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4/158)

#153

노란빛 조명이 희번득한 눈처럼 화이돔 안쪽을 샅샅이 훑고,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연은 천장 유리가 부서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완전히 박살이 난 팔각형의 천장 너머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 닥쳤다. 이연은 엉망으로 헝클어지는 머리칼에도 결코 시선을 떼지 않았다.

복면을 쓰고 무장한 남자들이 레펠을 타고 눈 깜짝할 새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곳을 점거하려는 모습이었다.

장범희는 떨어지는 파편을 피해 그녀의 머리 위로 겉옷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퍽, 퍽, 발길질을 하며 이연을 덮쳤던 사내들을 하나둘 치우기 시작했다. 이연을 우악스레 붙잡고 있던 손들이 나가떨어지고 주사기가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전 축출된 자라도 사냥개는 사냥개인 모양인지 되받아치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얻어터진 입 안을 혀로 슥 훑고 있는데, 소음기를 매단 총이 옛 사냥개들의 이마를 정확히 꿰뚫었다.

“……도련님.”

하마터면 자신이 맞았을 거란 생각에 장범희는 뒷덜미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렸다.

한편, 이연은 몸을 옹송그린 채 후둑 후두둑 쏟아지는 유리 조각을 맞고 있었다.

그런데 환청인 줄 알았던 조악한 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코앞까지 다가와 놓고선 뚝 끊어졌다.

기묘한 예감에 주먹만 꽉 말아 쥐고 있는데 별안간 얼굴을 덮고 있던 겉옷이 사르르 벗겨졌다.

“못 받아서 미안해요.”

“읏…….”

한 남자가 시야에 가득 들어찬 순간, 속수무책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새까만 복면이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데도 이연은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날렵하고 수려했던 권채우의 눈매가 붕괴된 듯 완전히 주저앉아 있었다. 두려움과 분노, 공포와 애걸이 형편없이 휘몰아치는 눈동자를 보자마자 이연은 울음을 터트렸다.

“흐으……, 흐으어엉!”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과 복통이 뒤섞여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이처럼 손을 뻗기도 전에 권채우가 먼저 강하게 끌어안았다.

과호흡을 하듯 잔뜩 흐트러진 숨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나 때문에. 내가 살아온 방식이 이연 씨를 해칠 뻔했어요. 그 새끼 말이 맞았어요. 내가 이연 씨를 완전히 놓칠 뻔했어요, 씨발. 내가…… 좆같은 사냥개들이―”

권채우는 발밑이 함몰되듯 무너지고 있었다.

정보는 어느 순간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블랙아웃된 사냥개들은 연료가 뜯긴 배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고, 개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장범희가 화이도의 앞바다를 맨몸으로 헤엄쳐 연락을 해왔다.

권이준은 버려진 사냥개들이 하나같이 화이도로 모여든 정황을 발견해 내고, 즉시 여러 기관의 기밀문서를 뚫어 화이돔의 진짜 목적을 알아냈다.

그렇게 화이돔의 유리 천장을 날려버렸다.

하지만 내장이 끊어질 것처럼 인내하던 권채우가 종래에 목격한 것은, 자신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사냥개들에게 짓눌리던 이연의 모습이었다.

“내가, 이렇게밖에 못 산 너절한 새끼라서……”

권채우는 참회하듯 그녀의 어깨 위로 고개를 떨구었다. 얕은 흐느낌이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 짙은 후회가 배어 있었다.

그가 권 가(家)로부터 배웠고, 사용했고, 때로는 유흥처럼 가볍게 접근했던 온갖 폭력이 그대로 이연에게 향할 뻔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이연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당하기 힘든 공포가 그의 숨통을 조였다. 평생에 이토록 무섭고 겁이 나는 일은 단연코 없었다.

“채, 흐으윽, 채우 씨, 빨리 병원……”

“……!”

더듬더듬 끊어지는 말에 몸이 바짝 굳었다.

“배가 너무…… 흐으, 우리, 우리 아기가……”

눈썹부터 우뚝 솟은 콧대까지 잔뜩 찌푸려져 있던 얼굴이 별안간 싹 씻겨 내려갔다.

권채우는 하얗게 표백된 표정으로 이연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녀를 받친 손이 짐짓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흐으……. 만약, 만약 잘못되면 나는…… 나도 용서 못하고, 여기도, 저 사람들도 전부……!”

이연은 손바닥에 착 눌어붙은 라이터를 펼쳐 보였다. 얼마나 필사적으로 쥐고 있었던지 금속성의 표면이 살갗에 본드처럼 붙어 있었다.

“나는 못 살아요, 아마 못 살 거예요…….”

그녀의 의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낸 동공이 서늘히 가라앉았다. 눈썹에 힘을 준 그가 라이터를 빼앗아가자 벌건 자국이 그녀의 손바닥에 짙게 남았다. 권채우는 그 흔적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랑하는 여자의 절망을 보고 있었다.

“……다시는. 다시는 이연 씨가―”

권채우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목울대만 몇 차례 움직였다. 그러자 이연이 손을 뻗어 그의 복면을 끌어내렸다.

낭떠러지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몰려있던 두 개의 시선이 마주치고, 한 남자의 처참해진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

“…….”

오는 내내 얼마나 입술을 짓씹었던지 성한 살이 없을 정도였다. 피가 묻어 너덜너덜해진 입술과 그의 황폐한 눈은 모질도록 가혹했다. 남자는 꼭 고문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연 씨는 꽃잎만 주워요. 다시는 이런 거 줍지 말고. 더러운 짓은, 전부 나한테 맡겨요.”

권채우는 등 뒤로 수신호를 보내며 가벼운 몸을 고쳐 안았다.

마침내 출구 밖으로 빠져나오자 그곳엔 이미 구급차며 소방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연이 의아함을 느끼기도 전에, 권채우가 큰 손으로 머리를 감싸왔다.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흐으.”

“그렇다고 이 땅을 비워 둘 수는 없고, 공연장이 낫겠죠? 이연 씨 음악 듣는 거 좋아하니까.”

그 순간, 발밑을 진동시키는 폭발음에 이연은 잠시 복통도 잊고 얼이 빠져버렸다.

와장창 깨진 유리창으로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생시켜서 미안해요.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이연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 *

온몸이 뜨거웠다. 이연은 활활 불타는 숲을 맨발로 거닐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린 피가 발목과 발등을 흥건히 적셨다. 작고 어린 죽음이 스며든 바지는 생각보다 더 무겁고 끈적거렸다.

이연은 라이터를 쥔 채 불에 오그라들고 있는 화이돔의 정원을 영혼 없이 걸어 다녔다.

가슴 속에 악만 남아버린 그녀는 멀쩡한 나무가 새까맣게 타 죽는 광경에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미래 따윈 없으니까.

아이를 유산한 마당에 자신만 살아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연히 나무의사로 복귀할 마음도 없다. 최후의 선을 넘은 그녀에게 숲은 두 번 다시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돌아갈 집이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렇게 죽음에 가까워졌다. 가족들이 소이연을 송연이라 조롱했던 것처럼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이다. 낙인처럼 따라붙던 그을음을 끝끝내 떨쳐내지 못하고 오히려 증명해버린 꼴이었다.

이연은 제 발이 새까맣게 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불길 속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제발 이쪽으로 와요.’

그때 애끓는 음성이 이연을 불렀다. 이연은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다르게 선택할 수 있잖아요.’

‘……왜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정말로 중요한 게 없어요?’

‘네, 없어요.’

‘잊은 거 없어요?’

온몸을 휘감아오는 연기에 숨이 막힐 무렵, 누군가 그녀가 있는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오지 마……! 오지 마요!’

이연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거부했다. 그러자 불보다 더 격렬한 온기가 그녀를 감싸듯 안았다.

‘이연 씨가 이런 곳에 뿌리내리겠다면―’

“――!”

막혀있던 숨이 터져 나오며 콜록콜록 재채기를 해 댔다. 눈시울을 뒤덮었던 매캐한 연기가 따가워 속눈썹은 눈물로 엉겨 붙었다.

그러나 “원장 선생님……!”하고 까랑까랑하게 꽂히는 외침에 이연은 천천히 현실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시야에 맺힌 것은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규백이와 놀란 표정의 장범희였다.

이연은 콧속으로 들어오는 미세한 알코올 향을 맡으며 이곳이 병원임을 깨달았다. 그러자 단번에 얼굴이 굳고 익숙한 공포가 스며들었다.

“아, 아기는, 아기는……”

그녀는 차마 아랫배를 만져보지 못하고 얇은 상의만 하릴없이 움켜쥐었다.

“역시 용맹합니다. 아기는 괜찮습니다.”

규백이 팔뚝으로 제 눈가를 비비며 분명하게 말을 맺어주었다.

“아아…….”

이연이 무너지듯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정말로 죽었다 살아난 것처럼 아직도 정신이 얼떨떨했다. 여기가 정말 지상은 맞는지, 사실은 여전히 지하에 있는 건 아닌지, 그런 것들이 마구 뒤섞여 현실감이 없었다.

이연이 관자놀이를 꾹 누르자 장범희가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담당의 불러오겠습니다.”

이연은 널찍한 병실을 둘러보며 보고 싶은 한 사람을 찾았지만, 그 당사자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언제나 무표정을 고수하던 규백이의 눈가가 발긋하게 부은 게 몹시도 신경이 쓰였다.

“규백아, 울었어?”

“원장 선생님은 나를 울린 첫 번째 여자입니다.”

“어?”

“제가 옆에 있었는데도 저는 숨었습니다.”

규백이는 입을 꾹 다물고 소매로 다시 눈을 거칠게 비볐다. 이연은 그런 아이의 팔을 부드럽게 잡아 내렸다. 무슨 사정인진 모르겠지만 규백이의 말에는 크나큰 오류가 있었다. 괜히 아이의 마음에 이상한 죄책감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잘했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아이는 어른을 지키는 게 아니야.”

“……그치만 형아는 동생을 지킵니다.”

“그전에, 선생님이 먼저 규백이를 지켜줬어야 했고.”

규백이는 괜히 그녀와 권채우 사이에 끼어 같이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연은 그런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디에 있었어? 지하에 갇혀 있었어? 무서운 일은 안 당했지?”

“저는 바다에 있었습니다.”

“뭐?”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규백이는 오십여 명이나 되는 승객들 가운데 유일하게 정신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규백이의 표를 어른인 이연이 들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연이 다른 배로 빼돌려지는 동안, 아이는 의자 밑에 숨어 들어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낯익은 장범희를 찰싹찰싹 때리고 깨우는 데 일조를 했다. “헤엄쳐 갑니다, 개는 헤엄 잘 칩니다!”라며 할 일까지 알려주었다고.

“그런데 규백아, 혹시 권채우 씨 못 봤어?”

이연은 방금 전까지 꾸고 있었던 꿈을 떠올리곤 파르르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만약, 그가 제때 오지 않았더라면―.

“모르겠습니다. 수놈, 못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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