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7/158)

#136

두 사람이 나가고, 이연은 뜨끈해진 얼굴을 문지르며 다시 권채우를 노려보았다. 

목덜미까지 확 덮친 열감은 당황이었고, 짜증이었고, 동요해 버렸다는 수치심이었다. 

사실은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이연은 어떻게든 제 쪽으로 더 파고들려는 권채우 때문에 몸이 자꾸만 뒤로 휘어졌다.

“이연 씨…….” 

“그쪽 불편하게 하는 건 다 치웠으니까, 이젠 얌전히 자요.”

이연은 탐탁지 않았지만, 도의상 그의 등을 두들겨 주며 충분히 놀랐고 화가 났을 남자를 달랬다. 해탈한 듯 천장을 바라보는 이연의 눈에서 약간의 체념이 비쳤다.

“지금 잠 오는 거 다 알거든요.”

“…….” 

“괜히 버티지 말고 편하게 눈 감아요.”

이연은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고 긴 한숨과 함께 털어놓았다.

“……오늘 밤은 내가 같이 있어 줄 테니까, 이번 일은 조용히 넘어가는 걸로 해요.”

“흐으…….”

“뭘 흐으예요, 흐으는!”

이연이 훈계하듯 남자의 커다란 등판을 가볍게 쳤다. 그러자 읏, 하고 신음을 내뱉은 권채우가 그녀의 목덜미를 이로 긁으면서 몸을 들썩거렸다. 원래 성질대로라면 이연을 뚝 떼어갈 듯 깨물거나, 씹거나, 강하게 빨면서 무섭기 짝이 없는 울혈을 폭죽처럼 남겼을 텐데. 이연이 나름대로 만들어놓은 규칙 때문인지 충동을 참는 기색이 여실히 느껴졌다. 

“이연 씨, 나 몸이……”

마주 닿은 몸에서 딱딱한 성기가 그녀를 압박하듯 찔러왔으나 애써 무시했다.

“지극히 정상이고, 뭔가에 당하지도 않았어요. 잠투정은 그쯤 해요.”

“하아…….”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권채우는 고열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온몸이 뜨거웠다.

“이게 잠투정이라면, 굿나잇 키스도 해 줘야죠.”

“무슨―”

“키스해 줘요.”

“…….”

“어차피 나는 이연 씨한테 손 못 대잖아요, 그러니까 이연 씨가 한 발짝만 와 주면―”

권채우가 고개를 들어 이연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땐 내가 다 알아서 할게요.”

약에 취해 흐리멍덩한 동공이 수챗구멍처럼 사람을 빨아들인다. 수압에 짓눌린 몸 어딘가가 짜릿하게 당겨졌다. 하지만 이연은 녹슨 난간을 양손으로 붙잡고 버티듯 그를 밀어냈다.

“입술은 우리 사이에 좀…….”

“그럼 어디까지 허락해 줄 수 있는데요?”

“……손, 톱―”

눈치를 보며 내뱉은 말에 권채우의 미간이 곧장 구겨진다.

“……자르고 남은 거?”

“하……!”

권채우는 애달프게 경련하는 눈가를 이참에 콱 찌푸리며 다시 이연에게 안겼다. 그녀의 가냘픈 목에 권채우의 우뚝한 콧대와 속눈썹이 마구잡이로 비벼졌다.

“아니 씨발, 누가 좆 빨아 달래요? 내 입술만 좀 빨아달라고요.”

이연은 헛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바지 앞섶이 망측하게 부풀어 오른 채 처량하게 애원하는 남자가 우습고 기막혔다.

동시에 예나 지금이나 권채우의 페이스에 끌려가고 만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그녀를 흔드는 건 장범희도, 방금 전의 그 여자도 아니었다. 

오로지 이 영악하고, 자존심 없고, 되바라진 검은 머리 짐승만이 이연을 가장 근본적으로 들쑤셔 놓을 수 있었다.

“응? 그게 그렇게 어려워?”

권채우는 밤에 듣기엔 다소 무섭고 낮은 목소리로 능란하게 보채 왔다. 

“미운 정, 고운 정도 다 떨어졌으면 적어도 떡정은 남아 있어야지.”

권채우의 애 닳는 숨결이 펄떡대는 이연의 맥박을 건드렸다.

“밤에 나 떠올린 적 한 번도 없어요? 나랑 하는 꿈은요? 내 손길 생각하면서 혼자 쑤신 적은요?”

“그런 적…… 없는데요.”

이연이 시선을 피하며 말하자 권채우는 커다란 중력에 어깨가 짓눌린 사람처럼 숨을 들이켰다.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나는 적어도……!”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고 서럽다는 듯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러나 권채우는 부끄러움도 없는지 다시 이연에게 쏟아지면서 파들파들 떨리는 숨을 고통스럽게 내쉬었다. 

근육으로 쫀득하게 직조된 상체가 부풀다 꺼지기를 반복하자 이연은 문득 훈련사의 조언이 떠올랐다.

‘원래 처음엔 미친 듯이 낑낑댑니다. 그래도 무시하세요. 이때 안 잡아놓으면 보호자님 일상생활만 힘들어지니까.’

'―많이 놀아 주시구요. 무시와 격려, 보상도 적당하게 잘 따라와 줘야 하구요. 사람 냄새도 자주 맡게 해 주세요.’

이연은 그의 등을 어색하게 토닥거리며 짐짓 해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저기……, 냄새는 맡아도 된대요.”

안달복달 야단이 나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남자가 별안간 우뚝 멈추었다. 흐르던 모든 것들이 뚝 잘린 것 같은 묘한 침묵이었다. 

“대신 딱 냄새만이에요.”

겨우 그 정도의 허락이었는데도 권채우는 마치 천금을 얻은 사람처럼 달려들었다. 

“읏……!”

문제는 그가 이연의 귀를 한입에 삼켰다는 데에 있었다. 물컹한 혀가 귓바퀴를 따라 모양을 덧그리고 귓불을 문질러댔다. 타액으로 끈적거리는 소리가 이연의 청각을 남사스럽게 자극했다.

한기와 비슷한 소름이 어깻죽지에서부터 머리까지 쫙 끼치자 이연이 어깨를 움츠리며 그를 밀어냈다. 

“자, 잠깐만요, 미쳤, 이런 건……!”

그때, 권채우의 목소리가 고막에 직통으로 꽂혀 들었다.

“쉬이― 움직이지 마. 네 다리 벌리고 얼굴 처박기 전에.”

“……!”

“아니면, 차라리 그게 좋겠어요?”

축축하게 젖은 귓구멍에 남자의 더운 숨이 자꾸만 녹아들었다. 

“그러게 이연아―”

그녀는 이미 망했고 당했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아서 얼빠진 머리가 팽 돌았다.

“개집에 들어오면 개밥밖에 더 돼?”

생각하기도 전에 이번엔 입술이 집어삼켜졌다. 혀의 말캉한 감촉이 더운 숨과 함께 짓쳐들어왔다. 고개를 돌릴 수도 없을 만큼 강하고 우악스러운 입맞춤이었다. 거친 호흡과 두 개의 혀가 마구잡이로 뒤엉키고 질척이는 물기를 만들어냈다. 제대로 잡아먹힌 입술은 도무지 열릴 틈이 나지 않아 금세 산소도 부족해졌다. 

분명 수면제를 맞은 건 권채우인데, 정작 몽롱함에 빠져드는 건 왜 자신인 것 같은지.

“하, 아…….”

갈비뼈가 아릴 정도로 허리가 조이고, 뒷목은 이미 억세게 붙잡혔다. 배려 없고 무작스러운 키스였다. 그럼에도 잊고 지냈던 감각이 조금씩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그의 혀끝이 부드러운 곳부터 단단한 잇몸을 지나, 입천장까지 긁었다. 권채우는 입 안을 느긋하게 휘젓다가도 낮은 웃음소리를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몸이 짜릿하게 떨렸다. 

타액이 오고 가는 외설적인 소리, 그가 참았다가 터트리는 신음을 들으며 이연의 기분은 시시각각 널을 뛰었다. 그를 거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온몸이 홧홧하게 달아오르고 손아귀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아, 이연 씨는 나를 묻어야 살 수 있었겠지만, 나는 곧 죽어도 이연 씨를 끄집어내야 숨이 쉬어졌거든요.”

“흐, 으…….”

“그렇다면 둘 중에 누가 더 독한 걸까요?”

권채우는 바지춤이 불편한지 하의를 훅 내리고 드로어즈를 드러냈다. 그건 하나의 신호였고, 이연은 익숙한 위협을 느꼈다.

그 순간―.

‘―두고 보십쇼. 나중에 그놈이 질질 싸면서 애원하게 만들어 줄, 아니,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절대 못 싸게 할 겁니다!’

하필이면 왜 이때에, 씩씩거리며 이를 갈던 주동미의 말이 떠오르는 건지. 

“이연 씨. 나 아까 여기 놀랐잖아요…….”

화살표처럼 바짝 올라붙은 성기는 이미 쿠퍼액으로 젖어 속옷 색이 진해져 있었다. 

권채우는 다시 끙끙대며 이연을 와락 끌어안았고, 축축하고 뜨거운 짐승 냄새는 말초 신경을 여지없이 자극했다. 이연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네, 확실히.”

어딘지 멍하고 순순한 그녀의 대답에 권채우의 표정이 슬쩍 밝아졌다.

“이제야 이연 씨 꺼 챙기고 만져주는 거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이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제 입술에 흔적으로 남은 남자의 타액을 슥 닦아냈다.

“개밥이 먹고 싶으면 직접 머리통을 숙여야지.”

“……!”

멈칫한 권채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래요, 울먹거릴 정도로 좆이 이상해진 것 같으면 확인해 봐야죠. 지금부터 그쪽이 직접 만지고, 내가 멈추랄 때 멈추는 거예요.”

이연이 손가락 네 개를 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넷째, 허락 없이 싸지 않는다.”

“……네?”

“경고했어요, 함부로 흘리지 말라고.”

“…….”

“이 규칙을 지키면 매일 밤 재워 줄 거고, 못 지키면, 매일 아침 나한테 도시락 싸다 바쳐요.”

권채우는 은근히 피 맛이 나는 한쪽 볼을 혓바닥으로 쓸어내리며 혼몽한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는 대답 대신 입고 있던 티셔츠의 네크라인을 잡아당겨 단숨에 상의를 벗고, 드로어즈까지 내렸다. 탄력 있게 솟은 성기가 튕기듯 밖으로 나왔다.

남자는 이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귀두를 천천히 만지작거리다 이내 손바닥 전체로 기둥을 뭉근하게 비비기 시작했다. 

서서히 그의 미간에 신경질적인 주름이 깊어져 갔다. 귀두 끝을 가볍게 문지르고, 길게 곧게 뻗은 페니스 전체를 훑다가, 살덩이를 강하게 압박했다. 손아귀에 왈칵 힘줄이 불거질 때마다 흣, 흡, 하고 그의 입에서 들끓는 신음이 공기를 데웠다. 

이연은 저도 모르게 그 광경을 넋 놓고 구경했다. 권채우가 커다란 손을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팔뚝, 어깨, 복근, 가슴팍이 차례로 팽팽해졌다.

그렇게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자위를 하던 권채우는 때마침 사정감이 치달았는지 한 손을 매트리스에 대고 허리를 굽혔다. 

그러는 와중에도 성기는 계속해서 위아래로 움직였고, 어느 기점에서―

“멈춰요.”

“……!”

남자의 표정을 기민하게 주시하던 이연이 대뜸 흐름을 끊었다. 

크게 움찔하며 어정쩡한 상태로 굳어버린 남자가 눈살을 확 찡그리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이연은 리드 줄을 더 당기기로 했다.

“손 떼야죠.”

“……하아, 이연 씨.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다섯째, 두 번 말하게 하지 않는다.”

그는 붉어진 목덜미로 애원하듯 바라보았으나 이연은 끝까지 단호했다. 

온갖 열기와 냉기가 뒤섞인 눈싸움 끝에, 권채우가 먼저 입술을 짓씹으며 성기에서 손을 뗐다. 

성기는 여전히 무겁게 꺼떡이고 있었고, 한계까지 다다랐다가 싱겁게 뚝 그친 성감 때문인지 페니스에 불거져 있던 핏줄이 불만스레 요동을 쳐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연은 다시 시작하라는 듯 고갯짓을 했다. 

권채우는 희미한 모멸감과 흥분이 뒤섞여 흉흉해진 얼굴로 제 좆을 무작스레 움켜쥐었다. 그는 빠르게 살덩이를 쳐댔고, 목을 좌우로 우두둑우두둑 꺾으며 먹잇감을 주시했다.

“하아, 씨발, 이연아, 소이연.”

“…….”

“뒷일은 또 생각 안 하고 저지르기부터 하지.”

“거기서 그만.”

“하아……. 내가 잘못했어요.”

그는 화를 냈다가도 다시 눈썹을 내렸고, 촉촉해진 눈망울로 연신 입술을 핥았다.

“이연 씨, 내가 실수했어요.”

해갈되지 않는 갈증이 겹겹이 쌓여갈수록 권채우는 조금씩 무너졌다. 번번이 사정을 방해받은 남자는 그것이 반복될 때마다 더욱더 굶주림에 미쳐갔지만, 정작 이연에겐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잇새로 거친 숨만 내뱉었다.

이연 씨, 내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안 조를게요. 얌전히 있을게요. 내가 경솔했어요. 내가 죽일 놈이에요. 내가 다 나빴어요. 

끓어오르는 숨 때문에 속절없이 벌어진 입술은 복종을 줄기차게 말하면서도, 불만스러운 눈빛은 그녀를 정확히 쏘아보았다. 

이연은 ‘저건 역시나 교정이 어려운 성질머리’라 생각하면서도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를 이토록 비참하게 휘저을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한 사람만이 갖고 있어서. 

쯔읍, 츳, 츠읍, 권채우는 어느새 쿠퍼액으로 번들거리는 성기를 쳐올리며 마치 섹스를 하듯 허릿짓을 했다. 동시에 이연을 범할 기세로 사나워진 눈초리가 그녀의 다리 사이를 집요하게 쑤셨다. 

“하아……. 윽, 씨발, 소이연. 이 씨발.”

동그랗게 말아 쥔 손아귀 밖으로 예쁘게 잘 까진 귀두가 거칠게 들락날락거렸다. 그리고 땀에 젖은 야한 얼굴이 확 구겨지는 순간―. 

“네, 그만요. 거기서, 그만.”

이번엔 흰자위까지 화악 붉어진 권채우가 그녀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후으……. 좆 아파요, 이연 씨.”

“그럼 제발 입 다물고 얌전히 잘 수 있겠어요?”

“…….”

“권채우 씨.”

마침내 그 이름이, 옛날의 호칭이 복구되었다.

하지만 달콤한 깨달음도 잠시, 간신히 되찾은 호명 하나에 권채우는 속수무책으로 파정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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