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10/158)

#109

띠― 띠― 띠―.

바이탈을 재는 기계 소리가 무심하게 흘러나오는 방 안.

“……도련님.”

장범희는 죽은 듯이 자는 권채우를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차에 타자마자 쓰러진 권채우는 몇 주 째 긴 수면에 들어간 상태였다. 정신력과 약으로 중추 신경을 깨워 놓았던 남자는 마치 그동안의 피로를 한꺼번에 풀기라도 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을 너무 끌었습니다, 도련님.”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며 소이연의 곁에 남아 있어야 했던 이유를, 장범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로는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엔 한없이 무리였다.

장범희는 고아원에서 권 가(家)로 소위 ‘공급’된 아동이었다. 어릴 적 뭣도 모르고 이곳으로 끌려와 개집처럼 좁고 퀴퀴한 곳에서 인간성을 말살당하며 철저한 사냥개로 길러졌다. 

그랬던 그가 권채우를 돕게 된 건, 이곳의 핏줄임에도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해 있는 이질적인 눈빛 때문이었다. 

학대를 빙자한 훈련을 버티지 못한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명씩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체나 정신이 망가져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처리당했고, 장범희는 같은 보육원 출신들이 그렇게 하나둘 없어지는 것을 보며 막연한 공포 대신 분노를 품었다. 그 동력으로 월등한 사냥개가 되어 권채우를 만났다. 

권 가(家)의 막내 도련님인 주제에, 자신과 똑같은 눈을 갖고 있는 그를. 

판은 이미 2년 전에 짜 놓았다.

그가 식물인간만 되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끝냈을 일들.

역대 사냥개들이 처리한 증인들, 그렇게 묻힌 더러운 사건들, 나라의 역사를 바꿔 놓을 정도의 결정적인 증거들. 그 논란거리가 단숨에 터지도록 불만 붙이면 됐던 상황이었다.

내년에 있을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다른 정보 기관까지 끌어들였고, 그러기 위한 숱한 더러운 정보들이 이미 권채우의 손에 산적해 있었다.

이뿐이랴. 수국 제약이 그동안 저질러 온 반인륜적인 실험들을 전 세계적으로 고발하여 나라 전체를 압박할 계획이었다. 

이처럼 치밀하게 여러 갈래로 준비된 뇌관들은 전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타들어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8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언론에조차 드러나지 않았던 권 가(家)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것. 일개 조폭 가문이 나라를 쥐고 흔들어 왔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 

그러기 위해 권 가(家)에 반항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반정부 인사들을 해외로 빼돌렸다. 특히나 권 가(家)의 압박이 가장 심하게 들어갔던 언론인과 법조인을 필사적으로 확보해 두었다. 

물론, 이것은 대외적인 일이었고, 내부적으로는 조폭 가문답게 피로써 권기석을 처리해야 했다. 천박하기로는 유서가 깊은 집안이니 언젠가 한 번은 피바람에 휩싸일 것이다.

문제는, 도련님의 불규칙한 수면 패턴 때문에 이 모든 계획들이 전부 어그러질 위기에 처했다는 건데―

지이잉. 지이잉.

장범희는 복잡한 생각을 딱 끊어 내고 태연히 핸드폰을 받았다.

“예, 이사님.”

―애는?

“잘 데리고 있습니다.”

―혹여나 흠집 나는 일 없도록 간수 잘 하세요.

“예.”

―만약 필요하다면 알아서 교육시켜놔도 좋습니다.

“…….”

―이용하려면 그게 더 편할 수는 있겠지.

그래서 장범희는 처음으로 권기석의 계획에 동참하는 바였다.

이규백을 잘 데리고 있으라는. 

그건 소이연을 불러들일 가장 먹음직한 패였으므로.

권 이사가 대체 어떤 이유로 소이연을 주시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의 목적은 같았다. 권 가(家)로 소이연을 불러들이는 것. 

장범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도련님을 보며 덩달아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그를 매일 아침 깨워줄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 * *

이연은 미루고 미뤄 두었던 화단을 다시 만들었다. 흙을 정리하고, 씨앗을 신중히 고르고, 땅을 다지면서, 맥없이 놓아 버렸던 하루를 재생해 나갔다. 

아쉽지만 깨진 화분을 정리하고 새로 분갈이를 했다. 상한 반찬은 미련 없이 버리고 입에 맞는 반찬들로 냉장고를 채웠다. 2층 방은 굳게 잠갔고, 열심히 먹고 자면서 낮에는 꼬박꼬박 햇볕 아래를 서성거렸다. 

“가을이 오려나 봐.”

옆구리에 책을 끼고 나온 그녀는 어느새 선선해진 공기가 퍽 놀라웠다. 

그러나 느긋하게 앉아 있던 그녀는 순간 떠오른 생각에 곧장 추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추자 씨, 규백이는 잘 지낸대요? 집엔 가 보셨어요?”

통화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닦달하듯 물었다.

―숨넘어가겠데이. 안 그래도 막 전화할라 캤다.

“여름방학도 다 끝나 가는데 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기……, 좀 이상하다.

“이상하다뇨?”

이연은 머뭇거리는 듯한 추자의 목소리에 미간을 설핏 좁혔다.

―내가 첨에 가 봤을 땐 집에 아무도 없어가, 오늘 다시 가 봤는데……. 

“계십니까―!”

그때 초인종 소리와 함께 누군가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이연은 어깨를 흠칫하며 파란 대문 밑으로 보이는 두 쌍의 신발코를 주시했다. 왜인지 입이 마르고 심장이 뛰었다.

“화양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계십니까―!”

―그 집 영감탱이가 말하길 애가 없어졌다 안 카나.

양쪽 귀에서 각각의 목소리가 들린 건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

이연은 불현듯 드는 예감에 대문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문을 열었다. 역시나 지구대 차림의 경찰관이 무뚝뚝하나 예리한 눈초리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소이연 씨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이연은 두 손을 꼭 모으고 조금씩 끓기 시작하는 불안을 애써 눌렀다.

“아동 실종 신고가 들어와서요. 이쪽 골목 CCTV 한번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

손쓸 새도 없이 얼굴이 일그러지고 숨이 턱 막혀 왔다. 이연은 반응할 타이밍을 놓치고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툭 떨어뜨렸다. 

수화기 너머로 추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퍼졌지만, 온갖 무서운 생각이 짓쳐 드는 통에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기, 그리고 저기. 공공 CCTV 아니죠?”

“……아, 네. 그,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설치한 거예요.”

경찰관이 가리킨 것은 두 개의 CCTV는 과거, 황조윤의 스토킹 때문에 그녀가 사비로 들인 제품이었다. 이연은 실종 아동의 이름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평소 가문비 나무 병원을 자주 들락거렸고, 실종 추정 당일에도 병원에 간다는 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는 진술이 있습니다. 이형철 씨, 아…… 그러니까 이규백 어린이 할아버지 되시는 분입니다.”

확인 사살을 당한 이연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가 눈과 귀를 막고, 응달 속을 파고들기만 했을 때. 혹시 그때 규백이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바늘처럼 심장을 찔러 댔다.

“……그런데 추정이라니요?”

이연이 문득 미간을 찌푸리자 황당한 말이 되돌아왔다.

“할아버님께서 오늘 아침에야 신고를 하셔서, 정확한 건 조사를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경찰은 구태의연한 말로 이연을 재차 미치게 했다.

“마지막으로 이규백 어린이를 본 게 언젭니까?”

모니터 앞에 총 네 개의 머리통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응답 없는 통화에 놀라 헐레벌떡 달려온 추자와 경찰관 둘, 그리고 이연까지. 그들은 현재 거실에 앉아 CCTV 파일을 돌려 보는 중이었다. 

1주, 2주 전까지도 체크해 봤지만 아이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한 달 전의 파일까지 열어 보게 된 이연은 움찔거리는 검지로 권채우와 헤어졌던 그날의 날짜를 클릭했다. 그리고 화면 안에는 담벼락 뒤에 숨은 규백이가 있었다. 

이래서 쑥대밭이 되었던 거구나. 이연은 덩치 큰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대문을 내려치는 모습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녀는 검은색 슈트를 입은 남자들을 저도 모르게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들의 뒤통수와 목선, 어깨와 등허리를 훑는 시선이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쟤가 지금 뭘……, 뭘 하는 겁니까?”

그때 고개를 쭉 내밀고 안경을 고쳐 쓴 경찰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처음에는 낯선 차량과 남자들을 피해 잘 숨어 있던 규백이가 별안간 트렁크 쪽으로 쪼르르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워낙에 호불호가 강하고, 스스로 허용한 세계가 무척이나 좁았던 규백이었기에, 이연은 아이가 먼저 접근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눈을 깜빡거렸다. 

“이, 이상하네요. 규백이는 자기 관심사 아니면 신경도 안 쓰는 앤데.”

“혹시 자동차를 좋아했나요?”

“전혀요, 오히려 자연을 파괴한다고 싫어했어요.”

“흐음…….”

경찰은 턱을 문지르며 화면을 커다랗게 키웠다. 규백이 냉큼 들어간 트렁크 안이 확대되자, 네 쌍의 눈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규백 어린이가 손을 내미는데요? 보이세요? 저게 뭐죠?”

“조금 더 확대할 순 없을까요?”

이연은 낯을 굳히고 규백이의 예상치 못한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경찰이 화면을 다시 한번 확대하자, 이번엔 추자가 펄쩍 뛰었다.

“저게 뭐꼬?!”

“……!”

이연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유리 상자 속에서 우글거리는 웬 집게 모양의…….

이연은 규백이가 무엇에 홀려 냉큼 차에 올라타 버렸는지 알 것 같았다.

“전갈이네요.”

“……예?”

입을 반쯤 벌린 경찰의 표정이 벙찐 듯 멍청해졌다.

“독 있는 그 전갈이요? 그 위험한 걸 대체 누가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닌답니까?!”

“글쎄요, 야구 배트나 싣고 다니면서 남의 집 쳐부수는 놈들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권채우를 데려갔던 사람들, 혹은 권기석이 부리는 사람들.

규백아, 너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녀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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