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규백이는 기다란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자꾸만 미끄러져 휘청거리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발가락에 힘을 주어 앞만 보고 달렸다.
분명 겉으로 봤을 때는 나무로 된 한옥이었는데, 집 내부는 사방이 검은 대리석이었다. 바닥은 미끌미끌했고 그 흔한 창문도 보이질 않아 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허……, 허억……!”
왼쪽으로도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도 갔다가. 그러나 꾸불꾸불한 복도에 출구는 없었다. 각 벽의 모서리들까지 전부 다 검은색이어서 그런지 왔던 길조차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백지장에 적힌 검은색 글자가 보고 싶다.
규백이는 책이라면 달달 외울 수 있지만, 이렇게 어지러운 곳에서는 괜히 눈알만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아 애꿎은 이마만 팡팡 쳤다.
이 미로 같은 곳에 들어오게 된 지도 벌써 한 달 전.
트렁크 안에서 전갈을 구경하다 깜빡 잠이 들었던 규백이는 갑작스레 쏟아지는 햇빛에 얼굴을 찡그렸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웬 험상궂은 아저씨들이었다.
“……형님, 챙겨 올 물건 중에 혹시 사람도 있었습니까?”
“누가 이딴 걸 넣어 왔냐……!”
“다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느새 트렁크 앞엔 곰 같은 남자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었다. 규백이는 경계를 하며 엉덩이걸음을 쳤으나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도련님 애일까요?”
“야 이씨, 생각 좀 하고 말해라. 도련님이 애는 무슨 애……!”
부하들은 순간 체통도 잊고 저마다 수군수군했다.
“그렇게 아기자기하고 끔찍한 소린 말어라.”
그중 가장 덩치가 큰 사람이 얼굴을 와작 구겼다. 권채우는 피도 눈물도 없이 기꺼이 고문을 자행하며 웃는 사람인데, 그런 잔혹한 남자에게 정상적인 관계가 가능할 리 없었다. 아이라니, 상상만 해도 불쾌했다.
그는 잘못 가져온 물건을 차갑게 일별하며 곧장 보고를 했고, 한걸음에 달려온 장범희는 뜻밖의 사태에 경직된 목덜미를 주물렀다.
그 후 규백이가 처음 끌려가게 된 곳은 웬 퀴퀴한 개집이었다.
“나는 강아지가 아닙니다. 이건 발이 아니라 팔입니다……!”
규백이는 두 손을 나팔거리며 자신과 강아지가 어떻게 다른지 지치지도 않고 설파했지만, 끝끝내 몸을 구겨야만 들어갈 수 있는 닭장 안에 처넣어졌다. 그곳에는 규백이 말고도 말라비틀어진 아이들이 죽은 눈으로 얼굴만 빼놓고 있었다.
“나는 닭이 아닙니다, 나는, 나는…….”
규백이는 스스로 무언가를 관찰하는 박사이지, 관찰당하는 입장이 아니다.
그런데 닭장인지, 개집인지 도통 모를 곳에 갇히게 되자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눈물만 뚝뚝 떨구었다.
“큰 말벌 오오스즈매 바치, 총알개미 파라포네라, 아프리카 꿀벌, 병졸 개미, 말파리……”
아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섭다는 곤충들을 되뇌며 이를 갈았다.
대체 사람을 어디까지 깎아내릴 건지 밥은 개밥이었고 쥐똥만큼 적은 물에선 쇠그릇 맛만 났다. 그럴 때마다 규백이는 할아버지도, 삼촌도 아닌, 수놈을 떠올렸다.
완전 변태 후, 알맹이가 달라졌던 제 부하를.
모양 좋고, 힘도 세고, 몸도 좋고, 이빨도 단단하고, 뒷다리도 튼튼했던 원장 선생님의 수놈.
그리운 수놈을 곱씹으며 버티던 어느 날, 규백이를 이곳에 방치해 두었던 장범희가 다시 찾아왔다.
“……퉤.”
“…….”
며칠이 지나도 기가 죽지 않은 아이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복잡했다. 그러나 장범희는 무언가를 결심하기라도 한 듯 턱을 꽉 악물었다.
“따라와라.”
그렇게 규백이가 두 번째로 끌려간 곳은 개집과는 정반대인 곳이었다.
냄새나고 축축했던 축사에서 벗어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햇빛이 비치었다.
작달막한 아이의 목이 뒤로 꺾일 만큼 으리으리한 한옥.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정원에는 머리가 확 트이고 입까지 벌어졌다.
이윽고 장범희를 따라 들어간 본채에는 한 남자가 등을 보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광을 받은 실루엣은 사람이 아니라 숫제 형체 없는 그림자 같았다.
“그 아이입니까.”
“예, 이사님.”
“제대로 씻기고 적당한 방에 넣어 두세요.”
“그럼……”
“제 발로 오게 될 겁니다.”
남자가 몸을 돌리는 순간, 규백이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시선에 어깨가 움칫 떨렸지만 이상하게 저것과는 눈을 마주치고 싶지가 않았다. 아이는 포대 자루처럼 질질 끌려 나가면서도 절대로 눈을 뜨지 않았다.
그렇게 규백이는 모든 게 완벽하고 사치스러운 방 안에서 감금 생활을 시작했고―
“허……, 허억……!”
오늘도 어김없이 복도를 휘저으며 도망을 치고 있었다.
왼쪽으로도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도 갔다가.
작지만 따뜻했던 가문비 나무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원장 선생님이 만들던 비료가 그립고, 땟국물을 문대 주던 추자의 화려한 손톱도 그리웠다. 그래서 규백이는 하루에 세 번, 밥이 차려지는 틈을 타 어제와 똑같이 탈출을 시도했다.
“원장 선생님……!”
힐끔 뒤를 돌아보니 저택의 사용인이 한숨을 내쉬며 무전기에 입을 대고 있었다. 긴박함보다는 귀찮음이 묻어나는 눈초리에 규백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박사는 사육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입구와는 점점 더 멀어지는 동굴 같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웬 문을 발견했다.
“……!”
규백이는 쫓아오는 발소리를 기민하게 알아채고 냅다 방문을 열었다.
조도가 낮은 방 안은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고요하다 못해 싸늘했다. 허공에 뿌려지는 자욱한 가습기 연기. 띠―, 띠―, 하고 울려 퍼지는 규칙적인 소리. 규백이는 정확히 세 번 눈을 깜빡이고 입을 벌렸다.
“……수놈입니다.”
고저 없는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흔들렸다.
아이는 천천히 침대맡으로 다가갔다. 미동도 없이 자고 있는 권채우를 바라보며 눈을 비비고, 또 비비고, 다시 한번 비볐다. 그러자 조금씩 규백이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수놈, 수놈입니다. 거의 우리 집 수놈입니다……!”
미묘한 말을 내뱉는 목소리엔 점차 힘이 깃들었다.
“정말로 거의 우리 수놈입니다!”
이내 규백이는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기라도 한 듯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대체 어디 갔다가 이제 옵니다, 왜 이제 옵니다!”
규백이는 노래하듯 두 손을 꼭 잡고 수놈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우리 수놈은 머리, 몸통, 다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팔 두 개 다리 두 개로 완벽한 신체를 자랑합니다. 침대를 훌쩍 넘는 길이에 손과 발이 크고, 코가 우뚝한 것이 특징입니다. 수컷의 생식기는―”
그때, 거칠게 문이 열리고 뚜벅뚜벅 걸어온 장범희가 아이를 옆구리에 달랑 끼웠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지 들어 올리는 그도, 들려지는 규백이도 퍽 익숙해 보였다.
규백이는 거꾸로 들려 나가면서도 바둑알 같은 눈동자를 빛냈다.
이내 탁―! 문이 닫히자 권채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 * *
이연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거실을 왔다 갔다 서성였다.
경찰은 차 번호를 조회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으나 별다른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알아낼 수 있는 건 단 한 개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경찰들이 빈손으로 돌아오리라는 데에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하아…….”
이연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규백이의 행방을 알고 있다. 아이를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도 안다.
권채우를 데리러 왔던 차량은 원래의 집으로 돌아갔을 확률이 컸고, 그건 형제인 권기석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때에, 조 원장의 말이 떠오르는지.
‘그냥, 권씨 성을 가진 사람은 일단 피하고 보란 얘기야.’
이연은 기도하듯 핸드폰을 쥔 채 고개를 숙였다.
결벽적으로 보였던 권기석과 도축장, 그리고 뒷산에서 사람을 파묻던 권채우까지.
그동안은 구태여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진실을, 이제는 원치 않아도 알아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전화를 걸면 돌이킬 수 없다. 쿵쿵, 목 아래에서 뛰기 시작된 맥박이 이내 온몸을 두들기는 진동으로 번졌다.
흔들리지 마, 권채우는 이미 죽었고, 너는 규백이만 생각해.
그녀는 액정을 몇 번 터치한 뒤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길게 이어지는 통화 연결음이 마치 시한폭탄처럼 서서히 목을 조여 왔다.
―연락이 꽤 늦으셨습니다.
“……!”
이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벌써부터 목이 타고 식은땀이 맺혔다.
―우리 사이에 사적인 전화는 아닐 테고.
“…….”
―소이연 씨가 부탁을 하려나 봅니다, 아니면 원망을 하던가.
수화기 너머로 옅은 바람 소리가 들린 듯도 했다.
“……확인, 해 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채우는 잘 있습니다.
“아, 아니요. 그 사람 얘기가 아니라……!”
이연은 순간 경직돼 버린 눈썹을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규백이요, 또래보다 작은 여덟 살 아이인데 그쪽 트렁크에 실려 갔어요.”
―아아, 네.
느긋하기 짝이 없는 대꾸에 이연은 더없이 초조해졌다.
“분명 그쪽 사람들이 발견했을 거예요. 규백이는 잘 있어요? 지금 당장 확인을―”
―예의 차려서 다시 말하세요.
“……네?”
―지금 내가 전화를 끊으면 다음 통화는 1시간 뒤입니다.
“자, 잠깐만요!”
이연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고, 이내 가차 없는 음성이 그녀의 뇌리에 박혔다.
―나는 내 손에 들어왔던 걸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습니다.
“…….”
―설령 놓쳤더라도, 기필코 시체라도 가졌습니다.
“……!”
좋지 않은 징조였다. 아무래도 그의 상식에 미아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없는 듯했다.
그제야 이연은 그가 하려는 짓이 인질 교환, 즉 협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니 신중하게 고민하고 말하세요. 내 것을 빼앗아 가려면, 소이연 씨는 내게 뭘 줄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