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장사-123화 (123/192)

#123 달라진 마음(7)

그리 말하며 자카리는 비앙카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비앙카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할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건 자카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오델리 왕녀라니! 자신이 그렇게 마음 좁은 생각을 하며 안달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자카리의 귀가 화끈화끈거렸다.

뒤늦게 자카리의 이상한 머뭇거림의 원인을 눈치챈 비앙카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흐트러진 은발 사이 가마가 유독 비앙카의 눈에 박혔다. 항상 자카리의 밑에서 턱만 올려다보았던 만큼, 그의 그런 모습에 가슴이 홧홧했다. 자카리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비앙카는 입술만 달싹였다.

“다만…. 그대가 말해주어야 하오. 나는 다소 눈치가 둔하여 알아채는 것에는 재주가 없소. 말해주면 꼭 고치리라.”

자카리가 거듭 당부하자, 언제까지고 침묵할 수 없었던 비앙카가 힘겹게 대꾸했다.

“불편한 점은 없어요. 당신과 결혼한 걸 후회하는 건 아닌 걸요.”

물론 비앙카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전생부터 그녀가 결혼을 후회한 횟수를 헤아려 본다면, 양 손가락으로도 모자라 세는 것이 의미 없을 지경이었다.

만약 비앙카가 회귀하였을 때, 결혼하기 전의 어린 나이로 돌아왔더라면 끔찍한 전생의 결혼 생활을 곱씹으며 절대 자신은 아르노 백작과는 결혼하지 않겠다 드러누웠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비앙카는 결혼 생활을 후회하고도 후회했다….

하지만 그녀가 회귀한 시점은 이미 결혼한 뒤였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그때 그렇게까지 자카리를 거부했던 것이 이상할 정도로, 비앙카는 지금의 결혼 생활에 만족하다 못해 행복하기까지 했다. 한결같이 무뚝뚝하나 일관적인 그의 태도는 비앙카의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비앙카는 자카리에게 마음을 내어주게 되었으니까.

비록 자카리의 마음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는 몰라도, 자카리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 여자는 나밖에 없다…. 그 사실이 비앙카의 유치한 질투와 독점욕을 어느 정도 채워주었다.

지금의 비앙카라면, 자카리와의 결혼이 결정되기 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와의 결혼을 택할 터였다. 자카리와 같은 사내는 둘 없었다.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전생의 자신은 몰랐다. 전생의 비앙카는 자카리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자카리가 절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그 누가 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감정의 변화 따위를 입에 올리지 않을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자카리는 비앙카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비앙카를 바라보았다. 비앙카는 그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은 채 마주 보고 빙긋 웃으며, 천연덕스레 과거의 속내를 숨겼다.

“난 언제나 불안하오.”

쉰 목소리는 칼에 슨 녹과도 같았다. 지치고, 무기력한…. 마주 앉은 의자는 적당히 멀었지만, 그의 무릎 위에 놓인 손등에 힘이 불룩 들어가는 걸 눈치챌 정도의 거리기도 했다. 자카리는 애써 웃어 보이려 했지만, 그의 왼쪽 뺨이 파르르 떨렸다. 자카리는 결코 말하면 안 되는 금기를 속삭이듯, 이를 악물고 조용히 읊조렸다.

“모든 사내들이 그대를 탐내지.”

“그럴 리가요.”

비앙카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의 입가에 드리운 것은 쓴웃음이었다.

비록 세브랑 왕가의 상징인 금발과 푸른 눈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비앙카는 객관적인 미인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섬세하였으며, 작은 위치에 단정하게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고양이처럼 치켜 올라간 눈매와 꽉 다물린 도톰한 작은 입술까지, 2왕자인 자코브가 반했다는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정도의 외모였다. 하지만 비앙카는 자신의 외모에 회의적이었다.

한때는 비앙카도 자신이 사랑받는 여자라고, 매력적인 여인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애인인 페르낭의 품에서 활짝 피어나던, 그녀가 가장 아름답던 시기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페르낭의 배신으로 그녀의 자존심은 산산조각이 났다. 마님이 제일 어여쁘다는 페르낭의 밀어는 그저 입발림 말이었을 뿐이다. 그 뒤로 비앙카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칭찬을, 그녀의 등 뒤에 서린 가문의 이름에서 떨어져 내릴 뼈다귀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자들의 치켜세움일 뿐이라 여기게 되었다.

자카리는 이리도 초조한데, 비앙카는 전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비앙카의 태도가 답답했던 자카리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연회장의 모든 사내들이 그대를 탐냈어. 2왕자의 탐욕스러운 눈길은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그대도 눈치챘겠지.”

“절 너무 치켜세우지 말아 주세요. 2왕자는 그저…. 절 이용할 생각이었을 뿐이에요.”

“그대는 사내에 대해 너무 몰라.”

어색하게 말을 흐리는 비앙카에게 자카리가 단호히 말했다. 자코브가 비앙카를 이용하려고 그런 짓을 저지른다? 자카리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만큼, 자코브가 비앙카에게 했던 일들은 모두 비이성적이고, 무가치한 행동들이었다. 지금껏 영악하고 약삭빠르게 제 본심의 표면만을 살짝살짝 보이며, 정말 중요한 것만큼은 꼭 쥐고 있던 사내가 승전 연회 날, 정원에서만큼은 진심을 드러냈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충동적이었다.

그래서 더 뱃속이 들끓으며 화가 나는 것이었다. 상대가 진심이었기에.

비앙카에게 그런 속내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해 줄 수도 없었다. 비앙카는 오만하고 도도하며 냉정한, 귀족의 귀감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에게 다정히 대하는 사람에게 무르고, 그녀에게도 다정한 점이 있다는 걸 자카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자코브에 대해 질색을 하지만…. 혹여나 자코브의 그런 행동이 진심임을 알게 된다면…. 그녀가 부정을 저지를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카리는 비앙카가 자신을 흠모하는 사내에 대해 의미를 두는 것이 싫었다. 그것이 일말의 동정심일지라도.

지금 자코브에 대한 증오라는 감정이 비앙카의 마음을 어그러트리는 것도 꼴 보기 싫을 정도였다. 자카리의 검은 눈동자 위로, 뻥 뚫린 해골의 눈구멍처럼 어둡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비록 그가 비앙카를 품기는 했다만, 그렇다 하여 비앙카의 마음에 들어설 영광을 얻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자카리를 초조하게 했다. 과연 비앙카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루에 얼마나 할까….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고, 충분히 손에 쥐었음에도 그 이상을 바라게 되었다.

그 순간 자카리의 속이 서늘하게 내리 식었다. 그가 저도 모르게 비앙카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제 생각을 하루에 얼마나 하냐니. 처음 그녀와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았을 때, 그녀의 연녹빛 눈동자에 가득 담긴 얼굴을 마주치는 와중에도 그녀가 자신을 곧게 바라봐 준다며 기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심은, 보잘것없다 못해 유치하고 졸렬한 욕망이었다. 그런 제 마음을 비앙카가 알게 된다면.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나잇살이나 먹고 너그럽지 못해, 이렇게 집착하기나 하는 유치한 남자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실망할 것이다. 절대 그녀만큼은 몰라야 한다. 자카리는 얼굴에 일말의 감정의 편린이라도 남았을까 걱정하며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비앙카가 조용히, 살쾡이가 참새를 노리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자카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앙카는 맹랑하게 눈을 깜빡이더니, 자카리가 생각도 못 한 질문을 던졌다.

“질투해주신 거예요?”

“질투?”

자카리 또한 비앙카에게 맞춰 눈을 깜빡였다. 귀로 듣고, 입으로 되뇌기까지 했건만 단어가 명확하게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았다. 자카리는 한 번, 두 번. 입속으로 질투라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자카리라 하여 질투라는 단어를 모를 리 없었다. 처음 가스파르가 비앙카의 호의로 나섰을 때도, 저도 모르는 새 소뵈르와 친해졌을 때도, 그녀의 무릎 위에 장미꽃이 수북했을 때도…. 자카리는 항상 질투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의 상황과 질투와의 연결점을 찾는 것이 어려웠을 뿐이었다. 자카리가 질투할 때는 주로 비앙카가 사내들의 호감을 긍정적으로 받아주었을 때였다. 하지만 자코브는 이미 비앙카의 마음에서 내쳐진 자가 아니던가. 그런 이를 대상으로도 질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만큼, 갑작스레 들이밀어진 단어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확실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질투라 하니 지금껏 간질간질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빠진 고리가 한 번에 채워진 것처럼.

“그렇군. 이게 질투로군.”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달은 자카리는 혼잣말을 되뇌었다. 점입가경이었다. 자카리는 자신의 독점욕이 끝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카리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 행군을 해도 피곤함을 모르는 사내였지만, 자신의 내면을 되짚어 보고 들어 엎는 일에는 손쓸 도리가 없었다. 지친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듯 깊숙이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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