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7/158)

#106

마음이 흔들릴 때는 나무를 본다.

현관에서 한참이나 미적거리던 추자를 보내고, 이연은 그동안 자신이 작성했던 치료 일지들을 들춰보았다. 과연 치료가 될까, 싶을 정도로 골치가 아팠던 나무들도 멀쩡하게 살려 낸 수년간의 기록들이었다.

그날부터 이연은 다시 공부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배운 지식을 복습이라도 하듯 책을 펼쳐 들고 밀린 논문을 섭렵했다.

공유되고 있는 다른 병원의 치료일지를 열람하기도 하고, 해충학, 병리학, 생리학, 토양학, 수목관리학을 다시 정독하며 손쓸 도리 없이 흔들려 버린 제 뿌리를 이렇게라도 세워 보려 했다.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너 쓸모없어진 지 오래야.’

‘나한테 너, 필요 없다고.’

그녀는 고사한 가지를 싹둑싹둑 자르고, 부패부를 가차 없이 도려내고, 구멍을 충전재로 잘 메우며, 마무리 성형 작업까지 기가 막히게 잘하는 나무의사라는 것이다.

제아무리 권채우가 그녀를 깊게 할퀴고 갔을지언정 훼손되지 않은 영역이란 게 이렇게나 존재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

별안간 이연의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었다.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까지 그녀는 자신이 호흡을 멈추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경직되었던 어깨가 축 내려갔다.

“……여보세요?”

그녀는 버석한 얼굴을 세수하듯 문질렀다. 힘없는 목소리에 한숨이 섞여 들었다.

―이연아, 싸게 신령목부터 확인하고, 산림청에 서류 내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나.

“…….”

단순한 요청에도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은 니 진단서 핑계로 미루고 또 미뤘는데 이제 마지노선이다.

“…….”

―듣고 있나?

“조……”

그녀는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잠시 멈추고,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조금만 더요.”

죽은 신령목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신령목 앞에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 그에게 받았던 선물. 그건 절대 시들지 않을 거라는 나무 공예 꽃이었고, 붉었던 것은 그의 피였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이연이 사랑한 남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오래도록 잠들었다 깨어난 권채우는 과거의 기억을 되찾았으니.

“아, 아직은…….”

이연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땀도 나지 않은 이마를 의미 없이 훔쳐 보았다.

그녀가 느끼는 미묘한 껄끄러움은 거부감과 비슷했다. 죽은 신령목이 꼭 짓밟힌 제 마음 같아서. 그 처참한 광경을 차마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규백이가 안 보인데이.

“네?”

―똥강새이 집에는 내가 함 갔다와 보께. 니는 푹 쉬고 있으래이.

전화가 뚝 끊기자 문득 어둡고 적막한 고요가 살갗에 달라붙었다. 그러자 흉을 가리듯 간신히 쌓아 두었던 돌멩이가 흔들리고 허기가 밀려들었다.

그녀는 밥을 챙겨 먹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기계처럼 열고 눈에 익은 반찬 통이란 반찬 통들은 죄다 꺼내 놓았다. 추자가 밥을 안쳐 주었는지 더 이상 쉰내가 나지 않는 쌀 위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대충 젓가락을 뽑아 들고 식탁에 앉았다.

“읏……!”

여전히 혀가 아릴 정도로 짠 반찬이었다. 왜인지 시큰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젓가락질을 멈출 수는 없었다.

먼젓번엔 간이 엉망인 반찬들을 하나씩 기미해 본 추자가 호들갑을 떨며 다짜고짜 음식물 쓰레기봉투부터 찾았다. 그러나 얼른 버리라고 성화를 부리는 추자를 끝끝내 말린 게 이연이었다.

‘윤주하.’

‘네가 돈 받고 넘긴 여자 이름이야.’

‘그 집에서 죽었거든.’

이연은 밥 한 숟갈을 꾸역꾸역 입 안에 먼저 넣고 반찬을 집어 먹었다. 몇 번 씹지도 않고 꿀떡꿀떡 조급하게 넘기다 보니 가슴을 두드리며 물을 찾는 일이 잦았다.

“컥, 컥……!”

하지만 그렇게라도 소화해야 했다.

‘어머니는 본가 지하에 7년 동안이나 감금당했어. 내가 머물렀던 방 바로 밑에서. 그렇게 햇빛도 한 번 못 보고 시체로 나왔다지.’

그건 이연의 결백을 허용해 주지 않겠다는 이야기였으므로. 무조건 전부 삼켜야 했다.

태생이 그러했듯 사랑마저 죄가 돼 버린 굴레에 순응하려면. 납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권채우를 편하게 해 주려면. 그를 놓아주려면. 이 익숙한 원망을 소화해 내려면.

꼭꼭 씹어 넘겨야 하는 거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턱과 목울대를 움직였다.

‘내가, 입만 열면 거짓말이나 치던 여자를 어디까지 봐줘야 해. 이제는 아무렇게나 뱉고 보는 네 침까지 핥아먹으라는 거야?’

그러는 와중에도 붉게 충혈되었던 남자의 눈동자가 어제처럼 생생했다. 멸시에 찬 시선이 폐부를 가르고, 날카로운 말들은 먹물처럼 쏟아져 지울 수 없는 문신이 되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한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예견된 일인지도 몰랐다.

앞뒤가 뒤섞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겁도 없이 쌓아 올린 거짓말의 업보. 오해와 악연. 엉킨 실처럼 영원히 풀리지 않을 듯한 그 숱한 문제들이 그녀의 속을 자꾸만 찔러 댔다.

“우윽……!”

그때, 의자를 거칠게 뒤로 밀친 이연이 곧장 싱크대로 달려갔다.

“켁, 켁……!”

자꾸만 신물이 넘어오고 구역질이 났다. 결국 전부 토해 버린 이연은 수돗물을 틀어 놓고 연신 웩, 웩, 속을 게워 냈다.

목구멍이 죄어들고 눈알이 시큰거리는 건 멈추지 않는 이 토악질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무너지는 밤이었다.

* * *

“이건 먹튀임다, 먹튀라고요!”

주동미는 신경질적으로 식탁을 탁탁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녀가 검은 봉지에 소주 두 병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온 건 어느 날의 저녁이었다. 이미 한 잔을 거나하게 걸쳤는지 얼굴 여기저기가 울긋불긋했다.

사실 이연은 몇 주 전부터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그녀를 내심 피하고 있었다. 주동미는 권채우의 갑작스러운 잠적에 덩달아 당황하고 분노하다 이내 살려 달라는 메시지를 종종 보내왔다.

그런데도 모르쇠로 일관한 건, 눈에 익은 센터 저지를 보면 부지불식간에 떠오를 얼굴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스쳐 지나가는 하루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뜸 대문 앞에 주저앉아 소주부터 까는 그녀의 행태에 어쩔 수 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켰다. 그렇게 고요했던 집 안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고, 이연은 의외로 이러한 소란이 기꺼웠다.

“번호도 싹 바꾸고 잠수 타는 남자가 사람임까? 예? 사람이에요? 동물도 제 암컷 귀한 줄 압니다. 좋다고 박을 땐 언제고 이렇게 홀랑 튑니까. 튀어도 내가 튀어야지 지가 뭔데 튐까―! 화딱지 나 죽겠슴다!”

맥락상 만나던 남자와 잘 안 된 모양인데 그녀가 화를 내는 지점이 조금 이상했다.

“어떻게 족쳐야 잘 족쳤다고 소문이 날까요, 원장님.”

“어…….”

이연은 당황하여 머뭇거렸다. 주동미는 매번 이연이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를 물어보는 경향이 있었고,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제가 시기적절하게 달고 짜고 매워서 사람 입맛을 바꿔 놓을 줄 아는 여잡니다. 히끅! 그런데 다리 사이에 숟갈까지 버젓이 달고 있는 놈이, 좋다고 먹을 땐 언제고 이렇게 나를 팽할 수는 없는 검다. 뱉어 내도 내가 뱉어 내야 하는 검다!”

주동미가 딸꾹질을 하며 주절주절 주정을 부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임다. 이럴 수는 없는 검다…….”

그녀는 괜스레 코를 훌쩍이며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두고 보십쇼. 나중에 그놈이 질질 싸면서 애원하게 만들어 줄, 아니,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절대 못 싸게 할 겁니다!”

의미심장한 그 말에 이연의 귓가가 붉어졌다. 그녀의 얼굴에 오랜만에 표정이라 부를 만한 것이 덧씌워졌다. 반쯤 벌어진 입과 빠르게 나팔거리는 속눈썹이 소녀처럼 예민하고 생생해 보였다.

이연은 어쩔 줄 모르고 열 오른 뺨을 긁적였다. 몇 주째 가슴 속에만 눌러 담았던 우울이 아닌, 주동미의 신선한 분노에 휘말린 탓일까. 저도 모르게 툭 뱉어 내고 말았다.

“……저도, 헤어졌어요.”

“……!”

순간 주동미가 굳었다. 그녀의 얼굴에 조심스러운 경악이 스쳤다.

“일꾼, 아니, 그 권채우 후배님이랑 말임까?”

그 권채우가? 주동미는 술이 깬다는 얼굴로 텅 빈 집안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럼 여기 없습니까? 집 나갔슴까?”

“네.”

주동미는 벙찐 듯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그렇게 순순히 꼬랑지 말고 가출할 종자가 아닌데?

“사실……, 저번에 여기 수목치료사님께서 당부해주신 게 하나 있었슴다. 절대로 원장님 앞에서 권채우 얘기는 꺼내지 말라고요.”

주동미는 두 뺨을 짝짝 치며 고개를 털었다. 그러자 눈빛이 한결 또렷해졌다.

“그럼 이혼……, 하신 검까?”

“…….”

이연이 별다른 대답 없이 웃어 보이기만 하자 주동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병을 땄다.

“원장님도 한잔 쭉 들이키는 검다.”

이내 꼴꼴꼴, 하고 투명한 액체가 술잔을 가득 메운다. 주동미는 입매를 일자로 굳히고 다소 비장하게 술잔을 밀었다.

그 기세에 말린 이연이 순순히 소주잔을 입에 대는 순간, 코를 찌르는 알싸한 향이 별안간 속을 왕창 뒤집어 놓았다.

이연은 확 치미는 메슥거림에 얼굴을 찌푸렸다. 입술 안쪽을 깨물며 잔을 도로 내려놓자 주동미가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이연은 눈썹을 내리며 웃어 보였다.

“제가 며칠 밥을 건너뛰었더니, 속이 좀…….”

“헉, 빈속이었슴까? 그럼 속 버립니다, 드시지 마십쇼!”

주동미가 이연의 술잔을 대신 가져가 재빨리 입속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눈초리 무서운 남잔 무조건 피하고 보는 검다!”

이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녀의 주변에는 이렇듯 강한 사람들이 있다. 여러 번의 상실을 딛고 선 추자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흠집 내지 않는 주동미의 공통점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건 푸르렀던 나뭇잎이 퇴색하고, 하나둘 땅바닥에 떨어져도, 다시 새순이 돋을 것을 확신하는 나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서. 그녀의 가슴 속에 푹 파인 구멍도 왜인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원장님, 왜 헤어지셨는지 여쭤봐도 됨까?”

주동미가 게슴츠레 풀어진 눈으로 물었다.

“혹시 원장님도 알아차리신 검니까? 그놈이 실은 굉장히 지독한데―”

“역시 이혼은 아닌 것 같아요.”

“―내숭을, 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짜와 허상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별이 더 정확한 게 아닌가 싶어요.”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됐으니까.

기실 ‘그 권채우’는 죽었다고 봐야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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