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7/158)

#126

그는 나무 기둥에 이연을 밀어붙이고, 연신 볼우물을 만들며 검지와 중지를 빨아주었다. 

부지불식간에 권채우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 손가락은 부드러운 점막에 싸여 녹아내릴 듯 후끈거렸다. 입 안의 축축한 온기가 손가락을 휘감자 이연의 얼굴에는 피가 몰렸다. 그는 뜨거운 혀로 상처 부위를 지그시 문지르며 핏물을 강하게 흡입했다.

“지, 지금 뭐―”

권채우는 이전의 감정을 채 갈무리하지 못했는지 묘한 열기와 짜증이 엉겨 붙은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연이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빼려 하자 그는 더욱이 강경하게 손목을 붙들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손가락을 뿌리 끝까지 삼켰다. 

“읏……!”

강한 흡착력에 손가락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그는 목울대를 계속 움직이며 추웁, 춥, 타액인지 피인지 모를 액체를 소리 내어 넘겼다. 권채우는 둥그런 손끝을 이로 긁어내리거나 손가락 사이를 혀끝으로 꾹꾹 눌렀다. 그제야 잊고 있던 상처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만하고 저리 비켜요……!”

“아직 물이 많이 나오는데 왜요.”

권채우가 손가락을 머금은 채 우물거리자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핏물에 젖은 벌건 혀가 보였다. 민망해진 이연이 그를 밀쳤으나 어림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하반신을 바짝 붙여왔다.

“읏……! 세우지 말아요.”

“안 세웠어요.”

“그럼 아래에 이, 이건 뭐예요……!”

“그냥 맨 좆이죠. 아직 발기도 안 한 얌전한 살덩인데.”

“……이게요?”

하응……! 때마침 누군가의 야릇한 신음, 높낮이가 다른 웃음, 찰떡을 치는 듯한 타격음 등, 귀를 데우는 온갖 소음이 여름밤의 모기처럼 달라붙었다. 

이연은 귓가가 새빨개져 고개를 푹 숙였지만, 권채우는 여전히 혼탁한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가위에 베인 상처는 이제 눅진하다 못해 경련이 일듯 저릿저릿했다. 그럼에도 연신 손가락을 핥으며 입 안을 조이자 마치 키스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흣…….”

뜨거운 압박에 괜스레 숨이 넘어가고 머리가 아찔해졌다. 이연은 자꾸만 홧홧하게 오르는 열감에 스스로를 단속하듯 허겁지겁 뱉어냈다. 

“……진짜로 나랑 뭐 하자는 거예요. 우리 사이에, 이런, 이런 건 너무 과해요. 선 넘지 마요……!”

이연이 재차 그의 어깨를 밀었으나 손바닥을 지글지글 태우는 체온에 깜짝 놀라 손을 확 떼고 말았다.

“이, 이런다고 우리가 화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체 꿍꿍이가 뭐예요? 차라리 깨물어요, 물어! 피 빨아먹지 말고 피를 내라고, 상처를 내라고요!”

이연이 불편한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권채우의 치아에 손끝이 스치듯 닿았다. 이연은 이때다 싶어 시비를 걸듯 그의 이를 툭툭 치고 손톱으로 입천장을 죽죽 긋기까지 했다.

―현재 시각 0시 42분, 진입합니다.

그러나 권채우는 아파하기는커녕, 눈썹을 비죽 올리더니 입꼬리를 휘었다. 날카롭던 남자의 눈매가 나른하게 풀리는 순간, 미세한 기척을 알아챈 권채우가 이연을 뒤덮듯 몸을 겹쳤다. 

“이 씨발 새끼야!”

퍽―! 무언가 깨지고 박살 나는 소리가 코앞에서 터졌다. 

“권채우 이 미친 새끼야, 이래야 나도 좀 공평하지.”

이연이 놀란 숨을 들이켰다. 

그곳엔 이마가 볼썽사납게 찢어진 실눈의 남자가 병목만 남은 와인을 들고 서 있었다. 

내내 웃는 상이었던 얼굴은 이미 흉하게 일그러진 상태였고, 이제 보니 눈도 정상이 아니다. 

와인을 들이켠 건지 입가부터 아래턱까지는 보랏빛 자국이, 콧구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흰 가루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야, 옷을 벗겨야지, 왜 입히고 난리야?”

실눈이 이연을 삿대질하며 그녀가 벗어놓고 간 가면을 흔들었다.

권채우는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이연을 숨기듯 돌아섰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머리를 털자 잘게 쪼개진 유리조각이 후드득 떨어졌다. 

나무에서 내려오자마자 정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손가락을 빨다 문득 정신을 빼놓은 건 전부 제 탓이었다. 권채우가 귓가를 한 번 툭 건드렸다. 

―0시 44분. 못 뚫었습니다. 우회해서 다시 들어갑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권채우는 동요하지 않고 실눈, 즉 병원장 아들인 도경진에게 다가갔다. 

그는 도경진의 목덜미를 거칠게 틀어잡고는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동공을 살폈다. 

그리고 곧장 삐쭉빼쭉한 병목을 뺏어 들어 그의 입 안에 그대로 처박았다.

“도경진, 네가 찾던 가면이 누구야.”

“으으…….”

그가 통증에 신음하며 대답하지 못하자 권채우가 친히 병을 빼주며 다시 물었다.

“가면이 누구야.”

“이, 이 씨발 새끼야, 너 미쳤어? 대체 아까부터 뭐 때문에 수틀려서 이래? 아 씨발, 저년이라고!”

“틀렸어.”

권채우는 별다른 감흥 없이 깨진 유리조각을 상대의 혓바닥에 푹 찌르고 말아 쥐었다. 도경진이 팔을 허우적대며 권채우의 등을 할퀴었다.

“경진아, 가면이 누구야.”

“저 여자―”

“틀렸어.”

역시나 무감한 얼굴로 상대의 입에 날카로운 병목을 재차 쑤셔 넣었다. 도경진의 입 주위가 순식간에 새빨간 피로 흥건해졌다. 

“경진아, 가면이 누구야.”

“으읍……!” 

“네가 약을 해서, 헷갈려 하니까, 내가, 다시, 알려 주는 거잖아.”

권채우가 이를 악다물고 상대의 목구멍에 병을 조금씩, 조금씩 더 밀어 넣을 때마다 호흡도 함께 끊어졌다. 마침 도경진이 꺽꺽거리며 눈동자를 까뒤집었고, 권채우는 기다렸다는 듯 나직하게 뇌까렸다.

“가면은 나야, 경진아.”

“으으……!”

약 기운을 몰아내는 차가운 공포가 도경진의 눈에 깃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서서히 모여들자 권채우는 병목을 바닥에 내던지고 가면을 뺏어 썼다. 

도경진은 목을 부여잡고 켁, 케엑, 핏물을 뱉어냈다.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그의 입술에서 쉬지 않고 피가 떨어졌다. 도경진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어버린 치아를 혀로 쓸며 식은땀을 흘렸다. 씨발, 씨이발……! 

한편, 권채우는 그녀 대신 가면을 쓰고 이연에게 속삭였다.

“사람들이 오면, 그 속에 끼어서 숨어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는 척하지 말고 딱 이십 분만 버텨요.”

권채우가 손을 뻗는 순간, 이연이 질끈 눈을 감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제야 권채우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자행했던 행동을 떠올리고는 덩달아 멈칫했다. 

달달 떨리는 두 손을 맞잡고 있던 이연은 별안간 고요한 목소리를 들었다. 

“바로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와 헤어진 이후, 처음으로 들어보는 사과였다.

―짝!

권채우의 뺨에 또다시 붉은 자국이 생겼다. 

“이 새끼는 벗기는 것보다 이렇게 다지는 게 더 맛있더라, 씨이발……!”

눈깔이 탁하게 돌아버린 도경진이 낄낄거렸다.

이연은 아까부터 온몸이 얼어붙어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그녀는 퉁퉁 분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에 몇 번이고 뼈마디를 까딱거려 보았지만, 이건 꿈이 아니었다. 

“퉤……!”

가면이 떨어진 지 오래인 권채우의 매끈한 얼굴에 침이 떨어졌다.

이연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도경진의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서서히 모여들었을 때, 그는 피투성이가 된 입술로 권채우를 새로운 가면이라 소개했다. 

이미 상의를 탈의하고 있던 권채우에게 처음으로 몰려들었던 건 웬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권채우의 맨몸을 손바닥으로 쓸고 근육을 만지다가 유두에까지 손을 댔다. 

이연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심장이 거칠게 뛰고 머리에는 열이 확 끼쳤다.

왜 가만히 있어? 

대체 지금 뭐 하는 거야?

권채우의 성질머리라면 다 알고 있는데, 방금 전만 해도 사람 입에 병조각을 쑤셔 넣었는데! 

약골처럼 가만히 당하기만 하는 게 기가 막혔다. 하지만 누군가 그의 버클에 손을 대자 권채우는 처음으로 팔을 휘둘렀다. 

가면이 떨어져 나가고 조각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분위기가 급변한 건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은 어느새 점프슈트를 입은 채 끌려왔던 여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평소라면 손도 대지 못했을 권채우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권채우의 자존심을 긁기 위해 일부러 따귀를 잇달아 날리고, 침을 뱉고, 그의 바지춤을 잡고 와인을 흠뻑 쏟아 부었다. 

그럼에도 권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가 대쪽 같은 모습을 보일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광분했다. 

권채우는 턱을 악다물고 가끔씩 귓가를 툭 건드리기만 할 뿐, 술과 약에 취한 사람들의 행동에는 저항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렇게 권채우는 모든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현재 시각 0시 57분, 대기 중입니다.

권채우는 미간을 설핏 좁히며 고개를 뚝뚝 꺾었다. 그의 눈에는 입술을 꼭 다물고 얼어붙어 있는 소이연만 보였다. 

저를 외면하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저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이 퍽 만족스러워서.

―…시 …습 …다.

그때 인이어가 지지직거리다 돌연 뚝 끊어졌다. 

그러나 다시 이어지는 목소리는…….

―웬 쥐새끼인지, 개새끼인지 모르겠다만.

권채우의 얼굴이 싸늘하게 돌변했다. 그와 동시에 둥글게 모여 있던 사람들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

“……!”

곳곳에서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스리피스 슈트를 깔끔하게 갖춰 입은 권기석이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모를 나체의 남자를 질질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권채우는 이번 일이 실패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대번에 얼굴을 갈아 끼웠다. 그 어떤 초조함도, 낭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나른하고 거칠게 놀고 있을 뿐인 도련님만 남았다.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그쪽은 누구십니까? 

권기석이 재킷 사이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그는 훔쳐서 끼고 있던 사냥개의 인이어를 제 귀에서 잡아 빼고는 그곳에다 총을 겨누었다. 

총성이 울리면 수신기를 함께 공유하고 있던 놈들은 고막에 타격을 입을 것이다.

권기석이 권채우를 노려보며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이었다. 

이연이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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