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4/158)

#143

―여보세요? 채우 씨, 오고 있어요? 어디쯤이에요?

수화기 너머로 들뜬 목소리가 투명하게 들렸다. 동시에 악기를 튜닝하는 소리가, 그가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현악기의 비틀림이 찰나의 침묵을 비집고 들어왔다.

지금 며칠째 못 잤더라? 빨리 본가로 돌아가기나 하지, 왜 여태 화이도에서 미적거리고 있었지? 결국엔 이런 꼴을 보기 위해서였나? 권채우는 미세한 균열 속으로 짓쳐 드는 불협화음을 들으며 스산하게 웃어 보였다. 머릿속 퓨즈가 끊기는 것 같았다.

“……잊지 못할 선물이네요, 이연 씨.”

―……채우 씨?

“완벽한 피날레예요.”

아슬아슬했던 신경 줄이 끊기고, 시야가 잠깐 까매졌다 돌아오는 찰나 권채우는 이미 첼로를 내리치고 또 내리치는 중이었다.

조각조각 부서져 터져 나가는 건 악기 판이 아니라 제 정신이었다.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폭력적인 욕구가 치솟았다.

음악이 듣기 싫고, 특히나 첼로는 더 꼴도 보기 싫었다. 그녀가 이 모든 것을 알고 저를 조롱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야말로 피해망상적이었다. 

제발 멈춰, 그녀의 말부터 좀 들어 보라고. 그러나 강인한 두 팔은 오로지 첼로를 산산이 부수는 데에만 온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는 희번덕한 눈으로 끝끝내 첼로 목을 두 동강 내고 나서야 숨을 몰아쉬었다. 

“오리 새끼 길들이면서 재미는 좀 봤어?”

그는 흐트러진 머리와 숨을 태연히 정리한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공포에 질린 이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믿음을 망가뜨릴 작정으로 지금껏 인내한 남자는 오히려 희열을 느꼈다.

“……거짓말은 미안해요, 내, 내가 그때는 권채우 씨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나는 정말……, 나는 살려고 그런 건데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 줬어요. 채우 씨를 떨어지게 한 건 다른 사람이었는데……, 권채우 씨 형도 내 말엔 관심도 없었어요.”

설움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에 문득 가슴이 미어졌다. 손쓸 도리 없이 관계가 망가지기 직전, 그녀는 모든 것을 감수하겠단 눈으로 최선을 다해 말해 주었다. 대화를 하려고 했다.

그것을 망친 건 분노에 눈이 먼 자신이었고, 동요하고 싶지 않단 아집으로 일부러 귀를 막았다.

뒤늦게야 밀어닥치는 후회에 악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정신을 가로막고 있던 막이 깨지고, 시야가 거꾸로 뒤집히면서도 꿋꿋이 지나쳤던 지난 순간들이 기억이 났다. 

“내 손 잡아요.”

비행기 잔해 속에 홀로 남겨 두었던 그녀를 잡아당겨 못대산을 함께 내려왔고―

“나도 그러고 싶어요.”

나비와 함께 언약을 하던 그녀에게 곧장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권채우는 이것이 무용한 일인 줄 알면서도 행동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자기만족에서 그칠지라도, 그녀 안에 박혀 있을 가시 하나까지 직접 빼 주고 싶었다. 그녀의 상처를 새로이 덮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채우 씨는, 적어도 내가 정당방위였다는 걸 알잖아요.”

“알아요.”

그의 순순한 인정에 이연이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이미 어긋나기 시작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이연은 녹음테이프처럼 해야 할 말을 꾸역꾸역 입에 올렸다.

“내가 미안한 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지 나를 지키려고 한 행동은 아니에요.”

“응, 맞아요.”

권채우는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며 덧붙였다.

“잘했어요, 이연 씨. 만약 살면서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면, 그때에도 두 번 생각하지 말고 똑같이 톱부터 휘둘러요. 뒷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족쳐놔요.”

“…….”

“아내라는 거짓말은 평생 나한테만 쳐주면 좋겠고요.”

남자의 달라진 반응에도 이연은 어떻게든 말을 이어 붙였다.

“거짓말한 건……, 정말 미안해요.”

그에 권채우는 언젠가 그녀가 필사적으로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 거짓말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놨어요.”

“……!”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날 예쁜 꽃 돌보듯 조심스럽게 가꿔줬는데. 이연 씨가 손수 만든 텃밭처럼 나를 정성껏 들여다보고, 쓰다듬어 줬는데.”

“아직도 꿈에서 못 깼네.”

그때부터였다. 서로가 내뱉었던 말이 완벽히 뒤바뀌어버린 건.

“소용없어,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너는 절대로, 네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거야.”

그녀가 싸늘하게 돌변하며 말했다. 진정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지금 여기서, 너와 관련된 기억은 모두 폐기하고 갈 거야.”

“……이연 씨.”

“억울할 게 뭐 있어요,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자는 건데.”

“…….”

“그러니까 너도 잊어.”

권채우는 자신이 한 말을 죄다 돌려받자 도무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저렇게 냉정한 표정을 지었었나? 그는 심장이 욱신거려 하릴없이 얼굴만 일그러뜨렸다.

이연의 무표정, 그 위로 비치는 약간의 비웃음.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관계의 단절. 차라리 손가락을 마디마디 잘라가는 것이 훨씬 나을 지경이었다.

대체 그녀는 이 상황을 어떻게 견뎠던 건지, 권채우는 아랫입술만 악물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연 씨는 나를…….”

“내가, 널 사랑한다고 정확히 말한 적이나 있어?”

“……!”

그는 마침내 올 게 왔다는 듯 조용히 미간만 찌푸렸다. 잇새로 꾹 누르고 있던 혀에서 비릿한 맛이 났다.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그런 말은 해 본 적이 없거든. 당신이 무서워서, 당신 형한테 협박당해서, 그냥 대충 장단 맞춰준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어? 그쪽이 나한테 엄청 들이댔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데요?”

권채우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앓는 소리를 삼켰다. 

빨리 가야 하는데. 이 환상을 깨고 이연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비수처럼 꽂히는 말들이 그의 의지를 조금씩 꺾고 두 다리를 이곳에 붙여놓으려는 것 같았다.

가슴에서 시작된 통증이 이내 온몸으로 번져 팔다리가 뒤틀리듯 계속 욱신거렸다. 그렇게 남자는 조금씩 용기를 잃어갔다.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요. 잇새로 통증과도 같은 말들이 허덕거렸다.

“……매 순간, 나 같은 개새끼한테도 이연 씨가 알려줬잖아요.”

남자의 목소리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평범하게 사는 게 어떤 건지, 손에 피 대신 물을 묻히면서 당신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남을 해치는 대신 동물들을 구조하면서, 나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걸 이연 씨가 알려 줬잖아요.”

“…….”

“그런 평범한 감각들이 얼마나 신기했는데요.”

윤주하와 숨어 지내면서 교육과 의료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던 건, 추억과는 별개로 비정상적인 삶이었다. 또한 연주자로서만 살아야 했던 십 대 시절은 고독했고, 성인이 된 이후 사냥개가 되면서 그의 삶은 평범한 궤도에서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그러니 처음이었다. 오롯이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면서 그토록 조용하고 편안한 일상을 보냈던 것은.

삼시 세끼 먹을 것을 만들고, 마당에 나가 텃밭을 가꾸고, 퇴근하는 아내를 마중 나가고, 밤이 되면 참았던 사랑을 터트리는 일까지.

전부 처음이었다. 춥고 외로운 밤, 서로의 온기에 의지하여 이불을 데우는 시간은. 그래서―

“다시 화이도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는 가슴을 덮치는 상실감에 찡그리듯 웃었다. 

‘나는 애초에 널 파묻을 작정으로 화이도에 온 거야.’

“삶이 끝날 때, 이연 씨 곁에 묻히고 싶어서요.”

이제야 그는 이연이 저에게 오케스트라를 선물처럼 들려주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왜 이연이 저를 첫 번째 관객으로 초대했는지,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 했는지.

폐허처럼 망가진 숲은 이연이 생각하던 가족의 모습이었을 테지만, 다시 받아들인 남편이란 존재는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경험했던 위로는 오직 바람결에 흩날려왔던 소년의 음악이어서. 이연은 그녀가 가진 것 중 가장 반짝였던 순간을 내놓은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자고.

“미안하지만 난 더 이상 남편이 필요 없어요.”

그러나 이연은 홀가분하다는 듯 등을 돌렸고, 권채우는 애간장이 닳았다.

점점 멀어지는 이연을 허망하게 보고 있자니 별안간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망설임은 지극히 짧았다.

그는 한달음에 달려가 냉정하게 돌아선 몸을 억세게 품 안에 가두었다.

“……가도 돼요.”

이연의 몸이 반동으로 휘청거렸다. 그러나 내뱉은 말과는 달리, 권채우는 이연의 상체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그는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애처롭게 문질렀다. 

“지금 이렇게 가버린대도 나는 여기서 계속 기다릴 거니까.”

“…….”

“하나도 안 지쳐요. 이런 짓, 나는 평생도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권채우는 울컥 올라오는 뜨거운 덩어리 때문에 턱을 억세게 다물었다. 그는 화끈거리는 어떤 것을 목 뒤로 넘길 때마다 사포로 문지르듯 식도가 따끔거렸지만 그럼에도 목울대를 쉬지 않고 들썩였다.

“이연 씨가 원하는 만큼 계속 걸어가요. 도중에 나를 수백, 수천 번 버려도 좋아요. 나를 가장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기고 제일 먼저 떨궈요.”

“…….”

“그 대신……, 가장 마지막에만 나를 주워 줘요. 그때가 언제든 상관 안 할게요.”

이연이 마음을 엮어 어여쁘게 준비한 무대에 올라 첼로를 박살 내면서, 가족이란 자리는 그때 완전히 부서졌다. 그럼에도 또 한 번 달려와 자신을 붙잡은 노력이 얼마나 큰 결심이고 용기였는지. 그것을 감히 헤아려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남자는 현재 창자가 녹아내리듯 아파 왔다.

“……그동안 이연 씨 마음, 조금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그녀를 향해 권채우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내가 그깟 총 몇 발에 맞았다고 쫄지 마요.”

“……!”

“날 동정하지도 말고.”

“…….”

“흔들리지 마요.”

권채우는 그녀를 꽉 안은 팔뚝에 무서우리만치 힘을 주었다. 이 몸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처럼 집요하게 끌어당긴 것도 잠시, 서서히 힘을 풀었다. 그러자 연약하게 흔들리던 이연의 등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이 노인네가 미칫나!”

그때 마침 추자의 목소리와 함께 광분한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추자가 벌컥 화를 내며 몸으로 막아섰지만 머릿수 차이가 너무 났다. 

“이게 다 이 돌팔이 의사 때문이지! 너 이걸 어떻게 책임질 거야, 너 때문에 우리 마을 신령목이 죽었는데……!”

격분한 주민들은 이연을 어떻게든 끌어내려고 아귀 같은 손들을 뻗쳐왔지만 그 시도는 전부 견고한 권채우의 몸에 가로막혀 무산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애꿎은 권채우의 등만 할퀴고 옷을 잡아당겼다. 권채우는 주민들에게 파묻히면서도 이연의 머리카락 하나 내어 주지 않았다.

나무를 살리던 여자와 나무를 베어 버린 남자.

이제는 메울 수 없는 그 간극만이 남았다.

시야가 조금씩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팔다리에 조금씩 무게감이 느껴지고 두통이 밀어닥쳤다. 시야가 몇 번이나 뒤집혔던 경험으로 말미암아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권채우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눈을 철저하게 감고 콧잔등을 구긴 남자는 사정없이 배가 흔들리고 전복되는 느낌을 견뎌야 했다. 이윽고 거칠게 울리던 진동이 멈추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을 땐…….

아―. 

권채우는 목 안에 불덩이가 끼인 듯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잔뜩 경계하듯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그녀의 긴장이 손바닥 안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제 품에 안겨 있는 이연과 정면에서 눈이 마주쳤다.

화가 난 듯, 혹은 감정을 참아내듯 붉어진 흰자위가 정확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바야흐로 그가 그토록 바라던 차갑고 감미로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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