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눈을 크게 떴다. 여우의 신령은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지금 온 상제의 사절 말입니다. 요즘 들어 사방신의 각 영토 간을 넘나드는 주민들이 자꾸 생겨서……. 각 세계의 법칙이 유별한데 주민들이 넘어가 버리면 굉장히 곤란한 일이 발생하거든요. 영토의 주인에게도 주민의 주인에게도.”
“아……. 그렇군요.”
연화는 자신을 생각했다. 그녀 자신도 인간이면서 신령계로 왔다. 인간이자 청룡의 주민인 그녀는 비록 백호의 손에 이끌려 온 것이지만.
묘우의 가늘고 긴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노을에 비추어 그의 눈은 빨강과 호박색을 넘나들었다.
묘우의 시선에 연화는 약간씩 좌불안석이 되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우의 신령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순진하지만 눈치가 없지는 않은 연화가 모를 수가 없었다.
신령은 단호하게 말했다.
“사실 그런 의미로 연화 님도 가능한 빨리 돌아가시는 게 좋습니다.”
“그…… 그런가요. 한 달이 지나면 내려가도 된다고, 호접 님이 말씀하셨던 것은 들었습니다.”
“백호 님의 발정기만 지나면 내려가셔도 되지요. 사실 그 전에 가셔도 별상관은 없습니다만……. 응급상황은 지났으니까요.”
조금 당황스러워서 연화는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 온 것이 겨우 사흘째였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힌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묘우의 말이 맞다. 원래도 그녀가 속한 곳은 저 산 중턱의 초라한 천민 부락이었다. 그곳에 그녀가 돌보아야 할 사람도, 할 일도 있었다. 다만 죄인이자 공양물로 이곳에 끌려온 것일 뿐이다.
“사절이 왔으니 백호 님께서…… 절 내치실까요?”
단호했던 말투나 기묘한 눈매와는 달리 묘우는 친절한 얼굴로 웃었다.
“설마요. 다만 백호 님의 발정기가 지나도 내려가지 않고 버텼던 인간의 여인이 있었기에……. 백호 님도 다소 걱정하고 계시답니다. 일단 자비롭고 다정하신 분이라 당신을 그냥 두고는 계시지만요.”
여우의 신령은 교묘하게 말하고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였다. 사방신의 반려에 대해 한 치의 어긋남 없는 태도였다. 말의 내용을 제외한다면.
연화는 마주 인사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스스로 잊지 않으려 계속해서 되뇌었다. 자신은 공물 대신 이곳에 와 있는 죄인이고, 백호의 발정기가 끝나는 날이면 다시 마을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연화는 앉은 자리에서 백호가 올 때까지 마치 망부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별일도 아닌데 사절까지 보내시는군.”
돌아온 백호가 투덜거렸다. 무슨 일이었나요, 라고 물으려다가 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묘우의 말대로 인간계에서 신령계로 오게 된 불청객일 뿐이었다. 그것도 제사의 공물을 훔쳐내어 백호에게 폐를 끼쳤기에 끌려온 죄인.
마음 좋은 사방신이 그녀에게 기회를 주어 죽지 않고 살아났으나 신령계에 주어진 이상으로 머물 수는 없었다. 백호의 일에 과한 관심을 갖는 것도 좋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런 얼굴이냐, 연화야?”
백호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금수의 붉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