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40/158)

#139

연막탄의 연기가 바람결에 사라지고, 이연은 오로지 기울어지는 그의 몸에 반응하듯 움직였다.

굳어버린 몸을 네발로 질질 끌고 나와 쓰러지는 권채우를 받쳐 안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한쪽 귀에 손을 대고 끈질기게 “사살 완료.”를 읊조렸다.

둘이 뒤엉켜 쓰러졌음에도 이연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권채우가 그녀를 끌어안고 자신이 먼저 땅에 떨어지도록 한순간 방향을 바꾼 탓이었다. 두 사람의 몸이 포개지자 진득한 핏물이 이연에게 옮겨붙었다.

“권채우 씨……. 피가……. 피…….”

“윽…….”

“권채우 씨, 권채우 씨! 눈 좀 떠 봐요. 정신 좀 차려 봐요!”

“……후회가 돼요.”

권채우는 가물가물한 눈으로 느릿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나비……. 대답을 못 해서…….”

그는 이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묘하게 초점이 맞지 않았다. 이연은 남자의 얼굴을 붙잡고 제 시선과 똑바로 맞추었다. 하지만 맥없는 고개는 이연이 조금이라도 손에서 힘을 뺄라치면 곧장 느슨하게 기울어졌다. 심이 꺾인 듯한 중심에 이연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다.

“권채우 씨!”

“그 나비가 이제 나한테는 안 올 것 같은데….”

그가 고통을 참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연은 벌벌 떨리는 팔로 남자를 다시 고쳐 안고, 또 고쳐 안았다. 아직 한낮인데도 엉망이 된 옷차림을 보니 문득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머릿속이 텅 빈 듯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권채우가, 붉어도 너무 붉어서.

“제발요……!”

이연은 억류하는 하수도관처럼 왈칵왈칵 피가 솟구치는 그의 팔뚝을 두 손으로 꾹 눌렀다. 그러자 시뻘건 물이 금세 손등까지 잠식했다.

이연은 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입이 벌어지고 소리가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내가 이러려고 권채우 씨 묻은 게 아닌데. 나는……! 그냥 두 번 다시 상처 받기가 싫었던 건데. 권채우 씨는, 흐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어떻게든 나한테 타격을 줘요.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

그녀가 핏대를 세우며 있는 힘껏 그의 상처를 틀어막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때, 걸레짝이 된 그의 상의 너머로 검은색 조끼가 비쳤다. 이연은 그것이 단번에 방탄조끼임을 알아차렸다.

괜찮아, 살 수 있어. 당신은 살 수 있어.

죽지 않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럼에도 팔다리에서 흐르는 피가 심상치 않아서. 비록 심장은 괜찮다 하더라도 그녀 혼자 이 많은 피를 지혈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시금 안 좋은 생각들로 손이 떨려왔다.

“권채우 씨, 나는…….”

“가지 마요.”

그가 눈을 감은 채 이연의 팔꿈치에 아이처럼 고개를 파묻었다.

“기억이 없을 땐 머릿속에 한 여자만 있더니.”

“…….”

“기억이 다 돌아오고 나니까 이젠 너만 없어.”

그가 쌕쌕, 거슬리는 호흡음으로 기침을 내뱉자 입에서 왈칵 피가 터졌다.

“너만 되찾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다 버려도 좋아.”

“……!”

“돌아가고 싶어요, 그때로.”

그가 이연의 목덜미를 붙들고 내려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부딪혔다.

“돌아갈 수 있어요, 우리는.”

순식간에 이연의 입가가 일그러지고 턱이 떨렸다. 끅, 끅, 원치 않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이 강렬한 원망과 치솟는 애틋함을 대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실상 그녀가 뚝 잘라 파묻었던 것은 권채우가 아니라 제 마음이었는데. 그걸 부득불 다시 파내고 주워 와 기어이 안겨 주는 남자를 도대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이내 그녀는 권채우가 끼고 있던 인이어를 빼내 제 귀에 꽂았다. 완전히 쑥대밭이 된 정원에서 홀로 꿈틀대고 있는 이연이 절박하게 외쳤다.

―제발 이 사람 좀 살려 주세요, 아무나 빨리 좀 와 주세요……!

* * *

손을 닦고, 또 닦았으나 그날의 피비린내는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총격 사건 이후, 이연에게 새로 생긴 습관이었다. 권채우가 저택에서 자취를 감춘 이후부터, 뜨뜻했던 그의 피가 손등을 덮치던 감각이 악몽처럼 따라붙었다. 아직 그녀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술관 행사에 참석했던 루비나 브샤렛 파키스탄 대사 부인이 종교적인 대립 관계에 있던 반군에 의해 피습됐다는 속보입니다. ……용의자는 바로 경찰에 체포됐지만 주재 외교관들의 신변 위협 공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연은 본질을 호도하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뉴스를 보다, 텅 빈 사무실로 시선을 돌렸다. 듬성듬성 눈에 띄는 빈자리가 싸늘했다. 끔찍한 현실이었다. 

권 가(家)의 정원관리사로 들어온 지도 이제 막 삼 주를 넘어섰다. 재벌, 아니 불법적인 권력을 틀어 쥔 집안의 정원을 도맡으면서 이연은 그들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고, 또 겪고 있었다. 

그녀가 살아온 환경과는 극명히 달랐지만, 이곳이야말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진짜 권채우의 세계였다. 

평화로운 섬에서 나무나 치료하며 살던 자신이 어쩌다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죽어 나가는 곳에 발을 들이게 됐는지. 이 모든 게 정말로 악연이어서 그런 건지. 이연은 걱정스럽게 배를 매만지며 답 없는 질문을 끌어안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애초에 만나선 안 될 사람들이었던 건지―. 

“원장님, 다 챙기셨어요?”

“아, 네.”

이연은 작업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사의 현장이 돼버린 야외 정원을 수습해야 하는 것도 결국 이연과 살아남은 직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벌집이 된 정원을 복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개미구멍처럼 흉하게 파인 땅을 촘촘히 메우고 잔디를 다시 깔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흩뿌려진 피라도 보면 이연은 현기증이 일었다.

“여기 소이연 씨 계십니까?”

그때, 누군가 그녀를 급하게 찾았다. 어떤 예감이 등줄기를 빠르게 태우며 올라갔다. 그늘진 얼굴로 말없이 땅만 메우고 있던 이연이 벌떡 일어섰다.

“방탄조끼를 입고 계셔서 팔다리에 입은 총상 빼고는 괜찮습니다. 다행히 주요 혈관도 다 피해 가셨고요. 그런데 방탄조끼에 도합 아홉 발이 박힌지라……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부러진 갈비뼈가 장기를 찌르는 바람에 출혈이 크게 나긴 했지만, 지금은 깨끗하게 봉합된 상태고 바이탈도 안정적입니다.”

두어 번 헛기침을 한 의사는 멍하기만 한 이연을 지나쳐 어느새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의 방은 이미 VIP 병실처럼 세팅이 완벽히 끝난 상태였고, 이연은 이런 인테리어가 퍽 익숙했다. 그녀가 2년 동안 데리고 있던 식물인간의 방이 꼭 이러했었으니까. 기묘하게 피어오른 추억이 별안간 속을 찔러댔다. 

‘어차피 개새끼였는데 그게 싫으면 식물 해요. 이연 씨 나뭇가지 잘 자르잖아요. 계속 첫째, 둘째, 셋째, 제약 늘리면서 내 손발 다 잘라놔요. 그러다 내가 아무것도 못하게 되면, 이연 씨가 그때마다 조금씩 물 부어주면 되잖아요.’

이연은 병상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권채우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넘칠 것처럼 일렁이는 속을 애써 누른 채 침대맡 의자에 앉았다. 건조하게 마른 그의 손가락을 툭 건드려보자 울컥,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는…… 식물의 식, 자도 꺼내지 마요. 사람이 왜 이렇게 극단적이에요.”

그때, 예고도 없이 문이 열리고 권기석이 들이닥쳤다. 그는 문밖에 서서 누워있는 권채우를 가만히 쳐다보는 듯하더니, 이내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이연이 경계하듯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러면 안 되지, 채우야.”

그러나 권기석은 두 팔을 벌려 침대 창살을 쥐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거기서 네가 등을 보이고 서면―”

그가 조금 답답하다는 듯 넥타이를 끌렀다. 

슬쩍 보인 권기석의 표정은 이연이 알고 있는 상식만 가지고는 차마 해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굉장히 못마땅해 했고, 무언가를 질투하듯 이를 악다물었으며, 잘못한 아이를 꾸짖듯 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흥이 떨어지잖니.”

하지만 그런 복잡다단한 것들이 전부 합쳐지자 좀처럼 하나의 이름으로 모을 수가 없었다.

문득 권기석의 시선이 이연을 향했다. 채 갈무리되지 못하고 흔들리는 날것의 눈빛을 그대로 마주하자 이연은 속이 메슥거려왔다.

“내일이 화이돔 기념식입니다. 소이연 씨는 제 파트너로 참석해야 하니, 도와줄 사람은 알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군말 없이 스케줄에 잘 따라만 주십시오.”

죽을 뻔한 동생을 앞에 두고 태연히 일정을 말하는 남자를 보며 이연은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얼음을 깎아 만든 것처럼 잘 빚어진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거북했다. 

이연은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고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느슨히 기울인 권기석이 그녀의 눈과 배를 번갈아 보며 무언의 압박을 더했다. 

“혹 파트너로 동행하는 대신 어떤 대가가 필요하신 거라면―”

그의 입매가 불현듯 부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도망치게 해 드리겠습니다.”

“……네?”

“꼭 여기서 도망치고 싶다는 표정을 하고 계시기에.”

“……!”

“이런 곳에서, 이런 가풍에서 자란 남자와 평생 엮일 자신이 있습니까?”

그건 이연의 기저에 깔린 두려움을 건드리는 새까만 속삭임이었다. 지금 권기석은 독이 든 성배를 내밀고 있었다. 

“이제 약속한 한 달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평생 아이랑 둘이서만 잘 살 수 있도록 안전하게, 풍족하게 지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소이연 씨가 원하기만 한다면, 채우한텐 절대 들키지 않도록. 오년, 십년, 아니, 그 이상까지도……!”

비딱하게 올라간 그의 입꼬리가 왜인지 떨리고 있었다. 그의 숨이 격앙된 듯 거칠어졌다. 

“……절대 찾을 수 없도록 후원해 드릴 수 있습니다.”

권기석은 다시 침대 틀을 쥐고 숨을 고르듯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 손도 못 쓰고 피가 말라가는 채우를 보는 것도―”

그때, 죽은 듯 누워만 있던 권채우가 마치 척추반사처럼 이연의 손목을 콱 틀어쥐었다. 

바이탈 사인은 흔들림 없이 잠잠했고 그의 눈꺼풀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고요했다. 

그러나 이연은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지 마요, 그렇게 읊조렸던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니 말만 하십시오. 채우가 깨어나기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말지.”

“대체 왜 저한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채우가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문득 깊숙이 가라앉은 권기석의 눈빛이 이연의 배에 닿았다 떨어졌다.

* * *

그날 밤, 이연은 오랜만에 걸려온 추자의 전화를 받았다. 액정에 뜬 그녀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부터 눈망울에 뜨뜻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이연은 아랫입술을 한번 깨물었다가 연습 삼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히 울음이 넘어오진 않았다. 

“여보세요?”

―아이고, 목소리가 와 그 모냥이노? 힘드나?

“아뇨, 아니에요.”

이연은 보이지도 않는 상대를 향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다른 기 아이고……. 내 급하게 보여줄 기 있어가.

“뭔데요?”

―앞마당에, 권 서방 파묻은 자리가…….

추자는 묘하게 뜸을 들이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거기가 왜요?”

―마, 망측해가……. 방금 사진 보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한숨소리에 이연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그녀는 곧장 귀에서 핸드폰을 떼고 메시지 함의 사진을 눌렀다. 

이내 화면을 꽉 채운 것은 그녀들이 장례식을 한답시고 묻었던 권채우의 작은 둔덕이었다.

이연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게 당최, 우리가 권 서방을 묻은 건지, 아니면 심은 건지를 모리겠다.

그 무덤에 우습게도 여린 싹이 피어있었다.

―씨앗이 내려앉았는지, 아이면 애초에 조각 틈새에 씨앗이 묻혀 있었는지.

핸드폰을 쥔 이연의 손에 힘이 와락 들어갔다. 

―뭔가가…… 났다, 이연아.

당신도 아팠잖아. 나한테 상처받고 괴로워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래? 어떻게 다시 나를 택할 용기가 났어? 나는 한번 어긋났던 사이를 맞추는 게 너무 어렵던데. 나는 살면서 그런 걸 배우지 못했는데.

‘―이연 씨가 어떤 사람이든 내가 전부 껴안고 싶어졌어요. 죄가 있다면 죄를, 빚이 있다면 빚을, 그런 구김까지 내가 다 가져요.’

그냥 미워만 하지 그랬어.

그냥 포기해 버리지 그랬어.

그런데 꼭 나무처럼, 자르고 또 잘라도 언제 아팠냐는 듯 능히 재생해 내는 그런 나무들처럼. 무덤도 뚫고 올라오는 당신이 너무 강해 보여서.

이연은 손톱만 하게 돋아난 여린 싹을 액정 너머로 문질러 보았다. 

왜인지 펑펑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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