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아이고, 선상님―! 요 할매 좀 어찌 해 주이소! 남편이 죽은 다음부터 요래 시름시름 앓습니더!”
마을 아래 밭에 있는 ‘할매 나무’는 전국 소나무 동호인들이 최고로 꼽는 나무 중 하나였다. 모습이 꼭 치마를 입은 할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이연은 주동미와 만난 다음부터 손을 놓고 있었던 일거리를 조금씩 받기 시작했다.
방치된 나무들에게 영양제를 맞추기도 했고, 특강 제안을 별다른 고민 없이 수락하기도 했다.
꼭꼭 잠가 두었던 침실의 커튼을 열고, 해가 잘 비치는 낮에는 환기도 하고, 오랜만에 청소기도 돌렸다. 어떤 이유에선지 불면의 밤이 줄어들고 밥도 예전에 비해선 잘 넘어갔다. 망가진 화단은 그대로였지만 미미하게나마 다리에 힘이 붙었다.
“가지가 많이 부러졌네요.”
몇 주 전, 할매 나무는 솔잎을 갉아 먹는 송충이의 공격으로 남편을 잃었다고 했다. 유명한 명성답게 그 수나무는 죽어서도 꼿꼿한 자태를 유지했고, 사람들은 제사에 쓰라고 손수 밤나무까지 심어 주며 고사한 소나무를 기렸다.
그러던 와중, 점점 나빠지는 할매 나무의 상태에 급히 이연을 부른 것이다.
“줄기도 말랐고요.”
이연이 집중한 얼굴로 할매 나무를 둘러보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했을 잎도 이제는 사라지고, 퀭하니 마른 가지들만 붙어 있었다. 이 암나무도 송충이 때문에 이미 적지 않은 가지를 잃은 상태였다.
그때 산책로를 따라 올라온 주민 중 하나가 안타깝게 혀를 찼다.
“짝 잃은 나무는 예로부터 수명을 다하지 못한다고 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이연의 고개가 기민하게 홱 돌아갔다. 야위고 상한 얼굴이었지만 오랜만에 숲속에 선 그녀는 예전처럼 총기가 흘렀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 놓을 건데요.”
의외로 그녀의 목소리가 다부졌다.
“여기 옆에 층층나무 보이세요? 이 친구들이 아내 나무를 한결같이 부축하고 있어요. 그리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멀리 날아가진 못했지만 어린 자식들도 주변에 많이 있고요. 아직 70살밖엔 안 된 나무들이지만 분명 힘이 되고 있……!”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 내던 이연이 돌연 석상처럼 굳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숨도 쉬지 않는다. 문자 그대로 정지해 버린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희게 질렸다.
“소 원장아?”
추자가 걱정스레 그녀를 불렀지만 이연은 여전히 뻣뻣하게 얼어붙은 채였다.
“야가 갑자기 와 이라노?”
“……켁, 켁, 콜록!”
느닷없이 헛기침을 뱉어 낸 그녀가 추자를, 아니 허공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했다. 상체가 흔들릴 정도로 거하게 사레가 들리는 바람에 목덜미는 한껏 시뻘게진 채였다.
이연은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입술을 눌렀다. 곰곰이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예기치 못한 당황이 넘실거렸다.
“이연아?”
추자가 냉큼 다가왔지만 이연은 그저 입만 벙긋할 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예감에 솜털이 바짝 설 뿐이었다.
* * *
“나무는 장기간 강한 바람에 시달리거나, 기슭에서 자랐거나, 눈 더미 등에 눌려 무거운 하중을 받으면 줄기 속에 ‘이상재’가 형성됩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특이한 생장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시청의 한 대강당.
『나무와 사람』이라는 특강의 마지막 강연자로 참석한 이연은 현재 백 스테이지에 앉아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원고를 꾹 쥐고 다리만 달달 떨고 있었다. 며칠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원고인데도 쿵쿵 뛰어 대는 심장 때문에 글자들이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이연은 침침한 눈을 문지르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의 주제가 고루한 탓인지 청중이 별로 없다는 점일까.
이연은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뒤통수를 기대며 피곤한 두 눈을 감았다. 이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내뱉는 앞선 강의자의 목소리가 그런 그녀에게 내려앉았다.
누구셨더라. 아……, 악기 제작자라고 하셨나?
“우리 삶도 마찬가집니다. 많은 일이 어긋났고, 오랫동안 부담에 눌려 있었고, 폭풍 같은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임신이 맞네요.”
이연의 손가락이 움칫 튀었다.
“그리하여 영혼에 상처가 나고, 특이한 결이 새겨지면서 우리도 고유의 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수투성이였음에도 나무처럼 좋은 울림을 품게 된 겁니다.”
“한 12주쯤 됐네요.”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여자 앞에서,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웃고 싶었나, 울고 싶었나. 심장이 뛰었나, 멈추었나. 새롭게 싹튼 생명을 먼저 떠올렸었나, 아니면 이미 죽고 없는 남자를 더듬었었나.
“―완벽한 모양을 갖춘 바이올린이라고 꼭 좋은 소리를 내는 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완벽할 때 우아한 울림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음색이란, 자기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명확히 알 때 생깁니다. 지금, 당신의 안에서는 어떤 것이 메아리치고 있습니까?”
이연의 가슴에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름 세 글자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12주면…….
권채우가 기억을 찾기 전이다. 그가 긴긴 잠에 빠지기 전의 일이다. 그 말은 즉―.
이연을 죽도록 사랑해 주던 그 남자의 아이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녀에게만큼은 한없이 무르고 다정했던 그 권채우의 마지막 흔적이라는 것이다.
내내 어둡기만 했던 마음에 두려움과 환희가 서로 별처럼 앞다투어 박혀 들었다. 이연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상체를 숙였다. 꾸겨진 원고에 아프게 일그러진 얼굴이 닿았다.
“―노래하는 나무가 될 만한 재목은 1만 그루 중 한 그루가 될까 말까 합니다. 먼저, 물살이 센 곳에 나무를 뗏목처럼 띄우고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들어 봅니다. 혹은 뭉툭한 망치로 나무 둥치를 톡톡 두드리며 진동을 느껴 봅니다.”
“…….”
“수많은 시도 끝에 종소리와 같은 울림을 발견하게 된다면, 아마 당신의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일 겁니다.”
“…….”
“울림이 좋은 재목을 찾는 데에도 이렇게나 큰 수고를 들여야 하는데, 하물며 삶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요? 특히나 노래하는 나무들은 대부분 어렵고 불리한 조건에서 자라납니다.”
“…….”
“그런데도 찾으시겠습니까?”
별안간 이연의 등이 움찔거렸다. 그건 마치 그녀를 시험해 보려는 질문 같았다.
1만 분의 1을 가질 것이냐고. 그런 인내와 모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해 볼 것이냐고.
나직한 어투의 강연은 얼마간 계속 이어졌고, 이내 이연은 청중들의 초라한 박수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에 눈물은 없었다. 그녀가 머물렀다 간 둥그런 의자엔 햇빛만이 고여 들 뿐이었다.
이연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허둥지둥 원고를 읽으며 나름대로 『나무의 치유법』에 대한 특강을 무사히 마쳤다.
나중이 되자 안 그래도 얼마 없던 청중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정작 이연은 사람들이 듬성듬성해지자 말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렇게 기력을 전부 쏟고 나니 미칠 듯한 허기가 몰려들었다. 이연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충동적으로 핸들을 돌렸다.
“…….”
신령목은 생각보다 더욱 처참했다.
차분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감정부터 울컥 솟았다. 나무 기둥을 무자비하게 할퀸 선명한 자상. 역시나 순식간에 시야가 뿌예졌다.
이래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이건 신령목의 상처이자, 이연에게도 똑같이 새겨진 흉이었다.
불현듯 그날의 충격이 다시금 생생히 재현되는 것 같아 숨이 가빠졌다.
“……!”
그때, 말라 죽은 가지 끝에 무언가가 툭, 걸려있는 게 보였다.
“이게 무슨…….”
이연의 미간이 옅게 찌푸려졌다.
일렁거리는 시야 너머로도 확연히 보이는 어떤 것. 그녀는 축축해진 눈가를 팔뚝으로 슥 닦으며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대체 무슨 힘이 남았다고―”
마지막까지 꽃을 피우고 죽었어요.
이연은 죽어 가면서도 악착같이 피워 낸 신령목의 꽃을 보자 목구멍이 뜨겁게 따끔거렸다.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었던 제 마음은 정말로 흙이 되었나 보다. 모든 게 깨지고 망가졌다 생각한 자리에 몰래 움트고 있던 씨앗은 신령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아주 오랜만에, 좋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조금 사납기는 하지만 그녀에게만은 지극했던 권채우. 그녀가 없으면 잠에서 깨지도 못했던 불쌍한 권채우. 신나게 사냥하고 주인 눈치나 봤던 황당한 권채우. 이대로 영영 버림받을까 걱정하던 권채우. 그녀가 키웠던 식물인간 권채우.
찰나에 불과했던 허상이 마침내 추억으로 깃드는 순간이었다.
이연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야. 청심환 하나 까먹고 잘 끝냈나.
“추자 씨, 저 장례식은 치러야 제대로 정리가 될 것 같아요.”
―머? 뭘 한다꼬?
“그냥 우리끼리라도―”
이제 사멸한 가지는 떨구고, 빛을 향해 뻗어 나가야 할 때였다.
‘쓰러져도 누워서 살아가는 아까시나무님. 바람 때문에 허리를 굽힌 단풍나무님. 그건 사투였죠, 사투였어요. 저는 압니다. 이제야 알겠어요. 그러니 저도……!’
그녀가 사랑하고 숭배하는 나무들처럼.
“―권채우 씨 장례식이요.”
이연은 떨리는 손으로 신령목의 꽃을 따 제 품 안에 고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