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악녀, 비앙카(4) (무삭제)
유모는 남자와의 첫 관계를 치르면 몸이 쪼개지듯 아프고, 가랑이 사이로 피가 비칠 거라 하였다. 아픔이야 미처 겪지 못한 것이니 아래턱이 달달 떨린다 하여도, 피쯤이야. 이미 한 달에 한번 피를 쏟아내는 입장에서 그게 무엇이 두렵겠는가?
정작 비앙카를 당황시킨 것은 자카리 앞에서 옷을 벗고 그 사내와 맨몸으로 부대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내의 앞에서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은 속살을 드러낼 걸 생각하니 비앙카의 뒷목이 쭈뼛 서며 소름이 끼쳤다. 그는 분명 또래보다 덜 자란 그녀의 몸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한숨 쉴 것이다….
가슴이 덜 부풀어 올랐다거나, 키가 덜 자랐다거나 하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걸 단점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비앙카가 그녀의 몸에 대한 자카리의 반응을 신경 쓰는 것은, 그저 자카리에게 흠을 잡히는 것이 싫을 뿐이었다. 코앞에서 신체 부위로 조롱받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의연하게 대처할 만큼 자신은 굳세지 못하다. 비앙카는 그렇게 스스로의 당혹스러움의 이유를 결론지었다.
자카리가 조롱할 것이라는 전제 조건 자체부터가 틀렸지만, 당시의 비앙카에게 있어서 자카리는 그런 존재였다. 달갑지 못한 사람. 항상 비앙카의 심기를 거스르는 존재.
그렇다 해서 그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명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비앙카가 의무와 책임을 내팽개쳤다고는 하나, 아내로서 그와 잠자리에 드는 것은 응당 해야 하는 일이었다. 비앙카의 유모 쟌은 자카리가 비앙카를 배려해서 첫날밤을 미루고 있는 거라 말했다. 배려라는 말에 당시의 비앙카는 코웃음 쳤다. 배려가 아니라 방치다. 귀찮았기 때문에 그녀를 버려둔 것이고, 이제 가신들의 간청이 귀찮으니 그녀를 찾아오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비앙카가 초조함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동안, 일주일은 쏜살같이 지나 바로 코앞으로 닥쳤다. 비앙카는 곱게 단장한 채 의연히 그와의 잠자리를 맞이했다. 덜덜 떨리는 몸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턱을 치켜들었으며, 연녹빛 눈동자는 고동색 속눈썹 아래서 반항스레 빛났다. 비앙카는 별 거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잠자리에 들어서 그에게 안기기 전까지는.
남녀 간의 잠자리에 대해 배웠지만, 실제로 닥쳐보니 전혀 달랐다. 비앙카는 눈을 꾹 질러 감고 비명이라도 나올까 입술을 깨물었다. 달달 떠는 몸 사이로 파고들던 날카로운 고통! 자카리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비앙카의 가는 몸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풍랑 속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조각배가 된 심정이었다. 그만큼 비앙카는 무력했다.
고통스러웠던 비앙카는 저도 모르게 도망치려 엉금엉금 기었지만, 이부자락을 그러쥔 그녀의 손 위로 자카리의 커다란 손이 겹쳐지더니 이내 그녀의 몸을 꿈쩍도 하지 못하게 결박했다. 무인이었던 자카리는 자그마한 비앙카보다 훨씬 컸다. 그가 품속에 비앙카를 가두니 비앙카는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침대에 엎드려 가늘게 떠는 비앙카의 하얀 목 뒤로 길고 매끄러운 고동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엎드린 비앙카의 귓바퀴에 자카리의 단 숨이 닿았다. 욕망에 젖은 축축한 숨결은 그녀의 머릿속까지 멍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자카리는 비앙카를 놓아주지 않았다. 비앙카의 몸 안에 몇 번이고 파정했다. 가랑이 사이가 질척하다 못해 흥건할 정도로, 그녀는 자카리를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였다. 동틀 녘까지.
그녀의 첫 경험은 충격과 공포로 남았다. 짐승에게 잡아먹히는 기분. 아무리 의무라고 해도 끔찍했다. 사내와의 잠자리를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그 이후로 필사적으로 자카리를 밀어냈다.
자카리가 그녀의 거부를 거절하고, 그녀를 범하려 들면 비앙카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억지로 할 생각은 없는 듯, 자카리는 그녀의 거절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그렇다 하여 자카리와 비앙카가 첫날밤 이후 일절의 관계를 하지 않았는가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는 꼭 비앙카를 찾았다. 표정을 무섭게 굳히고는, 별다른 입 발린 말없이 묵묵히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비앙카도 그날만큼은 거절하지 않고 그를 맞이했다.
그는 백전무패의 장수였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혹시라도 모를 죽음을 앞두고 후계자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치솟았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또다시 가신들이 그의 등을 떠밀었던 것일 수도 있다.
출정 전이 아니라면 자카리는 비앙카를 찾지 않았고, 비앙카는 그 사실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앙카는 우연히 하녀들의 수다소리를 듣게 되었다. 유난히 카랑카랑한 하녀의 목소리는 멀리 있던 비앙카의 귀에도 쏙쏙 들어왔다.
‘어찌나 계속해서 들러붙는지. 마부간지기, 기사, 종자들 모두 다 똑같아. 사내들은 그 짓밖에 모르지. 성가셔 죽겠어.’
‘어머, 계집애. 싫다면 서도 엉덩이를 실룩실룩 흔들더라. ‘
‘원하는 상대는 따로 있는데, 접근하는 건 전부 쓸모없는 쭉정이들이어서 그렇지.’
‘누굴 원하는데? 가스파르 경? 로베르 경?’
‘흐흥….’
‘혹시 영주님?’
상대가 농담하듯 묻자, 이내 까르르 웃는 목소리가 울렸다. 재미난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목소리가 카랑한 하녀는 상대의 말이 틀렸다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상대도 눈치 챘는지, 질문한 하녀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마님에게 들키면 경을 칠걸.’
‘마님은 그만큼도 우리 영주님한테 관심이 없어. 아, 불쌍한 영주님. 다른 모자란 사내들은 전부 다른 여자들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데, 그리 훤칠하신 분이 악독한 우리 마님에게 목줄이 채워져 독수공방하시다니. 너, 그거 아니? 마님과 영주님은 일 년에 세 번도 채 잠자리를 들지 않는다는 걸?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악독한 마님.
비앙카는 헛웃음을 지었다. 하인과 하녀들이 그녀를 못마땅해 하는 건 알았지만, 저런 식으로 말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자카리와의 잠자리를 거론하면서.
‘정부가 있으시겠지. 마님과 결혼하신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그냥 독수공방하셨겠어?’
‘거짓말! 우리 영주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사내들은 전부 딴 주머니를 차고 있으니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한 게 누구더라?’
‘아아…. 영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다. 그 단단한 가슴….’
‘말 돌리기는. 꿈 깨라.’
하녀들은 투닥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들의 이야기를 몰래 귀동냥하고 있던 비앙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카리에게 정부가 있다는 말에 가슴이 조여 오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괜히 불쾌했으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역겨움이 치솟아 올랐다.
정부情婦!
어째서 그 존재를 생각도 못했을까?
하긴, 정부가 있으니 그녀가 거부하는 것에도 아무렇지 않았으며, 그녀가 열여덟이 되도록 첫 경험을 치루지 않고 차일피일 미뤄온 것이겠지. 그리 생각하니 모든 이유가 납득됐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더더욱 자카리를 밀어내었고, 남자에 대한 불신과 정사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똬리 틀게 되었다.
* * *
그렇게 불행한 결혼 생활이 지속되는 와중, 비앙카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만남이 찾아왔다.
바로 운명적인 사랑, 잘생긴 미남자 페르낭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비앙카와 비슷한 또래인 그는 빛나는 아침 햇살 같은 남자였다. 자카리가 무뚝뚝하고 돌 같은 무인이라면, 페르낭은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음유시인이었다.
그는 남편 자카리가 한 번도 입에 담은 적 없는 달콤한 말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남자를 모르는 비앙카가 그의 다정함에 홀딱 넘어간 것도 당연했다. 남자에 대한 불신도 페르낭을 만나고 난 뒤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정사에 대한 두려움만큼은 계속 남아 그녀를 옭죄었다. 비앙카가 페르낭에게 반한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그를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자, 페르낭은 그 푸른 눈동자를 울망 빛내며 ‘마님은 절 원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전 이렇게 마님을 원하고 있는데….’라며 부풀어 오른 그의 성기로 비앙카의 가는 손가락을 잡아끌었다. 손끝에 닿은 그의 성기가 타오르는 숯덩이처럼 뜨거웠다. 비앙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혹스러워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녀의 하얀 뺨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달아올랐다.
여전히 남녀 간의 정사는 두려웠지만, 페르낭이 자신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장소리가 귀를 울리는 걸 너머 머리까지 잡아 흔들었다. 비앙카는 홀린 듯 저도 모르게 치맛단을 슬쩍 잡아 올렸다. 그것은 일종의 충동이었다. 슬쩍 드러난 발목 선을 승낙으로 받아들인 페르낭이 그녀를 끌어안고 수풀 속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