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장사-3화 (3/192)

#3 악녀, 비앙카(3)

그렇게 비앙카는 어린 일곱 살의 나이에 아르노로 시집왔다. 당시의 자카리 또한 스무 살의 젊은 청년이었지만, 일곱 살 어린 아이가 보기에는 그저 커다랗고 두려울 뿐이었다.

비앙카의 얼굴만 한 손바닥과 무뚝뚝한 태도. 수수한 검은 모직 차림새에서는 죽음의 향기가 흘렀다. 자카리는 남자답게 잘생긴 편이었지만, 오히려 그 남자다운 외모가 비앙카의 경계를 샀다. 어린 비앙카의 눈에 자카리는 묘지기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자카리는 어린아이들에게 익숙지 않았고, 비앙카는 아버지가 아닌 어른 사내에게 익숙지 않았다. 비앙카는 자카리를 피했고, 자카리는 비앙카에게 쉽사리 다가서지 못했다.

자카리는 나름 비앙카에게 잘 대하려고 노력했다. 다만 문제는 그의 행동이 따듯한 말 한마디, 혹은 다정한 웃음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 환심을 사기 위한 선물과 예산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앙카를 더 외롭게 만드는 시발점이었다.

침대에 몸을 기댄 비앙카는 자신의 방안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깔린 카펫은 고급 양털로 촘촘히 짜인 만큼 맨발에 닿는 느낌이 무척 부드러웠다. 선명한 색조와 섬세한 무늬. 분명 무척 귀한 카펫이었을 테지만 과거의 자신은 아마 이 카펫을 못마땅해 했던 것도 같다. 실크 카펫보다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남편 자카리 드 아르노의 공훈 덕에 왕으로 하여금 풍요로운 봉토와 갖은 귀물을 받아온 만큼 아르노 가는 꽤 부유한 편이었다. 하지만 대대로 가문을 번영시켜 온 비앙카의 친정, 블랑쉐포르 가에게 비교할 수는 없었다.

무인인 자카리는 천성이 무뚝뚝하고 투박하여 화려한 차림새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고, 그런 실용적인 성격은 그의 성의 장식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블랑쉐포르 가에서 값진 것만 둘러온 어린 신부에게는 최대한 맞춰주려 노력했다.

영주인 자카리의 방은 단조로운 카펫과 장식, 나무를 깎아 만들었을 뿐인 가구들로 이루어졌지만, 비앙카의 방은 화려한 태피스트리, 금장으로 장식된 가구들, 귀한 염료로 염색된 천들로 장식되었다. 하지만 비앙카에게는 그저 부족했다. 자카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비앙카의 기준을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의 비앙카는 그런 자카리의 노력을 구질구질하다 폄훼했다. 저 먼 이국땅에서 들여온 자주색 염료로 물들인 귀한 옷감을 가져와도, 비앙카는 자수로 놓을 금사가 없지 않느냐며 그를 타박했다.

어느 날은 비앙카가 쓸 수 있는 예산이 대폭 줄게 된 일이 있었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군마는 사도사도 끝이 없었으며 화살촉과 검은 항시 부족했다.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방의 내장을 바꾸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된 비앙카는 성이 났다.

그녀에게 있어서 방을 꾸미는 것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었다. 유모의 손을 잡고, 낯선 성에 똑 떨어진 그녀는 성 안의 모든 사람과 어색하고, 남편과도 잘 맞지 않아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의 공간을 치장한 것은,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기 위한 행위였다. 고향집인 블랑쉐포르 성의 화려한 모습과도 같이 자신의 방을 꾸미고, 옛날처럼 고급진 옷감으로 몸을 감싼 채 그 공간 안에 있자 하면, 일종의 향수 같은 것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하지만 삭막한 아르노 성을 블랑쉐포르 성처럼 꾸미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들었고, 그렇기에 그녀에게 있어 예산이 얼마나 책정되는지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오죽하면 남편인 자카리를 내심 피하던 그녀가 직접 그를 찾아갈 정도로.

‘전쟁은 도대체 왜 하는 거예요? 아무리 이기면 뭘 해요?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기만 할 뿐인데!’

‘예산을 줄이는 것은 이번이 예외요.’

‘이 성에서 사는 기쁨이라곤 하나 없어요. 당신은 내 유일한 행복을 앗아간 거예요.’

‘…….’

비앙카는 울먹이며 붉어진 눈으로 자카리를 쏘아보았다. 자카리는 묵묵히 비앙카를 바라보더니, 휙하니 돌아 방을 빠져나갔다. 자신이 모욕 받았다 생각한 그때의 비앙카는 모멸감에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것이 그저 방을 꾸밀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아무런 상의 없이 예산을 줄인 자카리의 행동에서 모멸감을 느꼈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 전쟁에서 자카리는 대승을 했다. 남들 부러울 정도로 포상을 받은 그는 비앙카에게 부족했던 예산을 채워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얹어 주었다. 마치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비앙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자카리는 잦은 전쟁으로 수시로 성을 비웠다. 그가 왜 그렇게 전쟁에 집착하는지 비앙카는 알지 못했다. 사실 전쟁에 집착하는 것은 자카리 뿐만이 아니다. 사내들은 모두가 그랬다. 비앙카는 항상 멀리 떠나는 자카리의 뒷모습만을 보았다.

미운 정이라도 들려면 자주 마주쳐야 하는데, 그들 부부는 그조차도 힘겨웠다. 남편인 자카리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니, 비앙카는 커다란 성에서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친정에서부터 그녀를 따라온 유모 쟌이 돌림병으로 죽고 난 뒤에는 더했다. 그녀는 주변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훗날 비앙카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이미 둘 사이에 깊디깊은 골이 생긴 뒤였다.

보통 성인이 되는 시기를 열여섯이라고 친다지만, 그들 부부는 비앙카가 열여덟이 되기까지도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다.

비앙카가 열여덟, 자카리가 서른한 살이 되었을 때 바깥 상황은 점점 험난해졌다. 전쟁으로 인한 상황이 일촉즉발로 흘러가자, 가신들은 아르노 가에 후계자가 필요하다며 간청을 올렸다. 예전부터 그런 간청은 계속해서 있어 왔었지만 미룰 만큼 미룬 상황이다. 이제는 더 물러설 수가 없었기에, 자카리는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그녀의 방을 찾아왔다. 추수가 시작하기 전, 가을 어느 날이었다.

그녀의 방 입구에 우뚝 서서 그녀를 바라보던 자카리의 눈빛이 얼마나 형형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평소 그녀의 방에 얼씬도 안하는 그가 갑자기 찾아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빤히 직시했다. 당황스러웠던 비앙카의 손이 덜덜 떨리며 수틀이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동요가 그의 앞에 까발려졌지만, 비앙카는 모르는 척 턱 끝을 치켜들고 새초롬히 그를 질책했다.

‘갑자기 찾아오시다니 예의에 맞지 않아요. 미리 말을 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내가 내 아내의 방에 찾아오는 것이 예의에 맞지 않는 일인가?’

‘…익숙한 일은 아니지요.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있으시겠죠. 급한 일인가요?’

‘급한 일이 아니면 그대를 찾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는군.’

비앙카가 그를 꺼리는 걸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눈치 챈 자카리의 입꼬리 한쪽이 올라가며 조소어린 웃음을 지었다. 비앙카는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녀로서는 급하고 중요한 일일지라도 그와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척 급한 일이요. 지금까지는 어찌 둘러대어 넘겨왔으나, 가신들 모두가 내 후사를 원하는군. 일주일 뒤에 첫날밤을 치를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시오.’

‘네?’

‘이제 그대도 아내의 진정한 의무를 다할 때가 왔다는 말이오.’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는 비앙카에게 자카리는 다시 한 번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감이 없는 듯 비앙카는 멍하니 수틀을 매만졌다.

자카리는 어물어물 답을 흐리는 비앙카가 못마땅한 듯, 바닥을 향해 떨구어진 그녀의 가늘고 흰 목덜미를 한참을 쏘아보았다. 그리고는 홱 몸을 돌려 방을 나섰는데, 그러면서도 한마디 덧붙여 쐐기를 박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잊지 마시오. 일주일 뒤요.’

비앙카는 믿을 수가 없었다. 첫날밤이라니. 비앙카로서는 너무 갑작스러웠고,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비앙카가 색사에 무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필요한’ 정도의 지식은 있었다. 비앙카가 달거리를 시작한 다음 날, 그녀가 어른이 되었다며 유모가 부부 사이의 은밀한 일에 대해 설명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벌써 열세 살 때의 일이었다. 그 사이에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유모는 비앙카가 아르노가의 안주인으로서 손색없이 자라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으며, 계속해서 비앙카가 자카리에게 갖은 편견과 거리낌을 없애 주려 노력했다.

그녀는 정말로 비앙카를 아꼈다. 그녀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비앙카가 남편의 애도 없이 다른 남자에게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페르낭에게 빠질 정도로 외롭지도 않았겠지.

유모는 분명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그녀가 일찍 죽었으며, 그 뒤로 비앙카는 제멋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고. 성가신 것은 모르는 척 눈을 감고.

그녀의 짧은 인생에 있어서 제일 회피하고 싶은 문제는 바로 남편 자카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아르노 가의 안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카리마저도. 그러다 보니 비앙카로서는 잠자리건 뭐건 저 좋을 일만 하며 시간을 보냈으며, 부부 사이는 점점 데면데면해지고 있었다.

유유자적하던 찰나 갑작스레 코앞으로 들이닥친 정사. 비앙카는 공황에 빠져 우왕좌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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