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분명히 그녀는 이곳에 공물을 훔친 죄인으로 공물을 대신하기 위해 끌려온 것이다. 하지만 백호는 자비롭고 다정했다. 거칠고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관심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된 것은 묘한 만족감을 주었다.
사내의 욕망에 물든 눈은 오직 연화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호는 그녀의 부드럽고 작은 미소를 보고 다시 아랫배가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밑에서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사내의 물건을 보고 연화가 움찔하고 눈을 크게 떴다.
아직 빼지도 않은 상태로 다시 커지는 사내의 양물이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배, 백호…… 님……. 흐읏.”
남자는 숫제 울먹이는 듯한 그녀를 끌어안고 신음했다.
“정말…… 이번 발정기는 어지간하군.”
참지 못하고 그는 젖은 저고리 위로 연화의 가슴을 다시 베어 물었다.
“아, 아앙! 흐응!”
혀가 꼬인 채 작은 짐승처럼 신음을 터뜨리며 여인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직 제대로 절정에서 내려오지도 못한 몸이 다시 한 번 강제로 달아오르게 밀어붙여진다.
백호는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절정에 올랐던 연화의 내벽은 그의 물건을 부드럽게 조였다.
“흑, 흐으응……. 흐읏, 흑…… 흑…….”
배와 등허리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여인이 기어코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랫배를 불로 지지는 것 같은 쾌락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제대로 불이 꺼지지도 않은 몸에 다시 불씨가 인다. 그녀는 백호의 목덜미에 매달려서 가늘게 울었다.
백호가 사정 봐주지 않고 허리를 쳐올렸다. 연화는 흔들리며 자신의 체력이 이제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눈앞이 뿌옇다. 그녀의 팔에서 느릿하게 힘이 빠져갔다.
그녀는 또다시 느릿하게 어둠이 자신을 덮어 오는 것을 느꼈다. 평화로운 잠이었다.
뒤로 늘어진 연화를 백호가 알아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잠의 초입에 들어선 뒤였다. 마치 기절하는 것처럼 고개를 떨구는 연화를 안아 들면서 백호는 혀를 찼다.
***
호접은 시녀들이 연화의 머리를 빗겨주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은 몸집에 머리색이 옅은 호접은 뭔가 인간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아니……. 인간이 아니니까 당연한가.’
연화는 곁눈질로 호접을 훔쳐보았다. 자그마한데도 당당하고 우아한 여자였다. 그녀의 등 뒤에 달린 반투명한 날개가 유달리 눈길을 끌었다. 연화는 그 날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져봤을 때 그 포슬한 감각이 아직도 손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당분간 연화 님께서는 백호 님의 반려가 되십니다. 그동안 몸가짐을 정결히 해주십시오.”
다 씻은 연화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머리 손질을 해주면서 호접이 당부했다.
“산주 백호 님께서는 산의 주인이실뿐더러 사방신의 일방을 담당하시는 분. 거기에 어울리는 반려가 되어주십시오.”
“……저는 잠시만 백호 님의 곁에 있게 되는 것이지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 달 동안?”
연화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호접은 어깨를 으쓱했다.
“본래 사방신의 반려는 영구적인 것이나, 연화 님은 발정기를 나기 위해 선택되신 것이니까요. 그리 오래지는 않을 것입니다.”
“…….”
“백호 님의 발정기는 한 달가량이 보통이지만 더 짧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르게 돌아가실 수도 있지요.”
다정하던 첫 대면과는 다르게 호접은 잘라 말했다. 그 이전에도 산주 백호의 반려가 되었다고 착각한 인간의 여인들이 오만하게 굴며 신령들을 부리고 안주인 행세를 하려 들었던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이란 미리 한계를 정해놓아야 한다. 안심시킬 필요는 있되 그 이상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냉철한 눈으로 연화를 바라보았다.
“한 달 뒤에는 마을로 돌아갈 수 있는 거지요?”
연화가 재차 물었다. 호접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안도한 얼굴이 되었다. 다소 의아해서 호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백호의 반려가 된다면 먼저 얼떨떨해하다가 신분이 상승한 듯 기뻐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실제로 인간 중 이곳 사방신의 궁에 들어올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보통은 사방신 밑의 신령조차 평생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게 일반적이었다.
“돌아가셔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게……. 마을에 제가 돌봐드려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아.”
호접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령들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간을 넘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다.
“그렇군요. 인간들은 가족이라든가…… 걱정할 사람이 있지요?”
“네. 양어머니께서 마을에 계셔서. 게다가 제가 마을의 유일한 치유사라, 빨리 돌아가서 봐줘야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연화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의 양어머니는 아주 늙고 힘없는 여인이었다. 사망한 친어머니를 키워주었던 유모였다고 들었으니 실제 나이로는 할머니뻘인 것이다. 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치유자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양어머니 덕이었다.
“치유사라.”
호접은 연화에게서 노란 빛을 발견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신령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약사여래의 보살핌 덕분에 치유의 능력까지도 가지고 계신 거군요.”
“친어머니께서 가호를 입으셔서 저까지 감사하게도 능력을 이어받았습니다.”
치유를 관장하는 약사여래. 모든 병자와 환자들을 보살피는 보살이다. 저승사자가 나타나도 영혼의 손을 잡고 이승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힘. 염라대왕을 거스르는 그의 능력을 받은 자들은 극히 드물어 신령 중에도 치유의 능력을 지닌 자는 찾기 힘들었다.
설사 그의 가피를 받았다고 해도 능력이 나타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치유란 그만큼 직접적인 가호를 받아야 나타나는 능력이었다.
“치유의 이능은 드물지 않습니까? 인간의 나라에서는 한 대에 한 명쯤 나타난다고 하던데.”
연화의 손에 어리는 은은한 노란 빛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빛났다. 일개 인간이 가지기에는 상당히 놀라운 치유력이다. 약사여래에게서 직접 가호를 받은 인간의 혈통이라니.
“아뇨, 그렇게 대단한 능력은 아닙니다. 그저 작은 상처를 치유할 뿐……. 마을에는 그마저도 없어서요.”
인간 여자는 다소 수줍고 우울하게 말했다. 그녀가 사는 곳은 천민들의 부락이다. 치유사를 배정해 줄 리가 없었다. 병이 나면 앓고, 상처가 나면 죽는다. 연화가 마을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고통받을 사람이 너무 많았다.
“치유의 이능이라…….”
사방신들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능력이다. 생명이란 적자생존으로 자연 속에서 죽고 나야 한다는 것이 백호의 법칙이었다.
“이것도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연화가 망설였다. 호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실 백호 님이시라면 대충 알고 계실 겁니다. 이미 수 번 몸을 접하셨으니 기운으로 알아차리셨겠지요.”
사실 사방신과 보살들의 관계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사방신은 사바세계의 법칙을 관장하는 자들, 보살들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들. 각자 법을 지키는 자와 거기서 벗어난 자들이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호접은 신령계에서도 약간 입장이 다른 편이다. 나비는 언제나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날아다니며 자유로이 오가는 존재다. 그만큼 법칙에서도 벗어나 있고 보살들의 이해에도 조예가 깊었다.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보살들의 손길을 호접은 무척 감사히 여겼다.
그런 약사여래의 아래에 있는 인간이라니.
“그저 보살의 가피를 조금 나눠받은 분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거의 여래의 혈족과 같으신 분이군요.”
호접은 자신도 모르게 쿡쿡 웃었다. 산주 백호, 사방신의 하나인 천방지축 일신은 자기도 모르게 여인을 선택해 왔을 터였다. 붉은 달은 백호를 목적지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고는 했으니.
그간 데려왔던 여인들과는 다르게 연화가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호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잘될지도 모른다. 백호의 신부로 꼭 신령이 들어와야 한다는 묘우와는 달리, 호접은 인간 여인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쪽이었다.
“아, 백호 님께서는 그래도 제법 잘 골라 오셨군요……. 이번에는 좀 제대로 되길 바랍니다.”
그녀는 상쾌한 얼굴로 날개를 파닥였다. 기분이 좋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연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인 게냐?”
여인이 표독스럽게 외쳤다. 앞에 부복한 남자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사영 아가씨께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백호 님께서는 이번 발정기를 그 인간 여자와 교접하며 지내고 계신다는 게 사실인 줄로 압니다.”
“아니, 여태껏 단 한 번도 형식상의 반려 외에는 필요치 않았던 분께서 대체 왜 이번에는 계집을 들여 교접을 하신다는 것이지. 대체 어째서냐.”
긴 검은 머리를 밑으로 늘어뜨린 뱀의 신령은 의자에서 일어나 초조하게 걸었다. 그녀는 양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으로 앞에 앉은 새의 신령, 수조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홍채는 세로로 길었다. 사영이 걸을 때마다 치마 밑에서 타르르르 하며 방울 울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긴 검은 머리를 뱀처럼 꼬아 묶고 밑으로 늘어뜨렸다. 검고 푸른 비단 옷자락이 바닥에 길게 끌렸다.
“왜 마음을 바꾸신 게지? 어느 신령과도 아직은 교접하기 싫다지 않으셨는가.”
“그랬습니다만…….”
“천하의 절색이라도 된다더냐? 그럴 리가 없지, 신령의 여인보다 아름다운 게 인간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다.”
“저희도 백방으로 알아보고는 있는데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백호 님의 최측근들만 그 여자를 보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대체.”
분노를 다스리려 애쓰면서 사영은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차가운 피를 지닌 뱀의 신령, 이렇듯 눈에 보이게 분노하는 일은 드문 일이다. 또한 피가 뜨거워지는 일은 그녀 자신의 건강에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백호가 관련된 일에 피가 뜨거워지도록 흥분하는 것은 사영에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금수의 붉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