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1/158)

#150

“시발, 여기 화이돔이라고……!”

이연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타격감에 고막까지 먹먹해졌다. 칼로 후비듯 꽂힌 말이었지만 둔해진 머리는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곳이 어떻게 화이돔이야?

그녀가 개관 기념식에서 본 화이돔은 지상 낙원이었다. 게다가 직접 입찰에 참여했던 나무의사로서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화이돔은 국내 최대 규모의 식물원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런 감옥이 화이돔일 수가 있어? 이연은 손을 벌벌 떨며 벽 가까이에 얼굴을 붙였다.

“선배, 저, 저 여기서 나가야 돼요.”

공포에 잠식된 눈이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지금이 몇 시, 아니 며칠이에요? 혹시 저 말고 남자애 못 봤어요?”

“일단 진정해, 다른 건 모르겠고 너 여기 들어온 지 반나절도 안 지났어!”

규백이는 대체 어디에……. 이연의 얼굴이 걱정으로 거무죽죽하게 죽어갔다. 저 멀리 화이도가 보였고, 아이를 향해 웃어 주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후가 백지였다.

대체 언제 어떻게 정신을 잃은 건지 그 전후 상황이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공백을 파고들수록 한없이 무기력해지자 이연은 석고처럼 굳은 제 얼굴을 손으로 착착 때렸다. 여기서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여기가 화이돔이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러자 차가운 벽 너머로 “하하, 하하하하.”하고 그가 광소를 터트렸다.

“이연아, 넌 화이돔이 단순한 식물원인 줄 알았어?”

“그게 무슨…….”

흥분으로 들썩이는 목소리가 동굴처럼 울렸다.

“환상의 정원이라느니, 아름답다느니 온갖 값비싼 나무들로 처바른 화이돔은 그냥 눈속임에 불과했어! 윗대가리들의 진짜 목적은 여기, 화이돔 지하야. 전부 이 장소를 숨기기 위해 대대적으로 거짓말을 친 거였다고!”

알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 전복되듯 골이 흔들렸다. 순간 이연은 멋스러웠던 권 가(家)의 저택 아래 빛도 보지 못하고 갇혀 있어야 했던 윤주하가 떠올랐다. 지상과 지하의 차이는 고작 시멘트 한 장. 이런 상황에서 왜 그녀가 겹쳐 보이는지. 돌연 등줄기로 식은땀이 고였다. 그 와중에도 황조윤은 계속 그녀를 몰아붙였다.

“화이돔 지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일이라뇨?”

맥없는 음성과 달리 이연의 머릿속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화이돔에 관련된 일이라면 권기석이 모를 리 없다. 이곳의 최대 투자자이자 수국 제약의 대표. 그리고 희귀식물로부터 추출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환각제 써머.

개관식에서도 끝까지 짜 맞추지 못했던 조각들이 다시금 바닥에 뿌려졌다. 이연이 생각에 잠겨 미간을 구기고만 있자 별안간 씩씩거리는 목소리가 넘어왔다.

“너 써머라고 들어봤어?”

그 순간, 뇌관이 타 들어갈 듯 내달리더니 하나의 가정이 벼락처럼 꽂혔다. 이연은 기침 같은 숨을 몇 번이고 토해냈다. 마침내 모든 정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시발, 그 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줄 알아?”

그들이 화이도에 마약밭을 숨겨두었던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만약 이곳이 써머의, 수국 제약의 불법 연구실이라면―.

어쩌면 화이돔의 진짜 쓰임새는 써머의 추출물이라는 그 희귀식물을 비밀리에 재배하는 장소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정답에 가까워졌을 무렵, 황조윤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벽을 쿵쿵 쳐댔다. 그리고 그는 이연의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을 내질렀다.

“우리를 비료로 쓰는 거라고!”

“……!”

“시발, 조경천이 발견한 그 희귀식물이 뭘 먹고 자라는지 알아?”

잔뜩 흥분한 황조윤은 미친 사람처럼 울다 웃기를 반복했다.

“흐흐, 그런데 네가 어떻게 여기서 나갈 건데. 나도 몇 달 동안 여기서 고문만 당하고 있는데……! 네가 무슨 수로 여길 나가겠다는 거야? 여긴 지옥이라고!”

* * *

―이미 언론은 준비 끝났어. 외부에서부터 압박이 들어올 거야.

권채우가 뚜벅뚜벅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 모양대로 핏물이 찍혔다. 그는 둘째 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반나절 만에 폐가 같아진 저택을 돌아다녔다.

사용인들을 전부 내보내고 남은 건 권기석이 고용한 청부업자들뿐이었다. 권채우는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드는 상대를 빠르게 제압하며 또다시 손에 피를 묻혀 갔다.

급소를 푹푹 쑤실 때마다 흉터 하나 없이 매끈한 한 뺨에 핏방울이 사정없이 튀었고, 권채우는 휘청거리는 남자를 붙잡아 제 더러워진 얼굴을 남의 옷자락에 슥 닦고 버렸다.

그는 인간성을 거세한 얼굴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복도는 순식간에 피비린내로 진동을 했다.

―채우야, 근데 너 정말…… 아니다.

권이준은 말을 하다 말고 담배를 입에 무는지 딸깍, 지포 라이터를 열었다.

―후……. 됐다, 됐어. 그 새끼는 네가 알아서 해.

그가 물어보려다 말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정말로 손수 혈육을 처리할 거냐고 묻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권채우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두르지 않고 마지막 타깃을 향해 다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사냥개가 밝혀온 타깃의 위치는 실소가 나오게도 윤주하가 갇혀 지낸 지하였다. 그의 의중은 퍽 명확했다. 권기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어차피 어머니 아버지도 그 씹새끼가 그렇게 만들어놨는데. 부모님이 하루아침에 금치산자 꼴로 전락한 것도 윤주하가 잡혀 온 다음부터라고. 과연 이게 우연일까?

권이준이 짓씹어 내뱉는 말에도 권채우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친모는 신경 쇠약으로 주사로만 연명하고 있었고, 친부는 몇 년째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권 가(家)의 권력은 자연스레 장남에게 이양되어 모든 것이 권기석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권이준은 바로 그 지점과 윤주하의 감금 시기가 맞물리는 것을 오래전부터 의심해왔다.

―……권기석은 살면서 부모님한테 반항 한 번 해 본 적 없는 완벽한 장남이었어. 부모님이 요구하는 건 백 퍼센트 해내던 재수 없는 새끼였다고. 그런데 윤주하가 잡혀 오면서부터야. 부모님 앞에서 언성 높이는 일이 잦아졌고, 아무도 그 여자한텐 손도 못 대게 했어.

권채우는 텅, 텅, 하고 공허하게 울리는 철 계단을 지르밟으며 지하실로 내려갔다.

―꼭두각시처럼 말만 잘 듣던 장남이 하루아침에 이상해진 거야. 당연히 부모님은 윤주하를 빨리 처리하려고 했는데 권기석한테 그걸 들켰어.

“…….”

―그런데 막내야, 난 모르겠다. 권기석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게 맞는 건지. 언제부터 그렇게 눈이 돌아 있었는지는, 바로 옆에서 본 나도 짐작이 안 가.

창문 하나 없는 꽉 막힌 공간에 들어오자 권채우는 숨이 막혔다. 그러나 작은 화장대와 침대 하나. 고작 그것이 전부인 허름한 곳에서 권기석은 안경을 벗고 느슨해져 있었다.

낡았지만 예뻐 보이는 아리보리색의 화장대. 그 위에 마구 널브러져 있는 술병과 잔. 그리고 하얀색 가루.

권채우의 시선이 그 모든 것을 예리하게 훑었다. 권기석은 여전히 결벽적인 차림새로 커프스단추를 매만지며 아는 체를 해 왔다.

“늦었구나.”

그는 써머를 복용했으면서도 결코 헛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권채우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경련하듯 뒤틀리는 눈가에 힘을 주었다.

“내가 필요한 건 상속 서류에 찍을 네 엄지뿐이야.”

싸늘하게 읊조린 그는 곧장 권기석의 손을 화장대에 칼로 찍어 누르고 술병을 콸콸 쏟았다.

코를 찌르는 독한 알코올 냄새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권기석은 저항 한 번 없이 입꼬리를 천천히 올릴 따름이었다.

“채우야, 시간 낭비는 하면 안 되지.”

“다 들었어, 네가 이연 씨한테 한 말.”

권채우는 어느새 시뻘게진 눈으로 허리춤에서 단도를 하나 더 꺼냈다. 그는 마치 사과라도 깎을 태세로 권기석의 엄지와 날붙이를 딱 붙였다. 당장 지문이 있는 마디가 잘려 나갈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어떻게, 씨발, 사람을 굶겨 죽여.”

“……!”

그에 권기석의 눈썹이 움찔 흔들렸다.

썩어 곪아버린 복수심과 분노, 자책과 살의가 그가 쥐고 있는 칼에 전부 응집되었다. 권채우는 실핏줄이 터진 볼썽사나운 눈으로 기어이 칼날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으득, 으드득, 하고 뼈가 걸렸지만 권채우는 노련한 백정처럼 집요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씨발, 그렇게. 권채우는 울분을 토해내면서도 결코 손질을 멈추지 않았다. 권기석이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하자 약에 취한 몸을 아예 깔아뭉개고 작업을 이어나갔다.

“이연 씨, 작업복에, 내가 도청기를, 달아뒀거든.”

권채우가 얼굴을 우그러뜨리며 살점을 썰 때마다 피로 흥건한 화장대가 흔들렸다.

“크윽……!”

권기석의 이마에도 새빨간 힘줄이 여러 갈래로 섰다. 혀를 악물고 고통을 참는지 그의 입꼬리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너 때문에 일부러 무딘 날로 골라왔어.”

“으, 크윽……!”

총상 때문에 꼼짝도 못하던 며칠간, 권채우는 이연의 일거수일투족을 저택 내 CCTV로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러는 와중 실수처럼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가 마침내 긴 슬럼프를 깨부수고 첼로를 움켜쥐었을 때였다.

권기석의 지독한 말들이 전부 흘러들어왔다. 그녀를 위해 첼로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순간에. 또다시 무릎이 꺾이고 구덩이에 머리가 처박히는 듯했다.

그러나 어금니를 사리물고 일어나 그녀에게 비척비척 갔다. 어쩌면 자신의 첼로 소리를 매일 같이 기다렸을 어머니를 손목에 감고, 죄악감을 발목에 달고. 도저히 고개를 들 염치가 없어 자학하는 심정으로 이연에게 바칠 노래를 생각했다. 무지도 죄라고 그녀를 그렇게나 몰아붙였었는데, 그 화살이 전부 자신에게 돌아와 있었다.

생애 가장 고통스러운 연주였다.

“넌 곱게 못 죽어, 권기석.”

권채우는 다소 거칠어진 숨을 정리하며 술잔에 엄지를 툭 집어넣었다. 권기석은 마취도 없이 손가락이 잘려 나가면서도 써머가 보여주는 광경에 취해 끅끅 웃음만 흘렸다. 그에 권채우는 그의 멱살을 잡고 피떡이 되도록 주먹질을 했다. 작은 독방은 이윽고 난장판이 되었다.

“큭…, 네가 이래봤자, 너는 윤주하 못 만나.”

“뭐?”

권채우가 콧잔등을 와락 구겼다가 다시 무표정을 되찾았다.

“윤주하가 있는 곳으로 내가 널 보내줄 것 같아?”

권기석이 집착하는 건, 오로지 권채우의 고통이었지 죽음이 아니었다. 윤주하가 있는 곳, 설령 그곳이 죽음일지라도, 권기석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 만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선생님, 이제는 내 차례가 올 때도 됐잖아요, 이제는…….”

권기석으로부터 흘러나온 생소한 말투에 권채우가 멈칫한 순간이었다.

“네가 살아온 방식이 결국 그 여자를 해치게 될 거야.”

“…….”

“네가, 사냥개가, 권 가(家)가 그 여자를 죽이게 될 거야. 너는 또 다시 모든 걸 잃을 거다.”

혼잣말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 여자’라는 것도 윤주하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권채우는 딱딱해진 낯으로 풀릴 대로 풀린 상대의 동공을 들여다보았다.

“채우야, 형이 이겼어.”

“……!”

권채우는 별안간 서늘해지는 목덜미에 인이어를 누르고 지시했다. 수조 열어. 더 이상 그의 헛소리를 들어주고 있을 인내심이 없었다.

누군가를 굶겨서 죽인 업보가 있다면, 똑같이 굶어서 미쳐 날뛰는 것들에게 그대로 당해 봐야지. 권기석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빠져나올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팔다리를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많은 것을 거느리고 살았지만 결국 빈껍데기만 남은 남자의 최후였다. 권력욕도, 명예욕도, 물욕도 권기석에겐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가락처럼 이미 형체도 없이 뭉크러진 질투만을 끝까지 놓지 못할 뿐이었다. 추했으나 그만큼 처절했다.

그렇게 권채우가 등을 돌린 순간, 경악에 찬 권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채우야……!

안 돼, 그 짤막한 고함에 권채우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안 돼, 안 돼.

―제수씨한테 붙여놓은 사냥개들이 씨발 죄다 연락두절이야……!

등 뒤로 연신 끅끅대는 권기석의 광소가 들렸다.

선생님,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요, 나도 채우랑 닮았다고. 다른 게 뭐가 있냐고……. 얼마나 닮았는지 꼭 보여주겠다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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