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으으윽……!”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 안.
녹이 슨 의자에 발목이 결박된 사람이 신음을 흘렸다. 밧줄에 묶인 손발, 검은색 헝겊으로 꽁꽁 싸매져 있는 머리. 그는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지하실의 꿉꿉하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깨를 떨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이놈이야?”
낡아빠진 소파에 앉아있던 권채우가 칙, 칙, 라이터 부싯돌을 굴리며 물었다. 야트막한 주황색 불꽃이 들어왔다 꺼지는 찰나에 매끈한 얼굴이 군데군데 드러났다. 어둠 속에 스며들어있는 무감한 얼굴은 잘 깎인 석고상처럼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네, VIP의 영애분이 대학 유학시절 잠깐 만났던 남자라고 합니다.”
지척에 있던 사냥개 한 명이 단조롭게 말을 받았다.
“그때 7억 원 상당의 지원을 해 줬지만 남자 쪽의 변심으로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영애분의 결혼식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동영상을 보내면서 계속 협박을 해 왔다 합니다. 요구조건은 30억이었고, 동영상 일부는 영애께 직접 전송이 되었습니다. VIP께선 속 시끄럽다고 그냥 조용히 처리해 달라 하십니다.”
낮은 목소리가 축축한 벽을 때리고 돌아왔다. 그러자 겁에 질린 남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제, 제발 풀어주세요. 그건 그냥 실수로, 딱히 큰 의미는―”
“협박은 실수로 하는 게 아니야, 금수 같은 놈들이나 하는 거지.”
권채우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잿빛 먼지가 일제히 연기처럼 올라왔다. 그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올 때마다 부서진 유리 조각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새까만 머리칼 아래로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는 건 불씨를 닮은 그의 담갈색 눈동자였다.
“듣자하니 동영상을 잘 찍는다고.”
“다, 다음부턴 안 그러겠습니다!”
“영애뿐만이 아니던데.”
“네?”
“네가 보따리에 싸들고 있는 그 영상들.”
“……!”
별안간 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다른 사람 목줄은 그렇게나 많이 쥐고 있었으면서, 너는 고작 이 정도에 빌빌거려?”
“읏……!”
눈치 빠른 남자는 이윽고 벌어질 일을 짐작이라도 하듯 주먹을 꽉 쥐었다.
권채우는 시멘트벽에 죽 걸린 날붙이들을 바라보다 도끼를 집어 들었다. 지척에 있던 사냥개들은 평소와 달리 줄을 찾지 않는 그를 보며 의아하단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때 마지막 발악처럼 남자가 버럭 외쳤다.
“가,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없는 마음을 당신들이 알아?!”
씩씩거리는 숨소리에 검은색 헝겊 천이 입과 코에 바싹 달라붙었다.
“니들은 사랑 안 해 봤냐고!”
“…….”
권채우는 손바닥에 닿는 나무의 감촉을 느꼈다. 그러자 내내 딱딱했던 얼굴에 묘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몇 번 이리저리 고쳐 잡아보던 그는 이내 날붙이를 분리하고 나무 몽둥이 하나만 가지고 돌아왔다.
“내가 걔네들 사랑해서 추억이라도 갖겠다는 걸 생판 남인 새끼들이 왜―!”
“역겨운 소리를 하네.”
“이, 이 개새끼들이, 그렇게 당당하면 이 천부터 벗겨! 비겁하게 숨어있지 말고―”
그러자 남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헝겊이 불시에 사라졌다.
“우리가 개새끼인 건 어떻게 알았을까?”
권채우가 붉은 입술로 호선을 그렸다. 의례적으로 입꼬리를 당긴다 한들 그것이 웃음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오염된 벽지와 곰팡이 냄새마저 한순간 잊게 만드는 싸늘한 눈동자. 결점은 없으나 타락이 엉긴 얼굴이 심판하듯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앞에서 함부로 거짓말 하지 마.”
권채우가 허리를 굽혀 그와 눈을 마주했다. 짙은 호박색 동공에 남자는 꿀꺽 침을 넘겼다.
“너한텐 사랑이 아니라 사업이었잖아.”
“…….”
“여자 머리채 잡고 네 뜻대로 굴리고 싶었어?”
동시에 몽둥이를 들어 올린 권채우가 가차 없이 상대의 어깨뼈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악!”
남자가 엉망진창으로 괴성을 지르는데도 예전만큼 흥이 나지 않았다. 살갗을 밀어 올리며 신경을 찌르던 자극도 지루할 정도로 감흥이 없었다.
윤주하가 죽었다는 소식에 음악이 전부 회수되어 사라졌을 때와 비슷한 무기력감이었다.
그래도 한 번, 두 번, 세 번, 기계적으로 남자의 어깨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역시나 예전과 같은 흥분은 없었다. 그저 죽은 고기를 다지듯 반복되는 동작이 지겨웠다.
“……그, 그만, 죄, 죄송합니다. 아아악……! 서, 선생님, 흐윽, 사, 살려주세요……! 저, 저는 억울합니다! 흐으, 저는 정말 사랑해서, 보고 싶을 때 못 보는 게 얼, 얼마나 괴로운― 윽!”
권채우는 끝까지 주절거리는 남자의 머리칼을 쥐고 시선을 강제로 맞추었다.
“그럼 내가 보게 해 줄게.”
“……무, 무슨―”
이윽고 그는 손안에 딱 맞는 나무 손잡이로 상대의 뺨을 연속으로 후려쳤다. 안면에 피가 튀겼지만 정작 그의 표정은 평연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흐트러진 머리칼이 그의 눈빛을 장막처럼 가렸다.
“한번만 병신이 돼 봐. 그럼 온갖 헛것이 다 보이니까.”
권채우가 흘끗 부서진 선반 위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몸을 둥글게 말고 새근새근 잠이 든 여자가 아까부터 그의 신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 얼굴에 시선이 닿은 순간, 그의 손에서 어쩔 도리 없이 힘이 풀렸다. 권채우의 이변을 눈치 챈 사냥개들이 덩달아 고개를 돌렸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그저 낡고 뒤틀린 나무판자뿐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거인으로 만들어주진 못할망정―”
조금도 가쁘게 들썩이지 않는 목소리는 어딘가 텅 비어있었다.
“죄인처럼 고개나 숙이게 했으면―”
권채우는 남자가 앉아있던 의자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그렇게 남자가 허우적대는 사이, 뒷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내 발목의 아킬레스건, 무릎의 십자인대, 손목의 힘줄까지 죄다 끊어놓았다. 그 움직임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으아아아악!”
“네가 잃어버린 걸 평생 눈으로 확인하며 살아.”
너는 지금도 나무를 살리고 있겠지. 그런데 나는 여전히 사람을 해치며 살아. 그가 어둑한 눈으로 볼 안쪽을 혀로 쓸었다. 텁텁한 역함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는 피 묻은 칼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바닥에 휙 내던졌다.
“사진 찍어서 VIP께 보내고,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
“예.”
권채우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부서진 선반 앞에 섰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급하게 꺼내 물었다. 칙, 칙, 라이터를 켜는 손이 자못 신경질적이었지만 스파크만 튀길 뿐, 불길은 좀처럼 일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몇 번 더 부싯돌을 굴려 기어코 담배 끝을 태웠다. 식도가 타들어갈 듯 화끈거리자 비로소 들끓던 속이 가라앉았다.
본가로 돌아온 이후, 권채우의 삶은 빠르게 복구되었다. 둔해져있던 몸을 단련하고, 사냥개를 굴리고, 타깃들을 처리했다. 그런 폭력적인 일만이 첼로를 잃은 권채우의 유일한 삶이었는데.
“……씨발.”
담배를 쥔 손끝이 새하얗게 질렸다.
시간은 미치도록 더뎠고, 피 냄새는 역겨웠으며, 때때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은 성가셨다. 제아무리 비싸고 좋은 음식일지라도 눈에 띄면 메슥거렸고, 심지어는 물도 비렸다.
그런 밤이면 술이든, 도박이든, 약이든 어느 것 하나에 미쳐있는 사람들을 권태롭게 주시했다. 목적도 없이 광분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제 속을 태우는 작은 불씨도 그럭저럭 견딜만해졌다.
“…….”
차라리 기억이 하나뿐이라면 어땠을까.
똑같은 하루도 낮과 밤으로 나뉘듯 그의 머릿속도 그랬다. 그녀가 증오스럽다가도 그리워 숨이 막혔다. 이연의 말을 죄다 믿어주고 싶다가도, 마음 한켠에선 미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공존할 수 없는 양극단의 마음이 권채우를 하루하루 깎아먹었다. 그는 경련하듯 떨리는 손등으로 피 묻은 제 뺨을 문질렀다.
“……그렇게 자면 고개 아파요.”
얌전히 졸고만 있는 소이연의 환영이 보이기 시작한 건, 두 개의 기억을 완전히 흡수한 다음이었다.
그 사실을 처음 인지했을 땐 너무 당황하여 머리가 백지장이 됐고, 이내 만질 수 없음에 가슴 속 어딘가가 허물어져 내렸다.
“에……, 환각은 기억 상실을 겪었던 환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강가에 돌 던지면 여러 겹으로 파문이 이는 거 알죠? 그런 거랑 같다고 보심 됩니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거나, 정반대였던 기억이 합쳐질 때 받은 충격으로 잔상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에……, 그렇죠. 머릿속에 물결이 생기는 거예요.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니까 크게 걱정할 필욘 없습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될수록 환각은 자연스레 사라질 겁니다.”
그가 헛것을, 그것도 소이연의 허상을 본다는 건 권기석에게 절대 들켜선 안 되는 정보 중 하나였다. 그래서 권채우는 의사 면허가 취소된 채 도박장 근처에서 불법 수술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갔었다.
“저걸 만질 수는 없나?”
“예?”
“내 환각 말이야.”
“……에, 그게…….”
“어차피 제정신도 아닌데, 여기서 더 미친다고 문제가 되진 않아.”
쉰내가 폴폴 풍기는 옷을 입고 있던 의사는 벙찐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아―! 에, 그 대신 수면 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있어.”
권채우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대답했다. 제 질병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에……, 그러면 앞으로 심해질 겁니다.”
“그거 잘 됐네.”
의사의 말대로라면 꾸벅꾸벅 졸기만 하는 저 환영은 정신적 파동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현상이겠지만, 그럼에도 제 쪽으로 밀려드는 물결 하나하나가 소이연이어서.
“사람 간 떨어지게 이런 데서 자지 마요.”
권채우는 망가진 제 머리가 흘려대는 거짓말을 주워 먹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