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규백이는 바닥에 떨어진 『가문비 나무병원』 명패를 품에 꼭 안고, 골목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이내 아이는 고개만 삐죽 내밀고 원장 선생님의 집을 막고 있는 검은색 차량 여러 대를 관찰했다. 동그래진 눈과 바짝 올라간 눈썹이 표정 변화가 크지 않던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히익……!”
차량에서 내린 남자들은 귀에 동그란 무언가를 끼고 야구 배트며, 골프채를 쥐고 보란 듯 대문을 부수고 있었다.
규백이는 숨을 삼키며 더욱 몸을 옹송그렸다. 명패를 쥔 손끝이 하얘졌다.
골목 너머로 와장창, 쨍그랑, 부서지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달에 몇 번씩 제 삼촌과 할아버지가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며 싸울 때와 똑같은 소음이었다.
규백이는 강박적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무섭게 쿵쾅쿵쾅 뛰었다.
‘그래도 저곳은…….’
제가 학교보다도 몇백 배나 더 좋아하는 장소였으며, 나무병원의 명예 곤충 박사로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이는 무릎을 달달 떨면서도 눈을 떴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허리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대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 아가리처럼 활짝 열어 둔 트렁크에는 뭐에 쓰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있었다. 반투명한 비닐, 밧줄, 온갖 연장들, 웬 주사기, 구급약품, 그리고…….
“……!”
순간 규백이의 눈이 깜짝 커졌다. 본래의 목적을 단숨에 잊어버릴 만큼의 자극을 받은 어린 소년은 트렁크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히야…….”
저절로 입이 헤벌쭉 벌어지고 손부터 나갔다.
이건 여덟 해를 살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귀한 것이었다. 늘 책이나 TV로만 보던 것.
규백이의 눈이 호기심으로 그리고 감탄으로 반짝거렸다. 이제 그는 되돌릴 수 없는 지독한 몰입 상태가 되어 무작정 트렁크에 올라탔다.
덩치 큰 남자들이 그림자에 숨은 규백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트렁크를 닫을 때까지.
바닥에 툭 떨어져 있는 명패 위로 뿌연 흙먼지가 내려앉았다.
* * *
며칠째 정리하지 않고 방치해 둔 마당은 쑥대밭이 따로 없었다. 드디어 하얀 꽃망울이 맺혀 이연을 기쁘게 했던 식물은 뿌리째 뽑혀 구둣발에 밟힌 흔적으로 가득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정성껏 가꾸었던 화단이 지금은 태풍이라도 다녀간 듯 엉망진창이다.
“…….”
이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 그런 앞마당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화이돔 4차 심사에서 떨어진 지도 벌써 2주째.
그녀는 오늘이 며칠인지, 몇 시인지도 몰랐다. 그저 낮이고 밤이고 석상처럼 소파에 앉아 졸리면 새우잠을 자고, 다시 깨서 창밖만 하릴없이 바라보는 의미 없는 일을 계속했다.
집은 동굴처럼 너무나 시리고 고요해서 때때로 제 숨소리조차 거슬릴 정도였다.
열심히 준비했던 심사는 당연히 해 보기도 전에 탈락했고, 잘 버텨 줬다고 생각한 신령목마저 느닷없이 고사했다.
추자의 말로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수피를 다 할퀴고 파냈다고 하던데, 그 자국이 꼭 짐승 발톱 같았다고 했다. 대번에 누구 짓인지 짐작이 갔다. 장장 오백 년 동안 살아 온 나무를, 이연이 직접 눈앞에서 수술까지 한 나무를, 그렇게 무참하게 죽여 놓고 갈 정도의 분노라면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불현듯 누군가의 얼굴이 사진처럼 떠오르자 이연은 다시 심장이 따끔거렸다. 그것이 신령목에 대한 죄책감인지, 떠난 이에 대한 상처인지 구분이 쉽지 않았다.
“저거, 다시 복구 안 할끼가?”
추자는 오늘도 어김없이 이연의 창백한 안색을 살피며 마주 앉았다. 여전히 짓물러있는 눈가. 이연은 그저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내장까지 파헤쳐진 화단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권채우가 그렇게 떠나고, 엉망이 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니 앞마당은 숫제 승냥이가 파먹은 듯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발자국으로 더러워진 거실, 화분과 꽃병이 깨져 널브러진 집 안은 덤이었다. 2층은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싹 긁어 갔다.
정말이지 지독한 꿈을 꾼 것 같았다.
“이연아, 오늘 날이 좋대이.”
“…….”
“오랜만에 비싼 선글래스 끼고 아스크림이나 먹으러 가까?”
추자는 어떻게든 입꼬리를 올리고 활기를 북돋으려 했다. 그러나 이연의 옆모습은 툭 건들면 허물어질 모래처럼 연약했다.
벌써 몇 주째, 그 넋 나간 얼굴만 보고 있자니 추자는 점점 속이 문드러졌다. 이렇게까지 메마른 모습은 친부모의 장례식 이후 처음이었다.
온갖 친척 집을 전전하다 결국 추자에게 왔던 날, 그때의 그 비루먹은 모습과 똑 닮아있었다.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나간 흔적이라는 게 이리도 혹독했다.
“이연아, 밥이라도 잘 챙겨 묵어야제.”
이내 추자는 이연의 불긋한 목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신 나간 노인네들한테 이리저리 휘둘리느라 할퀴어진 상처였다.
그때 이연이 어땠더라. 그녀는 반항 한번 하지 않고 그저 목 놓아 울었다. 별안간 터진 울음소리에 아귀처럼 달려들던 사람들은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열 받은 추자가 노인네들을 들이받으면서 현장은 다시 개판이 되었다.
진즉 자리를 피했던 연주자 중 한 명이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오고 나서야 뒤엉켜 바닥을 구르던 싸움은 간신히 정리가 됐다.
“어두컴컴한 집에만 있으면 비타민 D가 부족해지지 않겠나.”
어린애처럼 털썩 주저앉아 엉망진창으로 쏟아 내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지금의 이연은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거리기만 했다.
“소 원장아, 뭐라도 먹고, 움직이고 해야제.”
“…….”
“일단은 저 화단부터 우째 안 되겠나. 여가 폐가도 아이고, 계속 저래 놔두면 나무 맡기러 온 사람도 지절로 후진부터 한다 안카나. 저 앞마당이 우리 병원 팜플렛이나 다름없다는 걸 잊지 말그래이.”
그때 이연이 퍼석해진 입술을 열었다.
“……소용이 있을까요?”
“머?”
“내가 아무리 정성 들여 가꿔 봤자 소용없는 것 같아서요.”
창밖 너머를 바라보는 헛헛한 시선은 초점이랄 게 없었다.
“멍청하게 그런 짓을 또 해도 되는지.”
“대체 어떤 놈이 그런 망발을 해 쌌노, 성실하고 건실한 거제!”
“그러던데요, 멍청하다고.”
굳은 입가에 껍데기만 남은 미소가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이연은 며칠 전, 홀로 침실에 앉아 해가 뜨는 것을 보다 울컥, 구역질이 치받았다. 발작적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결번이라는 기계음만 계속해서 들릴 뿐이었다.
이게 현실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고, 가짜지? 순간 숨이 막히고 머릿속은 진창이 되었다. 방 안에 혼자 남은 자신을, 이 상황을, 도무지 믿기가 어려워 현실과 유리된 듯 이상한 부유감이 들었다.
당장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제 삶은 이렇지가 않았었는데……. 우리가 왜 악연이야? 갑자기 그게 말이 돼?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다. 아주 크게 잘못된 것일 테다. 우글거리는 벌레가 달라붙은 것 같은 이 끔찍한 이질감을 당장에라도 해결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이연은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발길이 닿는 곳은 동사무소였고, 그녀는 나사가 빠진 얼굴로 가족 관계 증명서를 요구했다. 정말이지 미친 듯이 화가 났다. 권채우에게, 권기석에게, 그리고 결국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든 스스로에게.
새하얀 서류에 배우자는 없었다. 분명 권채우의 이름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이게 말이 돼? 말이 되는 거야? 이럴 리가 없잖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이연은 손을 발발 떨며 두 번이나 새로 더 뽑아 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아득한 눈으로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신발이 짝짝이였다. 왼발은 운동화, 오른발은 슬리퍼.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아요, 지금 나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거.”
그래, 원래의 나는 결혼한 적이 없었지. 이게 우리의 제자리였지. 응어리진 무언가가 속에서 끓더니 나중엔 웃음으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이연은 대소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잖아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추자와 눈을 마주했다.
“그 사람 흔적이라곤 이제 하나도 없는데 냄새가 자꾸 나요. 추자 씨도 혹시 나요? 아니면 나한테만 나는 거예요?”
모든 게 풍화된 눈동자에서 문득 기이한 이채가 돌았다.
“그게 코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아요. 그래서 자꾸 헷갈리고 의심이 돼요. 분명 여기에 있는데, 아직 여기에 있는데. 누가 작정하고 나를 속이는 것 같아요. 체취가 이렇게나 곳곳에 남아 있는데…….”
이연이 쿠션에 얼굴을 파묻자 야윈 목뼈가 도드라졌다. 추자는 그 위태로운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 하나 떠났다고 너까정 죽으라는 법은 읎다.”
이연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듯 짐짓 단호한 목소리였다.
“이제 겨우 한 계절이 간 기다. 고작 첫 번째 남자가 간 거래이. 내 봐라, 그동안 이 계추자를 스쳐 간 사내들이 얼매나 많았능교. 근데 그눔들이 갈 때마다 내가 무너지드나.”
“……삼촌 돌아가셨을 땐 응급실 갔잖아요.”
이연이 웅얼웅얼 여상하게 말했다.
“밥도 안 먹고, 씻지도 않고, 화장실도 안 가고요, 그래서 병원에서 관장―”
“에헤이, 에헴!”
그 말에 추자가 헛기침을 하며 무안한 듯 손사래를 쳤다.
“그렁께네 내 말은, 의심하지 말고 겁도 먹지 말라꼬! 사랑이 자연재해인 건 맞지만은―”
어디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추자의 눈이 오목하게 깊어졌다.
“그렇다고 닥친 재해를 원망하는 건, 스스로 또 다른 재앙을 만드는 기다.”
추자의 눈은 자애로웠지만 동시에 엄격했다.
“……그치만, 내가 뿌리째 뽑힌 것 같아요.”
이연은 허물어지듯 소파 등에 뺨을 기댔다. 목소리에선 그날의 상처가 진물처럼 배어 나왔다.
“뽑힌 게 아이라 온 힘을 다해서 잠깐 욱신거리는 기 아이고?”
“……!”
추자는 도무지 제 온도를 찾지 못하는 이연의 차디찬 손을 꽉 붙들었다.
“다 죽어 가던 나무들도 척척 살리는 니가, 제 몸 하나를 못 살릴까.”
벌건 속살을 드러낸 이연의 눈동자가 갈대처럼 떨렸다.
“이연아, 천 번을 흔들리고 나면 내랑 나무 보러 가제이.”