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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격정 (2) (4/7)

3. 격정 (2)

인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요한 숲, 금빛 무리가 생겨나더니 이내 그 속에서 두 사람의 인영이 드러났다. 빛무리 속에서 나온 건 여자를 안고 있는 은색 머리칼의 남자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서늘함이 느껴지는 인상의 남자는 천천히 여자를 바닥에 눕혀 두었다. 그가 여자를 내려놓는 동안 주위를 맴돌던 빛무리가 흩어졌다.

바닥에 여자를 눕히자 여자가 숨을 헐떡이며 한차례 몸부림쳤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떠는 모습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실제로도 여간 고통스러운지 그녀는 파들파들, 몸을 떨면서 계속 신음을 흘렸다.

“흐윽…….”

“…….”

“아앗, 흣!”

라슬로는 셀레나를 보며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여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 역시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정확히 뭐에 당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 마법으로 중화를 시키면 금방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가 셀레나를 향해 손을 펴고 주문을 외우며 마나를 운용했다. 빛무리가 서서히 그의 손아래에 모여들었을 때다. 작고 서늘한 손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생각지 못한 접촉에 순식간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라슬로는 한껏 당황한 얼굴로 셀레나를 내려다보았다.

“마, 만져, 읏, 주세요…….”

“…….”

“몸이, 이상, 흐윽, 미칠 것 같아…… 어, 어떻게 좀…….”

셀레나가 말을 이으며 몸을 비틀었다. 아파서 고통스러워한다기보다는 어떠한 감각에 몸부림을 치는 모습이었다. 그제야 라슬로는 여자가 어떤 것에 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여자는 미약에 당한 것이었다.

여자의 옷차림이 흐트러지고 웬 이상한 남자가 그녀의 위에 올라타 있을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제 어리석음에 절로 한탄이 나왔다.

라슬로가 스스로의 멍청함을 탓하고 있는 사이, 여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잔뜩 웅크린 채 있는 여자의 얼굴 옆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상기된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본 라슬로의 가슴이 울렁였다.

“제발…….”

셀레나가 애원했다. 잡힌 손을 바라보던 라슬로의 시야로 그녀의 가슴께가 들어왔다. 찢어진 천 사이로 봉긋한 가슴이 보였다. 흰 젖무덤이 오르락내리락거린다.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제길.”

라슬로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손과 다른 손을 붙잡고 위로 올렸다. 양팔이 올라감에 따라 그녀의 가슴이 더욱 봉긋하게 도드라졌다.

그가 남은 손으로 그녀의 앞섶을 열었다.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가리고 있던 천이 그의 손에 의해 힘없이 떨어지고 동시에 그의 얼굴이 내려앉았다.

붉고 뜨거운 혀가 가슴의 둔덕을 핥는다. 봉긋하게 솟은 둔덕을 핥던 그가 이내 입을 크게 벌려 젖무덤을 삼켰다.

“하읏!”

조곤조곤하면서도 집요하게 유두를 오물거리는 혀의 놀림에 셀레나가 바들바들 떨며 골반을 비틀었다. 아래가 촉촉하게 젖어 들어가고 정신이 아찔했다.

“이, 이상, 윽…….”

기분이 이상하다. 그러나 더없이 강렬했다. 뜨거운 혀가 가슴을 핥을 때마다 잔뜩 예민해진 몸은 더욱 달아올랐다. 허벅지 안쪽의 은밀한 곳이 촉촉하게 젖어 든 게 느껴졌다.

남자가 자극을 줄 때마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아래쪽이 움찔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가슴에 닿은 은빛 머리칼, 뜨거운 숨결, 삼켜지고 있는 느낌, 어느 것 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고개를 든 그가 셀레나의 턱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입 속으로 들어온 혀와 혀가 서로 얽히며 타액이 뒤섞인다. 혀를 뒤섞던 라슬로가 참을 수 없다는 듯 하아, 거친 숨을 토했다.

그녀의 턱을 쥐고 있던 커다란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와 치맛자락을 들쳐 그녀의 허벅지를 쓸더니 이내 그녀의 엉덩이를 그러쥐었다. 꽉 잡힌 그 느낌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흐윽!”

단지 접촉일 뿐인데도 온 감각이 날뛰는 기분이었다. 셀레나는 들뜬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지금의 접촉도 좋았지만 이보다 더 강한 게 필요했다. 그래, 더 강렬한…….

“더…….”

셀레나는 제 가슴을 라슬로에게 들이밀었다. 그가 빨아 줬으면 좋겠다. 핥아 줬으면 좋겠다. 그의 숨결이 닿을 때마다 유두가 잔뜩 곤두서는 느낌이 소름 끼칠 정도로 좋았다.

밀착된 상체에 가슴을 문지를 때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게 좋았다. 그녀가 정신없이 가슴을 문지르는데 속옷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내려가는 속옷을 따라 질척한 액체가 허벅지까지 길게 선을 그렸다.

“으흑…….”

“잔뜩 젖었군.”

묵직한 음성이 귓가에 울린다. 그 목소리에 셀레나가 한차례 몸을 떨었다. 벌려진 다리 사이로 찬 공기가 들이찬다. 그 낯선 느낌에 셀레나가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으나, 남자의 손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남자의 고개가 아래로 미끄러진다. 다리 사이로 숨결이 느껴지더니 이내 음부에 입술이 닿았다.

“허억!”

셀레나가 발작하듯 상체를 일으키며 바둥거렸지만 라슬로는 그녀의 엉덩이를 더욱 쥔 채 혀를 놀렸다. 할짝할짝, 찰기 어린 소리와 동시에 들어오는 혀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회음부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전신을 휘감고 그녀의 신음이 점점 커졌다.

“이, 이상…….”

분명 이상한데, 한없이 좋았다. 질척하게 빨아들이는 소리와 함께 빨아 당길 때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하아, 앗, 흐윽!”

혀 놀림이 점차 농밀해짐에 따라 셀레나의 정신 역시 몽롱해지더니 온몸이 찌르르, 전율했다. 자극을 이기지 못한 허리가 크게 휘었다가 아래로 내려앉는다.

그러나 한차례의 전율이 끝나기도 전에 계속 그녀의 음부와 질 내에 가해지는 자극에 다시금 머릿속이 하얘진다.

두 번째 전율에 셀레나는 완전히 몸에 힘을 뺐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몸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건지 자꾸만 그녀를 긁어 댔다. 더,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

“이거 말고, 흐윽, 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셀레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계속 끝없이 애원했다.

“보채지 마. 가뜩이나 미칠 것 같으니까.”

다리가 더욱 벌려지고 무언가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정체 모를 것이 그녀의 음부에 문질렀다. 들어올 듯, 말듯, 문질러지기만 하던 그것이 한 번에 들어왔다.

“허억!”

걷잡을 수 없는 고통에 셀레나가 손을 뻗어 라슬로를 밀쳐 내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거부를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커다란 손은 그녀를 짓눌렀다. 몸속에 들어온 그것이 천천히 움직였을 때 고통이 극에 달했다.

“아, 아파. 아파…….”

셀레나가 애원하듯 고통을 호소했으나 라슬로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거친 허리 짓에 기둥이 뿌리 끝까지 푹, 푹, 박혀 온다. 부드러움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한 번 들어올 때마다 깊게 들어온다.

처음에 아프던 것도 잠시, 점차 고통이 무뎌지더니 이내 야릇한 느낌이 피어났다. 여전히 아팠지만 아픔보다 묘한 느낌이 우위를 차지했다. 그것이 내벽을 찌를 때마다 셀레나의 몸 역시 흔들렸다.

“아, 아앗, 흑!”

제 몸 안으로 들어온 그것의 존재가 낯설면서도 동시에 지독했다. 점차 피어오르던 묘한 느낌은 종내 끔찍하리만큼 강렬한 자극으로 변했다. 맞닿은 부위가 맞부딪치고 맥박이 거세게 뛰는 게 느껴졌다.

감당 못할 자극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왈칵, 눈물이 한 움큼 쏟아졌다. 셀레나가 울음을 터트림과 동시에 그녀의 눈가 위로 땀방울이 떨어진다. 눈물과 땀방울이 뒤섞여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허리 짓이 점점 빨라지고 거센 몸짓에 셀레나의 몸 역시 연신 흔들렸다. 시야가 휘청거렸다. 그의 것이 완전히 깊이 박혔을 때, 셀레나가 신음을 터트리며 안을 조였다.

가득 조여든 내벽에 라슬로가 낮은 신음을 터트리며 더욱 허리를 놀렸다. 이성을 잃은 듯 빠른 속도로 박혀오는 몸짓에 셀레나가 경련을 일으키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라슬로는 셀레나가 정신을 잃었다는 걸 알았으나 멈출 수 없었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여자의 내벽은 끝없이 그의 기둥을 조이고 놓아주지 않았다.

잔뜩 힘이 들어가 주름이 잡힌 내벽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며 라슬로는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박고 또 박았다. 정신없이 박던 그에게 어느 순간 쾌감이 몰려오고 그가 파정했다.

“하아…… 하…….”

라슬로는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셀레나를 내려다보았다. 잔뜩 상기된 뺨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어여뻤다.

분명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죽이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던 여자였다. 반려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라슬로는 여자의 목과 어깨를 완전히 자리 잡은 각인의 문양을 눈에 담았다. 자신과 똑같은 붉은색 문양이다.

‘나와 같은. 그리고 나의 반려.’

심장이 끝없이 요동치고 여자가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미칠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여자를 가둬 놓고 끝없이 여자를 범하고 싶다.

이게 각인 때문인지 정말 자신도 모르게 여자에게 감정을 느끼게 된 건지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자신은 이제 여자를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을 거란 것이었다.

각인의 문양을 바라보던 라슬로는 고개를 숙여 셀레나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 * *

“으음…….”

셀레나는 눈을 떴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들이닥치는 빛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몇 번 눈을 깜빡이자 빛에 익숙해졌고, 시야가 맑게 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은색 머리칼이었다.

‘예쁘다…….’

그녀는 멍하니 손을 들어 머리칼을 잡으려 했다. 아마 중간에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깼군.”

순간, 셀레나의 손이 그대로 허공에 멈추었다. 그녀는 손을 차마 거두지 못한 채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시선이 천천히 내려가고 곧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금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한 셀레나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윽…….”

그러나 다리에 힘을 준 순간, 경련이 일었다. 고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심코 제 다리를 내려다본 셀레나는 자신이 맨몸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 내가 옷을 벗고 있지……?’

당황함에 눈을 깜빡이던 그녀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기억들이 주르륵 지나갔다. 자신에게 약을 먹인 할머니와 그런 저를 덮치려고 했던 자작, 그리고 돌연 나타난 은빛 늑대…….

거기까지 생각한 셀레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늑대!”

“알아챘……”

“혹시 늑대 한 마리 못 보셨나요? 덩치는 이만하고, 털은 은색에 눈은 금색인데…….”

“뭐?”

“모르는군요. 아아, 어떡하지…… 틀림없이 할머니가 늑대를 봤을 테고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늑대를 죽일지도 모르는데…….”

셀레나가 발을 동동 굴렸다. 그런 셀레나를 보며 라슬로가 헛웃음을 흘렸다.

돌연 자신을 바라보며 ‘늑대!’라고 외치기에 제 정체를 짐작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가. 게다가 큰일을 당할 뻔한 건 되레 자신이면서 다른 것부터 걱정을 하다니.

비록 그 걱정의 대상이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슬로는 셀레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이 여자는 자신부터 챙기는 게 아니라 다른 것부터 챙기는 거지?’

그간 그가 봐 온 것들과는 너무나 달라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불쾌했다.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못 챙기는 주제에 지금 누굴 걱정하나.

‘게다가 자신이 어떤 상태인 건지는 자각 못 하는 건가.’

라슬로는 셀레나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정사가 끝나고 정성스레 마무리를 한 그는 셀레나에게 옷을 입혀 주려고 했으나, 다시 본 옷은 상의가 다 찢겨 옷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곧 그는 마나로 새로이 옷을 만들어 주려고 했으나 이내 그는 마나를 모두 흩어지게 했다.

셀레나가 깨어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잠시 감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또한 정신을 잃은 그녀가 무의식중으로 손을 뻗어 저를 끌어당길 때 닿는 여체의 느낌이 좋았던 것도 있었다.

그래도 감기에 걸리면 안 되니 체온 보존 마법을 걸고 여자를 안고 있는데, 얼마 안 있어 여자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몸을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눈을 떴다. 그리고 현재.

제 눈앞에 있는 여자는 자신이 그토록 찾는 늑대와 동일 인물이라는 걸 모르는 듯 계속 늑대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았다. 라슬로는 여자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함을 느꼈다. 그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역시 안 되겠어요. 늑대를 찾으러 가야……”

홀로 중얼거리던 셀레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라슬로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늑대를 찾는 거라면 움직일 필요 없다. 내가 그 늑대니까.”

“네?”

셀레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늑대가 이 남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금수가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려던 셀레나는 일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 늑대와 색이 똑같아. 눈동자 색도, 머리칼 색도, 모두 같아.’

늑대가 인간으로 변신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할 정도로 남자와 늑대는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짐작일 뿐, 증거가 없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어떻게 늑대가 될 수 있죠?”

“직접 보여 주는 편이 네가 납득하기 더 쉽겠지.”

라슬로는 말을 마치자마자 마나를 운용했다. 그의 몸에서 금빛 무리가 흘러나왔다. 그 눈부신 빛에 셀레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뜬 건 빛이 사그라졌을 때였다.

“어? 늑대야?”

눈을 뜬 그녀의 앞에 있는 건 늑대였다. 그녀가 며칠간 돌봐 주고 치료를 해 주었던, 아름다운 은빛 갈기를 가지고 있는 늑대.

“이제 내가 늑대라는 걸 믿겠……”

“무사했구나!”

셀레나는 늑대를 끌어안았다. 비록 그 덩치 차이가 심해 그녀가 안았다기보다는 안긴 꼴이 되었지만.

“무사해서 다행이야…….”

라슬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갑작스레 저를 껴안은 셀레나 때문에 몸을 굳혔다. 그녀는 기쁜 마음에 그런 것일 테지만 라슬로에게는 셀레나의 행동은 자극적이었다.

몸에 닿은 여체의 감촉이 그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녀는 그를 끌어안은 채 얼굴을 비비기까지 했다. 그녀가 얼굴을 비빌 때마다 보드라운 여체 역시 그와 마찰했다.

당장이라도 셀레나를 덮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여자를 안고, 눕혀서 잔뜩 핥고, 저 예쁜 입술을 삼키며 끊임없이 범하고 싶다. 여자의 몸 곳곳에 제 흔적을 남기고 싶다.

‘미치겠군.’

정말 딱 그 생각뿐이었다. 미치겠다. 라슬로는 여자에게 옷을 입히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감촉이 좋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욕구다. 무슨 자신감으로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라슬로는 지금이라도 셀레나에게 옷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앞발로 슬쩍 그녀를 밀어냈다.

그리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금수의 형상을 한 본체보다는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게 더 익숙하기도 했지만, 계속 본체로 있다가 셀레나가 다시금 그를 끌어안기라도 한다면 절제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본분도, 설명도 잊은 채 잔뜩 범해 버릴지도.’

적어도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있으면 그를 낯설어하는 셀레나는 함부로 그를 끌어안지는 않을 것이다. 셀레나가 자신을 낯설어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행동을 하여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라슬로의 예상대로 다시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셀레나는 눈의 띄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죄, 죄송해요.”

셀레나가 사과했다.

“늑대의 모습을 하니 저도 모르게 감정이 벅차올라서 허락도 없이 접촉했어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기분이 나빴냐고? 자신보다 타인을 위하는 성정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까지 남부터 챙기다니…….’

라슬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여자의 행동을 지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저도 모르게 욱한 것은.

“이미 할 것도 다 했는데 새삼 접촉에 대해 사과할 건 없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내가 널 싫어했다면 네 요구에 응했을 리가 없지 않나.”

“네? 그 무슨…….”

“우선 옷부터 입지.”

라슬로는 마나를 운용했다. 금빛 무리가 그녀의 몸을 감싸더니 이내 그녀가 평소 입던 옷과 비슷한 형식의 옷이 입혀졌다. 갑작스레 입혀진 옷에 셀레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갑자기 옷이…….”

“마법이다.”

“마법이라고요? 이게 마법이에요?”

셀레나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치맛자락을 펄럭여 보였다.

“마법을 처음 보나? 마법사가 희귀하지만 아예 못 볼 정도는 아닐 텐데.”

“수도에는 마법사가 몇 명 있다고 들어봤지만 이런 시골에서는 마법사를 볼 수 없어요. 촌장님마저 마법사를 본 적 없다고 하셨어요. 마법사는커녕 용병만 와도 굉장히 특이한 일인걸요. 참! 그러면 당신은 마법사겠네요? 마법을 쓰니까.”

“그래.”

“그렇다면 늑대로 변신했던 것도 이해가 되네요. 마법사는 강하다고 들었으니까 그러면 마을 사람들에게 죽지도 않을 테고…… 다행이에요. 정말로.”

그녀는 진심으로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라슬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할 말은 그게 끝인가?”

“네?”

“더 할 말은 없냐고 물었다.”

“더 할 말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셀레나가 돌연 ‘아!’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라슬로는 이번에야말로 여자에게서 들을 물음에 대한 준비를 했다.

이를테면 자신이 실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늑대인 척을 했다는 것이라던가, 셀레나를 탐하려 했던 남자를 죽인 일이라던가, 아무리 그녀가 애원했다한들 미약을 먹어 제정신이 아니란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취한 일에 대한 것에 대한 물음들을 말이다.

“감사합니다.”

‘뭐?’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싫은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드려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라슬로는 멍한 눈으로 제게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셀레나를 바라보았다.

“감사…… 하다고?”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한 대답이었다. 그가 셀레나의 말을 되뇌는 사이, 셀레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한 부분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은 남자에게 구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을 뿐이다. 도움을 받았기에 감사하다고 한 걸 기분 나빠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셀레나가 의아해하는 사이, 라슬로가 입을 열었다.

“날 탓하지 않나?”

“네?”

“난 네게 내가 늑대가 아니란 걸 밝히지 않았지. 게다가 미약에 당한 널 취했고, 너와 함께 있던 남자를 죽이기까지 했지. 이런 날 탓하지 않는 건가?”

남자의 물음에 의아함을 느낀 건 되레 셀레나 쪽이었다.

“그건 제가 탓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

“…….”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꼭 저를 속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애초에 제게 꼭 밝혀야 하는 의무도 없고 저 혼자 착각한 거잖아요.”

그녀는 숨을 고른 후,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를, 그렇게 하신 건 제가 원했던 일이었는걸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고 또 덕분에 지금 이렇게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는걸요.”

셀레나는 제게 닿았던 남자의 손길을 기억했다. 비록 다정한 말은 없었지만 남자는 그녀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었고, 그녀가 원하는 걸 다 주었다. 비록 그 손길이 상냥하다고 말은 못 하겠으나, 저를 만지는 손과 저를 내려다보던 눈의 열기를 똑똑히 기억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절로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남자가 저 얼굴로 제 가슴을 핥고 제 은밀한 곳을 핥았던 모습이 떠오르자 절로 아래쪽이 조여들었다. 갑자기 훅 달아오르는 몸에 셀레나가 당황하며 재빨리 다음 말을 이었다.

“그, 그리고 자작님을 죽인 건, 저를 도와주시려고 그런 거 아닌가요? 어쩌면 제가 당신을 위험에 처하게 만든 걸지도 몰라요. 그걸 생각한다면 되레 제가 사과해야 하는…….”

셀레나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고 나니 새삼 자신의 상황이 와 닿은 것이다. 자작을 죽였다. 제 할머니가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있다며 알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일이었다.

자작을 죽인 건 귀족을 모독한 것. 죽은 자작의 군졸들은 물론, 귀족에 죽음에 분노한 다른 귀족들이 군사를 보내올 것이다.

‘어떡해. 내가 이 사람을 곤경에 빠뜨렸어.’

셀레나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정말 죄송해요. 위험에 처하게 해 드려서 죄송…… 아, 이럴 때가 아니라 제가 길 안내를 해드릴게요. 지금이라도 도망치시면 괜찮을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곧 자작의 군사들이 몰려올 거예요. 어쩌면 다른 영지의 군사들까지 올지 몰라요. 귀족 모독죄는 최소 사형이라고 들었어요. 아무리 당신이 마법사라지만 군사들이 몰려오면 죽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제가 당신만큼은 빠져나가게 해드릴게요. 이 지역의 지리는 웬만큼 알고 있으니까…….”

“그러는 너는.”

“네?”

“너는 어쩔 생각이지? 남자를 죽인 건 나지만 너 역시 그 책임을 피하진 못할 텐데?”

“아, 저는…….”

셀레나는 쉬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를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는 생각만 했지, 스스로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생각해 본 적 없군.”

정곡을 찔렸다. 셀레나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라슬로를 바라보았다.

“너는 항상 그런 식인가? 왜 항상 남을 도와주려고 하고 걱정하는 거지? 정작 제일 중요한 자신의 안위는 생각지도 않으면서?”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면 말해 봐라. 날 도망치게 하고 나서 넌 어떻게 하려고 했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 본 적 없으니 대답 역시 나올 리가 없었다. 그간 살아오면서 셀레나는 스스로를 미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남자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미련하게 굴고 있는지 깨달았다. 타인의 눈으로 보면 더없이 한심하리라.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지금이라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하려고 했다.

‘나와 함께 있었던 자작님이 죽었으니 당연히 나도 책임을 피할 순 없을 거야. 분명 죽을 거야. 죽지 않더라도, 할머니는 또다시 나를 팔아넘기려고 할 거야.’

비록 미약에 취했던 까닭에 중반부터는 정신이 없었으나, 초반은 제법 그 기억들이 또렷했다. 자신은 할머니의 외손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할머니는 제 어미를 자작에게 팔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그녀를 넘기려고 했다는 것.

셀레나는 자신이 미약에 취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단지 천에 살갗이 닿았을 뿐인데 오소소, 소름이 돋으며 온몸이 간질거리고 화끈거렸다.

머릿속에는 누군가 만져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고 아랫배가 움찔거리며 속옷이 흥건히 젖어 들어가는 기분은 불쾌한 쪽에 속했다.

그리고 더욱 불쾌했던 건, 자신을 만지던 자작의 손길에 반항하자 뺨을 얻어맞았고 그 무자비한 폭력과 약의 기운에 제대로 반항조차 못한 채 싫다고만 중얼거리던 무력한 자신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이대로 당하는 걸까, 어렴풋이 생각날 때 늑대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 주었을 때는 얼마나 안심이 되었던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지는 약효에 그녀는 참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만져 달라고 제발 어떻게 좀 해 달라고 애원하게 되었다.

다행히 자신이 그토록 끔찍하게 여겼던 자작과 일을 치르지는 않았으나 또다시 그 약에 취하면 상대가 누구든 그녀는 또다시 애원하게 될 것이다.

‘그건 싫어…….’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달리 갈 곳도 없었다. 답을 내지 못한 채 그저 치맛자락만 붙잡고 있는데, 돌연 남자가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휘감더니 몸을 확 끌어당겼다.

놀라 소리를 지를 새도 없었다. 순식간에 당겨진 몸이 남자에게 안겨졌다.

“무, 무슨.”

“쉿.”

남자가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그 동작에 셀레나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의아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는데 곧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디 있다는 거요?”

“아니, 글쎄! 분명 뭔가 있다니까?”

모습을 드러낸 건 각종 무기와 농기구를 든 마을 사람들과 그녀의 할머니였다. 노파를 발견한 셀레나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여기를 온 거지?’

셀레나가 놀란 눈으로 그들을 응시하는 동안 말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자네들도 아까 중턱에서 봤잖아! 화살과 핏자국을 말이야!”

“아, 물론 봤긴 봤는데 그게 꼭 늑대의 짓일 거란 보장은…….”

“분명히 있다니까? 그리고 자네들도 의심이 되니까 날 따라온 것 아닌…… 어?”

말을 하던 노파가 돌연 말꼬리를 흐리더니 눈을 부릅뜨고 셀레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놀란 셀레나가 재빨리 몸을 숙였다. 그 덕에 남자의 몸에 고개를 묻게 된 꼴이 되었으나 놀란 나머지 셀레나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다.

“이것! 이것 보게!”

노파의 외침에 설마 들켰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셀레나의 가슴이 절로 뛰었다.

“셀레나의 옷이네!”

“셀레나의 옷이라고요?”

“그래! 그 아이의 옷이 분명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직까지 들키진 않았으나 자신의 옷을 발견한 그들은 더욱 수사 범위를 확대할 것이고, 들키기까지는 시간문제였다. 그녀의 예상대로 빨리 이 주위를 찾아보자는 사람들의 말이 들려왔다.

‘어떡하면 좋아…….’

셀레나는 이 상황이 모두 제 탓처럼 여겨졌다. 자신만 아니었다면 남자는 이 일에 개입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대답을 미루지 않고 빨리 남자를 안내했다면 남자는 도망을 칠 수 있었을 것이다. 죄책감이 목을 조른다. 셀레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나가서 시선을 끌게요. 그동안 당신은 도망치세요.”

“뭐?”

“저곳으로 쭉 달리면 동굴이 있어요. 외져서 웬만한 사람들은 모르는 곳이니까 거기 숨어 있으면 들키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산을 빠져나가세요.”

셀레나는 라슬로에게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말을 끝낸 다음, 몸을 일으켰다. 그런 셀레나를 보는 라슬로는 황당함을 느꼈다.

‘나보고 도망을 가라고?’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무서워했으면서 이제는 저보고 도망치란다.

‘본래는 이럴 생각은 없었지만…….’

역시 데려가야겠군. 그리고 제 옆에 둬야겠다. 멍청하고 순진해 빠져서, 제 이익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희생감만 넘치는 이 여자를.

라슬로는 뛰쳐나가려는 듯, 발을 움직이려는 셀레나의 팔을 붙잡았다.

“너도 같이 가지.”

“네?”

“어차피 저들에게 돌아가 봐야 험한 꼴을 당할 게 아닌가.”

“그렇긴 한데…….”

“그러니 같이 가자는 거다. 너만 원한다면 데려가 주겠다. 날 따라온다면 다른 건 모르겠으나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

물론 라슬로는 여자가 거부하더라도 이대로 두고 갈 생각은 없었다. 그는 여자의 손목을 힘껏 부여잡은 채 마나를 운용했다. 기실 그는 셀레나가 어떤 대답을 하던 이미 그녀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날 데려가 주겠다고? 하지만…….’

셀레나는 망설임이 역력한 얼굴로 라슬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의 이름도, 출신도, 그의 과거도 아는 것 하나 없었다. 아는 건 남자의 외양과 그가 자신을 얼마나 뜨겁게 안았는지와 같은, 겉에 불과한 것들뿐이었다.

‘어쩌면 할머니보다 더 위험한 사람일지도 몰라. 엄마를 팔았다던 용병처럼 못된 사람일지도 모르고 말이야. 하지만…….’

왠지 믿고 싶었다. 이 남자를.

적어도 그는 할머니보다 나을 거라고, 제 어미를 팔았다던 용병 같은 사람이 아닐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셀레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금색 눈동자가 오롯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을 따라가겠어요.”

“…….”

“데려가 주세요.”

“그래.”

그렇게 대답하는 라슬로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는 셀레나가 생각을 하는 동안 떠올려 둔 수식과 마나를 동시에 운용했다.

금색 빛무리가 그와 셀레나의 발치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 환한 빛무리에 셀레나가 멍한 얼굴로 라슬로를 바라보았다.

“저기 뭐가 있다!”

“무슨 빛이!”

환히 빛나는 빛무리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왕왕 울렸다. 그러나,

“입…….”

‘입?’

“입 맞춰도 되나?”

갑작스레 들려온 말에 셀레나의 눈이 한껏 커졌다. 그 순간, 셀레나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에서 저와 남자를 보고 외치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도, 심지어는 그들의 모습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시야에는 그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모습만이 담길 뿐이었다. 셀레나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피하며 작게 ‘네.’라고 대답했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내려온다. 이윽고 라슬로의 입술이 셀레나의 입술에 닿았을 때, 그의 눈동자 색과 똑같은 금색 빛무리가 눈부시게 터진다. 셀레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귓가에 왕왕 울리던 목소리들이 점차 희미해져 간다. 그녀의 감각은 오직 입 속을 파고드는 혀의 움직임에 집중되었다.

입천장을 톡톡 건드렸다가 부드러이 얽히는 혀에 절로 숨이 가빠졌다. 거친 호흡이 귓가에 울린다. 커다란 손이 등을 받치더니 허리끈을 풀어내는 게 느껴졌다.

허리끈이 풀림에 따라 겉치마가 흘러내렸다. 사라락, 흘러내린 치마가 바닥에 내려앉고 옷은 한 겹밖에 남지가 않았다.

“으응…….”

혀 놀림이 점차 농밀해지고 앞섬에 달린 리본이 풀렸다. 옷이 팔 위로 흘러내리면서 가슴과 어깨에 찬 공기가 닿는다. 찬 공기에 유두가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큰 손이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가슴을 그러쥐었다.

그저 가슴을 쥐었을 뿐이지만 손바닥에 쓸린 유두가 빳빳해지면서 절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흡, 절로 숨이 들이켜진다.

셀레나가 고개를 뒤로 빼려 했지만 머리 뒤를 잡고 있는 손 때문에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가슴을 쥐었다가, 놓았다가 쥐길 반복했다. 가슴을 자극하는 손에 쓸린 유두가 곤두선다. 입과 가슴, 동시에 자극되는 두 곳에 셀레나의 무릎이 살짝 흔들렸다.

“흐윽.”

입 속을 파고드는 라슬로의 혀 놀림에 몸이 점차 뒤로 밀려나더니 곧 등 뒤로 단단한 벽이 느껴졌다. 예상치 못한 감각에 슬며시 눈을 뜨자 찬란히 빛나는 라슬로의 은빛 머리칼과 그 위로 눈부시게 빛을 내고 있는 샹들리에가 보였다.

‘천장에서 빛이 나고 있어…….’

셀레나는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언제나 촛불을 켜고 살았던 그녀에게 샹들리에는 처음 보는 것이었고, 더없이 신기한 존재였다. 그녀가 샹들리에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귓바퀴에 뜨거운 무언가가 닿았다.

“읏!”

뜨겁고 축축한 게 그녀의 귓바퀴를 부드럽게 핥고는 그녀의 귀 끝을 살짝 깨물었다. 자국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말 그대로 살짝.

“나한테 집중해.”

귓가에 바로 속삭여지는 낮은 음성에 절로 몸이 떨렸다. 라슬로의 얼굴이 점차 아래로 내려와 쇄골에 입을 맞췄다. 녹녹한 입술이 그녀의 목과 쇄골을 진득하게 애무했다.

흡사 영역을 새기듯 천천히 내려온 입이 어느덧 그녀의 가슴까지 내려왔다. 그가 입을 벌려 가슴을 물었다.

아랫배가 잔뜩 조여들었다. 가슴 둔덕을 부드럽게 핥아 올려 유두에 닿을 때마다 아랫배가 조여들었다.

“흐읏, 아, 으읏!”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감각이란 감각은 모두 가슴에 집중된 느낌이었다. 뜨거운 혀가 유두를 핥아 올리고 반대편 가슴이 그러쥐어질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였다.

‘더 이상 못 서 있겠어…….’

다리가 후들거린다. 셀레나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라슬로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 손짓에 더욱 탄력을 받은 건지 가슴을 빠는 행위가 더욱 격렬해졌다. 질척이는 소리가 녹진하게 귓가에 달라붙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남자의 애무에 아랫배가 조여들고 자꾸 그에게 비벼 대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셀레나는 울상을 지으며 라슬로의 어깨를 짓눌렀다.

더 이상은 싫었다. 더 하다가는 끝없이 그에게 애원할 것만 같았다.

“그, 그만…….”

라슬로가 입술을 뗐다. 그의 금색 눈동자가 셀레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만하고 싶나?”

그러나 시선만 올렸을 뿐, 고개는 그대로일 뿐이라 입김이 바로 유두에 닿았다. 자극을 받은 유두가 더욱 곤두서면서 셀레나의 몸에도 바짝 힘이 들어갔다.

“말해 봐. 내가 그만뒀으면 좋겠나?”

라슬로가 말할 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닿고 유두가 잔뜩 곤두섰다. 계속 더해지는 감각에 눈가에 열이 올라온다. 금방이라도 그에게 가슴을 들이밀고 더 핥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말해라. 네가 원한다면 여기서 그만두지.”

그가 정말로 그만두겠다는 듯이 가슴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잔뜩 밀착되어 있던 그의 손이 떨어지려는 찰나, 셀레나는 저도 모르게 라슬로의 손을 붙잡았다.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이미 그의 손을 붙잡은 후였다. 라슬로의 시선이 셀레나의 손과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흡사 이건 무슨 뜻이냐고 묻는 눈치다.

“으으…….”

얼굴이 화끈거린다. 셀레나는 라슬로의 손을 놓지도, 그렇다고 더 세게 잡지도 못하고 그저 아랫입술만 깨물고 있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계속…….”

“…….”

“계속해 주세요.”

말해 버렸다. 라슬로의 손을 잡고 있는 손을 중심으로 맥박이 거세게 뛰는 게 느껴졌다. 이게 자신의 맥박인 건지 라슬로의 맥박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그녀의 심장 역시 뛰고 있다는 것이었다.

잠시간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까지 라슬로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셀레나는 슬쩍 민망함을 느끼며 그의 손을 놓으려 했다. 그러나 손에 힘을 풀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손목을 확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셀레나가 움찔거리며 라슬로를 바라보았다.

“……미치겠군.”

나지막한 중얼거림을 끝으로 그가 셀레나의 입술을 삼켰다. 그녀가 반문을 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혀가 정신없이 얽혀 들었다가 떨어져 나간다.

떨어진 입술 사이로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하아, 하아…….”

셀레나가 멍한 눈으로 숨을 내쉬는 동안 라슬로의 입은 다시금 그녀의 가슴을 물었다.

“흐읏!”

자신과 얽혔던 뜨거운 혀가 유두를 건드린다. 뜨거운 혀가 유두를 건드릴 때마다 손끝, 발끝 할 것 없이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의 혀가 원을 그림에 따라 작은 돌기 역시 따라 움직였다. 방금 전에도 느꼈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아까보다 더욱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으응…….”

‘미칠 것 같아.’

이대로 녹아내려도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마 그녀를 받치고 있는 라슬로의 다리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것이다.

더 이상 시선을 똑바로 둘 힘조차 없어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속옷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민감한 부위에 찬 공기가 들어옴에 따라 셀레나가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속옷이 내려감에 따라 애액이 허벅지에 길게 눌어붙은 게 느껴졌다. 속옷을 내린 손이 허벅지 안쪽을 어루만졌다. 애액이 손에 묻을 거란 생각에 재빨리 다리를 오므려 보려고 했지만 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허벅지를 매만지던 손이 점점 위로 올라오더니 은밀한 부위에 닿았다. 갈라진 틈 사이로 들어오는 손가락의 존재가 느껴졌다. 낯선 존재감에 잠깐, 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손이 안으로 들어왔다.

“하읍…….”

내부로 들어온 손가락의 존재에 셀레나가 절로 몸에 힘을 주었다. 움찔, 질이 조여들면서 제 속에 들어온 것의 존재가 더욱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온 그것이 가볍게 질 내부를 쓸었다. 몸을 바스락거릴 힘은 없었다. 그저 자극을 받은 질만이 움찔 조여들 뿐이다.

하아, 숨을 토해 내느라 잠시 힘이 빠졌다. 그사이 두 번째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오려는 게 느껴졌다.

‘아, 안 돼.’

첫 번째 손가락이야 별 어려움 없이 받아들였으나 두 번째 손가락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신의 구멍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어쩌면 찢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어렵사리 입술을 달싹이려는데 그가 가슴을 베어 물었다. 그 자극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손가락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구멍이 억지로 넓혀지는 느낌에 셀레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사이 손가락이 모두 들어왔는지 더 이상 벌려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제 이 이상의 고통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안심하려고 할 때, 안으로 들어왔던 손가락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하다가 곧바로 안으로 들어왔다.

“읏!”

들어오고 나가고 다시 들어온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애액이 가득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허벅다리를 타고 흘러내린 애액이 다리와 그의 손을 가득 적셨다.

손가락은 들어올 때마다 매번 다른 부위를 자극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러다 어느 한 곳을 꾹 누르는 손길에 절로 입이 벌려졌다.

“하아…… 읏!”

“여기가 좋나 보군.”

그녀의 신음 뒤로 라슬로의 웃음이 뒤따라왔다. 순간적으로 창피함이 느껴졌지만 연이어 자극하는 손길에 셀레나는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손가락의 감촉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었다.

“아앗…… 흐아아…… 아흑!”

어느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더니 머릿속에 무언가 팟, 튀기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가 부르르 떨리고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한차례 몸을 떠는 게 끝나자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하아…… 하아…….”

땀에 젖은 머리칼이 뺨에 달라붙었지만 셀레나는 그걸 떼어 낼 힘조차 없었다. 라슬로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숨만 헐떡이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시선을 내렸던 셀레나는 그녀의 시야로 들어온 것에 눈을 크게 떴다. 찰나에 불과했으나 그것의 존재는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셀레나는 제 아래에 문질러지는 그것의 존재를 느끼며 몸에 바짝 힘을 주었다.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그것의 크기를 보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음부에 문질러지는 그것의 존재가 무서웠다. 방금 전까지 늘어져 있었다는 게 거짓말일 정도로 다리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그에 삽입을 시도하던 라슬로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힘 빼.”

“하, 하지만…….”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셀레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계속 다리에 힘을 풀지 않자 라슬로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몸이 뒤로 물러나는 게 느껴진다. 그 모습에 셀레나가 안도하며 숨을 내뱉을 때, 거짓말처럼 그가 훅 들어왔다.

“윽!”

짧은 비명이 울렸다. 셀레나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아까 손가락이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많이 벌려졌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는지 그것이 안으로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라슬로의 어깨를 두들겨 보지만 그는 비켜나지 않았다. 더욱 깊이 파고들 뿐이었다. 고통도 잠시, 접촉된 부위가 짓눌리면서 묘한 느낌이 그녀를 휘감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골반을 단단히 잡음과 동시에 그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셀레나의 움직임에 맞춰 서서히 움직이었으나 행위를 반복할수록 그의 허리 짓이 빨라졌다. 그에 따라 셀레나의 안에 들어와 있는 그것의 속도 역시 빨라졌다.

내벽을 가득 채운 것이 거칠게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살과 살이 부딪혀 일어나는 질퍽한 소리가 귓가에 가득 울렸다.

“으, 응!”

그것이 푹푹, 찔러 들어올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미 깊숙이 들어온 그것이 한 치의 공간 없이 빈틈없이 들어온다. 내부로 들어올 때마다 예민한 부위가 자극된다.

“하아…… 으, 흐아!”

절로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셀레나는 라슬로의 어깨에 팔을 휘감은 채 눈을 꼭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감각이 더욱 아래로 향한다.

땀에 젖은 피부가 야릇하게 달아오른다. 격정적으로 치달은 움직임에 그녀의 몸이 거세게 흔들렸다. 등 뒤에 닿아 있는 벽이 쿵쿵, 부딪혔지만 몸에 닿는 아픔보다는 쾌감이 더 컸다.

“으읏…… 하아…… 아윽!”

몸이 흔들릴 때마다 정신 역시 흔들린다. 만약 정신에도 형체가 있었다면 이미 부서졌을 것 같았다. 시야가 휘청거리고 점차 감각이 새하얘지고, 부서져 내린다.

내벽이 한껏 조여들자 라슬로의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허리를 움직였다. 푹푹, 들어오는 몸짓에 한순간 흐려졌다고 생각했던 감각이 다시금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읏, 으, 그, 그만…….”

연달아 절정에 치달으니 머릿속이 반짝거리며 정신이 팽 도는 것만 같았다.

‘너무 힘들어. 그만하고 싶은데…….’

몸이 계속해서 반응했다. 내벽이 사정없이 조여들고 라슬로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셀레나가 계속 절정에 치달으며 떨었던 것처럼 그의 것이 그녀의 내벽 안에서 부르르 떨더니 곧 뜨거운 것이 가득 퍼져 나간다. 잠시간 경직되었던 그의 몸에서 힘이 빠지더니 그가 고개를 숙였다.

“하아, 하아…….”

거친 숨결이 가슴께에서 느껴졌다. 셀레나는 멍한 얼굴로 제 쇄골에 얼굴을 묻은 라슬로를 바라보았다. 그의 숨이 쇄골을 간지럽힌다.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자극을 받은 유두가 다시금 꼿꼿하게 섰다.

분명 감각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했으나 라슬로의 목가에 유두가 스칠 때마다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아랫배가 가득 조여들자 그가 움찔한다.

다소 줄어들었던 그것이 서서히 팽창한다.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그것의 존재를 느끼며 셀레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아, 그게, 저기…….”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나른하게 풀려 있던 금색 눈동자가 그녀에게 시선을 맞춰 온다.

“정말이지……”

“…….”

“넌 날 미치게 만들어.”

라슬로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가 허리를 움직임과 동시에 그녀의 어깨에 이를 세워 박았다.

“읏!”

흡사 짐승에게 물어뜯기는 느낌이었다. 날카로운 감각에 고개를 뒤로 젖히자 가슴이 위로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그의 입이 다급히 그녀의 가슴을 물고 정점이 빨린다. 위로, 아래로, 끝없이 자극받는다.

“하으, 아읏! 흐으응!”

점점 라슬로의 목에 두른 팔에서 힘이 풀리려고 했다. 억지로 힘을 주지만 팔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지만 그녀를 받치고 있는 그의 몸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다시 안아 들면서 그것이 깊숙이 박혔다.

머릿속이 팽글팽글 도는 와중에도 저를 올려다보는 금색 눈동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금빛이 점차 번져 나가고 곧 온 세상이 금빛으로 가득 들어찼다. 눈부시게.

해가 짐에 따라 방 안으로 붉은 노을이 길게 드리워졌다. 노을이 셀레나의 머리칼을 붉게 물들였다. 라슬로는 자신의 품에 안긴 채 자고 있는 셀레나를 바라보았다.

많이 지친 듯,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절로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저 보드랍고 붉은 입술을 빨고 싶었다.

그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막 셀레나의 얼굴을 감싸 쥐려 할 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인기척에 라슬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폐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익숙한 목소리. 그의 보좌관의 목소리였다. 라슬로는 잠시간 자신이 나갈지, 아니면 보좌관을 안으로 들일지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에게 닿아 있는 여체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그가 이불을 당겨 셀레나의 머리끝까지 덮은 다음, 그녀에게 방음 마법을 걸며 말했다.

“들어와.”

곧 문이 열리고 말쑥한 차림새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문을 닫자마자 허리를 숙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용건.”

“예?”

“나를 찾아온 용건을 말하라고 했다.”

보좌관, 블리크는 다짜고짜 제게 용건을 요구하는 라슬로의 행동이 다소 불만스러웠다. 며칠 전, 홀로 사냥을 떠났던 왕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라슬로의 행방이 묘연해진 날은 하필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평범한 이였다면 보름달이 뜨든 말든 뭔 상관인가 했겠으나 그의 왕은 달랐다. 라슬로는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가지고 있던 힘이 약해졌으며, 그건 모두 ‘각인의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약해졌다한들 그 힘은 일반인을 훨씬 웃돌아 그간 보름달이 뜨더라도 라슬로는 개의치 않고 밖을 나가곤 했다.

이번 사냥 역시 그런 종류였으나 그간 단 한 번도 말없이 사라지거나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블리크는 곧바로 사람을 풀어 라슬로를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라슬로의 마나가 마지막으로 운용된 곳이 숲 한가운데라는 걸 깨달았다. 그 주위에 남겨진 핏자국을 통해 블리크는 라슬로가 습격을 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그 배후에 대해 알아내고 있던 참이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는 걸 봐서는 마나 고갈이 상당히 일어난 것 같았다. 블리크는 어쩌면 라슬로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다. 그러나 시체라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라슬로의 행방을 찾으면서 배후의 뒤까지 조사하길 며칠이 흘렀을까?

돌연 강력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곧바로 마나를 추적한 그는 파동의 발원이 왕의 침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나를 사용하는데 있어 제한이 걸려 있는 황성 안에서 이처럼 강력한 파동을 쓸 수 있는 자, 그리고 왕의 침실로 순간 이동을 쓸 수 있는 자는 블리크가 알기로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그가 모시는 주군이자 왕인 라슬로였다.

역대 후손들 중 신수, 일카이의 2대를 제외하고 가장 진한 피와 능력을 물려받은 라슬로는 황성 전체에 걸린 제한 마법을 걸어 둔 이의 능력을 훨씬 웃돌았고, 자유자재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블리크는 허겁지겁 왕의 침소를 찾았다. 침소 앞에 달하자마자 반사적으로 문을 두들기려고 했던 그는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대로 손을 멈추었다.

‘한 명이 아니다?’

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분명 둘이었다. 그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어떠한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긴 했지만 여자의 교성이 틀림없었다. 당황한 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낮은 음성이 그의 머릿속에 울렸다.

―나중에 다시 와라.

그의 왕의 목소리였다. 블리크는 자신의 머릿속에 울리는 전언에 반사적으로 문에서 물러났다. 곧 그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며칠째 행방이 묘연하던 그의 왕이 돌아온 건 둘째 치더라도 그가 들은 여자의 교성은 상상도 못 해 본 것이었다.

블리크가 라슬로의 보좌관을 맡게 되고 그를 모시는 동안 라슬로는 한 번도 여자와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 어디 잠자리뿐이던가, 그는 여자 자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랬던 라슬로가 여자와 함께 있다니.

‘각인의 상대구나!’

그는 단번에 그 존재에 대해 눈치챘다. 그러나 공은 공, 사는 사. 블리크는 돌아오자마자 각인의 상대에게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제 왕의 모습에 불만을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차마 불만을 표할 수는 없어 꾹 참고 ‘이쯤이면 끝나고도 훨씬 남았겠지.’라고 생각했을 때, 다시금 찾아갔으나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했다.

블리크는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났고 아예 해가 저물 때쯤, 라슬로를 찾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그를 찾아왔건만 들은 말이 용건부터 말하라니…….

“폐하께서 행방이 묘연해지신 동안 배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러나 그는 착실한 보좌관이었다. 블리크가 말을 마치며 라슬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들려오는 말.

“타마스겠지.”

“……알고 계셨습니까?”

“물증은 없으나 날 쫓았던 자들이 말하길, 왕의 인장에 대해 언급했다. 게다가 내 본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지 않더군.”

“그 말씀은 이미 폐하의 정체는 물론, 보름달이 뜨는 날에 폐하께서 쓰실 수 있는 마나의 양이 줄어든다는 걸 알고 있는 자였겠군요.”

“그래. 그리고 이 사실에 대해 아는 건 돌아가신 선왕과 너, 그리고 시녀장과 내 이복형제뿐이지. 설마하니 내게 복종의 맹세를 한 너와 시녀장이 날 배반할리는 없고…… 남는 건 타마스, 그놈뿐이지.”

“과연 폐하십니다.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그래서 그놈을 잡아넣을 만한 물증은 찾았나?”

“죄송합니다. 워낙에 뒤처리가 깔끔한 탓에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습니다.”

“한심하군.”

라슬로가 혀를 차자 블리크가 더욱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블리크를 바라보던 라슬로가 손을 폈다. 그의 손바닥 위로 황금빛 무리가 모이더니 이내 빛무리는 화살을 만들어 냈다.

“받아라.”

라슬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살이 허공으로 떠올라 천천히 블리크에게로 향했고, 곧 그의 손 위에 안착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날 죽이려고 헀던 놈들이 내게 쏜 화살이다.”

“…….”

“설마 물증까지 줬는데 타마스와의 연관성을 못 찾아내진 않겠지. 난 내 보좌관이 그리 실력이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꼭 배후를 완벽하게 밝혀내도록 하겠습니다.”

블리크가 다짐하듯 말했고 라슬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만 용건을 다 말했으면 가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블리크가 더 빨랐다.

“그런데 폐하의 옆에 있는 여성분은 누구십니까?”

블리크의 시선이 라슬로의 옆에 있는 셀레나에게로 향했다. 이불을 덮어 두어 실질적으로 육안으로 보이는 건 이불과 이불 밖으로 살짝 드러난 회색 머리칼이 전부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다른 놈이 셀레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쾌감이 치솟았다.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말하도록.”

“예?”

“불쾌하다.”

일순 블리크의 얼굴이 멍해졌다.

“눈 돌리라고 했다.”

“아…… 예.”

블리크는 마지못해 시선을 돌렸다. 라슬로는 자신이 얼마나 유치한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제 말을 철회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네 질문에 답해 주자면, 내 각인의 상대…… 즉, 나의 반려다.”

“얼핏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각인의 상대였군요.”

“그래. 마나가 고갈되어 치료도 못 하고 있었는데 내 본체를 보고 도망가지도 않을 뿐더러 되레 치료해 주려고 하더군.”

라슬로가 셀레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블리크는 평소보다 부드러운 라슬로의 음성에 셀레나가 단순한 각인의 상대라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진심이시군.’

각인의 상대, 반려,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틀림없었다.

“왕비궁에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이르겠습니다.”

“아니. 아직은 말하지 말도록. 혹여나 타마스가 내게 각인의 상대가 나타났다는 걸 알게 되면 곤란하니까.”

“아…….”

“그러니 반려의 존재를 알리는 건 모든 걸 정리하고 안전해진 다음이다.”

‘그래. 모든 게 정리되고 나서.’

“존명.”

블리크가 고개를 숙인 다음, 조용히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는 셀레나를 덮어 두었던 이불을 내렸다.

볕에 비친 그녀의 머리칼이 눈부시게 반짝이다. 노란빛과 하늘빛이 동시에 도는 셀레나의 머리칼을 보며 라슬로가 나직이 감탄했다.

‘마치 달 같군.’

그러고 보니 여자의 눈동자 색 역시 달빛을 담아 놓은 듯한 푸르스름한 연회색이었다.

‘이름이 셀레나라고 했던가.’

라슬로는 셀레나를 데려오기 전에 그녀를 찾으며 외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셀레나. 고대어로 ‘달’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그야말로 달이로군.’

달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더욱 그녀가 신비하게 느껴졌다.

‘셀레나…… 나의 달.’

라슬로는 이불 밖으로 나온 셀레나의 팔을 가볍게 쥐었다. 그녀의 팔을 쥔 그는 지나치게 가느다란 팔에 눈살을 찌푸렸다.

안을 때도 유독 체구가 가는 편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마르고 가느다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일 시녀장을 불러 최대한 많이 먹이라고 일러야겠군. 최대한 고기 위주로 먹여야 살이 붙겠지.’

라슬로는 가느다란 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제 입가로 가져가 그녀의 손목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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