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1/158)

#120

권채우는 무표정하게 제 형을 응시하며 같은 자리에 반복적으로 칼끝을 푹푹 꽂아 넣었다. 

그저 생선일 뿐이지만 정확히 한 지점만 노려 끝장을 내버리는 손속이 냉정하고 잔인했다. 

나무 도마를 철썩이던 활어 꼬리가 결국 멈추자 권기석의 입가에 건조한 미소가 설핏 스쳤다 사라졌다. 

“혹시 제가 두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까?”

퍽 사려 깊게 묻는 것 같아도 그의 눈빛에는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 담겨있었다. 그들이 헤어졌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묻는 게 악질이다. 

“전혀요.”

이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냅킨을 펼쳤다. 권기석의 까다로운 질문보다도 탄력 있게 뛰어대는 눈앞의 생선이 더 난감해서, 그녀는 반짝이는 비늘 위로 냅킨을 덮었다.

“저기……. 근데 원래 이렇게 식사하세요?”

그녀가 식탁 아래로 떨리는 손을 숨기며 물었다.

“아니면 제가 뭘 모르는 사이에 요즘 부잣집들 유행이 바뀌었나요?”

마침 심드렁히 턱을 괸 권채우가 이연의 묶음머리에서부터 귓불, 목, 그리고 옷가지를 천천히 훑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 집요한 시선에 이연은 테이블 밑에서 손바닥만 꾹 말아 쥐었다. 권채우는 생선 머리를 여전히 찔걱찔걱 헤집으며 이연의 차림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운전기사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다시 가져다주었던 캐리어 안에는 주로 작업복이 많았다. 

개중 추자가 챙겨준 옷들이 몇 개 있었는데, 만찬에 초대받은 이연은 어쩔 수 없이 그것들 중 한 개를 집어 들었다.

단아한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빗어내려 반으로 묶었다. 그리고 귓불에 딱 달라붙는 작은 진주 귀걸이를 착용했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아 거울 앞을 머쓱하게 서성거렸다.

시퍼렇게 멍이 든 이마도 부족한 실력이나마 화장으로 가려보았지만, 선크림만 바르던 얼굴이라 그런지 영 어색했다. 

그런 민망한 기분에 옷감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생선을 퍽퍽 쑤시고 있던 권채우의 손길이 느려지더니 어느 순간 완벽히 멈추었다. 붉게 달아오른 눈이 이연의 어딘가를 자꾸만 배회했다.

“유행이라기보단 그저 가풍에 취향을 곁들인 식사입니다.”

권기석은 소매 단추를 느긋하게 풀어 접어 올리고 사시미칼을 잡았다. 

생선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낸 뒤 투명한 살점을 하나하나 바르는 기술이 상당히 능숙했다. 

슈트의 조끼까지 차려입은 완전무결한 차림새로 생살을 직접 뜨고 있는 모습이 현실 같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칼날과 맨손, 그리고 반투명한 살점이 아슬아슬하게 겹쳤다 떨어지는 것을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보지 마요.”

별안간 낮은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멍하니 시선을 돌리자 권채우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표정이 싹 빠진 얼굴은 무미건조했으나 형형한 눈빛은 퍽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뭘? 회 뜨는 걸?

그렇게 눈싸움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권기석의 단조로운 음성은 이어졌다.

“가끔씩 일부러 날것을 먹습니다만, 둘째는 입에 대지도 않았고, 셋째는 핏물만 빨아먹고 뱉어냈습니다. 권 가(家)의 사람이라면 야만적인 것을 이용하고 즐길 줄 알아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한 번씩 형제들을 시험했죠.”

나무 도마 위에 피가 스며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핏줄이 짙은 게 채우입니다. 저는 살을 깨끗하게 발라내서 먹는 걸 선호하지만 채우는 어릴 적부터 생으로 뜯는 걸 좋아했으니까.”

순간 울렁거린 속에 이연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아직도 속이 안 좋은 건가.”

“……!”

이연은 지레 흠칫했지만 질문이 향한 쪽은 그녀가 아니라 권채우였다.

“비리니까 말 시키지 마.”

그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제 앞의 생선을 가리켰다. 

“이거, 익혀오세요.”

사용인을 향한 자연스러운 손짓에 대기 중이던 일원이 금세 다가왔다. 누군가 차마 못 볼 꼴이 된 생선을 치워가자 이윽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살점을 어슷하게 써는 사시미칼이 문득문득 도마 위를 스쳤다. 이연은 더 이상 펄떡이지 않는 냅킨 아래의 생명을 보며 있는 힘껏 주먹을 쥐었다. 절대로 이런 가풍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임신한 걸 들키면 어떻게 될까?’

가정일 뿐인데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 같았다. 

얼른 한 달이 끝나면 화이도로 돌아가자. 그리고 배 속 아이에게 정성스럽고 좋은 것만 잔뜩 먹여서―

“소이연 씨는 화이도로 돌아가면 어떻게 지낼 계획이십니까.”

권기석이 포를 뜨다 말고 힐끗 그녀를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이연은 하마터면 계획 중이던 비밀을 토설할 뻔했다. 그녀가 입을 벌렸다가 어색하게 닫으며 웃었다.

“그……. 그냥 지금처럼 평범하게 살아야죠.”

권기석은 천천히 턱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꿀꺽 삼켰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런 평범함 말입니까?”

크리스털 물잔을 쥐려던 그녀의 손이 움찔했다.

“네……, 뭐……. 조,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죠.”

이연은 교과서에 나올 법한 말을 영혼 없이 흘려보냈다. 제 발이 저려서 그런지 이상하게 땀이 삐질 났다. 아이에 대한 얘기보다는 차라리 연애와 결혼으로 초점이 돌아갔으면 했다.

“호적은 제가 깨끗하게 밀었으니 다시 결혼한다 해도 초혼일 겁니다.”

“아, 네……. 감,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 출발하실 때 필요한 게 있다면 편히 부탁해도 됩니다.”

“네?”

그가 칼을 내려놓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남자 과거를 털어보고 싶다거나, 미행을 하고 싶다거나, 본성을 확인해 보고 싶을 때.”

이연의 광대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듯 묘하게 굼틀거렸다.

“미안한 말이지만 소이연 씨는 남자 보는 눈이 한참이나 떨어지지 않습니까. 한때 소이연 씨를 결박하고 울려본 사람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이 듭니다.”

그녀가 마른기침을 쿨럭 내뱉었다. 

“또 애먼 놈한테 걸리면 그거야말로 시간 낭비일 텐데. 그러니 앞으로 누군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싶으면 언제든 도움 청하십시오.”

“…….”

“그런 거, 채우가 잘합니다.”

권기석이 턱짓으로 권태롭게 앉아있는 인영을 가리켰다. 

깨질 듯한 고요가 먼저였을까, 권채우가 웃음을 터트린 게 먼저였을까. 

아무리 봐도 순수하지 않은 미소가 그의 안면에 수술 자국처럼 꿰매져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끅끅 웃었다. 

“맞아요, 이연 씨. 말만 해요.”

부드럽게 기울어진 고개가 퍽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그 새끼 오장육부 생김새까지 그려줄 테니까.”

“……!”

“그러니까 꼭, 말하는 거예요, 나한테.”

목덜미가 벌게질 정도로 대소했던 그가 돌연 호흡을 강하게 씹으며 정색했다.

때마침 알맞게 익은 생선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도착했다.

권채우는 숙련된 솜씨로 척추를 바르듯 생선 가시를 단숨에 제거했다. 깔끔하게 들어 올린 뼈는 내려놓고, 이번엔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가시들을 단정한 젓가락질로 하나씩 골라냈다.

순식간에 작업을 마친 그는 당연하다는 듯 생선 접시를 이연 쪽으로 밀었다.

“먹어요.”

딱딱한 목소리였다. 무례할 정도로 사람을 빤히 쳐다봤던 주제에, 지금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시, 싫은데요.”

이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건 따뜻했던 밥상에서 언제나 그가 해 주던 일이어서. 마음 한구석에 달갑지 않은 진동이 퍼졌다. 거부감이 확 올라왔다.

“그쪽이나 먹어요.”

“…….”

“본인이 했으면, 본인이 먹어야죠. 그쪽이 주는 걸 내가 뭘 믿고 받아요. 음식은 안 그래도 가려먹어야 하는 건데…….” 

“그럼 생선 내장이나 먹을래요?”

가만히 숨만 내쉬고 있던 그가 눈을 치뜨고 말했다. 이연은 잠시 멈칫했지만, 아무리 봐도 예쁘게 발라진 저 생선은 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치만 이건 그쪽이―”

“온종일 메슥거려서 나는 식사 안 해요.”

곁에 있던 사용인이 그녀 가까이에 접시를 끌어와 주었다. 

속이 안 좋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권채우의 안색은 처음보다 훨씬 창백해져 있었다. 

이렇게 고소한 구이 냄새가 풍기는데도 그는 콧잔등을 구기며 물만 찾았다. 

그러나 정작 그것도 몇 모금 마시지 못하고 입 안에 담고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독약을 삼키듯 인상을 와락 찡그리며 목울대를 천천히 움직였다. 나누고 또 나누어 가까스로 넘기는 듯했다.

“참, 소이연 씨. 곧 본가에서 연례행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훈김이 올라오는 생선구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때였다. 

일 얘기로 들리는 화두에 그녀가 곧장 고개를 틀자 지척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정원 관리팀에서 보조를 해 주겠지만 소이연 씨가 직접 현장을 지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네, 맡겨만 주세요.”

그래, 차라리 일 얘기가 낫지. 이연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차를 타고 본채 뒤편으로 이동하면 별장이 하나 있습니다.”

“네.”

“내일 답사 한번 가보세요. 그쪽 정원은 싹 밀고 새로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나 대대적으로요?”

기존의 나무를 가꾸는 것만 생각했던 이연은 생각보다 큰 공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행사 분위기에 맞게 새로 조성해야 하니까요. 나무 고르는 안목은 믿고 맡기겠습니다. 소이연 씨 솜씨라면 우리 고객들도 만족하지 않을까 싶은데.”

별안간 권채우가 나지막이 욕설을 짓씹었다. 두 형제의 시선이 말없이 부딪히자 체감상 아주 길고 무거운 침묵이 이연의 어깨를 억누르는 듯했다. 

“소이연 씨라면 사람들이 떡치기 좋은 나무들로 잘 골라 주시겠죠.”

“……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그녀가 제 귀를 의심하며 바짝 굳었다.

“사람을 부추기고, 유인하고, 감쪽같이 숨겨주는 정원이면 좋겠습니다.”

“저, 저기……. 제가 잘 못 알아들어서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행사인지 알 수 있을까요?”

권채우의 시선이 이연의 귓불 어딘가에 달라붙었다. 그는 생선 눈알을 터트리느라 더러워진 나이프를 위아래로 슥슥 닦으며 이죽거렸다.

“야외 섹스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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