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여보라 불릴 만한 관계(4)
그의 손가락이 숱이 적은 음모 사이를 헤치고 계곡 안쪽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꽉 다물린 두툼한 살의 틈을 더듬더듬 매만지던 그는 이내 검지와 약지로 살을 벌렸다. 벌겋게 드러난 여린 살결의 매끈한 점막을 살살 매만지자 깊은 곳에서부터 애액이 치밀었다. 손가락을 적시는 애액의 느낌에 자카리는 본능적으로 안쪽 깊숙한 곳까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
단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는 빡빡한 곳을 파고드는 손가락은 마치 살을 가르는 칼과 같았다. 날카로운 고통에 비앙카가 나직이 비명을 지르자, 파고들어 오던 자카리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자카리는 바로 비앙카의 안쪽에서 손을 빼고는 지체 없이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그의 움직임에 당황한 비앙카가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러기가 무섭게 그녀의 몸이 밑으로 쑥 잡아당겨졌다.
비앙카가 사태를 파악하려 고개를 힘겹게 들었을 때는, 바닥에 내려간 자카리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뒤였다. 비앙카는 발버둥 치려고 했지만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어깨에 걸쳐져 있는 비앙카의 허벅다리는 자카리에게 단단히 잡혀 있었다.
자카리의 고개가 점점 비앙카의 비부로 내려갔다. 조각처럼 똑바른 콧대가 비앙카의 숲을 헤치고 음핵에 닿았다. 풋내 어린 여자의 냄새가 자카리의 코를 찔렀다. 더운 숨결이 민감한 곳에 스며들자, 붉은 점막에 촉촉하게 습기가 맺혔다.
“자, 잠깐…. 그런 곳은 안 돼요….”
“안 될 이유가 없지.”
“더럽잖아요!”
“그대가 더러울 리가.”
“아니. 보통 그런 곳은…. 아, 아응….”
자카리는 비앙카의 반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멀끔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찌나 천연덕스러운지, 뭐가 문제인지 이해를 못하는 듯한 자카리의 모습에 당황한 비앙카가 그를 멈추기 위해 그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자카리가 그녀의 비부를 빨아올리는 것이 먼저였다. 주저 없이 혀를 뻗은 그는 비앙카의 은밀한 곳을 긁어내듯 혀로 밀어 올렸다. 물이 잔뜩 오른 복숭아처럼, 부드럽고 몰캉한 점막을 음미하듯 느릿하게 핥았다가 서서히 흘러나오는 애액을 게걸스레 삼켰다. 한 방울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자카리의 혀가 갈라진 음부의 깊은 곳까지 샅샅이 오가며 달콤한 애액을 취했다.
“하녀들에게 헛배웠군. 원래 이곳은 사내가 핥아 올려주는 곳이요.”
뻔뻔스러운 자카리의 말에 비앙카는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녀의 입을 비집고 나오는 것은 젖은 비음뿐이었다.
자카리는 탐욕스레 삼켰지만, 그런 그를 비웃듯 애액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그가 다 받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꿀럭, 토해 나오는 애액에 자카리의 혀끝이 분주해졌다. 그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비앙카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시야가 가려지고 나니 남는 것은 귓가에 울리는 음란하고도 난잡한 소리였다.
비앙카의 하반신에 코를 박고 있던 자카리는 뒤늦게 비앙카가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카리는 손을 뻗어 비앙카의 손을 잡아당겼다.
“가리지 마시오.”
“흣…. 부끄러운 걸요.”
“부끄러워하지도 마시오.”
“그게, 하으, 어떻게 그렇게 돼요.”
이 상황에서 부끄러워 말라는 자카리의 주장은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에 가까운, 억지나 다름없었다. 떼를 쓰다니! 자카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낸 표현과 자카리 본인 사이의 간극이 우스웠던 비앙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지만, 이내 그것은 날카로운 비명이 되었다. 자카리가 비앙카의 돌기를 살짝 물었기 때문이었다.
자카리의 혀끝이 비앙카의 음핵을 희롱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열기가 그녀의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비앙카의 몸은 그녀보다 솔직하고, 순진했다. 비앙카는 펄떡이는 생선처럼 몸부림쳤다. 견딜 수 없었다. 무엇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제 몸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낯선 미지의 감각이 두려울 뿐이었다.
비앙카는 이것이 쾌락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과거에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절정. 과거의 첫 경험은 마치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비앙카에게 악몽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로 자카리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아무리 상대에 따라 몸의 반응이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내가 자카리에게 마음을 연 것이 이만큼이나 차이 있는 의미를 내는 걸까. 믿을 수 없었던 비앙카는 애써 신음을 억눌렀다.
자신의 몸이 낯설었다. 제멋대로 튀어 오르는 몸과 자제할 수 없는 목소리. 마치 내가 아닌 것같이….
이미 겪었고, 충분히 각오도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건 이상했다. 비앙카는 자카리와의 행위에서 느끼는 것이 두려웠다. 이대로 이성을 놓아 버리면,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그의 앞에서 추태를 보이기라도 할까 부끄러웠던 비앙카는 쾌락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하지만 자카리는 요지부동이었다. 비앙카가 몸부림치며 발뒤꿈치로 자카리의 등을 퍽퍽 내려쳐도 마찬가지였다. 오갈 데 없이 꽉 잡힌 그녀의 하반신은 꿈쩍도 안 했고, 자카리의 혀는 집요했다.
“하으읏…!”
음핵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자극에 결국 비앙카는 몰아치는 해일을 앞에 두고 무력하게 서 있듯, 피할 수 없는 쾌락의 파도를 맨몸으로 감내했다. 짧은 절정이었지만, 처음인 만큼 그 순간의 느낌은 강렬했다.
비앙카는 씨근덕거리며 숨을 골랐다. 한 차례 그녀의 몸을 휩쓸고 간 쾌락의 여진에 달달 떨며 비앙카는 당혹스레 물었다.
“원래…. 이런 거예요?”
아니다. 비앙카가 아는 관계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좀 더 거칠고, 건조하며, 목적에 충실한….
애초에 자카리가 이렇게까지 정사에 밝은 것도 의외였다. 그곳을 핥다니. 과거였다면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여자에 능숙한 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과거에는 비앙카 그녀의 거부에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해도 좋아요. 다른 여자와 해 본 적이 있다 해도 화내지 않을게요.”
화내지 않는다 했지만, 화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정부의 존재에 대해 심드렁해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자카리가 다른 여자와 얽혀 있는 것 따위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마음 하나만으로, 변함없는 그의 과거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것에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다니. 그러면서도 호기심을 죽이지 못해 기어코 물어보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비앙카도 남녀 관계에서 이런 걸 물어보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지만, 정말 믿기지가 않았던지라 저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왔다.
“내겐 그대밖에 없소.”
비앙카의 질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카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자리에서 일어선 자카리는 침대 끄트머리에 있는 비앙카를 번쩍 들어 침대 한가운데로 옮겼다. 비앙카는 아까보다 안정적으로 그의 품에 기댔다.
“다만…. 전쟁터를 전전하며 많은 이야기를 주워듣긴 했지. 일천한 지식이기는 해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다행이오. 내 나이가 그대보다 조금 많은 만큼, 그대에게 좋은 경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소.”
비앙카의 눈이 가늘어졌다. 숨을 채 고르지 못하고 헐떡이면서도 흘겨보는 비앙카의 시선에 머쓱해진 자카리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생각해 보니 조금 많은 건 아닌 것 같군.”
자진하여 잘못을 시인하는 자카리의 모습은 썩 우스웠다. 비앙카는 저도 모르게 나직이 소리 죽여 웃었다. 자카리는 그런 비앙카의 뒤에 나란히 누워 그녀를 끌어안았다. 단단한 팔이 그녀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옥죄었다.
비앙카를 끌어안은 왼손이 그녀의 오른 가슴을 움켜쥐었다. 비앙카의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낀 채 가슴을 주무르는 손이 음란했다. 자카리는 비앙카의 체향을 들이마시듯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박은 채 깊게 숨을 들이켰다.
“다른 사내들이 여자를 안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항상 성장한 그대를 안는 상상을 했소. 그대의 이곳을 조심스레 열어젖히고…. 나의 음욕에 아직 어린 그대를 투영하다니, 추잡스럽다 욕해도 좋소. 혈기 넘치는 젊은 시절의 일이라는 이유로 양해해 달라고 하지도 않겠소.”
그녀의 몸에 걸쳐지듯 놓인 오른손이 허벅지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아까는 손가락 하나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빠듯이 아팠는데, 이번에는 손쉽게 삼켜졌다.
“아응….”
“후…. 비앙카. 지금껏 그대가 남편이라 두고 있던, 전쟁 영웅이라는 휘황찬란한 껍데기를 뒤집어쓴 사내의 본질은 고작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아. 실망했소? 불쾌하오? 하지만 그래도 그대는 내 아내요. 나는 이제 그대를 놓아줄 수 없어….”
“아, 아으, 흐읏…!”
자카리는 다소 조급하고 열에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비앙카에겐 웅웅거리는, 불분명한 백색 소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여운이 가시기 전에 찾아온, 그녀의 예민한 곳을 헤집는 폭력적인 쾌락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