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앞마당에 우뚝 솟아오른 나무 아래, 웬 정체 모를 구덩이가 파였다. 이연은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삽을 푹, 꽂아 넣었다.
“후……, 다 팠어요.”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내는 모리겠다.”
“뭐가요?”
추자는 아까부터 열심히 삽질만 하는 이연을 보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햇볕에 벌겋게 익은 뺨, 턱 선을 타고 흐르는 땀, 오랜만에 들썩거리는 대찬 숨결.
반송장처럼 굳어 골골대던 지난 몇 주와는 사뭇 다른 활기였으니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 맞건만.
“아직 니한테는 청첩장도 몬 받아 봤는데 대뜸 사위 부고부터 때리는 기가.”
추자는 혹시나 이게 미쳐 버린 이연의 기행은 아닐까 싶어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내 이런 속도위반은 듣도 보도 몬 했다!”
“…….”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려던 이연이 순간 멈칫했다. 누가 봐도 어색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두 사람만의 간이 장례식이었으나 그런 것치곤 사진도, 그를 추억할 만한 물건도 없었다. 쓸 만한 게 집 안에 더는 남아 있지 않은 탓도 컸지만, 추자가 부랴부랴 인테리어 소품처럼 채워 넣었던 생필품들은 그 의도만큼이나 부질없기도 해서. 이연은 그에게 선물로 받았던 목공예품을 가져왔다.
실재하지 않는 남자를 그나마 파묻어야 한다면, 역시나 이것뿐인 거다.
“…….”
이연은 제법 깊게 판 구덩이에 핏빛이 비치는 조각품을 툭 던졌다. 그리고 한쪽에 쌓아 두었던 흙더미를 다시 삽으로 옮겨 구멍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 별것 아닌 행위가 뭐라고. 이연은 지저분하게 널려 있던 감정이 조금씩 한곳에 모여 단단히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끔찍한 사고처럼 그가 찾아왔고, 또 그렇게 돌연히 떠나 버리는 게 아니라. 적어도 마지막 페이지 정도는 그녀가 직접 삽을 들고 덮어야 수지가 맞는 거다.
이 장례식은 순전히 이연을 위한 의식이었다. 이윽고 그녀의 나무 꽃은 고작 한 삽에 자취를 감추었다.
“추자 씨, 이다음엔 뭘 할까요?”
그런데 흙으로 계속 구덩이를 채워갈수록 이상하게 눈알 안쪽이 시큰거려서. 이연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녀의 눈빛은 경력직 선배를 보듯 양순했고, 추자는 한숨을 삼켰다.
“울어야제.”
“…….”
“곡해라.”
“어…….”
“절을 하든 기도를 하든, 마음속에서 완전히 보내야제.”
“…….”
“어데 닮을 게 없어가 내 팔자를 닮노.”
추자가 씁쓸하게 읊조렸다. 그녀는 오드리 헵번처럼 머리를 틀어 올리고 검은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나, 입가를 스쳐 간 미소는 한없이 우울해 보였다.
“조금 다를걸요?”
“머?”
작은 둔덕이 완성되자 이연은 단전 호흡을 하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나 울음의 잔해가 설핏 남아 있었던지 목청이 바르르 떨렸다.
“우는 건 이제 물려요.”
그녀는 핸드폰으로 웬 음악 하나를 틀었다.
권채우가 떠나던 그날, 숲을 잃은 주민들에게, 그리고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첫 번째 곡이었다. 비발디 사계 중 봄. 문득 황당하다는 추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덤 앞에서 너무 흥겨운 기 아이가.”
“장례식은 남은 사람을 위한 거라고 어디서 들었어요.”
추자는 과거에 잠긴 듯 일견 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추자 씨도 제 눈치 보지 마시고, 시원하게 한 마디 하세요.”
그러자 인상부터 찌푸리고 보는 추자에게 이연이 태연히 덧붙였다.
“침은 뱉지 말고요. 새 시작을 위해 우아하게 마무리하는 게 좋겠어요.”
추자는 봉긋한 흙더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연을 힐끔거리며 속으로 혀를 찼다.
“하이고, 가짜 장모가 가짜 사위한테 할 말이 뭐 있겠노.”
“…….”
“날이 좋아가, 날이 좋지 않아가, 날이 적당해가 권 서방의 모든 와꾸가 좋았데이.”
이연이 흐린 눈빛으로 쳐다보자 추자는 한 박자 늦게 근엄한 목소리를 냈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 맞췄던 인연은 여기서 털어 버리는 게 최고다.”
빠른 태세 전환에 이연은 고개를 젓다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사랑은 늦게 올수록 격렬하다 카든데, 벽창호 같았던 이연이를 그래도 뒤흔들어 줘서 고맙데이. 가스나 울리삔 거는 고약했다마 나도 사위라고 구라쳤으니께 서로 퉁 치제이. 그라면 내도 인자 권 서방 얼굴은 잊으께.”
그녀가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무덤에 내려놓으며 애써 긍정적으로 결론 내렸다. 물론 마음 같아선 편파적으로 쏴대고 싶은 말들이 있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제대로 마침표를 찍으려는 이연에게 최대한 맞춰 주고 싶었다.
“우리 소 원장도 잘생긴 머슴아랑 지지고 볶아 봤으니 훌륭한 인생이었데이.”
“추자 씨, 저 애 생겼어요.”
“자랑할 만한 인생이었, 머?!”
순간 봄바람처럼 나긋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마침 스피커에선 국면이 바뀌어 먹구름이 다가오고 폭풍우가 내리는 긴박한 멜로디가 눈치도 없이 흘러나왔다.
“……머, 머, 머라캤노 지금! 내 귓구녕이 잘못―”
“3개월이래요.”
이연의 얼굴은 덤덤하기 그지없었으나 등 뒤로 감춘 손을 가만히 두진 못했다.
“지, 지, 지금 머라꼬……!”
“사랑은 늦게 올수록 격렬하다면서요.”
추자는 이연의 배와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떡 벌렸다.
“추자 씨랑 똑같은 팔자는 아니죠?”
“…….”
“제가 좀 더……, 업그레이드 된 꽈배기 아니에요?”
이연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미소를 숨겼다.
물론, 테스트기를 처음 확인했을 땐 충격, 당황, 공포, 불안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회오리쳤지만 그건 정말이지 잠깐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등허리에 소름이 짝 돋는 어떤 전율이 있었다.
그건 이연이 태어나면서부터 바라고 또 바라왔을 ‘진짜 가족’이어서.
“어차피 근본도 없고, 약하기만 한 뿌리는 그때 다 뽑힌 줄 알았는데요…….”
이연의 눈동자에 묘한 빛이 감돌았다. 이모한테, 사랑하는 남자에게 뿌리내리려던 나약한 생각은 이제 접었다.
“추자 씨, 내, 내가…….”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어룽진 눈망울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환희가 깃들었다.
“나도, 누군가의 근본이 될 수 있더라고요.”
“……!”
“이렇게 부족한 나한테도, 평생 끊을 수 없는 천륜이 생겼어요.”
그건 이연에게 또 다른 돌파구였다.
“내가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그걸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을 존재요.”
그녀의 얼굴은 마치 새로 태어나기라도 한 듯 생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는 징징거릴 시간이 없어졌어요, 추자 씨.”
추자는 이연의 얼굴에 차오른 생기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 침착한 시선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이연이 머쓱하다는 듯 뒷덜미를 문질렀다.
“이런 내가, 좀 대책 없어 보여요? 피, 피임은, 일단 날짜는 안전했는데…….”
물론 임신은 이연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피임을 했던 날도 있고, 안 했던 날도 있지만 적어도 안에 사정을 한 적은 별로 없었다. 배란기는 꼭꼭 피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덜컥 임신이 됐을 줄이야.
험난한 세상에서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출산이 얼마나 치명적인 손상을 남기는지, 하는 것들은 이연의 희열 하나에 전부 뒤로 밀려났다.
천년이 넘은 나무 앞에 앉아 아이와 불어오는 산바람을 맞아야지. 단풍처럼 자그마한 손에 푸른 나뭇잎을 올려주어야지.
임신을 확인받는 순간, 이연은 먼 훗날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때 추자가 먹먹한 음성으로 그녀를 껴안았다.
“아이다, 아이다. 잘했다.”
물론 제대로 된 연애와 결혼을 거쳐 아기를 낳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추자가 보기에 이연은 그럴 인물이 못 됐다. 애초에 권채우가 그녀의 밭을 짓밟으며 넘어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독수공방이나 하고 살았을 애다.
중요한 건, 소위 세상이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라, 이연에게 꽉 묶인 존재가 생겼다는 것이다.
“혹여나 니 탓하지 마레이. 죽었다 깨나도 애가 안 들어서는 내 같은 몸도 있다.”
추자를 스친 찰나의 씁쓸함은 이내 벅찬 미소에 묻혀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그게 태몽이었나 보다.
웬 새끼 호랑이 한 마리가 집채만큼 커다란 덩치의 호랑이를 앞발로 팡팡 때리며 약 올리는 데도 사납게 생긴 범은 어쩌지 못하고 끙끙거리기만 했다. 새끼 호랑이는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커다란 나무 아래로 들어갔고, 성체는 애꿎은 땅만 파며 울부짖었는데…….
“머 애비가 없으면 어떻노. 내한테는 통장이 있는데. 원래 아는 애비가 아니라 사비로 키우는 기다.”
추자는 괜히 속눈썹을 만지는 척하며 눈가를 슥 닦았다. 이연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를 꼭 껴안았다. 간이 장례식임에도 불구하고 두 여자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추자 씨가 지금도 삼촌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저도 그렇겠죠. 아무리 내가 묻고 산다 해도, 마음 어딘가는 계속 헛헛할 거예요. 그래도―”
이내 포옹을 푼 이연이 추자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사랑 없이 살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이연이 태생적으로 세우고 있던 벽을 부수는 선언이었다.
“내가 해 본 것 중에 그게 가장 좋았거든요. 태어날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 역시 사랑뿐이에요.”
비단 한 남자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제 주변을, 제 삶을, 제 아이를 둘러싼 모든 세계에게 관심을 쏟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다짐.
그건 새로운 이연이었고, 추자는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감았다.
‘여보, 보고 계십니까. 당신 조카가 이래 잘 컸습니다. 말라비틀어졌던 그 고목 소녀가 이래 어른스럽게 웃고 있습니다. 부러지고 베이기만 하더니 이렇게 꼭 지 같은 꽃을 피웠습니다.’
이연은 다시 봉긋한 봉분을 바라보며 떨리는 입매를 가까스로 고정했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딱 한 마디만 해야 한다면―.
“잘 자요.”
이연은 마침내 무덤 위에 하얀 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내면 안에 푹 잠들어 있을 첫사랑에게.
“이제는 일어나지 않아도 돼요.”
숲에 영원히 잠들어 버린 그를, 더 이상은 깨울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