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장사-138화 (138/192)

#138 비밀의 성인(5)

생각지 못한 소뵈르의 답에 자카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뵈르는 오히려 그런 자카리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옆에 있던 로베르에게 동의를 구하기 위해 시선을 마주쳤다. 로베르 또한 자카리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소뵈르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히 말했다.

“저희는 당연히 백작님께서 마님하고 같이 주무실 줄 알았지요.”

요즘 사이좋으시잖아요. 소뵈르는 작게 덧붙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소뵈르의 말은 딱히 부정할 거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한 방 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자카리는 알았다며 손을 내젓고는 뒤돌아섰다. 무언가 굉장히 심란한데,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지금껏 꼭꼭 숨겨 두었던 바람과 조우한 듯한 그 고양감…. 그저 명분뿐인 부부 사이였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주변에서 비앙카를 그의 아내로 인정해주는 기분은 굉장한 쾌감을 동반했다. 뱃속 깊은 곳이 근질거리는 느낌. 그것은 욕망이라기보다는 열망에 가까웠다.

그렇다 하여 이 기분 그대로 비앙카의 마차에 들어설 수는 없었다. 깨어 있는 비앙카와 마주하여, 그녀와 눈빛이라도 섞이면 도저히 이 충동을 잠재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카리는 마차를 중심으로 그들의 근거지 주변을 몇 번이고 뱅뱅 돌았다. 주변에서 백작님이 왜 그러시나 하는 시선이 쏟아져도 꿋꿋이 무시했다. 그리고 한참 뒤, 비앙카가 잠이 들었을 거라 여겨질 때쯤. 그제야 자카리는 조심스레 비앙카가 있는 마차로 향했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은 예상과는 다른 법이다. 당연히 비앙카가 자고 있을 거로 생각한 것과 달리, 그녀는 두 눈을 또랑이 뜬 채로 자카리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를 더 당혹스럽게 몰아넣은 것은, 넓게 깔린 모피 위에서 고혹적으로 누워 있는 그녀가 바로 알몸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들추며 들어섰다가 화들짝 놀란 자카리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일 뻔했다.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후다닥 마차 위에 오른 자카리는 혹여나 바람결에 문이 펄럭일까 꼭꼭 매듭도 지었다.

문이 절대 열리지 않게 매듭지은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각오하고는, 느릿하게 비앙카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의 그런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었다. 다시 비앙카를 보기가 무섭게 그의 얼굴에 피가 확 치솟았다.

“이게 무슨 꼴이오!”

자카리는 나직이 억누른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참아 누르는 듯한 꽉 막힌 목소리는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으며, 그의 얼굴은 표정 관리할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별로예요?”

비앙카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천연덕스레 물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묻는 모습에 자카리는 할 말을 잃었다. 짙은 회색빛 모피에 휘감긴 새하얀 살결은 어둠 속에서도 달빛을 쬔 것처럼 빛났다. 침중하게 신음을 흘리던 자카리는 한 박자 늦게서야 답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 남들이 보면 어쩌려고.”

“나는 당신의 아내고, 밖에 있는 이들은 당신을 경외하는 충직한 가신이지요. 여긴 수도가 아니에요, 여보.”

비앙카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답했다. 자카리의 초조함과 대조되는 느릿함. 자카리의 입안이 바짝 마른 것과 달리 그녀는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이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누군지 확실시하겠다는 듯이.

자카리 또한 이곳에 감히 그의 아내를 탐낼 정도로 간 큰 사람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혹시 하는 가정에 심장이 무섭도록 떨렸다.

자카리의 검은 복장과 바닥의 어두운 모피와 대조되는 그녀의 새하얀 피부는 본능처럼 자카리의 시선을 붙들었다.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자카리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그냥, 나는 그들의 눈에 당신의 이런 모습이 닿는 것이 싫어.”

“저도 보여주길 원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왜…!”

“하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당신은 제 옆에서 시체처럼 잠들 거잖아요.”

비앙카의 연록빛 눈동자가 도발적으로 자카리를 빤히 응시했다. 그녀의 입술은 고집스레 꽉 다물려 있었지만, 눈빛만으로도 재촉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도에 있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다. 그에게 갑작스레 후계자를 갖자 했을 때부터 느꼈던 건데, 그녀는 어딘가 당돌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점은 자카리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비록 비앙카 본인은 모를 테지만….

자카리는 한 발짝, 한 발짝 비앙카에게로 다가갔다. 어둠은 그의 어지러운 마음을 숨겨주었다. 자카리의 목울대가 거칠게 움직였다.

마차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오늘은 기필코 머리를 뉘고 잠만 자리라 다짐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몸은 욕망대로 흘러갔다. 한때의 다짐은 물에 휩쓸리듯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의 각오가 이다지도 가벼웠던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는 비앙카와 관련된 일에 관해서는 항상 이래 왔다. 그녀가 성인이 되는 시기까지 지켜줄 것이다 다짐했으면서도 기어코 질투와 욕망에 무릎 꿇지 않았던가.

비앙카가 자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카리는 그 손끝에 실이 매달린 마리오네트처럼, 비앙카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자카리는 바닥에 누워 있는 비앙카를 내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나는 심장이 약한 사내이니, 이런 일은 어지간해서는 지양해줬으면 좋겠군.”

“이런 유혹은 마음에 들지 않나요?”

“마음에 들고 말고 수준이 아니오. 그대를 거부하려는 나의 배려 의지조차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지.”

“거부는 배려가 아니에요, 자카리.”

비앙카가 나직이 웃으며 속삭였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비앙카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달콤하다. 마치 처음 먹어 본 벌꿀의 맛처럼.

자카리가 거의 넘어갈 뻔한 그 순간, 벽 너머에서 사람들의 불분명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자카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머리에 찬물이라도 끼얹어진 것 같았다.

그녀를 노숙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런 곳에서 관계하려 하다니…. 아무리 비앙카가 바랐다 하더라도, 자카리 그가 거절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비앙카와 얽힌 일에 한해 자신의 자제심이 양피지처럼 얄팍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거의 넘어간 상황에 직면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은 물러설 수 있었다. 자카리는 성난 하반신을 애써 잠재우려 노력하며 몸을 뒤로 빼려 했다.

“하지만 이곳은 마차…. 읏.”

하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그녀의 하얀 다리가 자카리의 허리에 엉겨 붙었다. 자카리의 하반신이 비앙카의 다리 사이 깊은 곳에 닿았다. 비앙카는 자카리의 옷깃을 쥔 채, 유혹적으로 그를 꼬드겼다.

“마차를 덮고 있는 가죽과 천은 제법 두꺼워요…. 천천히…. 느릿하게 하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비앙카가 빙긋 웃었다. 대낮에 하는 것이 부끄럽다며 얼굴을 붉혔던 그녀답지 않은 적극성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자카리를 원한다는 사실에 자카리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비앙카는 자카리의 가는 자제심에 불을 붙였다. 자카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참아 낼 수 있을 정도로 성인이 아니었다.

자카리는 그대로 비앙카에게 입을 맞췄다. 비앙카의 입술 사이를 가르고 파고드는 혀끝이 어찌할 바 모를 듯 필사적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자카리의 몸이 비앙카의 위로 드리워지자, 비앙카의 하얀 알몸이 꼭꼭 숨겨졌다. 마차 위에서 봤다면 비앙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카리의 허리를 휘감은 다리뿐이리라.

자카리의 손이 허겁지겁 비앙카의 허리를 잡았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알몸으로 있어서 그런지 비앙카의 살결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자카리의 열이 오른 뜨끈한 손이 비앙카의 찬 피부에 닿자, 그의 손이 닿은 곳부터 그녀의 피부에 열기가 퍼져 나갔다.

자카리는 비앙카에게서 잠시 입술을 떼며 못마땅한 듯 중얼거렸다.

“추울지도 모른다면서, 이리 벗고 있기는.”

“당신이 곧 덥혀 줄 거잖아요.”

비앙카는 작게 소리 내 웃었다. 키득거리는 웃음은 평소 위엄 있는 백작 마님을 가장하던 그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경계심 없는 미소였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자카리가 유일하리라.

그리 깨닫기가 무섭게 자카리의 가슴 한곳이 꽉 죄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했다.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여유를 잃은 자카리는 다급하게 허리띠를 풀어 바지춤을 끌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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